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22화 (22/145)

# 22

두 사람의 반응을 본 관장도 그때야 관심을 보이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기 아가씨와 아주머니도 유성우가 온 얼마 후부터 점점 더 졸리고 피곤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신체 변화를 말씀하시려는 거면, 네. 그랬어요. 여기 언니도 그랬고 저희 안전지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 있어요. 그 이후에 저마다 뭔가 전보다 나아진 것들이 있고요. 하지만 놈들을 감지한다는 사람은 없었어요.”

이진성은 관장을 쳐다보며 말을 해줄까 말까 고민했다. 그런 이진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런 몸의 변화 후, 후각이 좋아졌어요. 좀비들의 냄새는 실외에서는 30m 정도 내에 있다면 숫자와 위치까지 알 수 있어요. 실내라면 탐지거리가 짧아지고요.”

“나는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소. 아까 여러분들의 기운도 여기서 느꼈소. 아마 탐지거리는 저기 진성 씨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소만. 단 좀비의 기운은 느끼지 못하오. 진성 씨. 그 냄새가 다른 것도 말해 주는 게 좋겠소.”

“음. 좀비는 일단 빨간 눈과 검붉은 눈이 있는 건 아세요?”

두 사람은 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빨간 눈은 시큼한 냄새가 납니다. 검붉은 눈은 시큼달큰한 냄새고요. 그리고 사람도 두 가지 냄새가 나는데 보통 사람들은 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이 사람들은 좀비들이 그냥 식량으로만 생각해요. 좀비한테 물린다고 좀비가 되거나 하지는 않아요.”

열심히 듣고 있는 둘을 잠깐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이 달큼한 냄새가 나는데 관장님이나 제가 그래요. 그리고 두 분도 달큼한 냄새가 나요. 우리는 좀비에게 물리면 검붉은 눈이 됩니다. 저놈들의 대장급이 되는 거죠.”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은 속삭이면서 그동안 자신들이 경험한 바와 비교해 보며 이진성의 이야기가 맞는지 따져봤다.

냄새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좀비는 사람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고 뜯어 먹거나 시체를 어디론가 끌고 가버릴 뿐이었다. 그들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다른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좀비에서 상처만 입은 동료를 아지트로 데리고 갔는데, 한 시간쯤 심하게 앓고 난 후 좀비가 되어 일어났었다. 결국 사람 다섯을 잃고서야 그 동료를 죽였다. 그때 그 동료의 눈이 검붉은 색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다른 경우가 최근 발생하고 있었다.

“저기. 그럼 이건 뭔가요? 그 검붉은 눈이 사람을 물어서 빨간 눈으로 변하는 경우는요?”

이진성은 처음 듣는 소리에 이 사람들이 그런 경우를 가정하는 것인가 생각하고 답했다.

“그런 경우는 없는데요. ITL의 발표도 그렇고 인터넷이 살아 있을 때 올라온 글들도 그렇고, 비록 그때까지는 동물들의 얘기였지만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아닌데… 요즘 저희 동료들 여럿이 검붉은 눈에 당하고 빨간 눈이 되었는데…….”

이진성은 관장을 돌아봤다. 관장도 처음 듣는 얘기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 얘기 좀 자세히 해 주겠소?”

나현주의 설명은 이랬다.

처음에는 좀비들도 한 마리씩 돌아다녔다. 그런 놈들과 사람들이 싸우면서 이기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의 안전지역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들은 이 지역의 좀비들을 매일 조금씩 사냥하며 지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4~5마리씩 떼로 다니는 좀비들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검붉은 눈이 한 마리씩 꼭 있었다.

최근 얼마 전, 좀비 한 무리의 사냥 중에 빨간 눈을 다 죽이고 검붉은 눈만 남았을 때였다. 놈은 남은 사람들과 싸우면서 몇 명의 사람에게 상처만 입히고 죽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은 심한 경련을 약 한 시간 정도 한 후에 빨간 눈의 좀비로 일어났다.

이야기들 다 듣고 이진성은 혼란에 빠졌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얘기였다. 인터넷과 방송이 사라지고 난 후의 상황은 알 방법이 없었지만, 그 전의 상황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최근의 일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없었던 일. 순서를 다시 정리해 봤다.

‘그러니까 빨간 눈이 1번, 그놈들이 만든 검붉은 눈이 2번, 다시 검붉은 눈이 3번의 빨간 눈을 만든다. 왜? 가만. 검붉은 놈은 군집의 대장. 그런데 자기 부하들인 빨간 눈이 다 죽어 없어졌어. 그럼 부하들이 필요해.’

여기까지 생각한 이진성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씨발. 1번 빨간 눈이 없으면 만들 수도 있구나.”

사람들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을 이진성에게 바라보았다. 그 얼굴들을 본 이진성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검붉은 눈이 무리의 대장입니다. 그런데 부하를 다 잃은 거예요. 졸병이 있어야 대장 노릇을 하는데 이미 빨간 눈들이 다 다른 놈들의 부하로 지내고 있어요. 구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럼 그때는 사람을 물어서 부하로 만드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보통의 고소한 냄새였을 거예요. 달큰한 냄새였다면 검붉은 눈이 되어서 경쟁자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럴싸한 추론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가 이진성과 관장의 가슴은 답답하게 했다.

자연 발생 비율을 넘어, 이제는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훨씬 다수인 빨간 눈에 의해 좀비로 변하는 케이스는 없는 것 같았지만 그 또한 알 수 없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알던 것과 새롭게 알게 된 것을 하나로 정리하느라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비는 더욱 굵어지고 하늘은 깜깜해져 갔다.

이진성은 가죽 슈트를 입고 있어서 젖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다 흠뻑 젖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흥분이 가라앉자 관장마저도 한기를 느끼고는 가늘게 떨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춥지 않소? 밑으로 한 층 내려갑시다. 여기가 감시는 편하지만, 추워서 젖은 몸으로는 힘들 것 같소.”

안 그래도 추위에 떨고 있던 두 사람은 바로 일어나 정신을 잃고 있는 동료를 둘러업으려다 멈춰 섰다.

피 흘리며 기절해 있던 중상자는 어느덧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잠시 먹먹한 침묵에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침묵을 깬 건 의외로 나현주 였다.

“이제 그만 가죠.”

아까 밑에서 동료들의 시체를 처리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이진성 자신도 처음 고시원에서 시체를 봤을 때 별다른 감정의 동요는 없었기에 이것도 자신들의 특성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꽤 담담하시네요? 잘 모르는 사이였나요?”

두 사람은 이진성을 돌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단을 향하면서 말했다.

“네. 우리 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언니예요. 그리고 사람들의 사체를 많이 봐서 그런지… 아니다! 몸이 변하고 나서 첫 시체를 보고도 별로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던 거 같네요.”

“나도 그렇다우. 전에는 죽은 쥐만 봐도 놀랐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 느낌이 없네.”

이진성과 관장은 역시나 하면서 식량과 남은 붕대 등을 챙겨 들고 따라 내려가며 생각에 잠겼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려 역사 한가운데의 안내센터를 찾았다. 물건들을 거기에 넣고 역사를 둘러봤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진성은 다시 헬멧을 뒤집어쓰고 부동산으로 내려가 가스버너와 부탄가스, 고시원에서 뜯어서 챙겨놨던 비상 랜턴을 꺼내왔다.

그것을 본 관장은 불을 피워도 될까 잠시 생각하다 여기서는 불빛이 새나가지 않겠다 싶어 그냥 놔뒀다.

이진성은 일단 급한 대로 가스버너를 켜놓고 랜턴을 들고 역사 내 상점들에서 종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걸 본 나현주와 김현희도 일어서 같이 모았다.

관장은 둥근 철제 쓰레기통의 속을 비워 내고는 빈 쓰레기통을 들고 왔다.

신문과 잡지, 박스 그리고 사무실의 서류까지 종이는 보이는 대로 모아와서 한 쪽에 쌓았더니 최소한 새벽까지는 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붙인 종이를 담은 쓰레기통이 뜨거워 지면서 떨고 있던 사람들의 몸도 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긴장감도 풀려갔다.

“배 안 고파요? 생라면이지만 먹을래요?”

두 사람은 잠깐 주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성이 라면 한 개씩을 주고 햄 통조림 하나를 뜯어 놓고선 편의점으로 가서 나무젓가락을 찾아 왔다.

“관장님은?”

관장을 돌아보니 역시 품에서 육포를 꺼내 입에 넣고 있었다.

각자의 음식을 먹고 생수를 돌려 마시고 한숨 돌리고 나니 은은한 불빛 밑에서 본 나현주는 꽤 지적인 인상이었다. 그런 인상으로 펄펄 날면서 좀비들을 때려죽이는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김현희 아줌마는 성격 좋아 보이는 후덕한 인상이었다. 근육질의 몸도 아닌데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쟁반 휘두르듯 잘도 아무렇지 않게 쓰던 것이 신기했다.

그때 관장이 나현주에게 물었다.

“현주씨는 운동했소? 보통 몸놀림이 아니던데.”

“아. 저 이동네 있는 도장에서 킥복싱이랑 무에타이 배우고 있어요. 아니다. 이제는 있었다가 되네요. 어려서부터 태권도랑 합기도 조금씩 했고요.”

이진성도 끼어들었다.

“혹시 선출이에요? 막 날아다니던데.”

“아뇨. 그 정도 아니고요. 그냥 오래 이것저것 했어요. 지금은 퇴근 후에 취미로 하고 있는 거고요.”

“이것이 내숭은. 얘가 이래 보여도 태권도 유소년 대표 뭐 그런 거 했다우. 맞지?”

“아 뭐 어렸을 때 잠깐.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야. 언니.”

“혹시 두 분은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된 건지 말해 줄 수 있소?”

관장의 말을 듣던 김현희가 이진성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저 아저씨 말투가 원래 저래요?”

풉 하고 아줌마를 슬쩍 봤지만 아줌마는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닌 듯 말을 시작했다.

“저는 그 이후 힘이 세졌어요. 전에도 식당일 하면서 힘은 꽤 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뚱뚱한 남자들도 들고 던질 수 있으니까…….”

“전 스피드가 전보다 몰라보게 빨라 졌어요. 그리고 파워도 강해졌고요. 아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대로 킥이 들어가면 목뼈도 터트릴 정도가 되어 버렸네요.”

그렇게 말한 나현주는 자신의 모습이 좋지는 않은지 쓴웃음을 지었다.

“두 분은 어쩌다 여기서 지내게 된 거예요?”

거기서 부 터 두 사람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김현희는 나현주가 다니던 도장의 1층에서 설렁탕집을 했고 집은 석수역 근처지만 그날 이후 갈 수 없이 식당에서 살았다.

안산이 본가인 나현주는 디지털단지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취하며 근처의 회사에 다니는 IT 개발자다. 그날 집으로 가다 길이 막혀 킥복싱 도장으로 갔고 도장에서 다른 관원들과 며칠을 지냈다.

그러던 중 관원들 몇이 자고 일어나 좀비가 되었고 도망치던 나현주는 그동안 밥을 얻어먹어 고마웠던 김현희와 함께 도망쳐 노숙하기를 며칠, 마침내 사냥 나온 안전지대의 사람들을 만나 그곳에 합류했다는 것뿐이었다.

“저희랑 같이 내일 안전지대로 가실래요? 거기 사람도 많고 식량도 충분히 있어요.”

“그 안전지대라는 것이 도대체 뭐요? 어떤 시설이오?”

“아니에요. 그냥 5층짜리 건물이에요. 지하주차장 입구와 1층 정문을 막고 2층으로 사다리를 통해 출입해요. 1층과 2층이 전부 식당이어서 식량은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도 외부에서 조금씩 찾아오고 있고요.”

“그런 식으로 이 근처에서 지내는 사람이 다른 곳에도 있소?”

“네, 정찰 중에 그런 건물 두 곳 발견했어요. 그쪽은 더 안 가요. 서로의 영역을 지켜 준달까?”

이진성은 속으로 피식했다.

식량이 남아 있는 동안은 서로의 영역을 지켜 주겠지만, 식량이 떨어진 후에도 계속 잰틀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속마음을 굳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 속에만 담고 적당히 사양했다.

“아뇨. 저희는 안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 어머니가 계시거든요. 가서 생사라도 확인하려고요.”

“그러시구나. 저도 안산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되긴 하는데 거기까지 갈 엄두가 안 나네요. 설마 걸어가세요?”

“아뇨. 걸어서는 못가죠. 오토바이로 갑니다.”

“그러시구나.”

나현주는 그러고 말았다. 이때는 누구도 몇 시간 후 일어날 일이 두 사람을 안산으로 동행하게 할 것임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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