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1호 김동수의 진화
ITL의 회의실.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참석자 중 많은 얼굴들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박인화 소장은 모니터 속에 있었다.
회의를 시작하는 부소장은 모니터의 박인화에게 인사했다.
“고생 많아요. 많이 불편하죠?”
“아니요. 놀고먹었는데 불편은요. 다른 사람 몫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고생하는 거죠. 그리고 2주밖에 안 됐는데요 뭐.”
박인화 소장은 지난 3월 21일의 유전자 검사결과에서 50%에 근접한 변형률을 보여 독방으로 들어갔었다.
평균치보다 높은 변화속도를 보이며 현재 80%에 육박하지만 3일째 안정된 수치를 보이고 변이체로 변하지는 않고 있다.
“이제 몸살은 완전히 나은 거죠?”
“네… 몸은 완전히 나았고 평생 이렇게 몸이 가뿐한 적이 있나 싶어요. 그리고 전보다 머리도 훨씬 맑아졌고요. 그동안 다른 연구원들도 마지막에 몸살을 앓고 변형이 정지된 채 분석능력이 좋아진 사람들이 몇 있었죠? 아마 이게 유전자 변형의 결과라면 나쁘지만은 않은데요? 호호호.”
연구원 한 명이 끼어들었다.
“경비요원 한 명은 같은 경우에 운동능력이 더 좋아졌습니다. 아마도 변형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장점이 더 성장 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데이터가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자!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드미트리부터 발표 시작하죠.”
“4월 6일 현재, 총인원 322명 중 50% 미만에서 진행 중 3, 멈춘 인원 173, 독방을 거쳐나온 인원 47, 독방 내 인원 41, 독방에서 소장님 포함 70% 이상에 변이하지 않고 있는 인원 3, 내부인원 변이체 58, 외부로부터 유입된 변이체 15입니다. 변이체 먹이용 죄수는 13명 남은 상태로 추가적인…….”
…….
“오늘부터 그동안 미뤄 왔던 무기 실험을 시작합니다. 샘플은 25개체를 발췌…….”
…….
현황 보고가 끝나고 업무보고가 시작됐다.
“지난 3월 6일 짝짓기를 했던 변이체 개를 어제 해부했습니다. 새끼는 모두 변이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보통의 개보다 태아의 발달 정도는 반 정도였습니다. 변이체의 임신 기간은 정상 개의 약 두 배로 추정되며…….”
ITL 내부에서는 변이체가 번식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자연 번식이 가능한 완전한 생물 종이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변이체의 발정기가 정상개체보다 훨씬 긴 기간인 것과 출산 개체 수가 적다는 것, 그리고 임신 기간이 길다는 것 등이 밝혀졌다.
따라서 포식자인 변이체의 증가는 피식자인 정상개체보다 느려 급격한 멸종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인간 변이체 짝짓기 실험은 어떻게 되고 있죠?”
“샘플 커플의 짝짓기행위는 아직 없습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지만, 여 개체의 생리도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인간 변이체도 배란주기가 변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오늘 1호와 남 개체 둘을 여 개체 열을 합사할 겁니다. 짝짓기행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처럼 서열 싸움을 하는지 관찰할 계획입니다. 지금 막 마취를 시작했을 시간입니다.”
KR-Seoul-0001, 통칭 1호로 불리는 김동수는 변이 직후 포식 과정에서 두 번의 기절이라는 특이점을 보여 항상 특별관리 되어 왔다.
연구원들은 아직 다른 개체가 기절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김동수도 그 이후 먹이로 주어지는 죄수들을 뜯어먹으면서도 기절하지는 않았다.
다만 김동수의 행동은 다른 빨간눈 개체보다 연구소 내 하나뿐인 검붉은 눈 개체와 가까웠다.
연구소 내에서 인권은 무시되었다. 좀비의 먹이로 정부에서는 죄수를 공급했다.
그리고 좀비의 먹이로 주는 과정에서 한 죄수가 검붉은 눈으로 변했다.
연구원들은 그때야 유전자 변형이 70% 이상에서 멈춘 개체가 물리면 검붉은 눈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검붉은 눈은 다른 빨간 눈보다는 얌전하고 덜 폭력적이지만 빨간 눈들보다 우수한 신체 능력을 보였다.
김동수는 오히려 그 검붉은 눈보다 더욱 조용했다. 항상 자리에 앉아 있었고 먹이를 사냥하는 때 외에는 잘 움직이지도 소리 내지도 않았다.
사람들을 보고도 가만히 주시만 할 뿐, 다른 개체처럼 그러렁 거리지도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지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 * *
두 연구원은 여느 때와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마취총을 들고 이동 침대를 밀고 가고 있었다.
“1호는 말이야. 어떤 때는 말을 알아듣는 거 아닌가 생각된다니까?”
“그렇지? 난 1호 보면 기분 나빠.”
“왜? 다루기 쉽고 좋은데?”
“그게… 마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달까? 하여간 뭔가 음흉한 속을 숨기고 있는 그런 섬뜩함? 그런 거 있어.”
“숨기긴 뭘 숨겨? 그래 봐야 변이체야.”
두 사람은 오늘 점심도 군인들 전투식량을 먹어야 하는 것에 분개하면서 잡담 끝에 1호의 방 앞에 도착했다.
방안에는 고개를 숙인 1호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저 봐. 에이. 기분 나빠.”
“후딱 옮기고 가자고. 동수 씨 오늘 장가 가는 거야.”
연구원은 1호에게 마취총을 쏘고 시계를 보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약 2분이 지나자 1호가 옆으로 쓰러졌다. 그래도 연구원들은 총 10분이 지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에게는 익숙한 상황이기에 긴장감은 없었다.
“치사랑 10배인데도 멀쩡한 거 보면 이런 몸은 가지고 싶다니까. 몸만 말이야 몸만.”
“헛소리 말고 빨리 옮기기나 해.”
한 사람이 1호의 뒤에서 겨드랑이로 팔을 껴서 들었다. 다른 하나가 다리를 들고 이동 침대로 옮겼다.
막 1호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마취로 뻗어 있어야 할 1호가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상체를 잡고 있던 연구원의 목을 깊숙이 뜯어냈다.
그런데 1호의 눈은 빨간색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검붉은 색도 아니었다.
눈동자에 온통 먹물을 채워 넣은 듯한 검은색 눈으로 다른 연구원을 바라봤다.
연구원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버렸고 다가오는 1호를 보며 엉덩이를 끌고 뒤로 물러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1호는 그 연구원도 곱게 보내주지는 않았다.
그 모습은 통제실의 CCTV에 그대로 보였다.
경비요원 넷이 소총을 들고 달려나갔다. 남은 둘은 재빠르게 비상벨을 울리고 비상 프로토콜에 따라 연구소 출입구의 봉쇄 버튼을 눌렀다.
이제 이곳 통제실에서 해제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밀폐 건물이 된 것이다.
모든 복도에는 비상을 알리는 붉은 불빛이 점멸하며 요란한 알람이 울렸다. 연구원들과 지원인력은 영문도 모른 채 불평하며 지하대피소로 향했다.
회의실의 부소장과 책임연구원들은 통제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 보고는 독방에서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박인화 소장도 같이 들었다.
마취제가 통하지 않은 1호의 변화에 대한 과학자로서 호기심과 동시에 사살될 1호에 대한 연민도 들었다.
독방구역을 격리하는 철창문까지 달려온 경비원이 1호를 발견했다.
1호는 다른 독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1호 확인. 복도에 있습니다. 규정대로 사살 인가 요청합니다.”
부소장과 연구원들은 CCTV 화면을 띄운 중앙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1호의 방에는 두 연구원이 시체가 있었고, 다른 CCTV 화면에 복도로 나온 1호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1호의 눈 색이 검은색이라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나온 사격인가 요청에 대답했다.
“사격하세요. 인가합니다.”
경비요원들은 각자 1호의 머리와 가슴을 겨냥하고 한 사람의 ‘사격’ 소리와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1호는 막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 총알을 피하더니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놀라 계속 사격을 했지만, 겨우 팔에 두어 발을 맞은 1호는 금방 복도 끝에서 방향을 틀어 자취를 감췄다.
당황한 경비요원들이 급하게 철창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통제실에서 무전이 들어왔다.
“1호가 다른 변이체 방의 문을 잡아 뜯고 있다. 지금 두 번째 방문을 뜯고 있고 한 놈이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없었다. 더 나오기 전에 1호와 다른 한 놈을 사살해야 했다.
경비요원들은 총을 연사로 바꾸고 달렸다. 코너를 돌자 방에서 나온 한 놈과 그 뒤에 서 있는 1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누구의 지시도 없이 사격을 시작했다.
앞에 있는 변이체는 네 명이 각자의 탄창을 다 비우는 동안 걸레가 되었다. 하지만 1호는 놈의 뒤에서 팔다리에 몇 발이 스쳤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총을 쏘는 동안 1호는 앞의 놈을 방패로 밀고 나왔다. 그리고 탄창을 갈려고 잠시 사격이 멈춘 그때, 1호는 잡고 있던 놈을 사람들에게 던져 버렸다.
사람들이 날아오는 시체에 주춤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오른쪽의 사람 머리가 1호의 손에 맞아 벽으로 날아가 터져버렸다.
놈은 바로 몸을 돌려 당황한 다른 한 사람의 목에 손을 쑤셔 넣고, 앞으로 나가며 또 한 사람의 배를 무릎으로 찍었다.
다리에 맞고 3m 정도를 날아간 사람은 벽에 부딪히고 떨어진 채 내장이 파열로 피와 살점을 토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막 탄창을 바꾸고 총을 겨냥하자 1호는 총을 잡아채 던져 버리고 그 목을 물어뜯어 버렸다.
네 사람이 죽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통제실의 두 명과 회의실의 부소장, 책임연구원들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회의실 인원은 지하대피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통제실 인원은 통제실의 문을 걸어 잠갔다.
크르르르~
더 공격이 없자 1호는 다른 독방의 문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그 문들이 그렇게 뜯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도 1호는 별 어려움 없이 문의 경첩을 뜯어냈다.
1호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72마리의 연구소 내 변이체 중 방금 하나가 죽고 나머지 71마리가 있는 방의 문은 차례로 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통제실에서는 외부 평택기지 미군의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이 ITL의 보호를 명목으로 기지 내 설치를 주장했었기 때문이다.
1호는 밖으로 나온 변이체를 보며 포효했다. 마치 나를 따르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들어 있는 독방으로 향했다. 71마리의 변이체는 놈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순순히 따랐다.
1호는 독방의 문을 뜯어낸 후, 안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의 어깨를 물고는 다시 나오기를 계속했다.
물린 사람들은 즉시 경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경련한 지 불과 10여 분 만에 사람들은 다시 일어났다.
대부분은 빨간 눈으로, 두 명은 검붉은 눈을 한 채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고 방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박인화 소장의 방 앞에 온 1호는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전에 소장이 관찰 창을 통해 자주 1호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것을 기억이라도 하는 듯, 가만히 소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1호의 눈 색이 검은 것을 본 소장은 정상적이지 않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됐다. 그리고 자신도 곧 물릴 것과 그 후의 변화를 담담히 준비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 모든 방에서 변이체가 된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제야 1호는 소장의 방문을 뜯어냈다.
하지만 1호의 행동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놈은 소장을 물지 않고 그대로 뒤로 돌아 좀비들에게 다가갔다.
크르르르~
좀비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그르렁거린 놈이 방향을 바꿔 움직였고 좀비들은 놈을 따랐다. 놈들이 향한 곳은 독방을 격리하는 철창문이었다.
1호가 철창을 잡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끼익~
굵은 철창이 굽으며 쇳소리가 났다. 서서히 벌어진 철창은 마침내 사람 하나가 빠져나갈 만큼 벌어졌다.
그곳을 통해 빠져나간 1호는 뒤따라 나오는 변이체들을 사방으로 보내는 듯 그르렁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소장은 방에서 나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1호의 행동은 지금까지 연구해 왔던 그 모든 것과 달랐다.
헛수고했나 하는 생각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1호가 왜 자신은 살려 줬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것은 생각이 아니라 상황의 파악이었다.
그녀는 통제실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