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슬금슬금 다가온 아저씨 몇 명이 바닥에 떨어진 총부터 챙겼다.
나머지는 군인들을 수색하여 무기가 될만한 것을 압수하고 있었다.
김현희의 전남편은 그녀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멀뚱멀뚱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때 한 명이 다가왔다.
“이 소장님 부인 일행이라고요?”
이 소장이라는 사람이 저쪽에서 김현희와 얘기 중인 전남편을 말하는 것 같아 일행은 고개만 끄덕였다.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저 두 사람 보니 이 소장님이 여기 있는 거 알고 찾아온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잔뜩 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남자에게 이진성이 한발 앞으로 다가갔다.
“저는 어머니 찾으러 왔어요. 다른 분들은 저랑 동행하신 분들이고요.”
“어머니요?”
이진성은 남자에게 어머니가 남긴 쪽지를 보여 주고 인상을 설명했다.
“음… 여기 오시긴 했나 보네요. 그런데 지금은 노인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요. 70대 키 큰 할머니라… “
“왜요? 여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여러분들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는데 여기 대피소 맞기는 한 겁니까?”
“맞기는 했죠. 지금은 대피소라 하기도 그렇지만…….”
남자는 잠깐 주저하더니 다시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네요. 단 안으로 들어가시려면 총은 맡겨 주세요. 저희도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습니다.”
말을 들은 장동건이 발끈했다.
“에? 왜요?”
“시설의 보안 검색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이 소장님 부인 일행이라지만 아직은 누군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저희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믿고…….”
“죄송하지만 들어가시려면 그렇게 해 주세요. 아니면 돌아가시고요.”
“와 씨. 이래도 되는 거야?”
장동건은 어쩔 수 없이 총을 그들에게 건넸다. 이진성의 어머니를 찾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검이나 이진성의 무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는 뒤돌아 다른 사람들에게 몇 마디 하고는 저 앞으로 보이는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위에는 무슨 뷔페라고 적힌 총탄에 다 부서진 간판이 있었고 문틀만 겨우 남은 정문이 있었다.
입구를 지나자 뷔페에서 가져온 듯한 테이블들이 쌓여있고 바닥에는 핏자국과 그 위를 굴러다니는 탄피가 그득했다.
그런 희망적이지 못한 모습에 이진성은 걱정을 더해갔다.
사람들을 따라 복도를 조금 더 지나 코너를 돌자 통유리로 된 뷔페 내부가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불이 들어온 몇 개의 전등이었다.
“어? 어떻게 여기는 전기가?”
모두가 놀라서 전등을 쳐다보자 앞의 한 사람이 뒤돌아보며 말해줬다.
“태양광 발전기가 있어요. 덕분에 전기와 물을 쓸 수 있죠.”
“물도 쓴다고요? 상수도는 여기 전기로 어떻게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지하수를 씁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기 이 소장님한테 물어보세요. 저도 모르니까.”
뷔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달라 보였다.
피곤해 보이지도 꾀죄죄하지도 않았다. 표정도 불안해하거나 공포에 질린 표정은 아니었다.
단지 불편함에서 오는 짜증스러운 그런 얼굴들이었다.
일행을 인도하는 사람들은 뷔페를 지나쳐 계속 복도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진 이진성이 가장 가까이 있는 아저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 어디 가는 건가요? 저기 뷔페에서 지내는 거 아닌가요?”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저쪽 방에 당분간 격리됩니다. 혹시나 괴물로 변할까 봐 그러는 거니까 양해해 주세요. 그리고 저 뷔페 안에는 우리도 못 들어가요. 저기는 저 사람들 구역입니다.”
별도로 격리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고 용납도 되었다.
이진성 자신이라도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뷔페는 다른 사람들 구역이라는 것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 구역이라뇨? 무슨 말입니까?”
“그건… 나중에 설명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남자는 입을 닫고 다시 앞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일행은 스타디움 남쪽의 피트니스클럽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이 안에 계세요. 그리고 거기 아저씨는 이리 오세요. 그 이상한 무기는 놓고 나와요. 어머니 계신지 가봅시다.”
이진성은 피트니스 장 안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바닥에는 닦이지 않은 핏자국이 있었고 사람들은 매트리스도 없이 침낭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구호 물품이나 음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흔히 TV에서 볼 수 있던 재난 대피소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확인하고 난 이진성은 안내한 사람을 돌아봤다.
“저희 어머니 여기 안 계시네요. 아까 뷔페에 계신지 모르는 데 가봐야겠어요.”
“거긴 못 간다니까요. 들어간다고 해도 지금은 안 돼요. 내일 낮에나 들어갈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밑도 끝도 없이 못 들어간다니?”
“그게… 일단 돌아갑시다. 내일 찾아볼 수 있게 해드릴 테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감만 커지는 이진성은 사무실 앞에서 덩치들이 남자들에게서 총을 수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또 뭡니까? 저 덩치들 조폭 같아 보이는데 여기 설마 조폭들이 관리하나요?”
이진성의 말에 안내하던 남자는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고 손가락을 입에 댔다.
“지금부터 쓸데없는 말 하지 마세요. 이 소장님 부인 일행이시니까 충고하는 겁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 가는 거야? 그래도 현희 누나 남편이 인심은 얻고 있나 보네.’
그들이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안에는 못 보던 사람들이 와있었다.
이진성을 안내하던 사람이 그중 젊은 한 사람에게 인사했다.
“의원님 오셨어요? 어쩐일로 여기까지?”
“오늘 저희를 구해주신 분들께 인사라도 드리려고 왔습니다. 하하하. 여기 다섯 분이 전부이신가요? 대단하십니다. 저희가 그놈들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는데 한순간에 제압하셨다고. 감사합니다. 하하하.”
억지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의원이라는 남자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청했다.
마지못해 악수를 해주며 대충 예예 거리는데 그가 나현주 앞에서 유독 주절거리며 눈빛을 빛내다 돌아갔다.
“뭐 하는 사람인데요? 의원이요? 무슨 의원이래요?”
장동건이 불퉁한 목소리로 이진성을 안내했던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 시의원이라네요. 저도 그것밖에 모릅니다.”
“뭐야? 겨우 시의원이었어? 모가지에 힘주는 게 국회의원이라도 되는 줄 알았네. 씨불. 돌아가면서 악수는 왜 해? 지가 여기 왕이야 뭐야?”
남자 앞에서 툴툴거리는 장동건이었다.
모두의 생각도 비슷해서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 역시 시의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장동건의 말에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있었다.
그때 김현희의 전남편이 들어왔다.
“여기는 제가 있을 테니까 김 선생님은 볼일 보세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택진이라고 합니다. 저기 저 사람의 남편입니다.”
“똑바로 소개 안 해?”
“… 전남편입니다.”
“아까 하던 얘기마저 해. 준영이가 미군 부대로 대피했다고? 그건 어떻게 알았어?”
“여기서 발이 묶이고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데 준영이한테서 전화가 왔어. 미군 부대 바로 앞에 있는 농가 몇 집이 부대 안으로 대피하기로 했다고. 그게 아마 19일인가 그랬을 거야. 노인들이 부대에 청원했던 게 받아들여졌다나 머라나? 그 이후는 전화가 안 터져서 몰라.”
“그럼 당신은 왜 여기 있는데?”
“그게 말이지…….”
안산시는 소행성 충돌 이후 살아남을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마련하고 지하수 정수 시스템을 구축했다.
파괴될 수도 있지만, 운이 좋아 남아 있게 된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 것이다.
이택진은 그 공사의 현장 책임자로 이곳에 왔었다.
소행성의 위협은 없어졌지만, 안산시는 이미 80% 이상 진척된 공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태양광은 약 100가구가 쓸 수 있는 용량이었다. 지하수 정수량은 일일 1만 명 정도가 소비할 수 있었다.
설비의 완공을 보고 안산을 떠났던 이택진은 3월 15일에 설비고장으로 다시 안산으로 와야 했다.
그리고 17일 자정부터 군이 도로를 막으면서 이곳에 발이 묶였던 것이다.
“아까 듣기로 뷔페에서 지내는 사람과 피트니스 장에서 지내는 사람이 나뉘어 있다고 하던데요. 여기 뭐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17일 날 그 난리가 시작되면서 18일부터 여기 사람들이 들어 왔어요. 들어오는 자격은 안산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과 그 동거인들이 자격이 된다고 했는데 어디 그렇게 원칙대로만 되나요? 목소리 큰 사람들도 들어오고 힘 좀 쓴다는 사람들도 들어오고…….”
다시 시작된 이택진의 설명에 의하면 17일부터 처음 며칠간은 시에서 정한 자격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파벌이 갈리기 시작했다.
이곳 시설에서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은 뷔페와 피트니스 장에 딸린 샤워 시설이었다.
그리고 뷔페의 대형 냉장고에는 식자재가 가득했고 다른 상온보관 식자재도 다 뷔페의 주방에 보관되어 있었다.
조폭들이 들어온 다음 날, 놈들은 뷔페를 점령하고 사람들에게 귀금속이나 쓸모도 없어진 돈을 받고 뷔페 안에 들여보냈다.
조폭들에게 줄 만한 물건이 없는 사람들은 피트니스 장에서 거주해야 했다.
조폭들은 피트니스 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는 조건으로 경비 업무를 맡겼다.
외부의 습격과 내부에서 발생하는 좀비의 대응까지 서민들에게 시켰다.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총 있잖아요. 저것들을 그냥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총은 어디서 난 거예요?”
“총은 우린 것이 아니예요. 조폭들이 관리하다가 총을 써야 할 때 우리한테 나눠 줘요. 그리고 총은…….”
총은 17일 밤 군인들이 철수하면서 예비군들에게 이곳을 사수하라고 넘져주고 간 것이었다.
그래 봐야 K2 소총 20정에 30발 탄창 100개였다.
그걸로 여태 버티고 있었고 이제 남은 총알은 200발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군인도 없이 예비군들이 가지고 있던 총은 조폭들에게 너무도 쉬운 먹잇감이었다.
조폭들은 뷔페를 점령하면서 총기도 모조리 손에 넣었다.
그리고 외부의 침입이나 좀비 발생 시 총과 총알을 나눠주고 일이 끝나면 다시 수거했다.
아까 이진성이 본 덩치들이 총을 수거하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총을 들었을 때 반항이라도 해 보지 그러셨어요?”
“저놈들이 총을 그냥 주겠어요? 가족을 인질로 잡고 줍니다. 어쩔 수 없어요.”
“아까 그 의원인지 뭔지 하는 놈도 뷔페에 있나 보네요?”
“그렇죠. 지금 시의원이 뭔 소용이 있다고 의원 의원 그러고 있는 건지 참.”
“와! 이 판국에도 완장질하는 것들은 여지없이 나오는구나. 뭔 인간들이 모이기만 하면 갑질하려고 지랄을 하는지 정말.”
이진성이 아까의 핏자국이 생각나 이택진에게 물었다.
“이 안에서도 좀비들 많이 발생했어요?”
“많았죠. 처음 한 3일 동안 여기 들어온 인원이 3000명은 넘을 겁니다. 그중에 자고 일어나면서 변한 사람들이 500은 넘는걸요?”
잠시 생각한 이택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뜯어먹힌 사람들도 아마도 1,500은 될 거고요. 그 이후로 이리로 오는 사람도 급격하게 줄었어요. 여기에 들어온 젊은 사람들도 많이 도망쳐 나갔고요. 지금은 여기 100여 명밖에 없어요.”
“지금은 더 발생 안 하나요? 그리고 그 좀비들은 다 어떻게 했습니까?”
“지금도 변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와요. 그래서 사람들이 잠을 잘 때는 전부 침낭에서 잡니다. 침낭 안에서 변하면 쉽게 못 움직이니까요.”
관장이 물었다.
“좀비들은 다 잡았소?”
“아뇨. 놈들은 북쪽의 탁구장과 서쪽의 사무동 쪽에 몰아넣었어요. 그러느라 사람들도 많이 죽었죠.”
이택진의 얘기를 들으며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조폭 세 놈이 들어왔다.
놈들은 나현주를 지목하고서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어이. 거기 쌔끈한 아가씨. 잠깐 우리랑 같이 가 줘야겠어.”
“하… 씨발. 나 좀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니? 지금 언니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냥 좀 가라.”
나현주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조폭 놈들은 나현주의 말을 듣고 서로를 돌아보더니 한마디 했다.
“뭐야 미친년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