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조우―달큰 살벌한 그녀
이진성은 자신이 냄새로 좀비들을 판별한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몸의 변화 과정과 그 결과, 더불어 좀비들과 인간의 각자 다른 두 가지 냄새 특성, 거기에 ITL의 발표내용과 자신이 인터넷을 뒤지며 추론한 내용까지 전부 말했다.
한쪽에 앉아 백팩에서 꺼낸 수건으로 검에 묻은 피와 기름을 닦아내며 그 이야기를 듣던 관장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능력이라는 것에 놀랐다.
얘기를 듣기 전까지 이진성도 기감을 느끼면서 자신은 못 하는 좀비라는 것들의 기까지 느끼는 것으로 추측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냄새라는 것이다.
다 듣고 난 관장은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은 인간의 기를 느끼지만, 좀비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라는 것의 설명이 곤란했지만, 그냥 인간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고 그 감정 상태도 보지 않고 알 수 있다 했다.
우연히 모인 조합이지만 하나는 좀비 탐색에 특화되고 하나는 인간 탐색에 특화된 조합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오?”
“ ITL의 발표대로라면 빨간눈이 30% 전후, 검붉은눈은 다시 빨간눈의 30% 정도랍니다. 저희 같은 달큰한 냄새의 인간은 많아야 전체의 약 10% 미만 정도겠죠.”
“사정은 알겠소. 하긴 냄새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면 보통은 믿지 않겠지. 이제 더 숨기는 것은 없는 거요?”
“없습니다.”
둘은 모르고 있었지만, 인간의 변이율은 최종적으로 20%를 조금 못 미쳤다. 거기에 검붉은눈 후보자는 전체 인간의 3% 정도였다.
그리고 아직은 인류의 60% 이상이 생존해 있었다.
검을 다 닦고 일어난 관장은 만들던 무기와 그라인더를 집어 들어 파이프의 몸통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멀쩡한 파이프에 흠집을 왜 내나?’
작업을 끝낸 관장이 지켜보던 이진성에게 그 창 같은 칼을 들이밀었다.
“휘두르다 미끄러지지는 않을 거요. 다른 칼을 달면 쉽게 부러질까 봐 중식도를 달았소. 제대로 친다면 좀비들의 목뼈는 잘라낼 수 있을 거요.”
칼을 받아든 이진성이 몇 번 휘둘러 봤다. 느낌이 좋았다.
이진성은 관장에 대한 평가를 조정했다. 놀라운 검술 실력에 재주가 많으면서 허당미가 있는 츤데레 아저씨로 업그레이드했다. 그리고 청룡언월도로 부르기로 마음먹고 내심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관장에게 이진성은 오래 살아주면 좋은 훌륭한 탐지견과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저 밑에 보라매역사거리에 있는 맥컬리햄버거로 가 봅시다. 거기 배달 오토바이가 좀 있을 거요.”
말과 함께 먼저 계단을 내려가는 관장을 부랴부랴 쫓아 이진성도 공사장을 떠났다. 사거리까지는 냄새를 맡아가며 좀비들을 피해서 안전하게 도착했다.
도착해서 본 맥컬리햄버거에는 세 대의 오토바이가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키도 꽂혀 있는 상태였다.
관장이 한 놈을 세워서 시동을 걸어 보더니 타보라고 했다. 클러치가 없는 배달 오토바이는 어렵지 않았다.
어설프게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본 관장이 몸을 돌려 검도관으로 향하며 말했다.
“돌아가서 짐 챙겨 내일 아침에 봅시다. 그리고 바로 앞 건물에서 사는 거 아니까 일부러 돌아가거나 할 필요 없소. 그냥 바로 가시오.”
이진성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 * *
다음날 정오에 가까운 시간에 두 사람은 각자의 짐을 챙겨 검도관 밑에 모였다.
이진성은 배달 오토바이의 배달통에 가스버너, 쌀과 라면, 물을 넣을 수 있는 만큼 넣고 나름 깨끗하게 빨아둔 속옷과 몇 벌의 옷들을 상비약과 함께 백팩에 넣었다.
또 자신의 크로스백에 부탄가스를 가득 채워 옆으로 맸다. 목에는 쌍안경이 걸려 있었고 어떻게 묶었는지 ‘청룡언월도’는 배달통에 묶여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 바이크 슈트에 헬멧까지 쓴 채로 관장을 기다렸는데 관장은 검도관 건물 뒤에서 가벼운 복장으로 멋진 BMU 투어링바이크를 밀고 나왔다. 뒷바퀴 위 양쪽에 달린 가죽가방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빵빵했고 가방 위로 진검이 한쪽에 세 자루씩 여섯 자루가 묶여 있었으며 등에도 두 자루가 크로스로 메어 있었다.
이진성을 본 관장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가려고요? 말리진 않겠지만 너무 불편한 거 아니오? 그러다 넘어지면 다칠 거 같은데.”
“최소한으로 챙긴 게 이렇더라고요. 어떻게 해 봐야죠.”
“어느 길로 갈지 생각은 했소?”
“일단 이 대방로를 따라 내려가 석수역 지나 제2경인을 거쳐 서해안고속도로 내려갈까 합니다. 중간에 길이 막혔으면 다른 길로 돌아야겠죠.”
“가 봅시다. 가 봐야 막혔는지 어떤지 알 수 있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남쪽으로 출발했다.
* * *
내려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교차로와 골목들은 대부분 고시원 주변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차들 사이의 틈을 비집고 왔다 갔다 하면서 겨우겨우 전진했다.
가끔 만나는 하나둘씩 다니는 좀비들은 관장이 어렵지 않게 정리했다. 수가 많으면 근처 건물에 숨어 피했다.
약 네시간 정도 지나자 아침부터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4월의 날씨에 비를 맞고 가고 싶지도 않았고 안전하게 잘 곳을 확보해야 했다.
“저기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일까지 쉬는 게 좋겠어요.”
지상에 위치한 역사는 계단으로 올라오거나 선로를 따라오는 놈들만 경계하면 그만이어서 안전한 편이었다.
역사에 도착한 둘은 오토바이를 숨길 곳을 찾았다. 오토바이 자체도 중요했지만, 짐들이 더욱 중요했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하고 훔쳐 가면 큰 낭패였다.
이진성이 사방을 둘러보는 중 관장은 셔터가 반쯤 내려간 부동산 사무실로 성큼성큼 가더니 셔터를 올리고 출입문을 밀었다.
문은 잠겨져 있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잠시 둘러본 관장은 검집 채로 검을 뽑아 들더니 그대로 유리를 깨버렸다.
‘저 아저씨는 일단 깨고 보는구나!’
안으로 들어간 관장이 바닥의 유리 파면을 발로 밀어버린 후 자신의 오토바이를 안으로 밀어 넣고 이진성에서 빨리 넣으라고 손짓을 했다.
두 대의 오토바이는 부동산의 공간에 꽉 차게 들어갔다.
아진성이 식량과 언월도를 챙겨 들고 나오자 셔터를 내려 관장은 검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역사의 계단을 올라 플랫폼으로 향했다.
플랫폼에는 완전히 부서진 가판대와 여기저기의 핏자국이 보였지만 다행히 사람이나 좀비는 없었다.
아침 먹고 먹은 게 없던 이진성은 생라면과 참치통조림을 바닥에 늘어놓고 주저앉아 먹기 시작했다.
“관장님. 어서 드세요. 배 안 고프세요?”
“이거면 되오.”
하면서 품에서 꺼내 든 것은 육포였다. 그리고는 먹어보겠냐는 권유도 없이 혼자서 벽을 기대고 앉아 육포를 뜯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슬쩍 째려보던 이진성도 말없이 생라면을 뽀작뽀작 부숴 먹기 시작했다.
‘별 폼을 다 잡네. 무슨 무협지 방랑 무사라도 되나?’
음식을 다 먹은 이진성이 남은 라면과 통조림, 물을 가판대 안에 숨긴 후 관장에게 물었다.
“관장님은 왜 길을 떠나신 거예요? 혼자서도 잘 사실 거 같은데.”
잠시 물끄러미 이진성을 바라보던 관장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식량과 물도 거의 떨어졌소.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 그보다 이렇게 좀비들을 잡는 게 수련이 될 것 같아 따라나섰소. 어차피 이렇게 된 세상에서 수련이나 하다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또 그렇게 사는 거고…….”
이진성은 뭔 개소리냐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으로 내지는 않았다.
말하다 멈칫한 것으로 보아 관장이 뭔가를 숨기고 있고 그것이 결정적 이유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묻기도 모호했다.
더 할 말도 없던 둘은 어색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답답해진 이진성이 망원경을 들고 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밑의 상가 지역에는 아까는 미처 보지 못한 약탈의 흔적이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음식이 있었을 만한 곳은 어김없이 털려 있었다. 2층, 3층에 위치한 가게들의 유리창은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안 보였다.
길에서 핏자국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미친놈들. 조용히 숨어 있기나 하지 쌩지랄을 떨었구나.”
그렇게 둘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한순간이었다. 둘 다 벌떡 일어나서 같은 방향을 쳐다봤다.
“좀비가 스물은 넘는 거 같아요. 시큼들큰한 냄새도 둘? 셋? 있고요.”
“인간도 있소. 아마도 열 명 조금 안 되는 것 같은데 다들 흥분상태로 살기를 띠고 있소.”
앞에 보이는 상가건물 뒤에서 좀비들의 냄새가 났다. 인간도 그쪽에 있다고 했다.
다만 소리가 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직은 충돌 전이었다.
“저쪽 선로로 가면 혹시 보이지 않을까요? 그냥 있기보다는 좀 봐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저들 중에 동행할 만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럽시다.”
저들의 생사는 두 사람에게 관심 밖이었다. 단지 어색하게 있기도 지겹고 싸움이 어떻게 될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리고 관장은 집단으로 덤비는 좀비의 전투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선로를 타고 대림역 쪽으로 올라가니 골목에 좀비들 다섯 마리가 보였다. 그리고 뒤편 건물 안에 열 서넛 정도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어디 있어요?”
“저 건물 안에 있소.”
사람들이 있다는 건물은 좀비들이 있는 건물과 마주 보고 있는 상가였다.
길에 어정거리는 좀비가 다섯 마리, 나머지는 건물에 숨어 있다. 맞은편 상가에는 인간이 채 열 명이 안 된다. 잠시 생각하던 이진성은 관장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사람들 전부 죽을 겁니다. 제가 살던 고시원에 있던 놈이나 하나마트에 있던 놈들이나 유리한 장소에 숨어서 기회를 보다 사냥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저놈들 사람들보다 적은 수가 길에서 유인하고 나머지는 결정적일 때 공격할 겁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길에 있던 좀비 중 두 놈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듯 하자 안의 사람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전부 여덟의 남자와 여자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저마다 식칼이나 야구방망이 등으로 허술한 무장을 했지만, 움직임은 싸움을 해 본 사람들 같았다.
허접스러운 무기로 좀비 다섯에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중 맨손과 발만으로 빠른 스피드로 현란하게 싸우는 아가씨 한 명과 커다란 가마솥 뚜껑을 들고 놈들을 무지막지하게 두드리는 아줌마 한 명이 발군이었다.
좀비들은 마치 사람들에게 밀리는 듯 슬금슬금 물러서며 나머지가 숨어있는 건물로 접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지옥이 될 그곳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면 100% 다 죽는 것이었다.
아래의 모습에 신경 쓰며 내려다보던 중, 관장도 무엇을 느꼈는지 입을 열었다.
“저기 두 여자, 다른 사람들보다 기가 훨씬 강하오. 동행한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소·.”
“구해 주자는 말씀이신가요? 저희 둘이 더해진다고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데.”
바로 그 순간 한 사람의 비명이 터져 나왔고 관장은 검을 뽑아 들고 계단을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아 쫌! 남의 말 좀 들으라고요.”
이진성도 청룡언월도를 들고 같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건물 코너를 돌자 현장에는 이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봤던 아가씨는 펄펄 날면서 발차기로 좀비의 목을 뽑아 버리는 것이 보였다.
“와! 씨! 죽인다.”
눈앞의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발차기로 목을 뽑아 버리는 모습은 두려우면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인가 싶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사람이 맞았다. 맨손 격투 아가씨와 솥뚜껑 아줌마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쓰러진 두 명은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머지 네 명이 문제였는데 이미 둘은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길게 못 갈 것으로 보였다.
관장도 같은 생각인지 나머지 둘에게 덤벼드는 좀비 다섯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진성도 바이크 슈트에 헬멧을 쓰고 청룡언월도를 들고 달려가며 소리쳤다.
“죽어~ 씨발 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