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9화 (19/145)

# 19

이진성에게는 무기가 없고 관장의 허리에는 목검 하나만 달려 있었다. 싸운다면 관장 혼자서 좀비 둘을 처리해야 했다.

“관장님. 혹시 무기가 그 목검 하나라면 저들이 나오기 전에 도망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목검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죽일 수 있소. 걱정 안해도 되오.”

“그게 아니고요, 제가 오늘 아침에 빠루로 좀비 대가리를 얼마나 내려쳤는지도 모를 정도로 쳐서 겨우 놈의 대가리를 깼거든요. 보통 사람이라면 몇 대나 맞으면 쓰러질까요?”

“아마도 제대로 맞으면 두어 대면 될거요. 저 놈들이 인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요?”

“일단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런것 같습니다.”

“그럼… 한번 겪어 봐야 될 것 같소. 앞으로 저놈들과 싸울 일이 많을텐데 어느정도 인지는 알아 둬야겠지.”

자신의 딸은 최대한 고통없이 죽인다는 생각에 단칼에 목을 베었다. 그래서 좀비가 어느정도 강한지 인지하지 못했다.

미리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비록 목검이지만 자신이 휘두르는 목검의 파괴력은 보통사람이 휘두르는 빠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단 두 마리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놈들은 잠시 그르렁 대다가 두 사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관장도 무기가 없는 이진성과 거리들 두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란히 달려오는 한 놈의 명치를 목검으로 찔렀다. 놈은 고통스러운지 몸을 접고 크아앙 소리를 질러대며 몇 발자국 물러 섰다.

그 틈에 관장은 검을 돌려 나머지 한 놈의 목을 횡으로 내리쳤다.놈의 목에서 빠각 하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놈은 쓰러지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그런 놈에게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 하게 피하며 계속 목을 검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네번째 검격에 놈의 목이 끊어지며 몸뚱이도 푸석하고 주저 앉았다.

명치를 찔렸던 놈도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관장의 실험재료가 되어야 했다.

쇄골은 한 번에 깨졌다. 팔은 두어 번만에 부러졌다. 그리고 대가리는 여섯 번을 내리치자 뇌와 뇌수를 사방으로 뿌리면서 깨져 버렸다.

두 놈을 너무나 쉽게 처리해 버리고 쓰러진 놈들을 내려보는 관장의 모습에 이진성은 놀랐다.

저놈들이 원래 저렇게 쉬운 놈들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이내 관장의 훌륭한 검술때문임을 인정했다.

“지금 오토바이 가게로 갑시다. 거기 쓸만한게 있으면 타는 법을 알려 줄테니까.”

“네.”

조금전의 검술을 보고 조용히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이진성이었다.

길건너 오토바이가게는 작지만 어디서 그 많은 오토바이들이 나오는지 신기한 곳이었다. 항상 가게 앞 인도까지 오토바이를 꺼내놓고 있어 지나가면서 구경한 적도 많았다.

간혹 보면 큰 오토바이 보다는 작은 것들이 주로 보였다. 그리고 꽤 다양한 악세사리들도 팔고 있었다.

오토바이가게로 간 관장은 아무 거리낌 없이 전면 통유리를 목검으로 깨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선 자신의 주머니에서 키뭉치를 하나 꺼내 책상 서랍을 열고 다발로 된 오토바이 키를 꺼냈다.

“저… 왜 여기 책상 서랍 열쇠를?”

“내가 여기 주인이오.”

‘뭐야? 이 아저씨. 건물주에 오토바이 가게 주인? 알부자 잖아. 그런데 유리는 왜 깬거야?’

“가만 보자. 몽키 바이크 키가 어디있나?”

키 뭉치를 뒤져 키를 하나 뽑아 내더니 무릎 정도 높이의 일제 홍다 바이크를 밀고 밖으로 나갔다.

“자 여기 앉아 보시오. 키는 여기. 이게 클러치요. 클러치 알죠? 브레이크는 이거. 시동걸 때 클러치 잡고 왼발로 거기 패달을 한번 밟고 살짝 뭔가 딸깍 할 때 까지만 올리면 기어가 중립으로 되는 거요. 그 상태로 스타트 버튼 눌러 보시오.”

하라는 대로 했더니 시동이 부르르 걸렸다.

“왼쪽 페달을 밑으로 다시 밟으면 1단이오. 그 상태로 클러치를 살짝 때고 오른쪽 핸들을 돌리시오. 클러치 급하게 때면 시동 꺼지오. 악셀을 급하게 당기면 튀어나가니 조심하고.”

이번에는 쉽게 되지 않았다. 시동 꺼먹기를 수차례였고 몇번은 튀어나갈 뻔 했었다.

“저…관장님. 여기서 이렇게 소리내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 동네 있는 좀비들이 올 수 있어요.”

“그럼 그만 합시다. 한꺼번에 많이 밀려오면 혼자서 힘에 부칠수도 있고 아무래도 금방 익힐 수 있어보이지는 않소. 나중에 배달오토바이로 연습해 봅시다. 그건 클러치가 없으니까.”

또 무시 당하는 이진성이었다.

“그럼 여기서 챙길것 좀 챙겨도 될까요? 백팩이라든가, 저기 걸려 있는 가죽 바이크 슈트라든가. 저거 잘 안찢어 지는 거죠? 갑옷 처럼 입으면 될거 같은데…….”

관장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슈트를 보더니 안쪽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곤 한참을 뒤적거려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척추 보호대까지 있는 가죽 슈트를 들고 나왔다.

“이 사이즈면 맞을 거요. 근데 땀차고 별로 안 좋을텐데?”

“목숨 한 번만 구할 수만 있어도 그정도는 감수 해야죠. 감사합니다.”

“뭐 감사는. 어차피 이제 다 쓰레긴데.”

이진성은 그자리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슈트를 입어봤다.

사이즈도 맞았고 생각보다 움직이기 편했다. 그리고 투어링 백팩을 하나 매고 헬멧도 뒤집어 쓰니 겉으로 노출되는 부위는 손 뿐이었다.

“혹시 아파트 공사장 갔을 때 절단기 같은 것들 봤소?”

“아뇨. 전 사무실 컨테이너만 뒤지고 와서 그런건 못 봤습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한 번 가 봅시다. 아직 해도 많이 남았으니까. 가서 무기 될만한 것들 좀 찾아 봅시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시오. 올라가서 검을 들고 올테니.”

그러고 관장은 진검 하나를 허리에 차고 작은 백팩을 들고 내려왔다.

그동안 이진성은 1층의 약국에서 흩어져 있는 약들을 뒤져 타이피린 일곱통, 타이피린 콜드 다섯통, 장로환 당의정 열두통과 보이는대로 소독약, 붕대를 챙겨 백팩에 넣었다.

* * *

공사장안으로 들어간 관장은 망설임도 없이 바로 가장 높이 골조가 올라간 동으로 향했다. 이진성은 뭘 알고 저렇게 막 가는건가 싶었다.

“여기… 와보셨어요?”

“처음이오.”

“그런데 어디 가시는 건데요?”

“공사 진행 중인 곳에 공구와 자재가 모여 있을 거요.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많이 모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오.”

이진성은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 그런가 싶었다.

“이런 공사 현장도 잘 아시나 봐요?”

“추측이오.”

허당미도 있는 관장이었다.

이진성은 관장의 뒤를 따르며 냄새 탐색은 쉬지 않았다. 아까의 소장놈의 냄새는 멀어서 나지 않았다. 진행 방향으로도 냄새는 없었다.

자기 검술을 믿고 저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쭉쭉 나가는 관장의 모습은 이진성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가장 높이 올라간 동으로 와서 1층부터 훑어보며 올라갔지만 의외로 건설장비나 공구류는 보이지 않았다.

1층에서 4층까지는 외벽과 내벽까지 끝나 있었고 창호 공사를 하려 했는지 유리창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5층은 외벽 공사는 끝났고 일부분 내벽공사 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창호와 함께 이동형 발전기와 절단기, 그라인더, 간이 용접기 같은 장비와 쇠파이프, 철근 등 자재가 모여있었다.

관장이 지름 약 3cm 정도의 쇠파이프 하나를 뽑았다. 안쪽을 한번 보고 휘둘러 보기도 하고 바닥에 내려쳐 보기도 하더니 이동형 발전기와 절단기를 작동시켰다.

‘재주가 많은 아저씨네.’

“이리 와서 좀 잡아 보시오.”

끼이이잉~ 끼이이잉~

시키는 대로 파이프를 잡고 있자, 이진성의 키에서 가슴 약간 못 미치는 길이로 파이프를 잘라 냈다. 그리고선 가방에서 손잡이까지 통짜 쇠로 된 중식도를 꺼냈다.

칼 손잡이 부분을 파이프의 끝단에 한 번 대보고 주위를 둘러 보다 한 쪽 구석에 널부러진 망치를 들고와서 칼의 앞부분을 때려 파이프에 박아 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던 칼은 약 10여분을 쳐대자 손잡이 부분이 파이프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이제 보이는 것은 중식도의 칼면과 파이프 뿐이었다.

신기한 듯 정신없이 보고 있던 이진성의 코에 불현듯 시큼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냄새는 바로 밑 4층에서 5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이제 막 올라서고 있었다.

“씨… 너무 정신 팔고 있었네. 관장님 놈들이 옵니다. 4층이고 다섯 마리입니다.”

관장은 잠시 이진성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허리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저 놈들을 다 잡으면 진성씨한테 물어 볼게 있을 것 같소.”

이진성은 뭔 소린가 싶었지만 일단은 놈들의 처리가 우선이었다.

둘러봐도 무기가 될만한 것은 방금 관장이 만들던 창도 아니고 칼도 아닌 그것 밖에 없었다.

“저거 써도 되나요? 저도 뭔가 해야죠.”

관장은 이진성을 힐끗 보고 계단 입구로 가면서 말했다.

“아직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오. 계단을 막고서 어찌 해 볼테니 거기서 기다리시오.”

“그래도 뭔가를 해야 저도…….”

관장은 이진성의 말을 무시하고 계단으로 향했다.

이진성도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조금 전 관장이 쓰던 망치를 들고 계단쪽을 돌아서는 순간 관장이 처음으로 올라오는 놈에게 검을 휘두르는게 보였다.

한번에 뼈를 완전히 자르지는 못하고 목 중간에 검이 멈춰섰다. 관장이 놈을 발로 차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다시 그 부위를 정확하게 타격하자 그때야 놈의 목은 떨어져 나갔다.

목을 자르고 옆으로 빠진 검의 방향을 위로 틀어 올린 관장은 사선으로 바로 뒤의 놈의 허리를 갈라 버렸다. 허리가 잘린 놈은 내장을 쏟아 내면서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관장은 입속에 검을 찔러 넣어 목을 뚫고 옆으로 잘라냈다.

순식간에 두놈을 잡자 뒤이어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 들었다.

관장도 이번에는 뒷걸음 치며 상대할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세 놈이 덤비더니 한 놈이 이진성 쪽으로 떨어져 나왔다.

놈은 가슴에 빠루를 꽂고 있는 오전의 소장놈이었다.

“아 씨. 소장님 안 죽었어요? 왜 여태 살아 있어요. 좀 뒤져 버렸으면 서로 좋잖아요. 씨발.”

뛰어오는 소장을 보고 무서움과 동시에 짜증도 잔뜩난 이진성이었다.

뭐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아 자재가 쌓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쌓여 있는 파이프 더미에서 두꺼워 보이는 쇠파이프를 뽑아내려는데 잘 뽑히지를 않았다.

놈은 점점 다가오는데 파이프는 아직 반 정도 밖에 뽑히지 않았고 놈은 거의 3미터 앞이었다. 급한 김에 내려 놓은 망치를 집어 던졌지만 놈의 눈에 맞은 망치는 빨간 눈동자만 퍽하고 터뜨렸을 뿐이었다.

이제 약 2미터. 잡히기 직전이었다. 놈을 보면서 손을 옆으로 뻗었는데 무엇인지 두껍고 딱딱한게 있었다. 제일 위의 하나를 두 손으로 들었는데 느낌이 묵직했다.

머리의 상처가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온 놈의 대가리를 그것으로 후려쳤다. 놈의 대가리가 뒤로 꺾이면서 잠시 휘청거렸다.

그때서야 자기가 들고 있는 것이 유리창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진성은 다시 고개를 세우는 놈의 머리에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다.

창문의 유리가 파작 깨지면서 놈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유리는 반쯤 깨져나갔고 이진성과 놈 사이에는 날카로운 유리가 아직 프레임에 걸려 있었다.

이진성은 프레임을 앞으로 밀면서 달려 나갔다. 놈은 놈대로 앞으로 나오려 힘을 썼다.

그러길 잠시 결국 놈의 목을 파고든 남아 있던 유리가 목을 잘라내고 대가리가 이진성의 품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미 놈들을 처리하고 이진성을 보고 있던 관장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이진성에게 검끝을 향하며 물었다.

“아까 다섯이라고 정확하게 알던데 말이오. 망치 소리 속에서 저들의 소리를 듣고 다섯을 알았다는 것은 믿기 힘드오. 속이는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하면 없던 것으로 하겠소.”

‘하…씨… 멍청이.’

이진성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패를 먼저 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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