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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21화 (21/145)

# 21

막 좀비 한 놈의 목을 발로 차서 뽑아 버린 나현주는 쓰러진 친구들과 나머지 일행을 슬쩍 살폈다. 그다지 사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다가오는 놈부터 처리해야 했다. 놈에게 주먹을 뻗던 나현주는 옆에서 달려오는 이상한 두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앞에는 장년의 노숙자 아저씨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장검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온몸을 감싸는 원피스 바이크 슈트에 헬멧을 쓰고 쇠파이프에 중식도를 달고서 괴성을 지르는 사람이 보였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두 사람을 일별하고 다시 눈앞 좀비의 관자놀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놈이 중심을 잃은 금쪽같은 순간, 뒤돌아차기를 놈의 아구에 먹이고서는 그 회전력 그대로 옆에서 손을 뻗어오는 다른 한 놈을 피했다.

동시에 한 바퀴 더 돌아 놈의 뒤통수에 발꿈치를 꽂아 넣자 놈은 뒤통수가 퍼석하고 깨지면서 앞으로 뻗어 버렸다.

그때, 이미 쓰러진 두 친구를 두 좀비가 건물 안으로 끌고 가는 것이 나현주의 눈에 보였다. 그 모습에 놀란 그녀의 움직임이 잠시 어지러워졌다.

그 순간 눈앞이 번쩍이며 앞에 있는 좀비 놈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싸움에 집중하시오.”

장검을 들고 뛰어오던 머리긴 노숙자 아저씨였다.

정신이 번쩍 든 나현주가 다음 놈을 찾아 튀어 나가며 현희 아줌마가 한 놈을 벽에 밀어붙여 놓고 가마솥 뚜껑으로 목을 찍어 잘라 버리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넷이 죽었고 보이는 것만도 열둘, 어쩌면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은 싸움 잘하는 아가씨에게 덤벼드는 한 놈의 목을 단칼에 베면서 기분 좋은 감각을 느꼈다.

임팩트 시점에 전보다 더 큰 파워를 낸 그 감각을 잊기 전에 재현해야 했다.

앞에서 막 한 남자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으려는 놈은 베어버리면 남자도 같이 죽을 위치였다. 아쉽지만 조금 전의 베기는 포기하고 일단 노출된 놈의 심장 위치로 검을 찔러 넣었다.

캬아아아~

놈은 고통에 찬 소리를 지르며 막 자신이 물어뜯으려던 남자에게서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검으로부터 빠져나갔다.

관장은 놈과의 거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붙었다. 다시 아까의 그 베기를 놈의 목에 날렸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목뼈를 한 번에 자르지는 못했다.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미끄러트려 뽑아낸 다음, 한 바퀴를 마저 돌아 원심력이 실린 검으로 이미 경동맥에서 피를 뿜고 있는 놈의 목을 날려 버렸다.

이진성은 달려가면서 관장이 둘, 아가씨가 둘, 아줌마가 하나를 죽이는 것을 보았다.

밖에 남아 있는 놈들은 열하나. 하지만 건물 안에는 아직 시큼들큰한 놈들 셋이 느껴지고 있었다.

놈들이 늦게 나오기를 기원하며 달리고 또 달려 막 한 남자를 물어뜯기 위해 등을 보이는 놈의 약 3m 거리에 도달했다.

달리는 힘 그대로 점프한 이진성은 자신의 청룡언월도를 도끼로 찍듯이 놈의 정수리에 찍어 넣었다. 퍽 소리와 함께 중식도는 놈의 대가리에 박혔다.

“헉! 왜 안 빠지지?”

대가리에 칼이 꽂힌 채로 주저앉은 좀비 놈을 사이에 두고 공격받던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눈앞의 이상한 복장의 사람을 쳐다봤고 이진성도 중식도가 빠지지 않아 순간 당황한 채로 앞의 남자를 쳐다봤다. 그런 둘을 좀비 놈들이 그냥 놓아둘 리가 없었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놈들을 피해 이진성은 청룡언월도를 놓고 바닥을 굴러 피했다. 하지만 남자는 결국 목이 물리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일어나 주위를 돌아본 이진성의 눈에 그사이 세 마리를 더 잡은 관장과 두 마리를 잡은 맨손 격투 아가씨, 그리고 한 마리를 더 잡아 피떡을 만들고 있는 솥뚜껑 아줌마가 보였다.

관장과 격투 아가씨가 각자 또 하나씩의 좀비에게 달려들었고, 나머지 두 마리 중 하나는 다친 아가씨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재수 없게도 이진성에게 달려왔다.

이진성도 달릴 수밖에 없었다. 놈이 손을 뻗어 왔다. 이진성은 무릎 슬라이딩으로 몸은 낮췄다. 다행히 놈의 손은 헬멧에 미끄러지며 이진성을 놓쳤다.

바이크 슈트의 무릎 보호대는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서 잘 미끄러져 대가리에 청룡언월도를 꽂고 있는 놈에게까지 갈 수 있었다. 이진성이 손을 뻗어 손잡이 잡아 돌렸다. 결국 청룡언월도는 대가리에서 뽑혀 나왔다.

바로 일어서 몸을 돌린 이진성은 뒤쫓아 오는 놈의 목에 칼날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퍽 소리와 함께 놈의 목은 꺾였다. 하지만 치명적 부상은 아닌 듯, 목에서 피를 뿜으며 잠시 비틀거리고는 몸을 바로 잡았다.

이번에는 자세를 바로잡고 힘껏 놈의 목을 내리쳤다. 놈의 목뼈가 아작 소리를 내며 부러져 가죽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놈은 주저앉았다.

그동안 남은 놈들은 관장과 격투 아가씨, 솥뚜껑 아줌마가 하나씩 잡았고, 다쳤던 여자는 목과 배에 부상이 더해져 한쪽에 앉아 죽은 듯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언제 나왔는지 안에서 나온 검붉은 눈 세 놈은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놈들이 왜 바로 공격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이진성과 관장은 알고 있었다. 남은 사람 중 피 흘리고 있는 한 명을 빼고 나머지는 전부 들큰한 냄새의 사람들이었다.

즉 반은 동족인 사람 아닌 사람들. 어차피 식량도 아니고 물어봐야 자신들의 지역에 경쟁자만 늘리는 꼴이었다.

놈들이 몸을 돌려 그냥 가려는데 관장은 그냥 보낼 마음이 없었는지 돌아서는 놈들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진성에게서 검붉은 눈이 빨간눈 보다 강하다고 들었고 과연 놈들은 다른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두 놈을 단칼에 베면서 다시 느낀 아까의 그 감각이 저놈들에게도 통하는지 시도해보고 싶었다.

검을 들고 달려드는 관장을 보고 이진성은 짜증이 솟구쳤다. 그냥 가는 놈들을 왜 건드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다시 싸움은 시작됐고 청룡언월도를 움켜쥐어야만 했다.

놈들은 인간 하나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서도 그냥 갈 만큼 온순하지 않았다.

관장에게 두 마리, 남은 한 마리는 격투 아가씨에게 달려들었다. 솥뚜껑 아줌마는 격투 아가씨를 도와 같이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진성은 뒤에 서서 양쪽을 번갈아 보기만 할 뿐이었다.

격투 아가씨와 솥뚜껑 아줌마의 싸움은 2:1 임에도 불구하고 팽팽했다. 좀비 놈의 덩치가 다른 놈들보다 훨씬 컸다.

한 번에 목을 뽑아버리던 발차기도 좀비를 짓이겨 버리던 솥뚜껑 어택도 통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셋 다 상처가 늘어가기만 했다.

반면에 관장은 대단했다. 검과 몸의 움직임은 현란했다. 베고 찌르고 때리기를 섞어가며 차곡차곡 놈들의 몸에 상처를 더해서 어느덧 놈들은 자신들의 피로 온통 새빨갛게 변했다.

놈들의 움직임이 슬슬 느려지던 어느 한순간, 관장은 한 놈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고 이어서 놈의 목을 기어이 베어냈다. 이제 남은 놈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진성은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두 여자가 싸우는 곳으로 향했다.

셋은 모두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도 쉬지 않고 싸웠다. 그런 곳에 이진성이 다가가자 놈의 신경이 흩어졌다.

뒷걸음치는 도중 오른쪽에서 날아온 솥뚜껑을 피하지 못하고 대가리에 한 방 제대로 맞고 휘청거렸다.

처음으로 오는 기회였다. 격투 아가씨도 남은 힘을 다 짜내 니킥을 놈의 갈빗대에 꽂아 넣었다.

빠작~

갈비 깨지는 소리와 함께 뼈가 심장을 찔렀는지 놈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아줌마의 솥뚜껑과 아가씨의 발차기, 그리고 어느새 다가선 이진성의 청룡언월도가 동시에 놈에게 날아들었다.

놈의 대가리는 솥뚜껑에 터져 버렸고 가슴은 발차기에 함몰됐으며 이진성의 청룡언월도는 놈의 어깨에 박혔다.

빗속에서 바닥을 온통 피로 적시며 널려 있는 시체를 보는 관장은 새로운 검술을 찾은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진성도 나름대로 두 마리나 잡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뿌듯했다.

하지만 남은 두 사람은 그럴 여유는 없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동료들의 시체를 앞에 보이는 상점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던 둘도 멀지 않은 곳에서 찾아와 같이 그곳에 넣고는 문을 닫고 관장과 이진성을 향해 인사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랬다면 저희도 다 죽을 뻔했어요.”

“신경 쓰지 마시오. 누구라도 그랬을 거요.”

관장의 말을 들은 이진성은 기가 찼다.

두 사람의 강한 기를 느끼기 전까지는 죽으나 사나 관심도 없던 사람이 말을 저렇게 하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런 것을 티 낼 수는 없어 한쪽에서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저기 중상자가 있는데, 이제 어찌할 거요? 어디 안전한 곳이 있소?”

“있긴 한데 여기서 가깝지가 않아요. 저쪽 디지털단지 안쪽으로 가야 해요.”

“그럼 일단 우리가 있는 곳으로 갑시다. 우린 저기 전철역에서 하루 자고 갈 거요. 마침 식량도 있고 약도 있으니 같이 갑시다.”

남의 식량과 약을 가지고 생색내는 관장의 모습에 이진성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쓰고 있는 헬멧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중상자를 아줌마가 업고 아가씨가 뒤에서 받쳐서 전철 역사로 향했다.

플랫폼에 도착한 다섯은 부상자를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이진성이 가판대 속에 숨겨 뒀던 물과 음식을 그들에게 건넨 후 오토바이를 숨겨놓은 부동산에서 소독약과 붕대를 챙겨 들고 다시 역사로 올라왔다.

중상자는 이미 많은 피를 흘렸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관장은 저만치 떨어져서 역사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요. 두 분도 상처가 많은데 이걸로 소독이라도 하시고 붕대 감으셔야 할 거 같은데요. 한 분당 생수 한 통씩 드릴게요. 그걸로 대충이라도 피를 닦고 치료 좀 하세요.”

헬멧을 벗고 소독약과 붕대를 들고 다가가서 두 사람에게 건네자 두 사람은 그때야 자신들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귀한 생수를 그렇게 써버릴 수 있나요. 옷으로 닦으면 돼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옷은 깨끗해 보이지도 않은 데다 그나마도 비와 피에 젖어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옷으로 닦아봐야 덧나기만 할 것 같았다.

“그럼 붕대로 닦으세요. 붕대는 또 구하면 되니까. 세상에 붕대 남아있는 약국 하나 없겠어요?”

그리고 다시 내려가서 붕대를 더 꺼내 왔다.

“저는 이진성이라고 합니다. 저쪽의 저분은… 저도 성함을 모르네요. 관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관장 쪽을 돌아봤지만, 이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는 관장의 모습에 다시 이진성을 보고 얘기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는 나현주고 이분은 김현희 씨입니다.”

“어쩌다 여기서 그러고 계셨어요? 아까 안전한 곳이 멀리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까지 왜 나오셔서……?”

왜 여기까지 나와서 다 죽을 뻔했냐는 물음이었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어서 대충 끝을 흐렸고 두 사람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게… 저희가 있는 곳에서 조를 나눠 순찰 돌고 생필품도 구하고 그러거든요. 오늘이 저희 조 차례였는데 가까운 곳은 이미 얻을 게 없어서 멀리 나왔어요. 그러다 좀비 놈들을 발견하고 몇 마리 안되길래 잡고 가자는 멍청한 생각에 그만…….”

“현주야. 자책하지 마. 니 책임 아냐. 모두 동의했던 일이었어. 니가 말 안 했어도 누군가 말했을 거야.”

두 사람은 그다지 슬퍼하거나 동요하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이미 죽음을 많이 겪은 것인지, 아니면 이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달큰한 냄새가 되면서 사람의 죽음에 무감각하게 변한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이진성은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데 두 분은 놈들을 감지한다거나 하는 능력은 안 가지고 계신가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놈들을 감지하다뇨?”

이진성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는 듯, 눈을 말똥말똥 뜨고 쳐다보며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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