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31화 (31/145)

# 31

다가온 놈들은 네 명을 둘러보고 뭐가 좋은지 농을 하면서 키득거렸다.

“알바들 단체로 도망치나 했더니 아닌가벼?

“뭐야? 피자집 사장이야? 마누라랑 딸이고? 크크크”

“와 씨. 이 아저씨 보소. 칼을 몇 자루나 가지고 있는 거야? 요즘은 피자 시키면 칼도 배달해 주나? 킥킥킥”

병장 하나가 관장에게 다가섰다.

“야. 씨발 조심해. 이것들 몸에 피 묻은 거랑 여기까지 오토바이 타고 온 거 보면 칼이 장식은 아닌가 보다. 일단 무기부터 압수해”

관장의 검과 이진성의 이상한 무기를 빼앗은 놈들은 넷에게 오토바이를 밀게 했다.

일정 거리 뒤에서 총으로 위협하며 따라오는 그들을 관장도 나현주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주택가의 골목을 따라 도착한 곳은 1층에 호프집이 있는 한 빌라였다.

“들어가”

네 명이 들어간 방에는 향초 하나가 타면서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벽에는 초등학생이 그렸을만한 그림이 있었고 책상에는 초등학생의 교과서도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는 누군가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거기 아저씨. 이걸로 손 뒤로 묶고 발목도 묶어”

“제대로 묶어. 우리가 보고 느슨하게 묶여 있으면 아저씨부터 죽는 거야”

놈들은 수건을 찢어 만든 로프를 이진성에게 툭 던졌다.

이진성이 셋을 묶자 일병이 다가와 이진성까지 묶고 방을 나갔다.

“오토바이에 먹을 거라곤 생라면, 쌀, 참치랑 햄밖에 없습니다. 물 몇 병 있고요. 쓸만한 거는 이 가스버너밖에 없네요”

“이 상병이 배가 불렀구먼. 그게 어디야. 잘 챙겨 놔. 간만에 라면이나 끓여 먹자. 장민철”

“이병 장민철”

“라면 좀 끓여라. 라면 몇 개 있냐? 여섯 개 끓여라”

놈들이 밖에서 떠드는 동안 이진성이 버둥거리며 겨우 일어서 종종걸음으로 책상에 다가갔다.

혹시 칼이나 가위라도 있나 찾아보려는데 침대에서 옅은 신음이 났다.

소리는 초등학생 같지 않았다. 이불에 가린 실루엣도 초등학생보다는 많이 컸다.

이진성이 다시 종종걸음으로 침대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손을 뻗어 이불 끝자락을 잡아당겼다.

“헉”

이불 밑에서 나온 사람은 여자였다.

나체 상태였고 온몸에는 멍이 가득했다. 입술은 터져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가랑이 사이는 피로 얼룩져있는 것이 어떤 짓을 당했는지 뻔했다.

그 여자를 본 나현주와 김현희는 침통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기가 거의 없소.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소”

관장의 말대로 여자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 숨결도 약했다.

“저놈들. 아무래도 사람 목숨에 별 신경 안 쓰는 놈들 같은데 빨리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이진성이 책상으로 다시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지만, 칼이나 가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진성이 뭔가를 찾고 있는 동안 관장과 나현주는 서로의 손을 풀어보려 시도했고 김현희는 힘으로 끊어보려고 용을 썼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비록 한 명은 아줌마지만 그 정도면 만족스럽습니다. 킥킥킥”

“하여간 이 새끼는 이병이 빠져 가지고”

“김 병장님. 이 새끼가 제일 밝히잖아요. 저기 저년도 이 새끼가 틈만 나면 아주 그냥.”

들리는 소리에 일행은 침대 위의 여자를 측은한 눈으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야. 소화 시키자. 강 상병하고 이 상병. 그년 내방에 갖다 놔”

“아까 몸 보니까 죽이던데요. 좋으시겠습니다. 크크크”

“야 이 상병. 우리는 아줌마랑 놀자. 아줌마도 몸 좋더라”

재빨리 자리로 돌아온 이진성이 앉자마자 두 놈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성분들은 우리랑 면담을 좀 해야겠네요. 거기 아저씨 둘은 면담 소리나 즐기고 계셔. 흐흐흐”

둘은 나현주에게 다가서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상체와 다리를 나눠 들고 방을 나섰다.

“아줌마는 잠깐만 기다리쇼. 이 언니 저쪽 방에 대려다 놓고 금방 와서 모셔 갈 테니까”

급했다. 다시 둘러 봤지만 없던 것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때 이진성의 눈에 방을 밝히는 책상 위의 향초가 들어왔다. 이진성이 쓰러지듯 책상에 걸터앉아 뒤로 손을 뻗었다.

수건에 불이 붙었는지 손목이 뜨겁다. 뜨거움을 참으며 있는 힘껏 팔을 벌렸다.

두둑~~

불에 탄 수건이 터지면서 손을 풀은 이진성이 촛불을 바로 앞에 있는 김현희의 손에 가져다 댔다.

그때 놈들의 고함과 함께 때리는 소리도 들렸다.

“야 이년 잡고 있어. 바지 내리게”

김현희가 불붙은 수건을 끊어 냈다. 이진성은 관장의 손목에 촛불을 대고 관장 발을 풀기 시작했다.

막 자신의 발을 풀어낸 김현희가 그런 이진성의 발도 풀려고 달려들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쇼. 충성”

“새끼들 빠져서”

놈들이 문 닫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동시에 모두는 손발을 다 풀어냈다.

놈들이 열어 놓은 방문 앞에서 안을 보고 소리쳤다.

“씨발 뭐야. 움직이지 마”

다행히 놈들에게 총은 없었다. 빈손의 사내 두 놈은 김현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현희는 방 안으로 달려들어 오는 두 놈의 목을 양팔로 걸어 벽으로 던져 버렸다.

관장과 이진성은 방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병 놈이 총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관장이 약 3m 거리를 그대로 날아서 놈의 목을 차버렸다.

이진성은 앞에 보이는 방문으로 달렸다. 문은 다행히 잠기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 바지만 내린 채 무릎 꿇은 놈의 등이 보였다.

놈의 손은 나현주의 발목을 잡고 들어 올린 상태였다.

“뭐야 씨발”

이진성을 본 놈이 일어나려다 자신의 내려진 바지가 걸려 자빠졌다.

버둥거리는 놈의 등으로 날아오른 이진성의 두 발이 꽂혔다.

등이 꺾이며 앞으로 자빠진 놈은 나현주의 다리 사이로 상체가 들어갔다.

나현주는 다리를 들어 놈의 목을 다리 사이에 끼고 옆으로 꺾어 버렸다.

목을 조이는 다리를 풀려고 버둥거리면서 주먹으로 손 닿는 곳을 때려댔지만 나현주의 다리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캑캑거리는 놈의 등을 이진성이 몇 대 때리자 놈이 쭉 뻗어 버렸다.

나현주를 이진성은 쳐다볼 수 없었다.

위로 올라간 티셔츠와 내려간 바지로 나체와 다름없는 상태였다.

큼큼~~

헛기침을 하고 방을 나서려는 이진성을 보고 나현주가 빽 소리쳤다.

“그냥 나가면 어떻게 해요?”

“어. 지금 옷 상태가···”

“아니. 옷을 올려 주던가, 손을 풀어주든가 해야지 그냥 가면 저더러 어쩌라구요?”

슬금슬금 뒷걸음으로 다가오는 이진성을 보고 나현주가 다시 소리쳤다.

“뒤에 눈 달렸어요? 봐야지 입히든 풀든 할 거 아니에요? 여자 나체 첨 봐요?”

그제야 돌아선 이진성은 고민했다.

팬티와 바지를 올리려니 그것도 그렇고, 하체가 그 상태인데 티셔츠부터 내리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몸이 다 드러나 있는데 손부터 푸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현주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왜? 아저씨도 뭐 어떻게 해 보고 싶어요?”

“아니. 아니. 절대로 아니에요. 옷부터 입혀야 하나 손부터 풀어야 하나 해서.”

“에휴. 이미 다 봤는데 뭘 따져요. 손부터 풀어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나현주에게 오히려 이진성이 당황했다.

손을 풀어주자 옷을 제대로 입고 발도 풀고 일어선 나현주는 기절해 있는 병장에게 갔다.

“내가 너희 같은 것들 때문에 아주 치를 떤다 떨어. 앞으로 좆도 없는 놈으로 살아라”

놈의 사타구니를 발로 차던 나현주는 옆에 널브러져 있는 소총을 들고 개머리판으로 찍기 시작했다.

놈의 성기는 금방 짓이겨진 고깃덩어리로 변했고 골반은 깨져 내려앉았다.

고통 때문인지 기절에서 깨어난 놈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나현주는 멈추지 않았다.

놈을 작살낸 나현주가 소총을 던져 버리고 자신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고 있는 이진성을 보고 말했다.

“괜찮아요. 이런 일 처음도 아니고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이면 각오해야 하는 일이예요”

이진성은 놀랐다. 나현주 정도의 무술 실력에 남자한테 당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뭘 놀라요. 관장 놈이었어요. 도장에서 지낼 때, 어느 날 관장 놈이 수면제 탄 커피를 먹였어요. 그리고 그렇게 됐어요”

“그 관장 놈은 그 후에···”

“관원들 몇 명이 좀비로 변하고 난리 칠 때 관장 놈 다리를 부러뜨리고 도망쳐 나왔죠. 놈들한테 먹혔겠죠. 뭐”

마치 남 얘기하듯 하는 나현주였다.

최소한 이 사건으로 위축되거나 하지는 않겠다 싶어 안심하며 방을 나셨다.

마루에는 관장과 김현희가 무릎 꿇은 세 놈을 지키고 있었다.

방은 두 개가 더 있었다.

방 하나는 세 놈이 지내는 곳 같았다. 찢어진 여자들 옷이 바닥에 널려 있고 방 한쪽 구석에는 전투식량이 쌓여 있었다.

총 외에 다른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빈 탄창을 몇 개 찾았을 뿐 다른 총알은 없었다.

지금 총에 들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 방 하나를 열었다.

그 안에는 지린내와 똥냄새를 풍기는 군인 하나가 온몸이 묶여 있었다.

중사 계급장이 붙은 군복을 보니 저것들이 하극상도 한 것이었다.

“하. 가지가지 했네. 넌 또 뭐냐?”

네 사람을 놀란 눈으로 보던 중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발 물. 물 좀 주세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살 것 같았는지 중사는 자기가 왜 이 꼴로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가요 3월 17일, 사태가 터진 날 저녁에 여기 석수역 앞 도로 점거하고 서울시민과 변이체가 외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출동했는데요. 도착해서 막 자리 잡으려는데 우리 소대 병사 한 놈이 차 안에서 갑자기 변해버린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놈의 얘기는 길었다.

트럭 안에서 녀석을 죽이면서 오발로 많이 죽고 다쳤다. 남은 소대원들은 이미 패닉에 빠졌고 작전 수행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에서 나오는 차량이 새벽쯤 되면서 점점 많아지고 통제가 힘들어졌을 때 일부가 사람들에게 사격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좀비들이 나온 것도 그때였다.

병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결국 소대장을 시작으로 부대원들이 탈영하기 시작했다.

중사와 밖의 네 놈도 탈영병이었고 이들은 이 집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이 집 사람들도 총 든 군인들이 같이 있으면 안전할 것 같아 순순히 이들을 들여보내 줬단다.

며칠이 지나고 네 놈이 집주인 여자를 강간했고 그걸 말리는 자신은 그들에게 제압되어 놈들이 조금씩 주는 물과 음식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그 후 놈들은 이 집 식구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을 끌고 와 괴롭히다 죽이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얘기를 다 들은 네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과연 이놈은 믿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놈이 순박해 보이기도 했고 상태가 감금 생활을 증명하기는 했지만 한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놈에게서 달큰한 냄새가 나요”

이진성은 지린내와 똥냄새 사이에서 뒤늦게 달큰한 냄새를 맡았다.

“중사 아저씨. 아저씨도 이 사태 터지기 전에 막 졸리고 피곤하고 그랬죠? 그러다 어느 순간 몸살 심하게 앓았죠?”

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 달라진 거 없어요? 힘이 세졌다거나, 무술을 잘하게 되었다거나, 감각이 좋아졌다거나?”

“그런 거 없는데요?”

“아무런 변화도 없었어요? 전보다 좋아진 거 아무거나?”

“아! 저 사격 실력이 좋아졌어요. 원래 사격은 대대에서 상위권이었는데 최근 실시한 사격에서 전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어요. 막 표적이 크게 보이고 격발할 때 몸도 막 안정되는 것 같고 탄도가 막 느껴지는 것 같고···”

놈은 좀 많이 촐랑이이고 말도 많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 사람 어떻게 할까요? 전 같이 갔으면 해요. 사격을 잘한다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잖아요”

이진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세 사람도 동의했다.

“일단 같이 가 봐요. 말썽 피우면 관장님이나 제가 처리 할게요”

역시 무서운 나현주였다.

“이름이 뭐요?”

네 사람을 돌아보며 기대에 차 있던 중사는 관장의 물음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장동건입니다”

전혀 다르게 생긴 놈의 모습에 푹 하고 나현주는 웃었다. 김현희는 이름으로 놀리기 시작했다.

이진성은 ‘장동건’의 포박을 풀었고 관장은 놈을 씻기기 위해 물이 나오는지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욕조와 이런저런 통들에 받아놓은 물이 한사람 씻기에는 충분하기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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