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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30화 (30/145)

# 30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 손을 들던 이진성은 흠칫했다. 손에는 온통 놈들의 피와 육편이 묻어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제일 심한 것은 나현주였다. 맨손과 발로 놈들을 터트리고 깨버렸으니 피와 놈들의 살 조각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놈들 피 이렇게 뒤집어쓴다고 병 걸리고 그런 건 아니겠죠? 현주씨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런데 이 옷은 더 못 입고 있겠어요. 어디서 옷을 구해야겠는데.”

“지금까지는 어떻게 했어요?”

“뭐 빨아 입기도 하고, 상가에 있는 옷가게들을 털기도 하고 그랬죠.”

둘러 봤지만 당장 근처에는 눈에 들어오는 옷가게가 없었다.

“여기는 옷가게는 없나 보네요. 현주씨 아는 곳 있어요?”

“저 안쪽으로 가면 몇 군데 있는데 이미 남아 있는 것도 없어요. 또 그 조폭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어서…….”

“일단 오토바이부터 구하고 가면서 찾아보죠.”

이진성이 저 앞에 보이는 미스피자로 먼저 나섰다. 셋은 몸에 묻은 살점들을 털어내며 따르기 시작했다.

다들 몸이 변하면서 감정들이 무뎌져서 그런지 여자인 두 사람도 무심하게 툭툭 털어낼 뿐이었다.

미스피자는 2층에 있었다. 건물의 앞에는 박살 난 오토바이 두 대가 있을 뿐이었다.

“차로 받았나? 여기 말고 다른 있을 만한 곳 있어요?”

“글쎄요. 여기 말고 근처에 큰 패스트푸드는 더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기를 잠시, 김현희가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저 옆에 주차장 있어요. 여기 오토바이 거기 세워 놓는 거로 알아. 우리 식당에 여기 아르바이트생들 밥 먹으러 많이 와서 내가 알지.”

“주차장? 어딘데요?”

“따라 오셔.”

옆 건물 뒤편에 있는 작은 주차장의 한쪽 구석에 미스피자의 하얀색 배달 오토바이 세 대가 서 있었다.

달려간 나현주가 오토바이를 살피고 말했다.

“상태는 좋은 거 같은데요. 근데 키가 없네요.”

“관장님. 혹시 전선 팍팍해서 시동 걸고 그런 거 못 하세요?”

“그런 거 모르오. 왜 내가 그런 거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거요?”

“아니. 오토바이 가게 주인이시기도 하고 이런 거 저런 거 많이 아시는 거 같아서…….”

“저기… 피자가게에 혹시 키 있지 않을까요? 가봐요. 우리.”

나현주의 의견에 동의하고 관장과 이진성은 자신들의 오토바이를 제일 구석으로 끌고 갔다.

가릴만한 것이 있나 찾아봤지만 마땅한 것은 없었다.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겠소. 여러분들은 갔다 오시오.”

그 방법 외에는 없는 듯했다. 아무리 지금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혹시라도 누군가 훔쳐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관장을 남겨둔 세 사람이 미스피자 건물로 향했다.

건물의 1층에는 카페와 분식집 그리고 몇 개의 식당들이 있었다. 식당들에게서 나오는 식재료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셋 다 피 묻은 손가락으로 코를 잡고 1층을 살펴봤지만 하나같이 난장판이었다.

아마도 건물 내부 어디선가 좀비가 나타났던 것 같았다.

2층으로 계단을 오른 그들은 사람들이 도망친 원인을 그곳에서 찾았다.

2층의 통로에는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누군가 계단 앞에서 당한 듯, 계단 바로 근처에 피 웅덩이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바닥에 큰 붓으로 피를 묻혀 그린 것처럼 핏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은 재수 없게 미스피자로 이어졌다.

“진성 아저씨, 놈들 냄새 안 나요?”

“그게… 썩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알 수가 없어요. 가까운 곳에는 없는 거 같은데 자신은 없네요. 미안해요. 이번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될 거 같아요.”

이진성은 이런 경우는 생각하지 못했다. 놈들 냄새보다 더 강한 냄새가 나면 놈들의 존재를 알 수가 없었다.

미스피자 매장으로부터 풍기는 이 냄새는 음식 썩는 냄새와는 차원이 달랐다.

‘’모두 조심하세요.”

주의를 주며 나현주가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그 뒤를 따르는 긴장한 이진성의 등을 김현희가 툭 치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기도 하는 거지 뭐. 그래도 진성 씨 덕에 지금까지는 쉬웠잖아.”

끼이이익~

인적이 끊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미스피자의 출입문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소리에 놀란 세 사람은 급하게 몸을 낮추며 주위를 둘러봤다.

문이 열리면서 더 강한 냄새가 훅 몰려왔다. 그 냄새의 근원은 매장 한가운데 있었다.

반쯤 뜯어 먹힌 채로 썩어 뭉그러진 시체가 넷. 주위에는 피도 아닌 시커먼 액체가 흥건했고 파리가 새카맣게 시체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사방으로 날뛰는 쥐들.

“으. 쥐새끼들. 어디서 들어 온 거야.”

이진성에게는 시체들보다 쥐들이 더 소름 돋았다.

“여기 어디 놈이 있을 거예요. 어쩌면 하나가 아닐지도 몰라요. 주방부터 확인해 봐요. 미안하지만 누님이 앞에서 방패로 막아 줄래요?”

입간판을 가리키며 방패라고 하자, 김현희는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나현주와 이진성이 따르며 조심스럽게 카운터를 돌아 주방으로 향했다.

“잠깐만요. 여기 키들 있어요.”

나현주는 눈치 빠르게 카운터 내부를 스캔하고 한쪽 구석에서 1부터 10까지 써진 보드에 걸린 다섯 개의 오토바이 키를 발견했다.

그것들을 전부 챙긴 셋이 주방으로 들어섰지만, 그곳은 깨끗했다. 핏자국은 없었고 토마토 소스 통이 엎어져 바닥을 적시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나와 매장을 둘러보는 일행의 눈에 STAFF 라고 적힌 문이 보였다. 도어핸들 없이 밀고 들어가는 문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진성이 청룡언월도로 그 문을 가리키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하고 소리를 죽이고 문으로 접근했다.

“조심하세요. 숨어있다 기습할 줄 아는 놈들이에요.”

문의 정면으로 김현희가 섰다. 나현주와 이진성은 문의 양옆으로 붙었다.

김현희가 간판으로 앞을 막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진성이 청룡언월도로 문을 슬쩍 밀었다.

끼이익~

문은 약간 뒤로 밀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앞으로 확 열렸다.

그리고 뒤따라 좀비 하나가 튀어나와 바로 앞에 보이는 김현희에게 달려들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김현희였다.

달려오는 놈의 대가리를 간판으로 후려쳤다. 놈은 비틀거리며 나현주 쪽으로 밀려갔다.

나현주의 킥을 배에 맞은 놈의 몸은 앞으로 꺾여 목덜미가 드러났다. 이진성이 그곳에 청룡언월도를 내리꽂았다.

두 번의 찍기로 놈의 목을 잘라낸 후 조심스럽게 다시 문을 열어 봤지만 다른 놈은 더 없었다.

안에는 청소도구와 의자 몇 개, 개인 사물함으로 쓸 수 있는 작은 캐비닛,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의 유니폼이 보였다.

“저거 입을 수 있겠는데요.”

나현주는 옷을 몇 개 집어 들고 이리저리 둘러 봤다. 그 모습을 본 이진성은 화장실로 가서 물을 틀어 봤다.

사태가 터지고 이 건물에는 사람이 없었는지 물은 잘 나왔다.

“화장실에 물 잘 나와요. 씻을 수 있겠어요. 저는 관장님한테 말하고 올게요. 두 분 먼저 씻으세요.”

화장실로 달려간 두 여자는 수도꼭지에서 콸콸 나오는 물을 보고 로또 당첨되면 저럴까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런 둘을 놔두고 건물 밖으로 나온 이진성은 관장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내가 계속 지킬 테니 먼저 씻고 오시오.”

관장을 말에 이진성은 오토바이에 챙겨둔 속옷을 꺼내 들고 다시 미스피자로 향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기 전에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은 난장판이었고 음식 썩는 냄새는 지독했다. 역시나 쥐들은 사방에서 뛰어다녔다.

그런 편의점의 구석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다행히도 원하는 것들이 진열대 밑에 뿌려져 있었다.

속옷과 양말, 칫솔과 치약. 그리고 생리대들.

필요한 것들을 챙겨 미스피자로 올라간 이진성이 화장실 앞에 선 이진성이 노크를 하고 소리쳤다.

“여기 속옷이랑 칫솔 치약 있어요. 문 앞에 놔둘게요.”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가 먹을만한 것이 있나 뒤졌다. 하지만 썩지 않은 음식이라도 아쉽게도 전부 쥐가 쏠아 먹을 수 있는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카운터로 향했다. 냅킨과 물티슈, 배달용 오이피클 등을 있는 대로 비닐봉지에 담고 있는데 두 사람이 아르바이트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이진성에게 달려왔다.

“진성 아저씨 진짜 고마워요. 안 그래도 속옷 때문에 찜찜했는데. 그렇게 안 봤는데 센스쟁이야.”

“아냐. 난 진상 총각이 센스 있는지 알았어. 호호호.”

기분 좋으면서도 진상이라고 농을 거는 김현희였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기본이죠. 기본.”

이진성은 냄새가 나서 바이크 슈트를 더 입을 수가 없었다. 결국 슈트는 버리고 유니폼으로 입기로 했다.

우쭐거리며 유니폼을 챙겨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이진성을 보고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피식했다.

다 씻은 세 사람이 밑에서 잡담하며 망보는 동안 관장도 씻고 내려왔다.

옷이 어색한지 자꾸 매만지며 다가오는 관장의 모습에 세 사람은 웃음을 참아야 했다.

흰머리가 섞인 긴 머리에 수염 난 아저씨가 피자 유니폼을 입고 등에 장검을 X자로 매고 있는 모습은 좀 많이 이상했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한대의 멋들어진 BMU 투어링바이크와 그 뒤를 따르는 노란색과 흰색의 배달 오토바이가 시흥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나온 남부순환도로 바로 앞 주유소에서 기름도 가득 채웠다.

불어오는 4월의 바람에는 어디선가 실려 오는 좀비의 냄새와 피 냄새, 뭔가 타는 냄새, 시체 썩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의 기분은 상쾌했다.

서 있는 차들을 피하느라 시원스럽게 달리지도 못했다. 길이 없으면 차들을 조금씩 운전해서 길을 만들고 나갔다.

가끔 차를 치우는 동안 달려드는 좀비를 베고 때리고 찍어 부수기도 했다.

어쩌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창을 열고 내려다보는 생존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피자 아르바이트 옷을 입은 그들은 금방 무시되었다.

그들은 곧 다시 자신들의 은신처로 숨어들었고 네 명도 생존자들이 있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꾸역꾸역 시흥대로를 따라 내려가던 네 사람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시흥동 패밀리플러스마트 앞에 도착했다.

마트는 완전히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깨진 유리창들에서는 아직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친놈들. 약탈을 할 거면 물건만 훔쳐 가지 불을 왜 지르고 지랄인지 모르겠네.”

“들어갈 필요도 없겠네요.”

네 사람은 마트는 깨끗이 포기하고 다시 출발했다.

패밀리플러스를 지나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길은 사정이 훨씬 좋아 보였다.

대로의 우측은 주택가가 아니었고 좌측의 주택가도 지금까지 지나온 길보다 규모가 작았다.

쏟아져 나온 차들도 그만큼 적었을 것이었다.

저 앞으로 보이는 사거리를 막고 있는 차들도 지나온 길 보다는 적어 보였다.

“어쩔까요? 해가 곧 질 텐데 여기 어디서 자고 갈까요?”

“저 정도 길이면 석수역까지는 깜깜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소. 거기까지 가서 잘 곳을 찾읍시다. 그쪽이 아무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도 적을 것 같고.”

아직 빛이 남아 있을 때 더 가자는 관장의 말에 모두는 다시 오토바이를 전진시켰다.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저 멀리 석수역이 보이는 직선도로에 접어들었다.

넷은 한산해진 도로에서 처음으로 속도를 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거의 석수역을 100m 정도 남긴 지점에 도착했을 때였다. 관장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 섰다.

약 50m 앞에 버려진 군용 육공트럭 한대와 좌우로 밀려나 있는 바리케이드 몇 개가 보였다.

그 주변으로 멈춰선 자동차들이 있었고 그중 몇 대는 불에 타 있었다.

육공 트럭의 찢어진 호로가 바람에 날리며 어둑한 하늘과 함께 섬뜩하게 보였다.

“저기 바리케이드 있는 좌우 인도 부근에서 긴장한 사람 넷의 기운이 느껴지오. 숨어 있는 것 보니 별로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소.”

“어쩔까요? 강도면 어쩌죠?”

“강도 넷이라면 나랑 현주씨가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일단은 가 봅시다. 계속 숨어 있으면 지나치면 그만이고.”

네 사람은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약 30m쯤 다가갔을 때 관장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모두가 속도를 높이는데 도로 양쪽에서 놈들이 튀어 나왔다.

“정지. 움직이면 쏜다.”

일행은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튀어나온 놈들은 불행하게도 그냥 강도가 아니었다.

놈들은 소총을 앞세운 군복 입은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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