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32화 (32/145)

# 32

장동건을 관장이 지키는 동안 이진성과 두 사람은 집 안을 수색했다.

아까 대략 봤지만 혹시나 가져갈게 있는지 구석구석 뒤졌다.

“나 이런거 찾았어.”

김현희가 안방 침대 밑에서 <경찰 POLICE 1006> 이라고 적힌 알루미늄방패 세개를 들고 나왔다.

“이런게 왜 있지?”

“여기 처음 출동했을 때 경찰도 같이 왔었어요. 그 방패 경찰애들 건데 이 놈들이 챙겼나 봐요.”

장동건의 말에 김현희는 방패를 이리저리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나 이거 쓸래. 손잡이도 있어. 여기에 끈만 달면 메고서 오토바이도 타겠어. 호호호.”

“그거 하나만 줘 보시오.”

관장은 건네 받은 방패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무패킹을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서 다 잘라냈다.

“이러면 모서리로 쳐서 타격을 줄 수 있을 거요. 현희씨 정도 힘이면 목도 잘라 낼거요.”

“우와! 고마워요. 관장님.”

방패를 좌우로 휘두르는 김현희를 앉아서 보던 이진성이 일어섰다.

“다른집에 생존자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좀비가 있는지 확인해 둬야 밤을 편하게 보낼 수 있겠어요.”

이진성의 의견에 두 사람이 따라 나섰고 관장은 장동건과 네 놈들을 지키기로 했다.

문을 나선 이진성은 일단 냄새부터 탐색했다.

가만히 맡아본 냄새에 좀비의 냄새는 없는 듯 했다. 대신 미스피자에서 맡았던 시체 썩는 냄새가 꽤나 진하게 풍겨왔다.

거기처럼 좀비가 시체 냄새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한집 한집 둘러봤다.

문이 잠긴 집들은 무시해 버렸다.

잠긴 집 보다 열린 집이 더 많았고 안에는 어김없이 총상입은 시체들이 있었다.

“햐. 이 새끼들 아주 살인마네. 그 빈 탄창이 전부 사람 죽인거면 얼마나 죽였단 말이야.”

“앞으로 군인들 만나면 특히 조심해야겠어. 특히 현주 넌 더 조심해.”

“뭐 군인 뿐인가요. 인간은 다 조심하고 봐야죠.”

냉장고 안의 음식은 대부분 상하거나 썩어 있었다.

먹을만한 것들은 이미 군인놈들이 다 먹어 치웠을 것이다.

그런 중에 몇 집의 김치냉장고 안의 김치는 시어버리긴 했지만 먹을만 했다.

“오늘 밤에는 김치찌개 해 먹을 수 있겠네. 진성총각 양파, 파, 마늘 같은거 보이면 좀 챙겨. 내가 맛있게 해 줄께.”

“좋죠. 아까 저 놈들이 햄하고 참치 다 먹진 않았겠죠. 그것도 넣고 끓여요.”

썩어가는 시체들 사이에서 김치찌개 생각에 침을 삼키는 셋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미쳐버린 세상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자신들이 있던 동과 주위의 동을 돌았다.

놈들은 앞 뒤 동도 그냥 놔 두지 않았다. 시체는 거기에도 있었고 간간히 좀비 시체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수색을 끝낸 셋은 약간의 야채와 양념들을 챙겨들고 관장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새끼들 아주 악질인데요. 이 근처 사람들은 다 죽였나 봐요. 여자는 다 강간하고 죽였는지 다 나체상태네요.”

돌아오자 마자 놈들의 명치에 발을 한차례씩 꽂아 넣은 이진성이 밖에서 본 것들을 관장에게 말해주고 장동건을 향했다.

“아저씨. 혹시라도 우리한테 딴 마음 먹으면 아저씨도 죽는거야. 쓸데 없는 생각 할거면 여기서 혼자 알아서 살아. 어쩔거야?”

“아. 왜 그러세요. 저 혼자 여기서 어떻게 살아요? 정말 저 저놈들이랑 달라요. 같이 가게 해 주세요.”

가만히 장동건의 눈을 쳐다 보던 이진성은 나현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현주씨가 탄창 전부 관리해 줄래요? 이 사람은 빈총만 들고 따라오게 하고 필요할 때 탄창을 주는 걸로 하죠.”

“안그래도 우리 중 누군가가 탄창 관리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할게요.”

김현희는 주방을 뒤져 식기를 꺼내고 조리도구를 찾아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하면서 동시에 미음도 조금 끓였다.

“와서들 식사해요. 난 이것 좀 저기 학생한테 먹여 볼께.”

넷은 식탁에 둘러 앉아 밥과 국을 떠 먹기 시작했다.

이진성에게는 거의 이십일 만에 보는 제대로 된 밥과 찌개였다. 비록 들어간 것은 별로 없지만 평생 먹었던 어느 김치찌개보다 맛있었다.

다른 사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정신 없이 먹고 있는데 김현희가 들고간 미음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너무 늦었나봐. 저승길 가기전에 뭐라고 먹고 갔으면 좋았을 걸.”

이진성이 숫가락을 놓고 일어서 소총을 집어들고 묶여있는 네 놈에게 다가가 대가리를 피가 나도록 내리쳤다.

“씨발 새끼들. 그 짓거리를 해도 살려두고 할 수도 있잖아.”

한참을 놈들을 패고 다시 식탁에 돌아온 이진성은 묵묵히 음식을 입안에 떠 넣었고 나머지 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먹을만큼 먹고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장동건이 입을 열었다.

“제가요. 저 방안에서 들은 소리로 봐서는요. 이 놈들이 하도 총질을 해대니까 이 근처 좀비 놈들이 꽤나 왔었나 봐요. 지들끼리 몇 놈 잡았네, 어디를 맞췄네 하면서 자랑하고 그러는거 들었거든요. 앞으로도 총소리는 조심해야지 아니면 놈들만 끌어 들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시작한 놈의 수다는 한참을 이어졌다.

오랜시간 혼자 갇혀 있다가 말할 사람이 생겨 그런지 자신의 어린시절 얘기 까지 들먹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기 얘기가 떨어지고 사람들이 별 관심을 안보이자 네 사람에 대해 물었다.

“근데 네 분은 어떤 사이세요?”

로 시작해서 이것 저것 캐물은 장동건이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물어왔다.

“아까 제가 겪은 변화에 대해 물어 보셨잖아요. 그런거 있는지 어떻게 아신거예요? 혹시 네 분도 그런거 있으세요?”

장동건의 질문에 시작한 김현희의 설명은 한 시간을 넘는 수다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관장님은 검술의 고수가 되셨고 저쪽 젊은 누님은 격투기의 고수가 되신거네요?

“그렇지.”

“누님은 슈퍼울트라파워 짱이 되셨거고? 그리고 저쪽 형님은 냄새를 엄청 잘 맡는거고요?”

“응.”

“ 다들 기존에 잘 하던거를 더 잘하시게 된 거잖아요? 그럼 형님은 그 전에 냄새 맡는게 특기셨어요?”

장동건의 말에 모두는 이진성을 돌아 보았다. 그의 표정은 구겨질수 밖에 없었다.

날이 밝아 부스스 일어난 일행은 각자 무기챙기고 놈들이 챙겨놨던 전투식량도 모두 오토바이에 실었다.

1층의 호프에는 역시나 배달오토바이가 한 대 있었다. 시동도 잘 걸렸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모두가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때 관장이 멈칫 하더니 다시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잠시 기다리시오.”

관장은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지나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와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소리가 멈추고 잠시 후 관장은 별다른 표정없이 검에 묻은 피를 흩뿌리며 내려왔다.

그런 관장에게 김현희가 물었다.

“왜 그러셨어요?”

“놔뒀다가 혹시라도 쫓아와서 해꼬지라도 할까봐서요.”

가능성은 거의 없는 일이지만 죽어도 싼 놈들이기에 모두는 별말 하지 않았다.

다섯은 시흥대로 입구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목표로 하는 제2경인고속도로 인터체인지까지는 약 1km의 직선도로로 길을 막은 차들도 보이지 않고 뻥 뚫려 있었다.

“다른 소대원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혹시 이 근처에서 저 놈들처럼 약탈하고 있는건 아닌지…….”

“이 아래쪽으로는 아마 없을거예요. 다들 서울쪽으로 올라갔거든요. 이 아래는 집도 별로 없고 한참을 가야 안양이니까 최소한 인터체인지까지는 안전할거 같은데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빠르지 않은 속도로 나아갔다.

그런 그들이 인터체인지를 약 400m 앞둔 지점에서 저 앞에 움직이는 사람 둘이 보였다.

사람인지 좀비인지 확인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섯이 멈춰 선 채 그들이 좀 더 다가오도록 기다리기를 잠시.

빠앙~

갑자기 관장이 자기 오토바이 클락션을 올렸다.

놀라서 돌아보는 넷에게 관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사람이면 도망가거나 달려오면서 뭐라고 말을 할거고 좀비라면 괴성을 지르며 달려 오겠지요. 현주씨. 탄창에 한 발만 넣고 동건씨한테 주세요.”

나현주는 왜 한 발 일까 궁금해 하면서 빈 탄창을 꺼내 초을 하나를 넣고 장동건에게 건냈다.

“좀비면 가능한 먼 거리에서 한 발로 잡아 보시오.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을 잡는지 봐야겠소.”

“저 거리면 지금 쏴도 맞아요. 근데 저것들이 사람인지 좀비인지…….”

장동건이 말하는 도중에 놈들은 다섯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놈들이 약 300m 지점까지 오자 놈들의 소리가 들렸다.

다른 소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분명히 좀비의 그르렁 소리였다.

“쏴도 되겠네요. 뒤에 있는 놈 잡을게요.”

뒷놈은 앞놈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장동건은 바로 견착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한 발의 총성이 메아리쳐 울리며 놈의 대가리가 터지며 자빠지는 것이 보였다.

씩 웃는 장동건을 본 관장은 이진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한 놈인데 혼자서 처리 할 수 있겠죠?”

“에? 왜 제가요?”

“지금부터 수련을 시작할까 하오. 앞으로 놈들이 나타나면 일단 진성씨가 나서는게 좋겠소. 우리는 뒤에서 보다가 위험하면 도와 주리다.”

“아. 왜요. 저 아시잖아요. 저 싸움 못해요.”

“에이. 진성 총각. 어제 같이만 하면 충분해. 걱정마. 이 누나가 뒤에서 살펴보고 있을게.”

“맞아요 아저씨. 저도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어제 만큼만 해 봐요.”

김현희와 나현주의 격려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이진성은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뒤에서 잘 따라오나 몇 번을 뒤를 돌아보며 확인했다.

마침내 달려오는 놈과 거리는 약 20m.

청룡언월도를 집어들고 오토바이에서 내린 그는 달려오는 놈을 노려보며 대가리를 내려칠 타이밍을 쟀다.

놈이 5m 앞. 이제 두발만 더 다가오면 내려 친다는 생각으로 청룡언월도를 치켜들었고 이때다 싶은 순간에 온몸의 힘을 다 쏟아 놈의 대가리로 내려쳤다.

따앙~

동작이 너무 컸다.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던 공격을 놈은 쉽게 피했고 이진성은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쳐 버렸다.

깜짝 놀란 이진성은 손으로 전해지는 반탁력에 잡고있던 파이프를 놓칠뻔 했다.

급히 고개를 든 이진성의 눈에 놈이 피묻은 주둥이를 벌리고 소리치며 손톱을 들이밀면서 다가오고 있는게 슬로비디오로 보였다.

“아 씨발.”

다급하게 머리를 숙여 겨우 놈의 손을 피했다.

다시 청룡언월도를 부여잡았지만 놈은 너무 가까이 있어 칼날로 칠 수 없었다.

놈에게서 몸을 빼내며 뒤로 몸을 틀었다.

바로 앞에 자신을 놓친 놈의 등짝이 보였다.

다리에 힘을 주면서 뒤로 밀리는 몸을 세우고 놈의 등을 파이프로 찍었다.

크아아~

소리 지르며 앞으로 구부러진 놈의 가슴팍을 차 올렸다.

니킥을 맞고 떠 오르는 놈의 대가리에 이진성은 자신도 모르게 뒤돌려차기를 날렸다.

비록 나현주같이 파워가 실린 깨끗한 뒤돌려차기는 아니었지만 어설프게라도 이진성의 뒤꿈치는 놈의 뒤통수에 꽂혔고 놈은 앞으로 휘청거리며 몇 발 나아갔다.

“죽어 새끼야~ 일격참.”

갑자기 일격참이라는 이상한 구호를 외치며 청룡언월도의 중식도를 놈의 대가리에 꽂아 넣은 이진성은 그대로 팔을 당겼다.

그리고 놈의 대가리는 사선으로 반으로 갈렸다.

“헉헉. 위험하면 도와 준다면서요? 왜 다들 보고만 있는거예요?”

나현주는 이진성이 첫타를 실패하는 순간 바로 달려나가려 했지만 관장이 잡아세웠다.

“아직은 위험하지 않소. 조금 더 봅시다.”

관장은 어제의 그 깔끔한 베기가 다시 나오길 기대했다. 그리고 지켜보던 관장과 나현주, 김현희는 놀라야 했다.

이진성이 나현주의 킥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 베기도 터져 나왔다.

관장도 나현주도 이진성의 외형과 여태까지의 움직임을 봤을 때, 절대로 이진성이 나현주의 움직임을 따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런 그가 그걸 해 냈고 어느정도의 타격도 줬던 것이다.

“지금 그거 어떻게 했어요?”

나현주는 이진성이 좀비를 잡았다는 것 보다 몸치에 가까운 그가 자신의 킥을 따라한 것에 더 놀랐다.

뛰어나가 이진성을 잡아 흔들며 물었고 관장은 두번째 몸살에 뭔가가 있었음을 확신했다.

‘내가 두번째 몸살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놈들과 싸워야 할까? 놈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겠어.’

위험한 생각을 하는 관장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