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방에 혼자 있는 이택진은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옆집 마당을 내려보는데, 할아버지 하나와 할머니 둘이 그 마당으로 들어왔다.
“원장님. 나 어땠어? 자연스러웠어?”
“그게 좀 뜬금없긴 했는데 뭐 이미 지난 일. 저것들이 빨리 먹고 뻗기를 기다립시다. 이번에는 열스푼 넣었죠?”
“넣었지. 저번에 한 사람에 티스푼 하나면 된다고 해서 그것만 넣었다가 고생한거 생각하면 이그.”
“졸레틸 그 정도면 다 뻗어 버려야 하는데, 세상이 미치고 인간들도 미친 거야. 변해버린 개 고양이가 적량의 열 배 썼다고 했잖아. 안 변한 사람도 그 정도면 될 줄 알았지!”
“이번에도 안 뻗어 버리면 어째요?”
“그럼 엽총으로 쏴야지 뭐.”
“아! 저번에 총 맞은 것들 총알 빼내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러고도 남아서 최 박사님 이빨 깨졌잖아. 이번에는 총 안 썼으면 좋겠어.”
“그나저나 저것들 맛있다고 더 달라 그러지나 않을까 몰라. 호호호.”
“흐흐흐. 이번에는 젊은것들이 몇 있던데 더 맛있을지도 몰라요.”
“원장님. 그 졸라틸이라는거 원장님 병원에서 쓰는 동물마취제라며? 그거 먹고 뻗은 고기 먹어도 우리는 상관 없는 건가?”
“에이 상관없다니까. 피 빼고 먹으면 우리가 직접 먹는 양은 얼마 되지도 않아. 왜 먹다 뻗으면 우리가 잡아 먹을까 봐?”
“아니야. 무슨. 원장님 믿지 내가.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
창을 타고 들어오는 대화 소리는 기겁할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더 바짝 귀 기울이고 들었다.
그들의 대화는 저번에 잡은 어떤 사람은 고기가 질겼다는 둥, 어떤 여자는 지방이 너무 많았다는 둥 하더니 급기야 입이 벌어지는 얘기까지 나왔다.
“원장님 손자가 야들야들하고 좋았는데.”
“그러게 동네에 애기들이 남아 있지도 않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애기는 없고 말야.”
“그나저나 넷이나 되면 우리 일곱이 다 옮기기 힘들겠어.”
“토막 내서 옮기지 뭐.”
과연 인간의 대화인가 싶은 내용이 주저 없이 태연하게 입에서 나왔다.
마치 맛집에서 어제 먹은 파스타가 맛있다는 얘기를 하듯 편하게 말하는 저들이 소름 끼쳤다.
‘미친. 세상이 이렇게 됐다고 해도 저건 해도 너무하잖아.’
이택진은 1층으로 달렸다.
1층에는 다섯이 모여 그들이 준 것으로 보이는 고기를 보며 대화 중이었다.
급한 마음에 바깥에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못 하고 소리쳤다.
“그거 먹으면 안 돼.”
이택진을 멀뚱멀뚱 보는 다섯 사람을 지나쳐 마당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위에서 들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사람들은 새파랗게 놀랐고 감정표현이 없는 관장마저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 잡아먹겠다는 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잡아먹힐 뻔했네. 와.”
나현주는 페밀리플러스의 사시미칼이 생각나는지 팔에 돋는 소름을 벅벅 긁었다.
그걸 본 김현희가 고기 통을 던져 버리려고 들자 관장이 김현희의 손을 잡아 말렸다.
“잠깐만요. 저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고 그걸 버리든 말든 해야 할 것 같소.”
무슨 말인지 설명해 달라는 눈빛들을 돌아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옆집 세 사람이 우리가 약에 취하길 기다리는 것 같소. 우리가 여길 조용히 떠나면 저 사람들이 식인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오. 저 셋이 방해하면 셋만 처리하고 가면 되오. 그게 아니라 전부 처리하려면 우리가 뻗은 연기를 해서 한 번에 잡는 게 좋겠소만.”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보통 노인들인데 위험할 거는 없을 것 같소. 단 우리가 조용히 떠나면 아무런 위험도 없는 거고…….”
“그럼 떠날까요? 다른 곳에서 해지기 기다려도 되는 거고 여기 다시 올 일도 없는데.”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만 하고 있던 이진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처리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왜? 진성 총각. 저것들이 나쁜 놈이라고 해도 세상에 모든 나쁜 놈들을 우리가 응징할 필요는 없어.”
“그래요. 형님. 우리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그냥 가면 그만이에요.”
“그런 게 아니야.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나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야. 근데 있잖아.”
잠시 침을 삼키고 생각을 정리한 이진성이 말을 이었다.
“나 오늘 솔직하게 행복이란 거 느꼈거든. 몇 년 동안 루저로 살면서 사람들하고 부대끼고 그런 거에 대한 감각조차 잃었었거든.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서 잡담하고 킬킬거리고 그러는 동안 이렇게 사는 것도 좋구나, 행복 별거 아니구나, 사람이 산다는 게 이런 건가 하고 느꼈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가요. 그럼 되잖아요.”
“그러면 되는데 기분이 나빠. 저것들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다시 일깨워줬어. 기분이 너무 더러워. 이대로 가면 계속 찝찝할 것 같아.”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본 이진성이 한마디 덧붙였다.
“여러분은 아마 이해 못 하겠지만 그냥 기분이 그래요. 저도 알아요. 앞뒤도 안 맞고 말도 안 된다는 거. 그리고 이건 그냥 의혹인데 저것들이 만일 새로운 종이면 어쩌나 싶어서 확인도 하고 싶고.”
이진성의 말을 듣고 다들 조용히 있는데, 나현주가 이진성의 등을 툭 쳤다.
“그래요.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 까짓거 정의의 사도 한번 돼 보죠. 뭐.”
“그럽시다. 그럼 저것부터 구웁시다. 냄새가 나야 저것들이 우리가 먹은 줄 알 테니까.”
나현주와 관장이 동의하고 나머지도 ‘그렇다면 뭐’ 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건이는 아까 거기에 다시 가 있어. 엽총 든 놈은 위험하다 싶을 때 쏴 버려. 소리 나도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택진 아저씨는 2층에 가 계세요.”
고기를 구우며 한참 냄새를 풍겼다.
구워진 고기 대부분은 버리고 일부만 접시에 담아 거실 테이블 위의 먹던 음식 옆에 올려놓고 노인들이 들어오기 기다렸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놈들은 꽤나 신중했다.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거의 한 시간을 그 자리에서 잡담하더니 원장이라는 사람이 할머니 한 사람에게 말했다.
“가서 다른 사람들을 데려와요. 올 때 엽총 가져오라고 전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 클클클.”
그리고 원장은 다시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그곳에서 계속 잡담을 하며 기다렸다.
마침내 일곱이 다시 다 모였을 때는 두 자루의 엽총도 그들과 함께였다.
“자. 가 봅시다. 지금쯤 완전히 뻗어 있을 테니까.”
원장이 휘적휘적 걸어 나가고 나머지 노인들도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이 키득거리면서 원장을 따랐다.
“놈들이 움직이오.”
관장의 말에 이진성이 거실 창문 바로 앞 마루에 엎어졌다.
관장은 소파에 모로 누웠고 나현주와 김현희는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리고 좀 지나서 마당으로 노인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은 깨진 거실창 앞에 서서 들어올 생각을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을 보내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거실로 발을 들여 이진성 앞에 섰다.
‘지금 덮쳐야 하나?’
이진성이 기회를 보는데 원장이 옆 사람의 쇠꼬챙이를 잡더니 이진성을 푹 찔렀다.
저절로 움찔하는 몸을 억지로 힘을 주며 참고 있는데 이번에는 원장이 꼬챙이를 내려치는지 위에서 붕 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몸을 옆으로 굴리는데 얼굴을 스치고 꼬챙이가 마루를 찍었다.
“들켰나 봐요.”
한 바퀴 구르면서 급하게 일어서는데 영감의 꼬챙이가 다시 이진성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일어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원장이 외쳤다.
“내가 속을 줄 알았냐?”
뒤로 물러나며 꼬챙이를 피하자 엽총 든 두 놈이 총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장동건이 빨랐다
타탕~
총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뿌려진 피와 뇌수를 뒤집어쓴 할머니 둘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머지 둘은 들고 온 흉기를 던져버리고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살려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원장은 놀란 와중에도 소리를 지르며 이진성에게 꼬챙이를 계속 휘둘렀다.
“죽어라. 이놈아. 죽어. 죽으라고.”
원장의 꼬챙이를 몇 번 피한 이진성이 그만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영감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주먹은 깨끗하게 들어갔다.
뒤로 휘청휘청 밀려가던 영감이 중심을 잃고 앉은 방아를 찍고야 조용해질 수 있었다.
“하. 씨발. 영감이 기력도 좋네. 사람 잡아 처먹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팔팔해?
“그러게요. 형님. 난 관장님 2 보는 줄 알았다니까.”
구석에서 나오는 장동건의 농담에 피식한 이진성이 원장에게 다가가 꼬챙이를 발로 차버리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영감. 내가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 같아. 그러니까 기분 나빠도 그냥 들어.”
그때 뒤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나머지 네 명의 노인들 손을 어디서 가져온 끈으로 묶고 있었다.
“왜 사람을 먹기 시작한 거야?”
혹시나 새로운 종류의 좀비가 아닐까 한 질문에 원장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했다.
“살아야 하지 않겠나?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뭐라도 먹어야 하잖나?”
“아니. 손주까지 잡아먹었다며? 아무리 사는 게 급하다지만 인간이면 그러지 않잖아?”
“손주는… 이미 굶어 죽었네. 그 시체를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먹은 거고. 우리도 처음부터 사람을 죽인 건 아니네.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그 사람들을 먹기 시작한 거지.”
“피난이라도 가지 그랬소? 왜 여기서 굶고 있었소?”
“이보시오. 우리 같은 노인들이 가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갈 곳도 없고 체력도 안 되오.”
“아까 꼬챙이 휘두르는 거 보니까 체력은 좋기만 하드만.”
장동건이 한마디 하고 엽총을 들어 이리저리 보는데 나현주가 다가왔다.
“저쪽 신도시 쪽 사정 혹시 아나요?”
“그쪽은 군인들이 방어선을 만들어서 그 선 안으로는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들었네. 처음 한동안은 온종일 총소리가 나더니 요즘은 뜸하네. 아가씨 이모 집이 그쪽인가?”
“군인들이 방어선을 만들어요? 여기 군대는 멀쩡한가? 아니 여기 신도시가 그렇게 전략적 요충지인가? 왜 여기를 지키지?”
장동건의 혼잣말에 원장이 혹시라도 이대로 보내 줄까 싶어 최대한 아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화가 되는 동안 저쪽에 있는 사람에게 들었네만, 군대가 저쪽으로 모인 것이 21일인가 그렇다는군. 대령 하나가 오고 나서 며칠 동안 여기저기서 군인들이 모였다는군. 그리고 방어선을 치고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제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우리도 갈 생각을 안했지.”
원장의 얘기대로라면 원래 이곳으로 출동한 군인들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부대가 와해되고 남은 인원들이 대령과 연락이 닿아 이쪽으로 모여든 후, 터를 잡고 자기들의 요새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왜 하필 여기를?”
“그건 내가 알 것 같아요.”
이택진이 동탄 신도시의 지형을 설명했다.
신도시를 감싸는 타원형의 외곽도로만 막으면 그 내부는 몇 개의 아파트단지와 빈 택지뿐이라는 것이다.
방어하기 쉽고 경부고속도를 끼고 있어 유사시 이동하기도 쉽다.
“그럼 저 군인들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군인들은 아니란 말이군.”
“그래도 괴물이 아닌 주민들한테 해코지는 안 한다고 들었네. 괴물들을 소탕하고 식량도 나눠주고 한다고 들었는데…….”
“더 아는 게 있으셔?”
“더는 없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쉬셔.”
쉬라는 말을 듣고 무슨 의미인가 의아해하는 원장의 눈에 이진성이 거실로 들어가 파이프에 중식도를 붙인 물건을 집어 드는 것이 보였다.
“아니.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청룡언월도를 들고나오던 이진성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언제? 내가 봤을 때 댁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야. 최소한의 가책도 안 느끼잖아. 나도 좋은 놈은 아닌데 댁들은 살려두면 안될 거 같아.”
말과 함께 원장의 목은 떨어져 나갔다. 이어서 나머지 네 명의 목도 차례차례 떨어졌다.
노인들을 처리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진성에게 나현주가 다가왔다.
“이미 인간이 아닌 것들이에요. 마음 쓸 것 없어요.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군인들 어떻게 했을지.”
“정확한 건 가 봐야 알죠. 부모님은 무사하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저도 큰 기대는 안 할래요.”
두 사람은 어두워지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진성은 자기 자신은 아직 인간인가 하는 의문에, 나현주는 부모님 걱정에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