# 15
조우―칼잡이 아저씨
관측 방의 창 앞에 앉아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보는 이진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한참동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귀에 현관문 밖에서 식사하던 놈들의 소리가 어느 순간 들려 오지 않았다.
냄새로 느껴지기로는 6층부터 4층까지 계단의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었다. 시큼한 냄새 세 마리는 서로 구분되지 않아 끝방놈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래 같이 있었다고 끝방놈이 궁금하네. 저것들끼리는 안 싸우고 잘 지내려나?’
피식거리며 끝방놈을 걱정하던 중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잠깐! 아까 끝방놈이 6층에 올라가 있다가 5층에 놈들이 모여 있던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 공격했었지.”
이진성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만약에 무서워서 피했던 거라면 계속 숨었어야 해. 아니면 놈들이 6층으로 올라가서 마주쳤을 때나 공격했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미리 공격했다는 건? 와! 씨! 저놈 일부러 숨은 거였네.’
‘놈들이 아래층에 있을 때 미리 공격 안 한 거는 뭐야? 아래에서는 놈들이 더 쉽게 도망갈 수 있으니까? 저놈 그 정도 생각할 수 있는 놈이란 거야? 아니면 본능으로 사냥기술을 가진 건가?’
놈이 혹시나 사냥기술을 가진 것이 아닌가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몸에 소름이 돋으며 입으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것들이 사람만 보면 무조건 달려드는 놈들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면? 씨발! 보통 일이 아니네. 만약 사자나 늑대같이 무리 사냥이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당하는 거네?”
최대 위협을 가정하면 저들이 유인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못하더라도 최소한 보통의 육식동물의 본능적인 사냥기술은 가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저놈들이 고릴라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고 가정하고 움직이자. 최대한 냄새로 피해 다니면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이진성은 코를 킁킁거리며 다시 냄새를 확인했다.
‘내가 저놈들보다 후각이 더 좋았으면 좋겠는데…….’
걱정을 하며 밖으로 나갈 볼 결심을 굳힌 이진성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서 자신의 유일한 가방인 크로스백에 챙겨 놓은 망치와 드라이버, 그리고 유리를 깰 경우 쓸 용도로 박스테이프를 넣고 비상 탈출구로 향했다.
베란다로 나온 그는 우선 밑을 확인했다. 보이는 부분에는 다행히도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냄새로 느껴지는 좀비는 저 옆집의 아저씨뿐이었다.
“가만. 내가 없는 동안 누가 이리로 들어오면 어쩌지?”
나간 동안에 다른 사람이 혹시나 들어왔다면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돌아와서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할 방법이 필요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의 뇌리에 문득 영화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
6층으로 올라가서 머리카락 두어 가닥을 뽑아 문틈에 넣은 후 문을 닫았다. 누군가 문을 연다면 머리카락은 그 자리에 없을 것이었다.
5층과 4층도 마찬가지로 한 후 아래로 향했다.
혹시나 해 열어 본 3층과 2층의 비상 탈출구는 안에서 잠겨있어 열리지 않았다.
위에서 안 보이던 1층으로 통하는 사다리는 건물 코너의 팔로티기둥 하나에 붙어 있었고 다행히도 뒤 건물과 옆 건물에 가려져 있었다.
일부러 그 구석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위치였다.
1층으로 내려가기 전, 혹시 사람이라도 있을까 봐 잠시간 귀 기울여 봤지만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맡아지는 사람의 냄새도 없었다. 아무도 없음을 확신하고 1층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섰다.
확실히 그 위치는 절묘했다. 기둥을 돌아 나와 세워져 있는 차 두 대를 지나 앞으로 나가야 계단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야 앞 큰길로 나설 수 있는 구조였다.
누군가 온다 해도 계단을 이용하지 그 뒤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제일 먼저 병무청사거리에 있는 철물점으로 향했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전부 높아 봐야 5층짜리 작은 건물이었고 모든 건물은 1층에 상점을 한두 개 가지고 있었다.
혹시 상점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이 있을까 상점 유리 안을 살피며 천천히 전진했다. 다행히 6차선 길 건너에서도 별 움직임이 보이거나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진성이 철물점에 도착하기까지는 10여 분이 넘게 걸렸다. 고작 50여 미터나 될까 싶은 짧은 거리임도 불구하고 바싹 긴장한 이진성은 너무 조심하고 있었다.
철물점의 문은 역시나 잠겨있었다.
문의 유리를 깨면서 큰 소리를 내는 무모한 짓은 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가져온 박스테이프를 유리에 바르고 그 위를 망치로 때렸다.
처음 몇 번은 소리가 날까 봐 너무 약하게 때려 깨지지 않았다. 약간의 용기를 냈다. 소리가 나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힘을 가해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졌고, 퍽 소리에 놀란 이진성은 사방을 둘러봤지만 보이는 움직임은 다행히 없었다.
깨진 유리가 붙은 테이프를 뜯어내고 구멍으로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풀고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안은 좁고 어두웠고 다행히 인간의 냄새도 좀비의 냄새도 없었다.
“뭐가 있나 보자. 못은 필요 없고 파이프들도 필요 없고… 찾았다. 절단기!”
어딘가 자물쇠나 팬스를 자를 경우를 대비해서 절단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철물점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절단기의 크기는 여러 가지였다. 길이 약 40cm 정도 되는 놈으로 골랐다. 묵직한 게 내려치는 무기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뭐가 더 있나 뒤져 봤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구석에서 녹슨 빠루를 발견하고 들어 보았다.
“요즘도 이런 거 쓰나? 녹슨 거 보니까 엄청 오래됐나 보네. 이것도 하나 챙기자.”
다음 목적지는 여의도 쪽으로 몇십 미터 올라가서 길 건너 있는 하나마트였다.
이미 약탈당했다 해도 혹시라도 남은 것 중에 챙길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확인은 해야 했다.
철물점을 나서려는 이진성은 다시금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용히 바깥을 살피며 방금 챙긴 절단기는 가방에 넣고 빠루를 들고 안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다만 동네 여기저기서 썩는 냄새와 좀비들의 시큼한 냄새가 풍겨올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 후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한 번에 건넜다.
사거리는 차량으로 뒤엉켜 있어, 어디서 좀비가 나타난다 해도 그 차들 때문에 빠르게 다가오지는 못할 상황이었다. 물론 이진성 자신도 빠르게 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차들 틈을 헤치고 보닛을 타고 넘으며 사거리 한가운데쯤을 지나가는 찰나, 멀리서 사람 비명이 들렸다.
급하게 바싹 웅크리고 둘러 보는데, 앞차 너머의 차에 뜯겨 먹은 시체와 함께 타고 있는 좀비가 보였다. 안전띠를 하고 자리에 묶여 버둥대고 있었고 옆 사람은 좀비의 입이 닿는 부분의 뼈가 드러나 있었다.
“뭐야? 운행 중에 변한 건가? 운전자가 놀라서 사고를 냈고? 와! 안전띠가 여러 사람 구했네.”
그 차를 피해 크게 돌아 다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사거리를 다 건넌 후, 마트 쪽으로 천천히 전진하는데 문이 열린 치킨집에서 풍겨 나오는 고기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 정전된 지 벌써 한참 지났지. 오늘이 4월 2일. 정전이 19일이었나? 벌써 거의 보름 된 거네. 마트에 있는 생선이나 고기도 다 썩었겠네. 냄새 장난 아니겠다. 좀비가 있어도 냄새가 섞여 모를 거 같은데?”
빠루를 앞세우고 도착한 마트 입구의 자동 유리문은 역시나 깨져 있었다.
입구 옆에 붙어 있던 사람 좋은 아주머니가 하던 작은 반찬가게의 냉장 쇼케이스 역시 깨져 있었고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반찬들 역시 다 헤쳐져 썩어가고 있었다.
마트 안에서는 역시나 썩는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보이는 곳은 유리에서부터 몇 미터 되지 않는 계산대와 그 오른쪽 채소와 과일 매대 정도였다.
그 안쪽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더 안 좋은 것은 수십 마리는 될 듯한 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씨. 쥐도 좀비만큼 싫은데.”
쥐와 냄새 때문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결국 조금만 들어가 보자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깨진 자동문 안으로 들어서니 놀란 쥐들이 사방으로 뛰었다. 다른 움직임은 일단은 감지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가만히 서서 어두운 안쪽을 한참 쳐다보며 눈을 어둠에 적응시켰다. 빠루를 들고 있지만, 스스로 생각에도 자신이 휘두르는 빠루가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안쪽으로 십여 걸음 더 들어가니 생선과 고기 썩는 냄새가 더 심해졌다. 안 그래도 민감한 코가 마비되는 것 같았고, 동시에 어둠에 약간은 익숙해졌는지 폭탄 맞은 듯 폐허가 된 냉장식품 판매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너머 저 안쪽으로 있는 통조림 판매대는 안 봐도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찾아보면 바닥에 떨어진 몇 개의 통조림은 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위험한 어둠 속에서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저 안쪽 깊은 곳 바닥에 빨간빛의 작은 것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거… 좀비 쥐새끼? 입구의 쥐들은 저것들 피해 나와 있는 거고? 하. 씨.”
그냥 쥐도 싫은데 좀비 쥐가 있는 곳까지 들어가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다.
ITL의 발표에서 변이체가 동종포식만 한다고 했지만, 그리고 까치가 까치를 잡아먹는 것을 3월 초에 실제로 눈으로 보긴 했지만, 좀비쥐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었다.
이진성은 그냥 나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려고 뒤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 등골이 싸해졌다. 뒤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좀비 쥐들이 있던 그 뒤의 공간에서 쥐보다 훨씬 큰 빨간 눈 한 쌍이 스르륵 나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게 서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씨발! 사람 좀비.”
잡히면 저것들의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 다시 퍼뜩 들면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도 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하나가 아닌 듯했지만 뒤돌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채소 판매대에 닿기 직전, 바닥에서 썩고 있는 것들에 미끄러져 몸의 중심을 잃었다. 몸을 겨우겨우 가눠 넘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채소 매대에 충돌하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다.
쏟아지는 썩어 물컹거리는 채소와 과일들을 밟으며 뛰는 속도를 잃었다. 놈들이 이미 바로 뒤에까지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놈들이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다는 생각에 빠루를 좌우로 휘둘면서 앞으로 나갔다.
고작 5m 정도의 신선식품 칸을 벗어나는데 몇십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겨우 그곳을 벗어나자 뒤에서 뭔가가 자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 계산대를 지나 왼쪽의 깨진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며 힐끔 본 이진성에게 바닥의 채소와 과일을 밟고 미끄러져 자기들끼리 엉켜 놈들이 보였다.
이진성을 좀비로 만들 뻔한 썩은 채소와 과일들이 이진성을 살린 것이었다.
문밖에서 숨을 고르며 놈들을 잠시 보니, 하나의 검붉은 눈과 네 마리의 빨간눈이었다.
‘저것들도 무리 지은 놈들이네. 우리 끝방놈 무리 같은 것들인가 보네. 저것들 둥지는 여긴가?’
놈들은 곧 몸을 일으켰고 그걸 본 이진성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시 아까와 같은 행운을 기대할 수는 없다.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했다.
저놈들에 잡혀 검붉은 눈을 한 채, 지금 저놈들이 하듯이 사람을 뜯어 먹기 위해 쫓아다닌 짓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무조건 앞으로 달려나갔다 따라오는 놈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아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머리는 공포로 몽롱해 졌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으아아아~ 살려줘. 제발!”
공포에 다른 곳에서 자신의 소리를 듣고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잊고 소리치며 달리는 이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