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8화 (18/145)

# 18

이진성이 다시 고시원으로 올 때도 끝방놈 패거리는 여전히 얌전했다. 조용히 방으로 돌아온 이진성은 망원경으로 검도관을 보며 생각했다.

‘일단 내 위치는 숨기는 게 좋겠지. 저 아저씨가 강도로 변해서 칼 들고 오면 답 없다. 그리고 내가 자기랑 같은 과라는 거는 기회 봐서 말하자. 어차피 같이 안 갈 거면 서로에 대해 알 필요도 없는 거고.’

대략 생각을 정리하고는 무전기를 켰다.

“여보세요.” 삐릭~

“거기 누구 안 계세요?” 삐릭~

“좀 받아 보세요.” 삐릭~

응답이 없었다.

어디론가 가버렸나 싶어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잠시, 갑자기 무전기에서 굵고 점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 누구요?>

“아. 저 저는요. 검도관 주위에 사는 사람인데요. 엊그제 그 뭐냐, 검도관에서 아저씨가… 그…….” 삐릭~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려던 순간 말을 해도 되나 싶어 송신 버튼을 놓았는데 저쪽에서 바로 답이 왔다.

<죽이는 것을 봤다는 말이군요. 그래서요? 날 체포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너무나 담담한 반응에 이진성은 이 아저씨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당황스러웠다.

“그게 아니고요. 제가 경찰도 아닌데 체포는 무슨. 그리고 이 판국에 제가 살인이니 뭐니 신경 쓸 이유도 없고요.” 삐릭~

<그럼 원하는 게 뭐요? 살인자가 있는 곳에 와서 무전기를 놓고 갈 정도면 원하는 것이 있을 텐데. 설마 그쪽도 여기 있는 무기를 원하는 거요? 그렇다면 대화는 이만하겠소. 그리고 이쪽에 얼씬도 하지 마쇼>

“아뇨. 그런 게 아니고요…….”

이진성은 왜 교신을 시도했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굶어 죽기 전에 안산에 계신 어머니를 보러 길을 떠날 것이고 그 길을 동행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보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대답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거부의 뜻인가 싶어 무전기를 내려놓으려는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을 어떻게 믿소? 여기 칼들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믿나요? 무전기까지 가지고 있는 것 보면 개인은 아닌 것 같소만?>

“아! 이해합니다. 저 같아도 일단 의심부터 할 겁니다. 그런데요, 무전기는 제가 오늘 목숨 걸고 뒤편의 아파트 공사장에 가서 찾아온 겁니다. 일단 만나서 얘기 하는 게 어떨까요? 저나 아저씨나 둘 다 안전할 수 있는 넓은 장소에서요.” 삐릭.

<둘 다 안전할 만한 넓은 장소… 어디 말이오?>

“바로 앞에 보이는 강남중학교 운동장 어떻습니까? 저는 운동장 안쪽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아저씨는 입구 쪽에서 절 확인하시면 되겠네요. 무전기는 가지고 오시고요.” 삐릭.

<언제요?>

“제가 거기 가려면 30분 정도 걸립니다.” 삐릭.

<알겠소. 30분 후 강남중학교에서>

강남중학교는 바로 앞이었다.

혹시나 위치가 노출될까 일부러 30분 정도 걸린다고 이진성은 말했지만, 검도관 관장은 거짓말임을 알았다. 시체를 창밖으로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는 위치는 맞은편 몇 개의 건물밖에 없었다.

자기 딴에는 머리 쓴다고 한 거짓말로 쓸데없는 의심만 더 키워 버린 이진성이었다. 그런지는 상상도 못 하고 망원경과 무전기를 챙겨 든 이진성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도 끝방놈 일당은 조용했다.

건물 입구에서 검도관을 한번 살펴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후다닥 달려 강남중학교로 향했다.

검도관의 선팅된 창문 뒤에서 관장이 이진성의 하는 짓을 다 보고 있었다. 딴에는 조심한다고 하는 행동의 허술함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강도는 아닌가 보군.”

관장은 진검과 다른 금속 무기들을 모두 금고에 넣고서 목검 한 자루만 허리에 차고 검도관을 나섰다.

사태발발 직후 휴교령이 내려졌음에도 학교 정문의 쪽문은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이진성은 습관처럼 냄새를 맡았다. 다행히 근처에서 나는 냄새는 없었다.

교사건물에서도 놈들의 냄새는 없었고 눈으로 훤히 보이는 운동장도 깨끗했다.

학교에 도착한 관장도 정문의 열린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부터 느낄 수 있는 사람의 기감이 주위 건물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운동장 안쪽을 보니 아까의 그 청년이 쪼그려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자 저쪽에서 이쪽을 보고 무전기를 들었다.

<혼자인 거 확인하셨죠?>

“그래 보이는군요.” 삐릭~

<운동장 가운데에서 얘기 하시는 거 어때요? 무전기 말고 목소리로>

“음… 그럽시다.” 삐릭~

두 사람은 약 5m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섰다.

이진성은 칼로 사람을 썰어 버리는 아저씨를 신뢰하지 못했고, 관장도 아직은 초면인 청년을 의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말씀드린 대로 저는 곧 이곳을 떠나 안산으로 갈 건데요. 혹시 같이 가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솔직히 그날 그 모습을 보고서 저 혼자 가는 것 보다 선생님과 같이 가는 게 훨씬 안전할 것 같아 제안 드리는 겁니다.”

“그렇군요. 내가 무섭지는 않소?”

“무섭죠. 당연히 무서운데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왜 그 사람들을 죽였는지는 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곤란하시다면 그냥 없었던 거로 하고 저 혼자 갈 거고요.”

“말 못할 건 없지. 그들이 내 딸에게 몹쓸 짓을 했소. 그래서 그랬던 거요.”

이해 가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진성은 그 말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몹쓸 짓이라면 강간이거나 상해거나 그런 것일 것이다. 자신의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얘기를 하면서 저렇게 무감정하게 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을까 싶었다.

일단은 속을 숨기고 다른 내용을 더 물었다.

“만약 같이 가신다면 가족분들이 다 같이 가셔야겠네요. 몇 분이신가요?”

“아니오. 내 딸은 죽었소. 그리고 다른 가족은 없소. 나 또한 이곳에 더 있기가 싫어 어디론가 떠나려던 참이었소.”

딸의 죽음을 얘기하는 동안은 분명히 분노 같은 감정이 보였다. 죽음은 사실인데 딸의 죽음과 그들과는 관련이 없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아! 따님 일은 안되셨네요. 그럼 혹시 식량은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며칠 먹을 정도는 있는데.”

“식량은 없소. 기껏해야 한두 끼 분량? 그보다 나도 몇 가지 물어봅시다. 식인종 놈들이 덤비면 몸을 보호할 능력은 되오? 보기에는…….”

이진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제 몸 보셔서 아시겠지만 싸움은 못 합니다. 그래도 오늘 공사장에서 한 마리 잡기는 했습니다.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할 자신 있습니다.”

자신의 냄새 능력은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두리뭉실 답변하고 마는 이진성이었다.

“좋소. 그거야 지켜보면 알겠지. 미리 말하지만, 방해가 된다거나 하면 그땐 나 혼자 떠날 거요. 그때 가서 뭐라 하지 마시오.”

기분이 상한 이진성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는 있소? 내 칼은 줄 수 없소. 칼은 잘못 휘두르면 자신이 다칠 수 있는 물건이오.”

“떠나기 전에 구해 봐야죠. 오전에는 빠루 하나 썼었는데 그건 좀비 몸에 꽂아 넣고 왔습니다.”

“빠루는 무거워서 무기로 쓰기는 좀 힘들지. 그나저나 좀비 좀비 하는데 그게 방송에서 변이체라 하던 식인종이오?”

“좀비… 모르세요?”

관장은 말투도 그렇고 좀비라는 단어도 몰랐다.

이진성은 관장이 혹시 60~70대가 아닐까 얼굴을 자세히 봤지만 아무리 봐도 50대 정도였다.

혹시 무협지에 나오는 반노환동한 도사쯤 되나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그저 무술만 하고 살았나 보다 스스로 이해해 버리고는 대답했다.

“네 그게 좀비 맞아요. 사람 잡아먹는 시체들을 좀비라고 하는데, 저것들이 엄밀하게 말해서 시체는 아니지만 저는 좀비라고 불러요.”

“알겠소. 이동은 무엇으로 할거요? 그리고 안산까지는 어느 길로 갈 거요?”

“저도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중간중간 길이 막혀 있을 거로 생각돼서 차는 안될 거 같고요. 그렇다고 걸어가는 것도 불가능할 거고…….”

“계획이 전혀 없는 거요?”

왠지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 같아 살짝 자존심이 상한 이진성은 변명으로 화제를 돌렸다.

“ 떠나기로 마음먹은 게 그저께인데, 갑자기 선생님을 발견하고 그 이후로 선생님 만날 계획만 짰습니다. 그나저나 호칭을 어떻게 할까요?”

“관장으로 불러 주시오. 그쪽 이름은?”

“전 이진성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한참 윗연배신데.”

“편해 지면 그때 편하게 하리다. 지금부터 뭘 할거요?”

이진성은 관장이 절대로 편한 성격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일단 각자 집에 가서 챙길 수 있는 게 뭐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모여 계획을 짜면 어떨까 싶은데요. 그래야 구해야 할 것들을 리스트업 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집은 어디세요? 혹시 집이 멀어서 검도장에서 지내신 거면…….”

“검도장 건물 제일 위층이오. 그 건물이 내꺼요.”

무려 건물주였다. 산속에서 무술만 수련하다 나온 사람은 아닌 게 확실했다.

“혹시 오토바이 탈 줄 아시오? 이동은 그걸로 하면 될 거 같은데.”

“한 번도 타본 적 없는데요? 자전거라면 탑니다.”

이번에는 짜증 나는 얼굴로 쳐다보는 관장이었다. 감정이 그대로 얼굴로 나오는 알기 쉬운 타잎인 것은 이진성에게는 다행이었다.

“내 건물 옆에 오토바이 가게 있는 거 아시오? 거기서 하나 골라서 타보고 결정합시다.”

“네.”

“그런데 그 몸으로 어떻게 여태 살아남았소?”

“아. 제가 좀… 귀가 밝습니다. 잘 피해 다녔습니다.”

코보다 귀가 밝다고 하는 게 훨씬 믿기 쉬울 것 같아 이진성은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관장은 이진성도 자신처럼 기를 느끼는 것으로 오해했다.

관장이 사람들의 기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세상이 뒤집어지기 얼마전부터였다.

한동안 계속 피곤하고 졸려서 만성 피로쯤으로 치부하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이 개운해지고부터 건물 내부 사람들을 보지 않고도 인식할 수 있었다. 느껴지는 사람들의 기운으로 그들의 감정 상태까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그런 변화에 대해 이유를 깊이 고민해 봤지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세상이 갑자기 뒤집어지면서 방송에서 변이체라고 부르는 식인종들이 나타난 후 더 그런 고민을 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께도 검술수련을 하던 중, 건물 밑에부터 살기가 느꼈고 올라온 자신의 사범들과 관원들이 도장의 진검을 강탈해 가려고 흉기를 들이밀자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다 베어 버렸던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처음 보는 이진성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딸이 죽긴 했지만, 그것은 그놈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 바로 자기 자신에 의해서였다.

자신의 딸이 빨간 눈을 하고 아내를 뜯어먹고 있는 것을 본 순간, 할 수 있는 것은 그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관장은 관원들을 죽인 후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자신에 대해 이틀 동안 검도장에 앉아 명상을 계속했다.

그리고 오늘, 밑에서부터 잔뜩 긴장한, 하지만 온화한 기운이 살금살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조용히 칼을 들고 그 기운이 하는 양을 지켜보니 올라오다 말고 잠시 있다가 슬금슬금 내려가는 것이었다.

굳이 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다시 명상에 빠져드는데 갑자기 무전기 소리가 들려왔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나고 있었다.

관장의 이진성에 대한 기대치는 낮았다. 동행하다 여차하면 죽여버린다는 생각을 하며 이진성을 바로 보는데 이진성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쪽 교사 2층에서 가운데 현관으로 좀비 둘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관장은 자신의 기감으로는 좀비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진성의 말을 듣는 순간 이 청년은 기감이 아니라 정말로 소리를 듣는 것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분명히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을 확신했다.

그제야 관장은 이진성과 동행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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