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34화 (34/145)

# 34

엘리베이터 앞의 복도는 좌우로 나뉘었다. 좀비들이 냄새는 오른쪽에 풍겨왔다.

바닥의 핏자국은 놈들이 꽤 많은 사람을 사냥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놈들은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살며시 왼쪽 복도를 엿보니 모든 집의 문이 열려 있었다. 오른쪽도 마찬가지였다.

“2층 사람들은 전부 도망갔거나 먹혔나 봐요. 저 집에 다섯이 다네요.”

“저놈들은 왜 여기 있데요? 영화 보면 길에서 막 뜯어먹고 그러던데.”

“동건 씨는 모르겠구나. 저놈들은 자기가 변한 곳을 둥지로 삼는 경향이 있더라고. 근처에 검붉은눈이 있으면 빨간눈은 거기로 모여서 집단을 만들기도 하고.”

“에? 영화 개구라!”

두 사람의 속삭임을 바라보던 관장이 앞으로 나서며 나직하게 말했다.

“일단 처리합시다. 복도가 좁으니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소.”

말과 함께 관장이 달렸다. 나현주와 이진성도 관장을 따라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장동건과 김현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올라오거나 내려오는 놈들을 경계했다.

집안의 다섯의 좀비는 달큰한 인간들의 냄새를 맡고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는데 굳이 놈들을 동족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간 셋이 달려든다. 이건 그냥 둘 수 없는 일이었다.

관장은 현관으로 들어서며 달려 나오는 한 놈의 몸통을 사선으로 갈랐다.

놈은 허리에서 겨드랑이까지 깨끗하게 잘려 두 덩이로 갈라지며 앞으로 자빠졌다.

자빠지는 놈을 피해 관장은 몸을 숙이며 다른 한 놈의 배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 순간 나현주는 그런 관장의 위로 몸을 날려 놈들의 머리를 넘어 날아갔다.

착지하며 덤블링으로 한 바퀴 돌며 방향을 바꾼 나현주의 눈에 돌아서고 있는 제일 뒤의 검붉은눈이 들어왔다.

올려 차기로 발을 놈의 턱 밑에 꽂아 넣었다. 놈의 대가리는 턱에서부터 터져나갔고 놈은 그대로 무너졌다.

이진성은 소리 지르며 다가오는 놈의 주둥이에 파이프를 물렸다. 그리고 달려가던 힘으로 밀어붙였다.

앞니가 박살 나며 뒤로 밀리던 놈이 엉덩방아를 찍었다.

‘일격참’을 외치며 위에서 사선으로 떨어진 중식도는 놈의 목과 함께 쇄골과 팔도 몸에서 분리해 버렸다.

놈을 처리하고 남은 한 놈에게 돌아섰을 때, 놈은 이미 관장에게 이등분되어 창자를 쏟아내고 바닥에 자빠져 있었다.

“헉헉. 이제 다섯 마리 정도는 순식간이네요.”

“이놈들이 늦게 움직여서 쉬웠소. 복도에서 마주쳤으면 한사람이 전부 상대해야 했을 거요. 우리는 상관없지만 진성 씨라면 위험하오.”

“아저씨는 복도에서 싸우게 되면 뒤로 빠져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면 그쪽으로 유인할게요.”

밖으로 나오자 그들을 김현희와 장동건은 아무 일도 없이 서 있었다.

“잠시 거기 좀 지켜 주세요. 전 집들 좀 둘러볼게요.”

제일 끝 집으로 향하는 이진성을 나현주가 따라나섰다. 관장은 복도 입구를 막고 선 두 사람에게 향했다.

“이 집은 사태 초기에 도망쳤나 봐요. 집이 깨끗한 편이네. 냉장고도 비어 있는 거 보니 싹 쓸어갔나 보네.”

“옷장도 거의 비었어요.”

대충 둘러본 두 사람은 두 번째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첫 번째 집과 사정이 달랐다.

안방 침대는 온통 핏자국이고 다 뜯어먹혀 뼈만 남은 시체가 썩고 있었다.

“여기서 하나 변했나 보네. 어쩌면 조금 전에 잡은 놈 중 하나일지도.”

“그런데 문은 어떻게 열었을까요?”

“가족 중 하나가 밖으로 도망치면서 열어놓고 갔겠죠. 아마 문이 열린 집은 다 그럴 거예요.”

이진성이 가리키는 현관문에는 도어 클로저가 없었다. 열린 문이 자동으로 닫힐 수가 없었다.

2층의 다른 집들은 처음에 좀비들이 모여 있던 집을 빼고는 다 도망친 것으로 보였다.

모든 집을 둘러보고 계단 앞에 모여 상황을 설명한 이진성이 걱정을 담아 조용히 말했다.

“2층에서만 다섯인데 위에는 얼마나 될까요?”

이진성의 말에 걱정이 되는 세 사람과 속으로 많이 있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었다.

3층으로 막 계단에서 올라왔을 때 다섯 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공격해 왔다.

놈들이 지르는 소리는 좁은 공간에서 울리면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계단을 타고 위아래로 퍼져 나갔다.

놈들을 정리하고 살펴본 3층은 2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섯 집이 열려 있고 그중 한 집에서 좀비가 변한 흔적이 있었다.

문이 잠긴 두 집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봐서 나오지 못하고 굶어 죽었거나 한 것 같았다.

4층에는 모든 집의 문이 다 열려 있었다. 좀비 냄새는 왼쪽 복도로 들어가 첫 번째 집에서만 났다.

이진성이 고개를 빼고 안을 들여다봤지만 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쿵쿵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장동건과 김현희가 다시 계단을 경계하고 셋이 집으로 들어갔다. 소리는 안방 안에서 나고 있었다.

이진성이 자세를 잡고 나현주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진성의 뒤에는 관장이 버티고 섰다.

천천히 손잡이를 돌린 나현주가 문을 발로 차고 뒤로 물러나자 안에서 홈웨어 원피스를 입은 아줌마가 튀어 나왔다.

나오는 놈의 정수리에는 이진성의 청룡언월도가 꽂혀 들었고 관장의 검이 놈의 심장에 박혔다.

놈에게는 자신이 방금 흘린 피 말고는 핏자국이 전혀 없었다.

변이하고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여태 굶은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몸만 빠져나갔는지 집안은 깨끗했고 놈이 있던 방 안도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세 사람이 집안을 둘러 보던 그때였다. 밖에서 그토록 원하지 않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탕~ 탕~따아앙~

세 발이었다. 달려나간 세 사람 앞에는 막 계단에서 올라오다 총에 맞고 나자빠진 세 놈의 좀비가 보였다.

“아 씨. 소리도 없이 올라와서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쐈어요.”

“어디서 온 놈들이지? 아래층은 다 잡고 왔잖아. 아니야? 진성 총각?”

“다 잡았죠. 아마도 나갔다가 들어오는 놈들이거나 다른 곳에 사는 놈들이 소리 듣고 왔을지도…….”

말하던 이진성이 계단을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서둘러야겠어요. 밖에서 더 들어올 수도 있고 위에서 내려올 수도 있겠어요. 관장님이 앞에 서 주실래요? 아무래도 검을 쓰시려면 앞에 사람 없는게…….”

“그러지요.”

관장을 선두로 나현주와 김현희가 따르고 이진성과 장동건이 뒤를 보며 오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계단을 오르며 왼쪽과 오른쪽 각 한 집에 하나씩 좀비 냄새를 맡은 이진성이 알렸다.

“왼쪽 첫 번째 집에 하나, 오른쪽 15m 정도에 하나.”

5층에 오른 관장은 왼쪽으로, 나현주는 오른쪽 복도로 뛰었다. 나머지 셋은 계단에서 위와 아래를 경계하며 두 사람들 기다렸다.

15m라고 들은 나현주는 첫 번째 집을 지나쳐 문이 열린 두 번째 집으로 들어섰다.

현관에서는 놈이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마루로 뛰었다.

그 덕에 화장실에 숨어있던 놈이 손을 뻗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나현주 또래의 여자 좀비였다. 티셔츠 목깃을 잡힌 나현주가 몸을 채면서 옷이 찢어지며 겨우 몸을 뺐다.

중심이 뒤로 쏠려 바로 공격할 수 없었던 나현주에게 놈은 손톱과 이빨을 들이밀며 공격해 들어왔다.

몇 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서야 겨우 중심을 바로 잡고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팔꿈치를 아가리에 꽂아 이빨을 뽑았다. 옆으로 휘청이며 밀리는 놈의 허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뿌드득 소리와 함께 허리가 뒤로 꺾여 자빠지는 놈의 대가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그대로 목을 돌려 버렸다.

으드득~

놈은 혀를 빼고 축 늘어져 더는 움직임이 없었다.

나현주는 찢어져서 가슴이 반은 보이는 자신의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일부러 피를 보지 않고 잡은 놈의 옷을 벗겨내려고 놈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막 옷을 벗기려는데, 하필 그 순간에 이진성이 뛰어들었다.

“어. 뭐해요? 현주씨. 그… 여자 취향이었어요?”

“뭔 소리예요? 옷이 찢어져서 이거라도 입으려고 하는 건데.”

본의 아니게 나현주의 가슴을 두 번째 보는 행운(?)을 가진 이진성이었다.

“이리 와서 이년 좀 잡고 있어요. 혼자 벗기려니까 잘 안 돼요.”

이런 상황에 남자 여자 가리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알몸을 보이는 것에 너무 개의치 않는 나현주였다.

다섯은 다시 계단을 달렸다. 다행히 6층에는 좀비들의 냄새가 없었다. 6층을 그냥 지나쳐 7층으로 오르려는 순간 이진성은 일행을 멈춰 세웠다.

“아래에서 올라와요. 아마 지금 4층쯤. 열두 마리? 빌어먹을. 위에서도 내려와요. 8층 열 마리.”

8층에서 내려오는 것들은 발소리로도 알 수 있었다.

관장과 나현주가 위로 뛰어올랐다. 둘에게 열이면 무리한 숫자는 아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셋은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자연스럽게 이진성과 김현희가 선두에 서고 장동건은 반 층 위에서 두 사람을 엄호했다.

빠르게 달려 내려간 그들은 막 5층에서 계단을 밟는 놈들의 선두를 볼 수 있었다.

이진성이 계단 위에서 그대로 점프하며 외쳤다.

“일격참~”

한 놈의 대가리를 쪼개 뇌와 뇌수를 쏟아낸 후, 뒤따라온 김현희의 방패에 당해 비틀거리는 놈의 목을 찍었다.

“씨불. 구호를 외치지 않으면 한 번에 안 끊어지네.”

덜렁거리는 목으로 피를 뿜으며 달려드는 놈에게서 몸을 뺀 이진성은 자신도 모르게 돌려차기로 놈의 관자놀이를 차버렸다.

그 발에 맞은 덜렁거리던 놈의 대가리는 목이 찢어져 날아가 옆 놈의 대가리에 맞고 떨어져 데구르 굴렀다.

“나 원래 무술에 천부적 재능 있었던 거야?”

되지도 않는 착각을 하면서 놈의 대가리를 보는데 총소리가 울리며 귀가 먹먹해졌다.

장동건은 반 층 위에서 아래를 보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이진성이 두 번째 놈을 잡을 때 약간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기대하지 않은 몸놀림으로 놈을 해결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갑자기 이진성이 넋 놓고 가만 서 있더니 다가오는 놈에게 물리기 직전까지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진성의 머리에 가려 놈의 대가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막 몸을 움직여 각도를 확보하려는데 놈이 이진성을 물려고 고개를 약간 꺾었고, 그때 놈의 눈 한쪽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방아쇠를 당기자 놈의 눈이 터지면서 대가리 뒤가 터졌다. 그리고 놈의 대가리를 깬 총알은 다시 뒤 놈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정신을 차린 이진성은 다시 청룡언월도를 휘둘렀고 옆에서 김현희도 방패로 놈들을 짓이겨갔다.

장동건도 한발을 더 써서 김현희의 옆구리를 물려고 달려드는 놈의 대가리를 터트렸다.

그렇게 올라오는 열둘을 정리하고 다시 계단을 오르는 세 사람에게 7층에서 마지막 놈을 막 끝내고 있는 관장과 나현주가 보였다.

“에구 힘들다. 쫌만 쉬어요. 당장은 움직이는 냄새가 없어요.”

“아저씨는 얼굴에 왜 피 칠갑은 하고 있어요? 거리 두고 싸우는 사람이?”

“이 형님 싸우다 딴생각 하다가 물릴 뻔했데요. 저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 물려고 덤비고 있었을 거예요. 크크.”

“아니. 이제 겨우 걸음마 하면서 싸우다 딴생각은 뭔 생각을 해요? 설마…….”

눈을 부라리며 말을 흐리는 나현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이진성은 손을 저어야 했다.

“아뇨. 아뇨. 절대 아니에요. 그냥 제가 원래 무술에 소질이 있나 그런거 잠깐 생각했어요.”

일행은 기가 찬 듯 잠시 이진성을 쳐다보더니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위로 향했다.

“위에 더 있어요?”

“음… 10층까진 냄새 안 나요. 그 위로는 모르겠는데?”

다행히 그 위로는 사람 썩는 냄새는 나도 좀비들의 냄새는 더는 나지 않았다.

15층. 이진성의 집 앞에 당도한 일행은 문 앞에 섰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 이진성이 열쇠 구멍에 키를 꽂으려다가 관장을 돌아봤다.

“사람의 기는 느껴지지 않소.”

역시 돌아가신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진성이 안방으로 향했다.

아마도 돌아가셨다면 안방에 계시리라 생각하고 모두 말을 삼키고 이진성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안방에서 짜증 섞인 밝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이 노인네가 여기는 또 어떻게 간 거야.”

달려간 모두에게 이진성이 작은 쪽지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현희가 달려가 쪽지를 슬쩍 봤다.

<아들. 니 놈이 여기까지 살아서 올 거라곤 생각 안 한다만 혹시라도 오면 보거라. 엄마는 안산 스타디움으로 간다. 거기 대피소가 있단다. 혹시 이걸 보면 그리로 오너라. 기대는 안 하지만 살아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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