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이쪽으로.”
두 사람은 남자를 따라 무빙워크를 올라 2층의 한 한식당으로 뛰어들었다.
남자는 두 사람이 따라 들어오자마자 셔터를 내리고 창 쪽의 한 테이블로 가서 앉아 두 사람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뒤따라온 좀비들은 셔터 밖에서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헉. 헉.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나현주가 인사를 하며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입구에 서 있던 관장이 나현주를 잡았다.
“현주씨. 더 가까이 가지 마시오. 저 사람에게서 위험한 기가 느껴지오.”
나현주가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춰서서 경계 자세를 취하자 남자가 관장을 쳐다봤다.
“클클클. 역시 내 느낌이 맞았어. 어이 형씨. 형씨도 사람들 기를 느끼는 거 맞지? 흐흐흐 거기 언니는 기는 못 느끼는 거고? 형씨는 몇 번 진화했나?”
관장 남자에게 검을 겨눈 채로 물었다
“진화라니? 몸살 말인가?”
“형씨는 몸살이라고 하나? 뭐 틀린 말은 아니군. 가만 보자. 내 기를 읽을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지는 모르는 걸 보니 아직 한번 밖에 안 했나 보군. 거기 언니도 한 번이네? 우와! 겨우 한 번씩밖에 안 한 사람들이 저놈들을 거의 다 잡았다고? 엄청난데?”
남자는 과장된 놀라움을 표하며 시종일관 기분 나쁘게 킬킬거렸다.
“가만 보자. 둘 다 거의 다 찼네. 다음 단계가 멀지 않았어.”
사내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자네는 뭔가 많이 아는 것 같네만. 어떻게 알았나?”
“크크크. 난 말이지 두 번을 했어. 두 번째를 하고 나니까 기의 성격과 수준까지 어느 정도 보이더라고. 우리같이 날붙이 쓰는 놈들은 뭐랄까? 음… 날카롭다 해야 하나? 마치 우리가 쓰는 칼처럼?”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많이 봤나?”
“킥킥킥. 내 동생 중에 칼밥 먹는 놈들이 좀 있었지. 수준이야 그저 그랬지만 그중에 몇 놈은 꽤 했거든. 내가 처음 진화를 하고 나서 놈들의 기를 느낄 수 있었지. 바로 나하고 형씨 같은 날카로운 기를.”
“그럼 저는 기가 다른가요?”
“언니는 말이지. 저 밖에 있는 덩치 놈과 비슷해. 무기 안 쓰지? 그저 몸으로 치고받지? 언니나 저놈의 기는 단단한데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그런 위험함이라고 할까? 크크크.”
“저 덩치는 왜 기가 느껴지나? 여태 기가 느껴지는 좀비는 본 적이 없네.”
“역시 형씨는 알아챘군. 저놈은 말이지 내 오른팔이었거든. 저놈도 두 번 진화했어. 그런데 재수 없게 물려 버렸네? 크크크. 그때 알겠더군. 진화한 사람이 물리면 저것이 된다는 걸. 형씨는 알았나?”
관장과 나현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놈들에 대해 좀 아나 보네? 형씨도 놈들 꽤 죽여봤나? 또 뭘 알지? 서로 아는 걸 교환하는 게 어때?”
관장은 다가오는 남자에게 검을 겨누고 다가오지 말라는 표시를 한 후 물었다.
“동생들은 다 어디 있나?”
“다 저놈들한테 잡아먹혔어. 몇 놈은 저놈들 중 하나가 됐지. 그런 놈들은 내가 저세상으로 곱게 보내 줬어.”
말을 하며 사시미칼로 베고 찌르는 동작을 하는 남자였다.
“자네 정도면 저놈들을 이미 다 죽이고 남았을 거 같은데?”
“아. 다 죽이면 장난감이 없잖아. 적당한 수를 유지해야 해. 빨간눈을 확 줄이면 어딘가 가서 만들어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좀 보태 주기도 했어.”
“보태줘?”
“여기에 인간들이 약탈하러 오잖아? 그럼 충분히 안에 들어왔을 때 셔터를 내렸지. 대부분 먹잇감이 되는데 간혹 몇 놈은 저것들로 변하더라고. 그렇게 죽은 인간들이 100은 넘을걸? 클클클.”
남자는 흉측한 미소와 함께 눈을 번득이며 대답했다.
그런 남자의 얘기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본 나현주의 눈에 토막 난 시체들이 한쪽에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시체들은 다 뭐죠?”
“아. 저것들? 나도 먹고살아야지. 저 밖에 저렇게 살아 있는 고기들이 많이 돌아다니잖아. 저것들 의외로 맛있더라고. 원래 인간이 맛있는 건지 아니면 저것들로 변하면서 맛있어진 건지 몰라서 이번에 인간도 먹어볼 생각이야. 언니가 그 첫 번째가 될 거야.”
자신을 먹을 거라는 남자의 말에 기겁한 나현주가 뒤로 물러나자 관장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저놈들이 네 놈이 나타나고서 겁을 먹은 거 같은데 왜지? 그리고 아까의 강한 살기는 어떻게 한 거지?”
“하하하. 저것들? 나한테 쫄았잖아. 내가 지들 동료를 다 죽여버리니까 언젠가부터 덤비기를 꺼리더라고. 그리고 살기? 나도 몰라. 처음 진화하고 부터 그냥 되더군.”
“우릴 죽일 거면 왜 살렸죠? 이런 얘기하려고 일부러 살릴 필요는 없잖아요.”
표독하게 쏘아붙이는 나현주를 보며 남자가 하품했다.
“그게 말이지, 처음에는 저놈들에게 죽을 줄 알았는데 둘이서 저놈들을 다 죽일 판이네? 장난감이 다 없어지는 건데 그럼 안되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쪽 형씨랑 붙어봐야 했거든. 칼을 제법 쓰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그냥 죽게 둘 수는 없잖아?”
섬뜩한 미소를 머금고 남자가 슬슬 셔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를 피해 나현주와 관장은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야 했다.
바깥의 놈들은 남자가 셔터로 다가가자 오히려 뒤로 물러나며 그르렁거렸다.
“자. 두 사람 쉴 만큼 쉬었지? 내가 충분히 시간 준 거잖아? 지금이면 컨디션 거의 회복했을 거 같은데?”
“아 언니는 힘들겠구나. 뼈도 몇 군데 상한 거 같고. 걱정 마. 저놈들에게 물리기 전에 내가 죽여줄게. 인간 상태로 먹어야 하지 않겠어? 크크크.”
제대로 미친놈인 남자가 실실 웃으며 셔터를 들어 올린 후, 덩치를 보며 말했다.
“임마. 니가 저 언니 좀 맡아 줘. 그동안 내가 저 형씨랑 좀 놀아 볼라니까.”
그리고 관장을 향해 따라오라는 듯 사시미칼을 까딱거리고는 시체가 쌓여있는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입구는 덩치가 막고 있고 남자는 두 사람을 곱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관장이 나현주를 돌아봤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시오. 저놈만 잡으면 둘이 어떻게 해 봅시다.”
관장도 나현주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관장은 놈을 따라 들어가고 나현주는 덩치 앞으로 다가섰다.
* * *
남자의 칼은 무서웠다. 무술을 배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실전을 통해 체득한 실전 무술의 날카로움은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거기에 두 번의 몸살을 통해 만들어진 몸놀림은 관장을 궁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놈의 칼은 엄청난 스피드로 몰아치다가 미처 방어하지 못한 각도에서 찔러 들어왔다.
겨우겨우 막았다 싶으면 비어있는 허점으로 주먹이나 발이 날아오기 일쑤였다.
“에이. 형씨 좀 더 힘을 내봐.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말을 하면서도 놈의 움직임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놈은 틈틈이 관장에게 숨돌릴 여유까지 줘가며 관장을 가지고 놀았다.
관장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고 검의 움직임은 그만큼씩 느려졌다.
그렇게 싸우던 중, 이제 죽는다는 생각이 든 관장의 머리에서 점점 생각이 없어졌다.
오로지 감각만이 남아 놈의 칼을 쫓으며 무의식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다.
관장의 느려지던 움직임은 놈의 칼을 정확하게 막아내기 시작했다.
놈보다 빠르게 움직이지도 더 많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열의 아홉은 막아내고 하나는 가벼운 상처를 입거나 피해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관장은 인식하지 못했다.
나현주는 금 간 갈비뼈 때문에 움직이기만 해도 고통이 밀려왔다.
삔 왼쪽 손목은 이미 퉁퉁 부어올라 왼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능한 다리를 써야 하지만 갈비뼈 때문에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놈은 서서히 나현주에게 다가왔다. 놈도 아까 입은 데미지가 있는지 쉽게 덤비지는 않았다.
몇 분간의 침묵의 대치가 지났다. 더 기다리지 못한 놈이 나현주에게 손을 휘둘러 오는 것으로 싸움은 시작되었다.
파공성을 내며 눈앞을 지나는 놈의 손을 겨우 피해 낸 나현주는 찌르는 듯한 통증에 주저앉을뻔했다.
이를 악물어 흩어지는 정신을 다잡고 고통을 무시하며 놈에게 킥을 날렸다.
가능한 놈의 갈비뼈를 부러뜨려야 했다. 가장 부수기 쉬운 뼈였고 놈을 자신과 동등하게 만들 방법이었다.
놈의 펀치와 발을 피하면서 기회가 날 때마다 놈의 왼쪽 갈비뼈를 집요하게 가격했다.
놈에게 맞아 터진 살이 다시 터졌다. 놈의 주먹을 막던 왼쪽 팔뼈에 금이 갔다.
하지만 결국은 나현주도 놈의 왼쪽 갈비뼈 세 대를 부술 수 있었다.
운 좋게 부서진 갈비뼈가 놈의 폐와 심장을 찔렀는지, 놈은 뒤로 물러나며 주저앉아 숨을 꺽꺽거렸고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나왔다.
나현주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온몸의 통증을 참으며 돌려차기를 놈의 관자놀이에 꽂아 넣었다.
옆으로 쓰러지는 놈의 부서진 갈비뼈에 한 번 더 돌려차기를 찔러 넣었다.
왼쪽 가슴이 완전히 부서진 놈은 엎어져서 버둥거리며 입으로 피를 토했다.
나현주는 그 옆에 버티고 서서 다른 놈들을 노려봤다.
두 사람에게는 천만다행으로 놈이 쓰러지자 바깥에 있던 다섯 마리의 검붉은눈과 일곱 마리의 빨간눈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더니 무빙워크 쪽으로 뛰었다.
도망을 간 것이면 좋겠지만 그럴 놈들이 아니라는 것은 구로에서부터 충분히 겪어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놈들은 동료를 모아오거나 만들어 올 것이다.
만들어 온다면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모아 온다면 금방 돌아올 수도 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들게 관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관장은 온몸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밀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게 상대의 칼을 막아내고 있었다.
바라보기를 잠시. 관장의 검이 남자의 칼을 막는 동시에 남자의 허리를 깊게 베어냈다.
당황한 남자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움직임은 거칠어졌다.
그리고 움직임이 거칠어질수록 남자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한순간. 드디어 관장의 검이 남자의 목을 꿰뚫고 나오더니 그대로 목을 베어버렸다.
남자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관장의 몸도 더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걸 본 나현주도 선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헉. 현주씨. 아직 살아있소?”
“으. 아직은 살아 있어요. 근데 진짜로 죽을 거 같아요.”
“나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소. 미안하오. 더는 힘 들 것 같소.”
그리고 정신을 잃어가는 두 사람의 귀에 희미하게 총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장동건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 난장판을 둘러보다 둘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형님, 누님 여기 있어요. 어쩌지? 둘 다 죽었나 봐. 어떡해.”
김현희와 이진성이 달려왔다.
“비켜봐. 아직 숨 쉬어. 관장님 살펴봐. 어서 빨리.”
관장에게 달려간 장동건이 맥을 짚고 숨을 확인하더니 관장을 둘러업으며 소리쳤다.
“관장님 살았어요. 누님 관장님 칼 좀 챙겨 주세요.”
달려간 김현희가 검을 집어 들고 장동건을 따랐고 이진성은 나현주를 업고 같이 달렸다.
“우 씨. 도대체 여기는 어떻게 된 게 시체가 셀 수가 없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 * *
집으로 돌아와 다시 본 두 사람의 상태는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현주는 온통 살이 터져있고 뼈가 상한 듯 군데군데 부어올라 있었다.
관장은 온몸에 나 있는 칼자국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와 씨. 어쩌지? 어쩌지?”
“일단 피부터 닦아. 진성 총각. 가서 수건 가져오고 동건이는 물 떠와.”
집 안에 있는 두 개 욕실의 수건을 모두 챙겨왔고 장동건은 정수기의 생수통을 뽑아 들고 왔다.
김현희가 나현주의 몸을 닦고 둘이 관장의 몸을 닦았다.
두 사람 모두 이미 걸레가 되어 있던 옷은 몸을 닦으면서 다 뜯어내 버렸다.
나체의 두 사람을 대충 닦아낸 후, 각자 방 하나씩에 뉘어놓고 나현주 옆에는 김현희가, 관장의 옆에는 이진성과 장동건이 지키고 앉았다.
밤이 되고 다시 날이 밝아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밤새 신음하다 아침이 돼서야 편히 숨을 쉬던 관장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몸살이란 거. 진짜는 이런 기분이었군.”
그때 나현주도 저쪽 방에서 눈을 떴다.
터진 살은 어느덧 피딱지만 남기고 아물어 있었고 금 간 뼈들은 멀쩡하게 붙었다.
몸을 일으키고 스트레칭을 해본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와우. 죽었다 살아날 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