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6화 (16/145)

# 16

이진성은 도로 위의 차들을 헤치고 달렸다. 여기저기를 부딪쳤지만 고통을 느낄 정신도 없었다.

차들의 따라 좌우로 꺾을 때마다 놈들과의 거리를 확인했다.

놈들도 역시 차들 틈에 끼어 빠르게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겨우 몇 걸음 차이였다. 한순간 삐끗하면 따라 잡힐 것 같았다.

정신없이 달려 겨우겨우 차도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달렸다. 무기라고 손에 있는 빠루는 이미 뇌리에서 잊혔고 가방에 들어있는 절단기는 뛰는 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고 다리는 천근만근 같았지만, 몸은 저절로 움직였고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거의 병무청사거리에 닫았을 때쯤, 놈들의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달리며 뒤를 힐끗 봤더니 놈들은 차도를 건넌 후 약 20m 정도를 따라오다 멈춰서서는 다른 방향을 향해 그르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안심한 이진성은 멈춰서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왜 안 따라오는 거야? 뭘 보고 있는 거야?”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이진성이 다시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놈들이 향한 곳은 이진성 쪽이 아닌, 그들 바로 옆의 피트니스센터가 있는 건물이었다.

“뭐지? 왜?”

이진성은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건물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4층의 창에서 떨어져 내리는 한 여자를 볼 수 있었다.

“헉헉. 반은 동족이나 마찬가지인 나보다는 먹이가 더 중요했다는 거네. 씨발. 나중에 저승에서 저 사람들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겠네.”

자기 때문에 졸지에 좀비에게 당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지만, 자신이 살았다는 것이 더 기쁜 마음에 여유롭게 발길을 돌린 이진성이었다.

고시원 좀비 놈들은 이진성이 다시 와서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다행히 별 움직임이 없었다. 이진성이 나갔다 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저것들은 냄새 못 맡나? 나는 다 맡고 있는데?

비상 탈출 사다리로 4층에 올라가 문에 끼워 놓은 머리카락을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5층과 6층도 이상 없었다.

안심하고 5층의 관측 방으로 가서 겨우 침대에 누워 숨을 돌리자 그때야 온몸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통증에 끙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트 놈들. 어두운 구석에서 내가 들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내가 그냥 나오니까 그제야 달려 나온 거야.

만약에 내가 달큰한 냄새가 아니고 고소한 냄새였어도 그랬을까?

에라. 그것까진 몰라도 되겠지. 하여간 여기 고시원 놈들도 그렇고 저놈들도 그렇고 인간 좀비는 확실하게 사냥 방법을 안다고 봐야겠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빛이 장난 아니었어. 아! 그러고 보니 좀비 쥐하고 같이 있었던 건가? 끼리끼리 모여 있나? 아니면 그냥 우연히 그쪽으로 튀어나온 건가?’

좀 전에 겪었던 일을 토대로 좀비들의 특성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이진성은 저도 모르게 어느덧 잠에 빠져 버렸다.

* * *

콰쾅 챙 쩌정 쨍그랑~

이진성은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 유리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퉁기듯이 벌떡 일어났다.

소리는 멀지 않았다. 쌍안경을 집어 들고 보이는 가장 먼 곳부터 가까운 곳으로 훑어 올라오는데 어디에도 특별한 움직임이 발견되는 것이 없었다.

“아. 오늘 뭔 날이야. 여태 조용하더니 왜 내가 움직이려고 하니까 난리야.”

차창~

불평을 하며 소리의 근원을 찾는 중에 다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쌍안경을 돌렸다. 길 건너 약간 남쪽 건물의 3층이었다. 해동검도라고 적혀 있는 검도관 창문의 유리가 깨져 떨어지고, 그것들과 함께 떨어지는 남자도 보였다.

사람인지 좀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깨진 유리 안으로 몇 명의 사람이 더 보였다.

그중 긴 머리의 남자가 어두운 실내에서도 번뜩이는 장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사람 모습의 것들이 있었다.

‘칼 휘두르는 사람이 강도고 나머지가 주인인가? 아냐. 검도 도장이니까 칼 휘두르는 사람이 주인이겠다. 나머지는 강도? 좀비?’

쌍안경으로 본다지만 눈동자 색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맡아지는 냄새도 없었다.

사람이라서 냄새가 약한 것인지, 아니면 좀비인데 저 거리의 냄새는 못 맡는 것인지 이진성은 확신하지 못했다.

남자들은 시간이 지나며 한둘씩 칼잡이 아저씨한테 쓰러졌다. 마침내 30분쯤 지나서 모든 소음은 멎었다.

뭔가 대단한 광경에 놀라 있던 차에, 안 깨진 다른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 보인 것은 칼잡이 아저씨가 쓰러진 사람(또는 좀비)을 들어 창밖으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떨어진 일부는 죽었는지 미동도 없었고 일부는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소리는 없었다.

그렇게 버려진 게 전부 여덟이었다.

‘와 씨. 대단하네. 기운도 좋으셔. 그만큼 칼질하고 나서 남자들 몸을 번쩍번쩍 들어 던져 버리네.’

저 아저씨가 좀비를 잡고 밖으로 버리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던 그 순간이었다.

고시원에 있던 끝방놈 일당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건물 밑으로 빠르게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건물 앞에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곧장 길 건너 검도관 쪽으로 향했고, 검도관 아저씨는 피 묻은 칼을 세워 들고 창가에 서서 미동도 없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마 저놈들이 자기들 동족 죽였다고 복수하러 가는 건 아니겠지? 좀비들이 그거까지 하면 감정까지 있다는 말인데… 그럼 너무 위험해지는 건데.’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좀비들은 검도관 밑에 떨어진 남자 중 움직이는 몇 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헉. 사람이었잖아? 사람을 칼로 그렇게 썰어 버린 거야? 씨발. 저런 살인마가 바로 앞 길 건너에 있었던 거야?”

좀비도 좀비지만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 바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더더욱 고시원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안산으로 가는 길을 다시 한번 고민하던 이진성은 가는 길에 만날 수많은 좀비와 위험한 사람들을 상상하고는 다시 용기가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에 저 아저씨가 나와 동행 해 준다면, 훨씬 안전해질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방금 보여준 실력으로 봐서 좀비든 사람이든 위험한 요소가 근접했을 때, 길 건너 아저씨는 분명하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진성 자신이 냄새로 미리 탐지해서 위험을 피한다면 둘의 조합만으로 충분히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이진성에게 안전한 사람인가의 확인이 우선 필요했다.

‘저 아저씨가 죽여 버린 사람들이 강도였는지 아니면 무고한 사람들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찾아가서 얼굴 마주 보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안전한 장소에서 의사소통할 방법을 찾아야 해.’

고민을 하며 창밖을 보던 이진성의 눈에 길 건너 재건축 아파트 공사장의 높다란 타워크레인 너머 뉘엿뉘엿 넘어가는 붉은 해가 보였다.

크레인에 걸린 해가 참 멋지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던 중 번뜩 떠오른 생각에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 저기 공사장. 분명히 무전기가 있을 거다. 무전기를 찾아오기만 하면 돼. 하나는 몰래 검도장 앞에 놓고 와서 여기서 통신을 하면 된다.”

서쪽으로 붉게 넘어가는 해를 보며 자신의 아이디어 만족해서 씩 웃고 있던 이진성은 자신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몰려오는 허기에 배를 부여잡고 근육통으로 참으며 억지로 식량창고 방으로 향했다.

밥을 먹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쌀 씻어 밥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불빛이 새나가는 것도 걱정이었다.

결국 복도에서 라면에 햄 통조림을 하나 전부 넣고 끓여 먹고는 바로 아무 방이나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이진성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온몸의 근육 하나하나 안 아픈 곳이 없었고 몸살이 나는지 열도 있었다. 꼼짝하기도 싫었다.

그런 컨디션으로 나가서 좀비라도 만나면 절대로 도망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가기를 포기하고 하루 쉬기로 마음먹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다시 관측 방으로 기다시피 해서 갔지만, 검도관의 깨진 창 안으로 사람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칼잡이 아저씨가 던져 버린 사람들은 모두 없어져 길에는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끝방놈 패거리는 어제 그대로 다른 곳으로 가 버렸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놈들은 이미 돌아와 있는 것을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어제 그 시체들을 다 끌고 온 건가? 여덟 명이었는데 저번의 네 명까지 하면 식량이 너무 많아. 그리고 이제 날이 따뜻해서 시체들 금방 썩기 시작할 텐데. 정말 며칠 내로 여길 떠야 하겠구나.’

좀비들이 거리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던 3월 17로부터 18일째다.

식량을 확인했다. 주방에 남아 있던 쌀과 라면까지 모두 챙겨 놓았지만, 쌀은 페트로 세 개, 라면은 스무 개 남짓뿐이었다.

생수는 약 40 페트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물탱크의 물이 떨어지면 생수 소비는 훨씬 많아질 것이었기에 많은 양은 아니었다.

통조림은 참치가 37개, 햄이 32개였다.

“식량 말고 필요한 게 뭐가 있으려나? 좀 쓸만한 무기와… 아! 상비약! 약국을 뒤져 봐야겠다.”

세상이 이렇게 되니 돈 걱정 할 필요 없는 것, 단 한 가지는 좋은 점이었다.

* * *

하루가 더 지나고 이진성의 근육통과 얕은 열은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몸은 전보다 가볍고 기분은 상쾌했다.

“뭐야? 내 몸이 이럴 리가 없는데? 이것도 유전자변형의 결과 같은 건가? 막 건강해지고 그러는 거야? 와! 코 말고도 얻은 게 있나 보네. 부작용은 없겠지? 일단 좋게 생각하자!”

기분 좋게 아침을 먹고 쌍안경과 절단기 그리고 빠루도 챙겨 들고 나섰다.

그저께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다리를 내려가며 확인한 끝방 놈 일당은 저마다 얌전하게 있는 것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건물 입구에서 좌우를 둘러봐도 보이는 움직임은 없었다.

빠르게 도로를 건너 반대편 길 공사장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 지점은 차들이 대방로로 나오려다 사고로 꽉 막혀 있는 곳이었다. 차들을 타고 넘으며 전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차들이 저 안쪽에 있는 좀비들이 큰길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 주고 있는 건지도…….’

그래서 큰길에 좀비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자신이 차를 밟아 나는 삐걱거리는 철판 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없었다. 좀비들의 냄새도 없었다.

골목 안쪽 주택가에 다다르자 군데군데 핏자국이 보였다.

쌍안경으로 보이는 먼 곳에는 뼈만 남은 시체도 몇 구 보였지만,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재건축 공사장까지는 약 30m 정도. 좌우로 오래된 집들이 많은 곳이었다.

좌측에서 희미한 냄새가 느껴 졌지만, 멀리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집 내부에서 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일단 위협은 되지 않았다.

재건축 현장에서 골목으로 통하는 출입문은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철문을 열었다.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끼익 하는 소리에 긴장하며 몸을 숙이고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몇 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 반응이 없음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들어서며 사방을 둘러봤다.

이미 높게 골조가 올라간 동도 있었고 몇 층 올라가지 않은 곳, 아직 기초만 파 놓은 곳도 보였다.

“일단 사무실부터!”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무실 같은 컨테이너들이 보였다.

그 안에 무전기가 있길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중 컨테이너를 20여 미터 앞둔 지점에서 이진성은 멈춰 서야 했다.

그 컨테이너 쪽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이었다.

“아이 씨. 그럼 그렇지. 어째 여태 순조롭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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