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42화 (42/145)

# 42

갑자기 발걸음을 빨리하는 관장을 따라가며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관장님.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저 시의원 분위기가 안 좋소. 살기가 강하오. 그리고 뷔페 안의 몇 명도 마찬가지요.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소.”

“에? 우리가 뭘 어쨌다고 살기를 뿌려요? 잘못은 지가 해 놓고? 살려 준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 할 인간이?

“인간들이 그런 거란다. 동건아. 빨리 가기나 해.”

김현희는 뒤돌아 가려는 장동건을 잡아끌었다.

“혹시 아까 그 방에도 방범창살이 있소?”

“음. 그 방에도 있어요. 창으로는 못 나가요.”

“관장님. 우리가 먼저 공격할까요?”

이진성의 말에 관장은 생각 끝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저들을 먼저 공격하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공격할 수 있소. 그러다가는 여기 사람들을 다 죽여야 할지도 모르오. 가능한 한 조용히 빠져나갑시다.”

일행이 거의 달리듯이 걸어가자 구경나와 있던 사람들이 기겁하고 피트니스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시선을 돌리는 일행에게 러닝머신 앞의 통유리 벽이 보였다.

“저 유리 깨고 나가요.”

“서두릅시다. 뷔페 쪽에서 일곱 명이 방금 나왔소.”

장동건이 달리면서 유리에 난사했다.

투투투투투투~

꺄악~

피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총질을 했다.

피트니스 안의 사람들은 기겁하면서 구석으로 숨거나 있던 자리에서 엎드렸다.

하지만 그들은 깨진 유리로 달려가 몸을 날릴 뿐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피트니스 창을 통해 약 4m 높이를 뛰어내린 이진성이 사방을 둘러봤다.

좀비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사람의 기척도 없었다.

앞으로 달려나가 스타디움 관중석으로 통하는 경사로 밑으로 몸을 숨기고 막 뛰어내린 김현희를 불렀다.

“누님. 여기요.”

김현희에 이어 나현주가 오고 이택진이 왔다.

“관장님하고 동건이는요?”

“금방 올 거예요.”

* * *

시의원과 사람들은 피트니스장이 보이는 코너에서 더 전진을 못 하고 벽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처음 복도에서 가장 먼저 사격을 시작한 놈은 바로 장동건의 응수에 머리가 터져나갔다.

놀란 여섯 놈이 좌우로 흩어져 벽 뒤에 숨어 서로 눈치만 봤다.

그중 용감한 한 놈이 앞을 보려고 머리를 조금 빼는가 싶더니,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머리가 뚫리고 앞으로 푹 쓰러져 버렸다.

잠시 후 그 꼴을 보고도 용감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또 한 놈이 머리를 내밀다가 똑같은 꼴을 당했다.

“썅. 저놈 뭐야? 어떻게 하죠, 의원님?”

“잡아야죠. 저런 놈들이 여기 눌러앉으면 우리는 모든 걸 빼앗깁니다. 잡지 못하면 쫓아내기라도 해야 해요.”

“말씀은 알겠는데, 보여야 쏘죠.”

“손만 내밀고 막 갈겨봐요.”

숨어있던 한 놈이 손만 뻗어 연사로 갈기기 시작했다.

총알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지만, 놈은 그런지도 모르고 쏘고 있었다.

탄창이 비면서 철컥 소리가 나자 장동건이 바로 응사했다.

탕~

단 한발로 놈의 손은 끊어져 총과 함께 복도에 떨어졌다.

놈은 분수같이 피가 뿜어나오는 손목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관장님 이제 가셔도 될 거 같아요.”

장동건의 말을 들은 관장은 뚫린 유리로 달렸다.

관장이 뛰어내리자 뒷걸음질로 유리까지 온 장동건도 몸을 돌려 밑으로 뛰어내렸다.

총소리가 더 안 나자 시의원은 옆의 남자를 쿡쿡 찔렀다.

“봐 보세요.”

“에? 왜 저한테 그러세요?”

“용감하신 신 사장님이 앞장 서 주세요. 은혜는 갚겠습니다. 독방을 드릴게요. 그리고 여자도 넣어 드리겠습니다.”

신 사장이라는 사람은 죽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하지만 당장 총을 들고 있는 시의원의 말을 거역하기도 곤란했다.

터질 듯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한쪽 눈을 벽 밖으로 내밀었다.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다.

조금 더 용기를 내 얼굴을 다 내밀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조용한데요? 도망쳤나 봐요.”

“저기서 어디로 도망치겠어요. 아마 피트니스 기구들 사이에 숨었나 봅니다. 앞장서세요. 갑시다.”

“아 저… 다리가 떨려서…….”

“제 파텍필립 시계 하나 드릴게요. 좋죠? 어서 나가세요.”

신 사장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파텍필립이라는 소리에 혹했다.

용기를 내 복도로 나간 그에게 날아오는 총알은 없었다.

시의원은 다른 한 사람에게 눈짓해서 그 사람도 앞으로 나서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뒤에 바짝 붙었다.

그들이 도착한 피트니스장에는 겁먹은 주민들만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시의원은 사람들에게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묻기 시작했다.

같이 온 두 명은 도망친 사람들을 찾는다고 아무 생각 없이 구멍으로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탕 탕~

총성과 함께 두 놈의 머리가 뚫리면서 풀썩 쓰러졌다.

놀란 시의원이 자리에 앉아 주변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저 폭도들을 잡아야 합니다. 저놈들의 평화로운 우리 대피소를 망치고 있어요. 여기 이 총 드릴 테니까 두 분만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포복으로 시체들에 접근한 시의원이 총을 집어 눈에 보이는 가장 젊은 두 사람을 지목했다.

“거기 두 분. 이걸로 저놈들 견제만 해 주세요. 그럼 오늘부터 뷔페에서 지내게 해 드릴게요.”

시의원이 자기 총으로 두 사람을 겨누며 말하자 두 사람은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기어와서 총을 집어 들자 시의원은 다시 뷔페로 달렸다.

* * *

“다섯 죽이고 한 놈은 손을 끊었어요. 한 놈은 도망친 거 같아요.”

“살기 실린 한 놈이 방금 저곳에서 나갔소. 아까 시의원 그놈의 기운과 같은 놈이었소.”

관장은 잠시 지켜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뷔페 쪽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있소. 13명이오. 어쩌면 좋겠소?”

그대로 도망칠지 놈들을 잡을지 물어보는 관장의 질문에 이진성이 이택진을 보고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여기 계속 계실 거면 저놈들마저 정리해 드리고 갈게요.”

“예? 여기 안 있으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다른 곳으로 가셔야겠죠. 어딘가 안전한 곳을 찾아서.”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디 가실 곳이 있어요?”

김현희가 나섰다.

“우리는 동탄으로 갈 거야.”

“응? 거긴 왜? 거기 누가 있는데?”

“이 아가씨 부모님이 그쪽으로 가신 거 같아. 그래서 같이 가는 거야.”

“현희 씨는 여기 있겠소? 여기 남편분도 계시는데, 어쩌고 싶소?”

“제가 여기 왜 있어요? 그리고 전남편이라니까는. 전 동탄으로 갈 거예요.”

“이택진 씨는 어떻게 하고 싶소? 여기 있겠다면 저놈들을 정리해 드리겠소만…….”

“글쎄요. 지금 바깥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동탄까지 어떻게 가시려고들 그래요?”

“서울에서 여기까지도 왔어. 그리고 봐서 알잖아. 우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렇다고 해도 동탄까지 거리가 얼만데?”

“당신은 여기 있어. 같이 갈 이유가 없잖아. 당신이 왜 걱정이야.”

“아니 그래도 그게 아니지. 저… 관장님. 잠시 생각 좀 해도 될까요?”

“그러시오. 하지만 많이 기다릴 수는 없소.”

이택진은 김현희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저씨는 어쩔 거예요? 여기 어머니 안 계시는데…….”

“글쎄요. 모르겠어요. 여기서 돌아가셨다 해도 시신을 찾을 방법도 없고, 또 여길 떠나셨다면 어디로 가셨는지 알 방법도 없고…….”

“형님. 여기 있다 보면 소식 들을지도 모르잖아요.”

“그건 별로 안 좋은 거 같다. 여기 사람들이 별로 날 반겨줄 것 같지가 않아. 나도 같이 동탄으로 떠나야 할 것 같아.”

“그러면 우린 좋긴 하지만, 형님 괜찮겠어요?”

그런 이진성의 대화를 듣고 이택진도 따라나서기로 했다.

“저도 여기 있어 봐야 남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도 총은 전해 주고 가야 할 것 같은데요.”

“꼭 그래야겠소?”

“꼭은 아니지만, 저 사람들도 무기가 있어야…….”

그때 나현주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죠. 그리고 저 시의원 놈도 잡고 가죠. 그냥 가기는 좀 억울하네요.”

사람들은 각자 두 정씩 메고 있던 총을 바닥에 내려놨다.

장동건이 빠르게 총알을 모아 탄창을 채웠지만 30발 탄창 하나 반을 채웠을 뿐이었다.

“적지도 않지만 넉넉하지도 않네요. 저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놈들을 저격할게요. 완전히 밖으로 나오면 어두워서 힘들어요.”

장동건과 함께 일행은 게이트가 보이는 쪽으로 달렸다.

저녁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바로 그 지점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놈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몇 놈이 게이트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장동건은 모두를 한 번에 처리하려고 기다렸지만 다섯만 나오고 더 나오지 않았다.

“박 사장. 보이는 것 있어요?”

“아니 이쪽에는 없나 본데요? 나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둘이 더 나왔지만 교활한 시의원은 목소리만 들릴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일곱은 점점 더 거리를 벌리며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일단 저놈들 먼저 잡고 안에 놈들을 어떻게 해야겠어요. 더 나오면 한 번에 잡기 힘들어져요.”

“그러자. 쏴버려.”

이진성의 말과 동시에 장동건은 방아쇠를 당겼다.

일곱 발의 총성과 함께 밖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머리가 터져 쓰러졌다.

동시에 사격을 마친 장동건을 선두로 이진성과 관장 나현주가 달려나갔다.

타타탕 타타탕~

장동건이 달리면서 놈들이 못 나오도록 게이트 안쪽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놈들은 계속 날아오는 총알에 고개를 내밀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떨고 있었다.

“아 씨. 어떻게 좀 해 봐요.”

“뭐야? 씨? 이게 누구한테 욕질이야?”

그 와중에도 권위를 세우는 놈들이었다.

일행은 순식간에 게이트로 들이닥쳤다.

장동건이 들어서면서 바로 총구를 안쪽으로 돌리고 세 발을 날렸다.

한 발은 대머리 아저씨의 미간을 뚫고 들어갔고 다른 한발은 안경 아저씨의 안경을 깨면서 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 발은 목표했던 사람이 운 좋게 고개를 숙이면서 빗나가, 뒤에서 소리치던 시의원의 어깨를 뚫었다.

여섯 중에 순식간에 셋이 총을 맞자 남은 셋은 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놈들의 총구는 연사를 이기지 못하고 허공으로 들렸다.

그 모습을 본 셋이 안으로 달려들었다.

나현주와 관장은 달려오던 힘 그대로 점프해서 게이트 안쪽까지 날아간 뒤 벽을 차고 방향을 꺾었다.

공중에서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각자 한 사람들에게 날아들었다.

관장의 검이 눈을 감고 공중을 쏘던 배불뚝이 아저씨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나현주는 그 남자의 뒤에서 빈총을 딸깍거리고 있는 키 큰 아저씨의 목을 차버렸다.

이진성은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총구가 들린 아줌마의 배를 가르고 목을 잘라냈다.

순식간에 장내가 정리되고 남은 것은 어깨에 총을 맞은 시의원 하나였다.

나현주가 시의원을 향해 걸어갔다.

놈은 오줌을 쌌는지 바지가 흥건히 젖은 채 한 손으로 몸을 끌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햐. 이런 새끼가 모가지에 힘을 그렇게 주고 있었냐?”

“살려 주시오. 제발 살려 줘요. 살려면 주면 달라는 거 다 드릴게. 돈도 좋고 보석도 좋고 원하는 대로 드릴 테니까 살려만 주십쇼.”

“이 새끼 정신 못 차리네. 지금 돈, 보석가지고 뭐 할 건데? 그게 니 목숨 구해준다던?”

“그럼 뭘 원하시는데요?”

나현주는 잠시 놈을 째려보더니 말을 잘근잘근 씹어 뱉었다.

“니 목숨.”

그리고 놈의 머리에 발을 찔러 넣었다.

* * *

대피소의 모든 사람을 한자리에 모은 다섯과 이택진은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냥 살인자가 되어 가기는 싫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피를 뒤집어쓴 살인마일 뿐이었다.

말을 끝낸 관장은 이곳의 책임자를 뽑게 했다.

사람들이 주저주저하면서 한 사람을 지목했는데, 처음에 일행이 이곳에 들어올 때 안내했던 그 사람이었다.

“총은 뷔페에 모아 놨어요. 여러분들이 알아서 배분해서 쓰세요. 총알은 얼마 안 될 거예요. 그래도 저희는 최대한 성의를 보인 거예요.”

이진성이 짧게 말하고 돌아서 나가고 그 뒤를 다섯이 따랐다.

“저 사람 중에 또 완장질 하는 사람이 나올까요?”

“나올 거야. 사람은 손에 쥐똥만큼이라도 힘이 생기면 휘두르고 싶어지니까.”

일행은 오토바이를 숨겨 놓은 주공아파트로 향했다.

김현희와 장동건만이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고 나머지는 묵묵히 걷기만 했다.

절대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살인 때문은 아니었다. 대피소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사람들의 역겨운 행태가 신경을 거슬렸다.

그리고 이진성의 어머니를 찾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