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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29화 (29/145)

# 29

조우―명사수 장동건

이진성은 김현희와 라면죽을 떠먹으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진상 총각. 아까 갑자기 그 중식도가 뒤에서 팍 나오는데 내가 얼마나 놀랐게요. 누나가 위험해 보였어? 감동먹은거 알아? 나 심쿵했잖아. 호호호.”

“아. 진짜. 진상 아니고 진성. 진상이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학교 다닐 때도 그 별명 싫었는데.”

둘은 잠깐이라도 같이 싸웠다고 많이 편해져 있었다. 관장과 나현주는 그런 그들을 보며 말없이 노란 양은냄비의 라면죽을 퍼먹었다.

“근데 아까 그 사람들 잘 갔겠지? 저쪽에서 받아 줬으려나?”

“뭐. 잘 갔겠죠. 간 사람들 생각해서 뭐해요. 얼릉 이거나 먹자구요.”

작은 냄비 안에는 대충 빻은 쌀과 대충 조각 내 넣은 라면, 숟가락으로 대충 퍼넣은 통조림햄에 참치까지 들어간 죽이 이진성의 가스버너 위에서 끓고 있었다.

네 명이 먹기에는 냄비가 너무 작았지만 줄어들면 물과 재료들을 더 넣어 다시 끓이고 또 끓이기가 이미 몇 차례였다.

눈으로 보기에는 돼지죽 같아 보였지만 의외로 먹을만 했다. 모두에게 끓인 음식은 오래간만이었다.

사람들을 구출해서 조폭들에게 도망친 것이 이미 하루 전 새벽녘이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들어가 숨을 돌린 여덟 명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얘기 끝에 나현주와 김현희는 이진성과 관장과 함께 안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그들이 아는 다른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들로서는 안산까지 가는 동안의 안전이 우려될 수 밖에 없었다.

이진성은 내심 반겼다. 고소한 냄새인 저들이 같이 가면 좀비가 더 많이 덤벼들 것 같았다.

싸움도 자기보다 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이 여덟으로 늘어나는 것이 싫었다.

관장은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관심이 없었다.

날이 밝고 그들이 떠난 후, 혹시나 조폭 놈들이 찾아올까 우려해 부동산으로 내려와 셔터를 내리고 잠을 청했다.

소파와 책상, 의자에 대충 몸을 구겨 넣고 잠든 그들은 해가 중천에 걸릴 때 이진성만 빼고 깨어났다.

이진성은 몸살을 앓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셋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에야 일어난 이진성은 언제 몸살을 했냐는 듯, 더없이 좋은 컨디션에 신기해했다.

그런 이진성을 바라보던 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성 씨 기가 지금까지보다 강해졌소. 그 몸살. 아마도 또 어떤 몸의 변화가 있었나 본데 뭔가 느껴지는 것 없소?”

“특별한 건 없는데요. 잠깐만요. 여러분들 냄새가 조금은 더 진해졌어요. 어라. 이러면 더 멀리 있는 냄새도 맡을 수 있는 건가?”

“다른 건 없어요?”

나현주의 물음에 이리저리 몸을 둘러보고 팔다리를 움직여 봤지만 특별한 것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몸은 개운하고 가벼웠다.

“배 안 고파요? 전 많이 고픈데.”

이진성이 자는 동안 생라면을 꺼내 먹은 세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이진성은 냄비와 가스버너 쌀, 라면, 통조림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 같은 생수를 써가며 손을 씻은 네 사람은 지금의 라면죽을 만들어 부동산 소파에 앉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진성 아저씨, 안 더워요? 그 슈트 많이 더워 보이는데?”

“아직은 덥진 않은데, 싸우면서 땀을 흘려 그런지 몸이 간질간질해 미치겠어요.”

“진상 총각. 냄새나. 퀴퀴한 냄새.”

“또 진상. 그거 하지 말라니까요 아!줌!마!”

“에이, 남자가 삐지긴. 아줌마 말고 누나.”

좁은 곳에서 구겨자고 제대로 익지도 않은 쌀이 들은 라면죽을 먹고 있었지만, 네 사람에게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안함이었다.

“두 분은 혹시 오토바이 타시오?”

“저는 탈 줄 알아요. 한때 바이크동호회 활동도 했었어요. 언니는요?”

“나두 탈줄은 알지. 근데 저기 저런 것만 타 봤어.”

이진성의 노란색 배달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말하는 김현희였다. 일단 모두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아줌마. 아니 누님. 그 솥뚜껑은 어쩌죠? 그걸 들고 오토바이 탈 수는 없잖아요?”

“그러네. 버려야 하나? 그래도 이걸로 그놈들 많이 잡았는데. 나 이거 없으면 연약한 여잔데 진상 총각이 보호해 줄꼬야?”

“아 오! 그러지 말아요. 낼모레면 50인 양반이.”

“니가 이걸로 맞고 싶구나.”

하면서 솥뚜껑을 들고 일어서는 46살의 김현희와 후다닥 물러서는 38살의 이진성이었다.

“이건 버리고 가지 뭐. 놈들이 나오면 아무거나 들고 싸우지 뭐. 아쉽네. 식당 하면서 오래 정든 녀석인데.”

“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이 있소?”

“저 앞 큰길 건너가면 레드리아 햄버거 있어요. 조금 내려가면 핫피자 있고요.”

가스버너와 냄비 등을 챙긴 이진성이 냄새를 맡고 안전을 확인하고 관장을 바라보았다. 관장도 인간의 기척은 느끼지 못했는지 문으로 걸어가 셔터를 올렸다.

밖의 날씨는 좋았다. 비 온 후의 하늘은 푸르렇고 공기는 상쾌했다. 이미 정오가 지나 햇살도 따듯했다.

레드리아 앞에는 오토바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돌아본 건물 옆에도 깨끗했다.

“여기 오토바이들은 이미 다 타고 갔나 봐요. 온 김에 들어가서 뭐 챙길 거 있나 볼까요? 티슈가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그런 거라면 저 밑에 핫피자에도 있을 거요. 어차피 가야 하니 거기서 챙깁시다.”

‘아 씨. 맨날 내 말은 무시해.’

앞장서는 관장을 따라 속으로 투덜거리며 이진성은 자기 오토바이를 밀기 시작했다.

핫피자 앞에는 넘어진 오토바이들이 몇 대 보였다. 먼저 달려간 나현주는 쓰러진 오토바이들을 일으켜 세워 파손된 것들을 골라냈다.

“이 세 대는 멀쩡해 보이기는 하는데 키가 없네요. 저 밑에 가면 미스피자 있는데 거기로 가야겠어요.”

다시 네 사람이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미스피자로 향하던 중 이진성이 사람들을 세웠다.

전방 약 60m 지점의 안쪽 길에서 시흥대로 쪽으로 이동하는 놈들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확실히 몸살 후 전보다 더 먼 곳의 냄새를 정확하게 맡을 수 있었다.

“저 앞 도로 안쪽에서 좀비들이 나오고 있어요. 큰길까지 대략 20m. 숫자는… 스물셋이네요. 검붉은눈 넷에 빨간눈 열여덟. 네 집이 뭉친 건가? 왜 이 동네 것들은 저렇게 뭉쳐 다니지? 우리 동네 것들은 서로 영역 지키고 살던데.”

“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아저씨?”

“아. 우리 동네에서는 검붉은눈 하나에 빨간눈 네다섯 정도씩만 모여 있었거든요. 뭐 그래 봐야 세 집단 밖에 못 보긴 했지만 저렇게 검붉은눈 여럿에 수십 마리씩 모여 다니는 거는 못 봤거든요.”

“아!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어제 낮에 정찰 나와 맞닥트린 놈들이 모여있는 놈들로는 처음이었어요.”

“여기 사람들이 자꾸 죽이니까 저것들도 뭉쳐 다니나?”

네 사람은 숨을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에는 전부 문이 잠긴 상점이었고, 길 건너 가다가는 놈들에게 들킬 수 있었다.

유리를 깨고 들어가자니 소리 때문에 마땅치 않았다. 되돌아가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세 사람은 김현희를 바라보았다. 무기가 없는데 어떻게 하고 싶은지의 의미였다.

그걸 본 김현희는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그녀의 눈에 저 앞 카페 앞에 자빠져 반짝이는 철제 입간판이 보였다.

달려가 집어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고 한두 번 휘둘러 보더니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거 좋은데요 호호호.”

“놈들이 넓은 길로 나오기 전에 놈들 앞에 자리 잡는 게 좋겠어요. 저기 골목에서 나오는 길은 차들로 막혀 놈들도 한꺼번에 넘어오지는 못할 거예요.”

이진성의 말과 함께 관장은 검을 뽑아 들고 달렸다. 나현주도 바로 관장의 뒤에 따라붙었다.

이진성은 김현희와 다시 한번 콤비 플레이를 하기 위해 같이 달렸다.

“아줌… 아니 누님. 어제처럼 누님이 앞에서 막아주면 제가 뒤에서 찍을게요.”

“그럴까? 나도 그렇게 하면 편하고 좋지. 근데 나 찍으면 안 돼요. 호호.”

참 긴장감 없이 낙천적인 아줌마였다.

이진성의 말대로 골목은 시흥대로로 나오던 차들이 서로 엉켜 길을 막고 있었다.

그 차들을 서서히 타넘던 놈들은 갑자기 나타난 달큰한 냄새의 인간 넷을 보고 잠시 주춤하는 듯하더니 차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식량이 아니라서 어쩔까 하다가 자신들의 동료를 더 만들고 싶어졌나 보다.

몇 놈은 발을 헛디뎌 자빠지고, 몇 놈은 미끄러져 차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다섯이 먼저 일행의 앞에 도달했다.

한 놈이 차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나현주한테 달려갔다.

두 놈은 타고넘던 차에서 뛰어 내리며 김현희 앞으로 나왔다.

나머지 두 놈 중 한 놈은 달려서 관장에게 향했고 또 한 놈은 차에서 그대로 관장에게 점프했다.

“아 씨. 왜 우리한테 둘이야.”

“우리가 둘이니까 저놈들도 둘이 오나 보지.”

김현희는 입간판의 두 손으로 부여잡고 마치 야구선수가 배팅하듯, 앞의 몸의 목에 간판의 옆면을 꽂아 넣었다.

철제라서 그런지 아니면 김현희의 힘이 워낙 세서 그런지, 날이 없음에도 놈의 목은 댕강 잘려 버렸다.

바로 이어 바로 뒤에서 달려드는 놈의 가슴팍을 간판으로 찍어 밀면서 외쳤다.

“찍어 버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이진성은 앞의 놈이 멈춰서는 순간에 풀파워로 놈의 대가리를 찍었다.

퍽 소리와 함께 중식도가 놈의 대가에 박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제와 달랐다.

칼은 두개골에서 멈추지 않고 미간을 지나 코를 반으로 가르고 아래턱을 뽑으며 빠져나왔다.

이진성은 스스로 놀랐다. 김현희 역시 어제와 다른 이진성의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놈들은 계속 달려왔고 놀라고만 있을 수 없었다.

“또 와요. 한 번 더~”

김현희를 앞세우고 이진성은 조금 전의 짜릿한 손맛을 떠올리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나현주는 달려오는 놈을 보면서 그 뒤에 따라붙는 세 놈을 힐끗 봤다. 놈들이 닿기 전에 놈을 끝내야 했다.

달려드는 놈을 슬쩍 피해 지나치는 놈의 뒤통수에 돌려차기로 발꿈치를 꽂아 넣었다.

빠각~

한 번에 놈의 뒤통수가 깨지고 물컹한 뇌가 뭉개지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자세를 잡자마자 다른 한 놈이 달려들었다.

놈의 손과 대가리를 피해 왼쪽으로 빠지며 오른쪽 니킥을 놈의 배에 날렸다. 앞으로 숙여지는 놈의 목덜미에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점프해서 엎어진 놈의 척추를 무릎으로 찍어 부숴 버렸다.

그리고 바로 굴러서 옆에서 뻗어 오는 다른 놈의 손을 피했다. 동시에 놈의 발목을 차서 자빠트렸다.

엎어지는 놈의 목에는 나현주의 올려 차기가 들어갔고 목뼈는 산산이 터져 나갔다.

관장은 자신에게 몸을 던지는 놈을 한번 쓱 보더니 공중에 떠 있는 놈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고 날아오는 힘을 이용해 뒤로 넘겨버렸다. 그와 동시에 달려오는 놈의 배를 갈라 버렸다.

그 둘의 대가리를 어제의 그 베기로 잘라낸 뒤, 앞의 승용차 위에서 달려오는 놈들을 하나하나 배어나겠다.

주둥이를 들이미는 놈에게는 주둥이에 검을 쑤셔 넣어 줬고 손으로 잡으려는 놈은 어깨를 끊어줬다.

놈들에게 본능적인 사냥기술이 있다 해도, 그리고 몸놀림이 보통 인간보다 월등하다 해도, 관장의 움직임은 그들을 압도했다.

관장의 주위에는 놈들의 피가 흘러넘쳤다. 대가리들이 굴러다녔고 팔다리, 창자가 널려있었다.

어느덧 더 이상 달려드는 놈들은 없었다. 관장 주위로는 몇 마리인지 모르게 조각난 놈들이 있었고 나현주 주위로도 일곱이 박살 나 있었다. 김현희와 이진성 주위에도 여섯이 흩어져 있었다.

이진성은 기진맥진이었다. 실제 싸운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느낌으로는 한두 시간은 싸운 것 같았다.

벗어든 헬멧과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 헐떡이고 있었지만, 칼날이 깨끗하게 들어갔을 때의 그 쾌감은 정말 좋았다.

마치 팔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은 섹스에서 사정할 때의 그런 짜릿함이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지막 놈을 배고 주위를 둘러보던 관장은 이진성이 마지막 놈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일격은 마치 자신이 어제 깨달은 그 베기와 비슷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그 몸살로 저렇게 변화한 건가? 좀 더 지켜봐야겠군.’

관장은 앞으로 이진성에게 싸울 기회를 더 만들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진성은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뿌듯함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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