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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36화 (36/145)

# 36

싸이코패스

“잘 주무셨어요? 언니랑 아저씨는 어디 갔어요?”

늦은 아침에 방에서 나온 나현주의 눈에는 관장과 장동건만 보였다.

김현희와 이진성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장동건이 삐진 목소리로 툴툴댔다.

“저쪽 방에서 자요. 몸살인지 뭔지 못 일어나요. 형님은 세 번째라면서요? 와. 저러다 슈퍼맨 되겠네. 난 왜 안 하지?”

나현주가 열어본 방 안에는 김현희와 이진성이 끙끙거리면서 자고 있었다.

“관장님. 이렇게 놔둬도 되나요? 저번보다 심해 보이는데?”

“글쎄요. 지켜보는 수 밖에.”

“그런데 똑같이 싸우고 왜 우리는 안 하는 걸까요?”

“내 생각에 풍선 같은 게 아닌가 싶소. 풍선이 작을 때는 조금만 바람을 넣어도 쉽게 커지지만, 커지면 커질수록 더 많은 바람을 넣어야 하듯.”

“저희는 저 두 사람보다 원래 용량이 컸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런 거 아닌가 싶소.”

“그럼 저는요?”

“동건 씨는 사격 감각이 좋아지는 쪽이니까 어쩌면 더 발전할 게 없을지도 모르오. 지금이 한계일지도…….”

실망한 장동건은 구석에 앉아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나현주는 그런 장동건의 등을 한 대 치고선 안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저는 부모님 흔적 좀 찾아볼게요. 두 분은 음식 거리 좀 찾아 주실래요?”

안방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옷장에 옷도 거의 없었다. 어머니의 귀금속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봐서 차분히 여유 있게 짐을 싸서 나간 것 같았다.

“어디로 가셨을까? 여유 있게 나갔다면 상황이 나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침대에 걸터앉아 옆의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생각하던 나현주의 눈에 전화기 옆 메모장 맨 윗장이 거칠게 뜯어진 것이 들어왔다.

옆의 볼펜을 집어 들었다. 살살 볼펜으로 칠한 메모지에는 눌린 글씨 흔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탄 우… 1505 70… 뭐지?”

생각에 잠겼던 나현주가 벌떡 일어나 메모장을 들고 밖으로 나오며 외쳤다.

“동탄 이모 집! 동탄으로 갔나 봐요. 여기 동탄 우하고 안 보이는 게 동탄 우남 퍼스트빌 아파트. 저희 이모네예요.”

“행적을 찾았군요. 다행이오.”

“거기 잘 도착하고 또 아직 살아계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희망을 가져 보시오. 최소한 돌아가신 흔적은 아직 없는 거니까.”

“네. 그래요. 배고픈데 뭐라도 좀 먹어요. 우리.”

“누님. 집에 먹을 거 하나도 없어요. 있는 거라고는 술하고 치즈 쪼가리 조금. 아니 냉장고에 어떻게 썩고 있는 음식물도 없어요?”

“아. 두 분 모두 맞벌이하셔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해 먹는 걸 깜박했네. 간식도 하나도 없어?”

“한~ 개도 없어요.”

“다른 집 뒤져 봐야겠네요. 동건아 너는 집 좀 지켜. 관장님 같이 가실래요?”

“그러지요.”

계단을 타고 올라가 봤지만 문이 열린 집은 하나도 없었다.

관장이 몇몇 집에서 사람 기운을 느껴 문을 두드려 봤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침묵 아니면 욕설이었다.

역시나 존재하는 계단의 핏자국이 몇몇 집으로 이어졌지만 현관문은 다 닫혀 있었다.

도망쳐 나와서 문을 닫았거나, 도어클로저에 의해 자동으로 닫혔거나 둘 중 하나였다.

“진성 아저씨네는 거의 열려있더니 어떻게 여기는 열린 문이 없냐?”

“거기는 도어클로저가 거의 고장 났거나 뜯어 놨거나 그렇더군요. 오래된 집들은 많이 그러더군요.”

“새집이 이럴 때는 안 좋네요. 어쩌죠? 이 근처는 다 마찬가지 같은데.”

“상가로 가 봅시다. 혹시 남은 게 있는지.”

“집에 말해 놓고 가야겠어요.”

혼자 와인에 치즈를 먹고 있던 장동건은 문 열리는 소리에 급히 병을 숨기려 했지만 이미 들킨 뒤였다.

“먹어. 먹어. 괜찮아. 우리 저 앞에 패밀리플러스에 갈 거야. 여기서 나가서 동쪽으로 한 블록 너머 있거든. 혹시 사람들 깨어나면 우리 금방 올 거라고 말해.”

* * *

마트는 밖에서 보기에도 처참했다.

반쯤 내려온 셔터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출입문 안쪽으로는 온통 피로 칠해져 있었다.

해가 들어 밝은 곳에서는 꽤 많은 총탄 자국도 보였다.

저 안쪽의 어두운 곳에서는 쥐들의 찍찍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통조림 하나 찾기도 힘들 거 같아요. 저 안쪽은 어두워서 어쩌죠?”

“천천히 가 봅시다. 다행히 지하가 아니라서 완전히 어두운 건 아니니까.”

가공식품은 신선식품 코너 바로 앞에 있고 모든 마트의 신선식품은 가장 안쪽에 있다.

제일 어두운 곳까지 가야 하는 두 사람은 바짝 긴장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음식 썩는 냄새와 곳곳에 널브러진 뜯어먹힌 시체 썩는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발에는 쏟아진 상품들이 계속 걸려서 소리 내지 않고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좀비들이 많은가 봐요.”

“조심하시오. 진성 씨 말대로면 놈들이 어딘가 숨어서 기회를 보고 있을 테니까.”

“진성 아저씨 없으니까 엄청 불편하네.”

바짝 긴장하며 느린 속도로 전진한 두 사람이 매장의 중간쯤 들어갔을 때였다.

좌우 양쪽의 멀리서 물건 밟히는 소리, 차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매장 입구 쪽으로 가더니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저놈들 뒤에서 퇴로를 차단하고 있소. 앞에서 오는 놈들을 맡으시오. 난 뒤에서 오는 놈들을 맡겠소.”

두 사람은 진열대를 벽으로 하고 앞뒤로 오는 놈들을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던 관장이 주방세제 리필봉지를 집어 들더니 검으로 한 번 찌른 후 앞으로 던졌다.

여섯 개를 던지자 두 칸 앞 진열대 사이로 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두의 놈이 달려오다 세제를 밟고는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 뒤의 놈들도 줄줄이 넘어져 허우적거리며 세제를 넓게 칠해주기 시작했다.

최소한 한꺼번에 들이닥치지는 못하게 만든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나현주 쪽으로는 많지 않은 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미끄러져 쓰러진 놈들을 밟고서 달려 나오는 놈들이 관장의 공격 거리로 들어왔다.

가장 앞에 일단 둘. 한 놈의 허리를 가르며 척추를 끊고 다른 한 놈의 목을 쳐냈다.

두 놈이 진열대로 자빠지면서 아직 선반에 올려져 있는 상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떨어지는 상품들이 잠시 방해를 하는 그 짧은 순간, 바로 뒤 놈의 손이 뻗어왔다.

급하게 자세를 낮추며 피한 관장의 검이 놈의 두 무릎을 끊어 버렸다.

무릎 밑이 없어진 놈은 밑으로 떨어져 내렸고 관장은 일어서는 힘으로 검을 그어 올렸다.

놈은 사타구니에서부터 반으로 몸이 갈라져 앞의 두 놈에게 포개졌다.

다음 놈은 발에 세제가 묻었는지 휘청이면서 달리다 관장에게 미끄러져 넘어졌다.

넘어지는 놈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자 놈의 등을 뚫고 나온 검이 뒤 놈까지 같이 꿰어 버렸다.

검을 뽑으며 앞 놈을 차버리고, 뒷놈의 목도 날렸다.

관장의 앞에는 놈들의 갈라진 시체가 차곡차곡 쌓였고, 놈들이 흘린 피가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시체와 피 역시 뿌려진 주방세제와 함께 장애물이 되어, 덤벼드는 놈들의 시간 간격은 점점 벌어졌다.

나현주는 좌우의 진열대 때문에 돌려차기는 공간이 안 나왔다.

올려 차거나 내려찍거나 점프 킥을 날려 놈들을 견제했지만 파괴력은 나오지 않았다.

달려오는 한 놈을 차서 밀어 버리면 다시 다른 한 놈이 달려들어 근접해 왔다.

근접한 놈의 몸을 꺾거나 갈비를 부수면 뒤에 밀렸던 놈이 다시 달려들기를 반복했다.

가능한 한 번의 킥과 한 번의 펀치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 많은 데미지를 줘야 했다.

모든 신경을 타격 순간에 집중하고 놈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느덧 그녀는 다시 무아지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몸은 점점 빨라졌다. 타격의 데미지도 점점 더 증가했다.

처음에는 킥에 맞은 갈비뼈가 함몰되던 것이 지금은 갈비뼈 조각이 몸을 뚫고 튀어나오며 상체의 반이 터져 나갔다.

펀치가 광대뼈가 깨지더니 지금은 얼굴이 알아볼 수 없게 부서졌다.

킥 한 번에 대퇴골이 가루가 나서 주저앉고 허벅지 뼈가 박살 나서 다리를 뚫고 나왔다.

팔꿈치에 맞은 목뼈는 산산이 조각나며 대가리가 떨어져 나갔다.

나현주는 점점 더 피와 살을 뒤집어썼다. 그런 그녀 앞에는 박살 나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놈들의 시체가 쌓여 갔다.

“헉. 헉. 이놈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건가요.”

“모르오. 좀… 더… 집중하시오.”

관장도 숨이 찬지 말이 늘어졌다.

두 사람은 안 하던 기합까지 넣어가며 달려드는 놈들을 잡아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달려드는 놈들을 베고 부수면서 두 사람 앞은 발 디딜 틈 없이 시체들이 쌓여 갔다.

서서히 뒤로 밀리던 두 사람의 등이 거의 맞닿을 참이었다.

크어어엉~

안쪽 구석에서 여태 듣지 못한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소리를 들은 몇 남지 않은 놈들이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인가 긴장한 두 사람이 놈들을 노려보고 있는데, 안쪽에서 뭔가 거대한 실루엣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검붉은 눈의 위치가 보통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위에서 불타는 듯 번쩍였다.

“헉헉… 관장님… 이쪽 좀… 보셔야겠는데요.”

관장이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자 희미한 빛을 받은 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는 거의 2m 30 정도에 덩치는 어지간한 씨름선수보다 컸다.

벗은 상체에는 조폭들이 하는 용 문신이 가득했고 온몸에는 칼자국으로 보이는 상처가 가득했다.

저런 사람이 다가와도 압도될 정도인데 놈은 사람보다 더 신체 능력이 좋은 좀비다.

다가오는 놈을 쏘아보며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오. 헉헉. 저놈에게서 기가… 느껴지오. 그 기가 현주씨보다 강하오. 헉헉.”

“에? 학학.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요. 헉헉. 좀비도… 능력이 발전하나요?”

“알 수 없소. 그럴지도… 헉헉… 아니면 능력을 가진… 헉헉… 사람이 좀비가 된 것일지도…….”

어느 쪽이든 두 사람에게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을 가만히 보던 놈이 좌우의 진열대를 밀어 방향을 틀어 버렸다.

V자로 틀어진 두 진열대는 놈이 선 자리에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다가온 놈은 나현주가 부숴놓은 시체들을 집어 던져 발밑을 정리하고는 이쪽 진열대도 밀어 벌려 공간을 만들었다.

“넓은 곳에서 싸우자는 말 같지 않소?”

“학학… 그런 거 같은데요. 저 정도면 고릴라 정도 지능은 되는 건가요?”

“모르지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말과 함께 관장이 왼쪽으로 나현주가 오른쪽으로 달려나가 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놈의 피부는 다른 놈들과 달랐다. 타격에서 오는 반탄력이 마치 고무 덩어리를 치는 것 같았다.

다른 놈들의 뼈도 일격에 자르던 관장의 검은 놈의 근육을 잘라내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별로 깊지도 못했다.

“관장님… 헉헉헉… 만약에 제가 물리면… 학학… 변하기 전에 끝내주세요.”

“나도 마찬가지요… 헉헉.”

나현주가 그 파괴력 실린 킥과 펀치에 놈은 한두 걸음 밀릴 뿐, 살이 터지거나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놈의 파워 역시 나현주 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으면서 스피드도 대단했다.

관장의 검을 놈은 반 정도는 흘렸고 반 정도는 급소가 아닌 곳으로 맞아 버렸다.

놈은 좀비가 되기 전에 싸움에 이력이 난 놈이 분명했다.

관장과 나현주는 자신이 좀비가 된다면 이런 놈이 되는 것인가 생각하며 몸서리쳤다.

막 관장이 목에 검을 찔러 넣을 기회를 잡고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그런데 놈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날아오는 검을 주먹으로 쳐 버렸다.

땡~

검은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부러져 버렸다.

급하게 점프해 물러난 관장이 등에 꽂혀 있던 나머지 검 하나를 뽑아 들며 나현주에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여기까진 것 같소.”

그리고는 방어를 무시하고 오로지 공격만을 쏟아 넣었다.

거기에 놈도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비록 깊은 상처는 못 주지만 빠르게 쌓이는 상처로 놈의 몸은 피로 덮여 갔다.

관장이 더 쉽게 공격하도록 나현주도 놈의 옆과 뒤에 계속 펀치와 킥을 꽂아 넣었다.

그 대가로 그녀는 왼쪽 손목이 삐어 왼손을 쓸 수 없었고 놈의 펀치에 스친 살갗이 터져 자신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왼쪽 눈은 부어서 거의 보이지 않았고 갈비도 몇 대 금 간 상태였다.

결국 놈의 펀치에 맞은 나현주가 저만치 날아갔다.

동시에 놈이 관장에게 펀치를 꽂아 넣으려고 주먹을 뒤로 빼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공간을 뒤덮는 무서운 살기와 함께 사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

놈은 살기에 움찔한 것인지, 아니면 소리에 움찔한 것인지, 공격을 멈추고 뒤로 급히 물러났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구석에서부터 남자 하나가 사시미칼을 들고 빠르게 달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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