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환란의 도시
일행이 안산 외곽에 도착하자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42번 국도에서 바라보는 안산의 하늘에는 온통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저 멀리에서는 총성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매캐한 바람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강하게 섞여 왔다.
“여기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라니?”
김현희의 혼잣말에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순탄하지는 못했다.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인터체인지의 커브를 돌자마자 뒤엉킨 차들로 오토바이의 진행이 불가능했다.
걸어서 약 100m 앞부터 길이 뚫려 있음을 확인한 일행은 막혀있는 차량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서로 싸우다 죽은 것 같은 사람들의 시체들이 보였다. 정체 중에 변한 좀비에게 당한 것인지 좀비에게 뜯긴 시체도 있었다.
몇몇 차의 운전석에는 안전벨트를 메고 버둥거리는 좀비도 있었다.
차와 좀비를 정리하며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온 후 3km 남짓 가는 동안 차들이 엉킨 구간은 여섯 번 나왔다.
어김없이 좀비들과 다 뜯어 먹힌 채 썩어가는 시체들이 있었다.
관장은 좀비를 잡는데 이진성을 앞세웠다. 위험한 순간이 오면 관장과 나현주가 도왔지만, 이진성은 숨이 턱에 차도록 싸워야 했다.
불평도 하고 애원도 했지만, 이진성의 발전 가능성을 본 사람들은 애원을 무시했다.
겨우겨우 서해안 고속도를 나와 42번 국도로 접어들자 사정은 조금은 나아졌다.
수많은 교통사고와 좀비들로 인해 버려진 차들이 있었지만, 오토바이가 지나갈 틈조차도 없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고작 20km도 안 되는 길을 거의 6시간을 넘게 걸려 와서 바라보는 안산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위험해 보였다.
우려의 증거는 국도의 진출입로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길은 바리케이드로 막혀있었고 그 너머에는 총탄으로 벌집이 된 차들과 총상으로 죽어있는 시체들이 셀 수 없게 보였다.
또 한쪽에는 군인들의 시체들도 즐비했다.
“여기는 학살극이라도 벌인 거야 뭐야?”
“동건 씨 여기 왜 이래? 왜 민간인들한테 발포한 거야?”
“그게 좀비와 인간이 섞여 있으면 구분하지 말고 사살하라고 명령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했으리라고는…….”
“와. 씨발놈들. 애고 어른이고 가리지도 않았네. 그러고 또 지들끼리도 총질했나 보네.”
좀비에게 물려 죽은 군인도 있었지만, 총상에 죽은 군인이 더 많았다.
“저… 무기들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사람들이 무기는 다 집어 간 거 같은데요.”
총알이나 수류탄이라도 있을까 싶어 군인들의 시체를 뒤지던 장동건이 돌아와서 총성이 들리는 저 안쪽을 바라보며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안산에서 나가는 다른 길도 다 마찬가지 상황이라면 다수의 무기가 민간인들 손에 들어갔을 수 있다. 여기 또한 탈영병들도 많이 있을 것이었다.
당장 바로 앞에는 빌라 단지가 보였고 그 뒤로는 아파트단지가 있었다.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관장님, 주위에 사람 있나요?”
“많소. 저 앞 빌라촌에 꽤 많은 사람이 있소.”
“현주씨, 동건 씨한테 탄창 주세요.”
인간이든 좀비든 덤비면 싸워야 했다. 상대가 많다면 장동건도 같이 싸워야 했다.
탄창을 건네받은 장동건도 바짝 긴장하며 일행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몇몇 집의 창문에서 인기척이 보이기도 했다.
“저 사람들은 먹을 게 있나? 뭐 먹고 여태 집에서 버티나?”
“언니는 별걱정을. 뭐든 먹을 게 있으니까 저러고들 있겠지!”
“아니… 우리한테 음식 뺏으려고 달려들까 봐 그러지.”
간간이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과 좀비의 울음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빌라촌을 벗어 나는 동안 어떤 공격도 없었다.
이제 1km 남짓 정도만 가면 이진성의 집이다.
나현주의 집은 저쪽 훨씬 더 가야 하는 신도시에 있기에 이진성의 집에 먼저 가기로 했다.
다시 공원 하나를 별일 없이 지났다.
그리고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눈앞에 둔 시점에 이진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쪽 아파트에서 좀비들 나오고 있어요. 한 40에서 50마리 정도? 여기 단지가 커서 좀비도 많을 거예요. 동건 씨는 가능한 총은 쏘지 마셔. 총소리에 더 몰려오면 힘들어지니까.”
말이 끝나자 놈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검붉은눈 넷에 빨간눈 쉰 정도. 아마도 달큰한 냄새의 인간 다섯을 보고 검붉은눈을 더 만들고 싶었나 보다.
관장이 놈들의 중앙으로, 나현주가 좌측으로 달렸다.
이진성과 김현희가 우측으로 달려갔지만, 전과 같이 이진성이 김현희의 뒤에 붙어 가지는 않았다.
오는 동안 수십 마리의 좀비를 억지로 잡으면서 나름 용기가 생겼던지 김현희의 옆에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장동건은 뒤에서 위급한 곳을 지원하기 위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관장은 속으로 기뻤다. 더 많은 놈이 튀어나와 주기를 바랐다.
자신을 다음번 몸살로 이끌만큼의 혹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눈앞에 보이는 놈들을 배어나겠다.
새로 습득한 베기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터트려야 하므로 체력소모가 빨랐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체력소모가 필요했다.
빠르게 베기를 이어나가며 아주 오랜만에 숨가쁨을 느끼고 쾌감에 젖어 드는 관장이었다.
뼈가 잘릴 때 팔에서 터지는 쾌감은 아드레날린을 뿜어나오게 했다.
놈들의 사이로 파고들면서 터지는 쾌감을 더욱 오래 많이 즐기려고 일부러 놈들을 천천히 죽였다.
빨간눈 따위들은 관장에게 연습 상대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 많이 잡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한놈 한놈의 사지를 자르며 힘을 소모하고 있었다.
나현주도 어제와 또 달랐다.
약간의 광기마저 느껴지는 눈빛으로 놈들을 쏘아보며 때리고 차며 뛰어다니는 몸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킥복싱, 태권도, 합기도, 무에타이의 움직임들이 섞여서 유연하면서도 파괴적이고, 빠르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리고 타격에 실리는 파괴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졌다.
팔꿈치에 맞은 얼굴은 함몰되었고, 발에 맞은 뒤통수는 어김없이 터져 나갔다.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았다. 타격의 연계는 물 흐르듯 했다.
놈들에게 둘러싸인다 싶으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르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오기 무섭게 또 달려들어 놈들을 부숴 나갔다.
발, 무릎, 팔꿈치, 손날, 주먹 모두가 흉기 그 자체였다.
김현희는 알루미늄 방패의 손잡이에 팔을 끼운 채, 방패를 마치 팔과 같이 썼다.
방패면으로 맞은 놈들은 휘청거리며 밀려났고 방패의 날로 맞은 놈들의 몸은 갈라져 내장을 쏟아내야만 했다.
서너 놈을 한꺼번에 방패로 밀어붙인 후, 한 놈씩 때리고 찍어 잡아가는 김현희였다.
그녀가 지난 길에는 유독 짓이겨진 좀비들의 시체가 쌓여 갔다.
힘으로 김현희를 이기는 좀비는 한 놈도 없었다.
건장해 보이는 성인 남자 좀비도, 한꺼번에 두셋씩 달려들어 방패를 밀어대는 놈들도 오히려 김현희에게 밀렸다.
방패로 놈들을 미는 동안 옆에서 공격해 오는 놈은 왼손으로 잡아채서 던져버렸다.
방패로 두어 번 얼굴을 맞으면 얼굴이 뭉개졌고 날도 안 서 있는 방패 날에 맞으면 도끼에 찍힌 듯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이진성도 나름 잘 싸우고 있었다.
무기의 거리를 이용해서 치고 빠지기를 계속하며 우스꽝스러운 ‘일격참’이라는 구호를 연신 외쳐댔다.
그래도 그 구호를 한번 외치면 어김없이 좀비의 몸 어딘가는 잘려나갔다.
아직은 위태위태한 순간도 많았다. 들어갔다가 빠져나올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타격에 치명상을 못 입히기도 해서 장동건이 몇 번을 총을 들어야만 했다.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면 그때마다 절묘하게 몸을 써서 다행스럽게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이진성을 장동건은 가슴 졸이며 바라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장동건은 단 한 발의 총을 쏘지 않아도 되었다.
뒤에서 네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장동건은 어느새 총을 내리고 입을 헤 벌려야 했다.
관장과 나현주의 전투력은 엄청났다. 인간이 저렇게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기 힘들었다.
김현희의 모습도 충격적이었다. 힘이 세다고 듣기는 했지만, 어른이 애들 다루듯 좀비들을 밀쳐내고 때려 부쉈다. 저 몸의 어디서 저런 파워가 나오는지 놀라웠다.
이진성이야 오면서 싸우는 모습을 봐서 그 실력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까보다 또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스폰지에 물먹는 듯 성장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장동건이었다.
“와 씨! 이 파티 죽인다. 무슨 RPG 게임이냐? 검객에 파이터에 탱커에… 나는 궁사? 그럼 진성 아저씨는? 에이 몰라. 하여간 죽인다.”
장동건이 헛소리로 감탄사를 뱉어 낼 때, 사람들은 막 마지막 놈을 끝냈다.
거의 50에 이르는 좀비들을 다 잡고 네 사람은 기진맥진했다.
관장은 일부러 더 몸을 혹사해 헐떡이고 있었고 나현주는 무아지경에서 돌아온 후 털썩 주저앉았다.
김현희와 이진성도 각자 방패와 청룡언월도에 기대서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때 아파트의 여기저기서 창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환호성과 함께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헉헉. 뭐야? 저 미친것들. 소리 듣고 더 몰려오면 누굴 죽이려고. 빨리 여기서 떠요. 혹시 저 사람들 나오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져요.”
“그러자. 진성 총각. 헥헥헥. 누가 누구보고 살려 달라고 지랄이야. 지금 우리가 살려 달라고 할 판인데. 헥헥헥.”
모두 오토바이를 급하게 몰고 앞으로 나간 후 몇몇 용감한 사람들은 집에서 뛰어 내려왔다.
이미 저만치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기들 좀 구해 달라고 소리쳤지만, 이진성 일행은 무시하고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비명과 좀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진성의 집은 서울예술대학 근처의 오래된 주공아파트였다.
저 밑 중앙역에 가까운 단지는 이미 재건축을 하고 있지만, 이쪽 뒤쪽 단지는 재건축의 움직임도 없는 그런 낙후된 단지였다.
그곳의 한 복도식 아파트의 15층에 이진성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이고 오토바이를 끌면서 아파트 1층에 도착한 다섯 사람은 난감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복도식이라서 계단은 한 곳.
밖으로부터 이어진 핏자국은 그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것이 불과 몇 시간 내에 난 것이 분명했다.
“사냥한 시체를 끌고 올라 간 거 같죠?”
“그런가 봐요. 여기 몇 마리나 있을까요?”
나현주의 말과 함께 모두는 계단 위를 저 위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알 수 있나요. 한 층에 하나씩만 돌아다니면 15마리밖에 안 되긴 하는데. 그렇기에는 여기 핏자국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그리고 당장 2층에서만 다섯 마리 냄새가 나거든요. 3층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
문이 열린 집이 별로 없는지 시체 썩는 냄새는 별로 강하지 않았다.
그 덕에 바로 위층의 좀비 냄새는 정확하게 맡아졌다.
“문제는 이미 시큼들큰한 냄새 한 놈과 시큼한 냄새 넷이 무리를 이뤘다는 건데 모든 층이 그렇다면 어쩌면 많게는 팔십 마리 넘게 잡으면서 올라가야 한단 말이네요.”
“어휴. 그냥 안에서 안 나오고 들 있었으면 좋겠네. 아줌마 힘들다. 그냥 집안에서 니들끼리 놀아라.”
“씨불. 던전이여 뭐여.”
장동건의 말에 이진성은 피식할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 긴장감을 풀어 주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 순간 관장 혼자만은 더 많은 놈이 튀어나오길 빌고 빌었다.
“자. 올라가 볼까요? 얼마나 빡센 던전인지?”
이진성이 계단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며 말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 간다는 설렘에 가장 먼저 계단에 발을 디뎠다.
그 옆으로 김현희가 방패를 앞세우고 따라붙었고 나현주와 관장이 뒤를 이었다.
장동건은 후방을 경계하며 넷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사람은 던전 아닌 던전 탐험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