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38화 (38/145)

# 38

안산 스타디움

이불로 하체만 감싸고 나온 관장의 눈에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세사람이 보였다.

“큼.큼. 누가 나를 구한 거요? 현주씨는 어떻게 됐소?”

“어? 일어나셨어요? 와. 상처 다 나은 거 봐. 관장님 아픈 데 없어요? 와 끝내준다.”

관장은 다시한번 자신의 몸을 둘러봤다.

사시미칼에 벤 상처는 붉은 칼자국만 남고 갈라진 살은 다 붙어 있었다.

“신기하군요. 진화 과정에서 몸이 다 낫나 보오.”

“진화요?”

“아. 나랑 싸운 놈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진화라고. 두 번의 몸살을 겪었다고 하던데 무서운 놈이었소.”

관장이 막 어제의 일을 얘기하려는데 나현주도 방에서 나왔다. 역시 상처는 피딱지만 있을 뿐 거의 나아 있었다.

나현주도 식탁으로 다가와 관장과 함께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구해졌는지도 들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러니까 그놈은 기를 통해서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안다는 거네요? 관장님도 지금 그게 보이세요?

장동건의 물음에 관장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현희씨와 진성씨가 며칠 전까지의 현주씨 정도 능력인 것 같소. 현주씨는 크기로 보면 진성씨의 두배정도? 동건씨는 진성씨보다 작고.”

“에? 제가 더 작아요? 그럼 그 기의 성격이란거는요?”

“현희씨는 단단한 큰 바위의 느낌이랄까? 동건씨는 정적이고 차가운 듯한… 말로 설명이 어렵군요. 역시 사격에 관련된 성격 같소. 그리고 진성씨는…….”

이진성은 자신의 특성은 말하려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관장을 보고 물었다.

“왜요? 전 어떤데요? 뭐가 안 좋은가요?”

“그건 아니오. 진성씨는 여러가지 기운이 느껴지오. 내 날카로움도 있고 현희씨의 단단함도, 동건씨의 정적인 느낌도 있소. 거기에 탄력적이면서 폭발력이 느껴지는 기운도 있는데 이건 현주씨의 기운과 같소. 그런데 어느 것 하나도 우리 누구의 크기만큼은 아니오.”

“뭐야? 형님이 내 능력 뺏어 간 거야? 이 도둑. 돌려줘. 안 그래도 적은데 왜 내껄 훔쳐 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질러대던 장동건이 결국은 나현주에게 등짝을 맞았다.

“그런 건 아닐 거요. 아마도 주위 사람의 능력에 동화되는 것 아닌가 싶소. 저번에 베기도 그렇고 현주씨의 킥을 따라 한 것도 그렇고…….”

“와 씨. 뭐 그런 사기캐가 다 있어.”

“장점만은 아니오. 잘못하면 오히려 잡다하기만 할뿐, 제대로 하는 건 없다는 말이니까.”

“그런 거예요? 그럼 별거 아니네. 크크크.”

이진성은 장동건을 바라보며 이렇게 촐싹맞은 놈의 기가 어떻게 정적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다섯 사람은 각자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모두는 확실하게 전과 달라진 몸을 느끼고 있었다.

김현희와 이진성은 더 강해진 힘과 가벼운 몸을 실감했다.

나현주와 관장은 무술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진성의 코에는 앞의 사람들의 달큰한 냄새가 전보다 훨씬 강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저는 말이오. 이 진화의 끝이 어디인지가 궁금하오. 그런데 다음 단계는 힘들 것 같소. 어제 그 놈도 거기서 머물러 있었던 것을 봐서 좀비들을 잡는 것 보다 다시 한번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야 할 것 같은데 과연 그럴 기회가 있을지…….”

강해지는 데 대한 집착은 버렸지만, 궁금증까지는 없어지지는 않은 관장이다.

“아! 현주씨 부모님 소식은 뭔가 찾은 거 있어요?”

“맞다. 저희 부모님은 어쩌면 동탄 신도시로 가신 거 같아요. 그래서 그쪽으로 가 보고 싶은데…….”

말끝을 흐리는 나현주였다.

동탄까지는 먼 길이다. 혼자서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갈 이유도 없었다.

“내가 같이 갈 거야 이년아. 같이 갈 사람?”

“나도 같이 갈 수 있소. 어차피 수련을 위해 떠난 길, 이곳에 있을 이유도 없고 있을 곳도 없고.”

“저도 못 갈 이유는 없죠. 전 집도 강원도라서 집에 갈 수도 없어요.”

모두가 이진성을 돌아봤다.

“전… 일단 스타디움에 가보고요. 어머니가 거기 계신지 어떤지 모르고 또 계신다면 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노인네가 힘들지 않겠어요?”

망설이던 나현주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겠죠? 그럼 모두 같이 스타디움에 갔다가 거기서 헤어지도록 해요.”

“에구 우리 진상 총각 이제 못 보나? 섭섭하네.”

“형님. 잘 지내십쇼.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겠죠.”

“아니. 당장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래요?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해요. 성격들도 급해.”

스타디움은 나현주의 집에서 멀지 않았다. 고잔역으로 나가 대각선으로 8차선 도로를 건너면 됐다.

이번에도 역시 밤에 움직이기로 한 모두는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현주와 관장은 전날의 경험을 복기하며 지금까지의 동작과 비교분석했다.

무아지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했던 동작들이 머리속에 떠오른 나현주는 천천히 따라해 보면서 그 동작들을 의식속에 집어 넣었다.

관장은 심상수련을 통해 그때 에너지가 어떻게 움직였고 어떻게 폭발했는지 재현했다.

김현희도 방패를 어떻게 더 잘 쓸까를 고민했고 이진성도 베기와 돌려차기의 느낌을 되살려 연습해 봤다.

장동건은 창밖의 여러 지점의 여러 사물에 시선을 돌리며 조준하는 연습을 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조금씩 어두워질 무렵이었다.

타타탕 타타탕 탕 탕 탕~

“저 놈들 또 총질이네. 거의 한 달이면 총알도 다 떨어졌을텐데 어떻게 아직 저러고 있지?”

“이번에는 어디야?

“11시 방향 900m 정도요.”

장동건의 얘기를 들은 나현주가 가만히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더니 벌떡 일어서며 이진성에게 소리쳤다.

“거긴 스타디움 있는 곳 같아요.”

“예? 그럼 저 소리는 약탈자들이 공격하는 소릴까요?”

“그럴지도요. 어쩌죠?”

어쩔까 고민하며 서성거리던 이진성이 청령언월도를 집어들었다.

“형님. 지금 가려구요? 저도 같이 가요. 잠깐만요. 저 총알 좀 확인할게요.”

“아저씨. 저도 가요. 어차피 가야하는 길인데.”

“우리도 간다 진성 총각. 관장님 지금 갈거죠?”

“갑시다.”

“모두 고마워요. 위험할 수 있는데.”

“어차피 여기까지도 위험했어. 새삼스럽게 왜 그래?”

김현희가 이진성의 등을 토닥이고는 먼저 문을 열고 나섰다.

* * *

고잔역까지는 저녁 무렵의 짙은 건물 그늘을 이용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사거리에 도착한 그들은 길건너 대각선 방향의 스타디움 내부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듣고 멈췄다.

“여기서 저기까지는 너무 개활지예요. 건너가다가 재수없이 들키면 총알을 피할 방법이 없어요. 더 어두워진 후에 건너가야 안전해요.”

이진성의 마음은 급했지만 장동건의 말이 맞았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수는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는데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렀다.

하늘을 보고 앞을 보고 또 하늘을 보기를 반복하는 이진성 곁에 나현주가 다가와 조용히 손을 잡았다.

“아저씨. 진정해요. 아직 총소리가 나고 있다는건 대응하는 사람들이 있는거니까.”

나현주의 말에 조금은 진정된 이진성이 그제야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었다.

“지금 가요. 따라 오세요.”

장동건이 달려나갔다.

이진성과 관장은 자신들의 감각에 집중했다. 소리는 주차장 안에서 나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를 거의 50m 가량 접근 했을 때, 관장이 말했다.

“주차장 밖에는 사람 없소. 주차장 입구 안쪽으로 20여명, 세 명을 제외하고는 보통사람의 기요. 셋은 지금 진성씨의 반 정도의 기를 가졌소. 그리고 더 깊은 안쪽에 다수의 사람이 있소.”

“주차장에서 좀비 냄새는 안나요. 그런데 더 안쪽에 있는 것 같아요. 확실하지 않아요.”

다섯은 장동건을 따라 주차장 입구 벽에 등을 붙였다. 안을 슬쩍 들여다 본 장동건이 일행에게 말했다.

“군복 입고 있어요. 저쪽 안쪽에서 응사하는 사람들은 민간인 복장이구요. 탈영병들이 대피소 약탈을 하는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군인은 몇 명이오?”

“잠깐만요. 다섯? 여섯? 총구화염이 그렇게 밖에 안보여요. 총구화염은 응사하는 쪽이 더 많아요. 그런데 저쪽은 사격 실력이 영.”

“여기서는 확실하게 느껴 지는군. 전부 스물 셋이오. 동건씨. 총든 놈들을 제합하면 우리가 나머지를 제압하겠소. 할 수 있겠소?”

“음. 일단 여섯놈 잡고 소리치면 들어오세요. 다른 놈들이 총 줍지 못하게 견제사격 할게요.”

모두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동건이 몸을 낮추고 주차장 안으로 뛰어들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놈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갑자기 입구쪽에서 나는 총성과 함께 한 놈의 머리가 터져나가자, 놈들 중 셋이 입구쪽으로 총구를 돌리며 적을 찾았다.

타타탕~

장동건이 더 빨랐다. 다시 세 놈의 머리를 터트렸다. 하지만 남은 두 놈이 그 위치에서 보이지 않았다.

두 놈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데 총알이 날아 오기 시작했다.

“쓰벌. 훈련 잘 받은 놈들이네. 저런 놈들이 왜 약탈질이야.”

장동건은 기둥뒤에 숨어 기회를 노렸다.기둥에는 총알이 계속 날아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총소리가 다시 여섯이 되었다.

기둥 저쪽에서 들려오는 놈들의 소리에 집중했다.11시 방향에서 셋, 1시 방향에서 셋. 11시 방향의 놈들은 9시 방향으로 이동 중.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이대로 있으면 놈들 중 일부가 옆으로 올 것이다. 그럼 죽는 수 밖에 없었다.

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먼저 움직이기로 하고 다리에 모든 힘을 주고 기둥에서 나오며 뛰었다.

“야이 새끼들아. 그만 쏴.”

터져 나가는 기둥에서 튀어나오며 총구를 돌렸다.

10시 방향으로 보이는 셋이 장동건을 따라 총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놈들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느렸다. 마치 슬로우비디오 같았다.

방아쇠를 당겼다. 어쩐지 자신의 총알도 평소보다 느리게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한 놈의 머리가 터지고 다음 또 그 다음 놈의 머리가 터지는데 피가 튀는 것이 눈에 보이는것 같았다.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사이도 없이 두어 걸음을 더 움직였다.

총을 든 나머지 세 명이 보였다. 다시 한 발씩 세 번. 놈들의 머리가 모두 터졌다.

그 순간 천천히 움직이던 세상은 갑자기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따라가지 못한 장동건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외쳤다.

“들어와요.”

밖에서 총성이 멎기만 기다리던 네 사람이 장동건의 소리를 듣고 안으로 달렸다.

장동건은 바닥을 기어서 기둥 뒤로 숨고 있었다.

약 20m 앞에는 놈들이 총을 줍기위해 달리고 있었다.

“견제사격 하라고.”

이진성이 외치면서 앞에 보이는 놈에게 점프하면서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놈은 날아오는 사람에 놀랐는지 순간 주춤한 것이 삶의 마지막 실수였고 그것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진성은 방금 자신이 점프한 거리에 스스로 놀랐다.

도움닫기가 있었지만 거의 10m 이상을 날아왔던 것이다.

확실히 몸이 달라진 것을 느끼며 다음 놈을 찾았다.

한 놈이 떨어진 총의 거의 2m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놈까지의 거리는 약 3m.

눈 깜짝 할 사이면 놈은 총을 주울 수 있었다.

이진성은 한 손으로 청령언월도를 잡고 놈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막 총을 향해 손을 뻗으며 몸을 숙이던 놈은 자신의 목 앞으로 날아오는 중식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목이 잘려 버렸다.

장동건의 견제사격이 시작되었다.

무기도 없이 차량 뒤, 또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놈들은 아무리 잘 훈련 받은 군인이라도 네 사람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관장이 셋을 죽이고 나현주가 둘을 움직이지 못하게 뼈를 부터트렸다.

김현희는 방패로 셋을 기절시켰다.

나머지는 결국 항복하고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주차장 안쪽에서 군인들을 향해 날아오던 총알은 일행이 군인들을 공격하던 시점에 이미 멈췄었다.

그리고 군인들의 제압이 끝나자 안으로부터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 누구요? 꼼짝 말고 있어요. 움직이면 쏠겁니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거지꼴을 하고 피곤에 절어있는 40 ~ 50대의 아저씨들이었다.

일행은 나오는 사람들에게 두 손을 들고 적의가 없음을 표시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김현희가 외쳤다.

“야이 화상아.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러자 저쪽에서 한 아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나왔다.

“여보. 당신이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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