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동탄 좀비시
어둑한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하더니 해가 지고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비치고는 제법 굵었다.
“비 맞고 정찰 나가야 할까 봐요.”
“어쩌면 군인들 시야를 가려줘서 더 좋을지도 몰라요.”
“군인들이 우리한테 적대적일까?”
“저희가 받은 명령도 그렇고 안산에서도 그렇고, 만약에 우호적이라도 최소한 격리부터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 겠지?”
쓸데없이 격리되는 것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말없이 비를 바라보는 이진성을 놔두고 장동건이 이택진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 동네 지리 좀 아시죠? 여기서 어디로 둘러 보는 게 좋겠어요?”
“그게 말이지.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내가 좀 그려볼게.”
2층으로 달려 올라가 방을 뒤져 종이와 펜을 찾아온 이택진이 테이블 앞에 앉아 대략적인 약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가 그리는 약도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슥슥 선을 긋고 글자를 적어 넣던 이택진은 다 그린 듯 약도를 들고 잠시 보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여기란 말입니다. 여기가 아까 우리가 갔던 사거리. 군인들이 방어선을 쳤다면 이 길을 따라 쳤을 가능성이 가장 커요. 현주 씨 이모네는 여기 이쪽이고요. 이렇게 막으면 서쪽에서 오는 좀비들만 막으면 되거든요. 동, 북, 남쪽은 산이고 들이야. 그래서 그쪽에서는 거의 안 올 거니까.”
이택진은 동탄중앙로라고 적은 원형도로를 따라 선을 그으며 설명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도로를 경계로 방어하기 좋은 지역이었다.
“그럼 이쪽 지역은요?”
장동건이 경부고속도로 우측의 나현주 이모 집으로 표시된 지역을 가리켰다.
“그쪽은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병력이 충분하다면 거기까지 확보했겠죠. 그것도 가서 확인해야겠네요. 만약에 군인들이 그쪽에 없다면 우리는 이쪽 남쪽으로 돌아서 이 남북으로 뻗은 동탄 대로로 올라가면 바로거든요. 그런데 군인들이 거기도 있다면 이쪽 골프장 있는 산을 돌아서 가야 할지도 모르죠.”
운이 나쁘면 거의 두 배의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일단 차로 갈 수 있는 아까 그 사거리까지 가보죠. 거긴 아까 인적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장동건이 차로 움직일 것을 제안하고 총과 탄창을 확인하는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탕탕 탕탕탕 타 타 타 탕
드르르 드르르 드르르 드르르
탕탕탕
“뭐야 저것들 k3도 있어?”
지금까지 듣던 총성과 다른 기관총 소리가 섞여 들려온 것이다.
그리고 총소리는 거의 10분을 계속해서 나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되네. 거의 한 달이잖아요. 그런데 총알이 어떻게 여태 있지? 만약에 하루에 20발 탄창 하나씩만 써도 한 달이면 30개예요. 지금도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저 시간이면 최소 하나 이상은 썼을 거예요. 거기에 k3도 있단 말이죠. 탈영병들이 가지고 왔다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아요.”
콰아앙~
“어라, 수류탄까지? 우리 출동할 때 수류탄은 1인당 하나였는데?”
장동건의 말 대로라면 단순한 탈영병들만 모인 것이 아니란 말이었다.
그렇다고 동탄신도시가 부대 주둔지도 아니었다.
생각에 빠져있던 장동건이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영감이 대령이 오고 나서 군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어쩌면 연대 하나가 이쪽으로 도망쳐 왔을지도 몰라요. 아, 인원이 다 왔다는 게 아니고 연대장 이하 남은 간부들이 남은 무기들을 다 가지고 이쪽으로 와서 자리를 잡은 거 아닌가 싶어요. 그 이후에 공용통신주파수로 주위의 군인들을 불러 모았다면?”
가능한 추론이었다.
이미 와해한 군 조직에 간부들이 부대를 지키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충분한 화력이 있다면 민간인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
“위치는 어디야?”
“음… 저쪽으로 한 1km 약간 더?
장동건의 손가락은 동북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게 군인들끼리 교전인지, 아니면 좀비를 잡고 있는 건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에 좀비를 잡고 있는 거라면 저 정도 화력을 퍼부을 정도라면 좀비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건데… 우리가 여태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좀비 떼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이진성의 말을 듣고 나현주가 덧붙였다.
“구로에서는 우리가 자꾸 죽이니까 4~5 군집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안산에서는 총이 사람들 손에 들어가니까 좀비들도 10군집 이상 모여 돌아다녔고요. 사시미칼이 한 얘기도 자기가 죽이면 죽일수록 나가서 많이 만들어 왔다고 했고요. 여기는 군인들이 강력하니까 어쩌면 좀비 군집이 더 클 수도 있어요.”
“그럼 한 달 동안을 죽이고도 아직도 엄청나게 남았다는 말이야?”
“어쩌면 저것들이 여기 주민들을 계속 좀비로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택진은 좀비가 좀비를 만든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사태가 발생하고 대피소 내에만 있었던 그는 스스로 변한 사람밖에 보지 못했다.
그의 의문에 나현주는 검붉은눈이 빨간눈이 부족하면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기만 해서 빨간눈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설명을 해 줬다.
“그럼… 저것들은 군인들한테 계속 죽어 나가자 이 동네 주민들을 먹지 않고 좀비들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거죠? 여기 군인들은 그걸 모르나?”
“군인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저도 누나하고 형한테 듣고 알았거든요.”
“전 그걸 구로에서 직접 봤거든요. 그리고 안산에서 사시미칼이 실제로 그렇게 좀비 숫자를 불렸다고 했고요.”
“집 안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한 달이면 먹을거리 찾으러 목숨 걸고 밖으로 나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하긴…….”
아직은 군인이 적인지 아닌지 몰랐다. 최악의 경우는 군인과 거대 좀비 떼를 전부 상대하는 것이었다.
군대가 적대적이지는 않길 바라면서도 일행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태로 조금 더 기다리자 총성은 멎었다.
“가 볼까요?”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온 일행은 승합차에 올랐다.
비 오는 밤에 헤드라이트까지 끈 차량은 소리가 아니면 들키기 힘들었다.
전원주택단지 밖으로 나온 승합차는 이택진이 지목한 곳을 향해 서행으로 접근했다.
낮에 사거리에서 올라왔던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처음 만난 사거리는 깨끗했다.
파괴된 흔적도 별로 없었고 시체가 널브러져 있지도 않았다.
사거리 건너 좌우는 아파트단지였는데도 도망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불빛이 보이는 집도 없었다. 동네는 완전한 암흑에 잠겨있었다.
우회전하여 조금 더 가자 저 앞에 사거리가 보이는 곳에서 이택진이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기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한 200m면 아까 제가 말한 그 도로거든요. 저쪽에서 이쪽이 보일 수도 있으니까.”
“반경 50m 내에는 좀비 없어요.”
“사람도 없는 것 같소.”
비를 맞으며 조심스럽게 전진한 일행은 사거리에 있는 주유소로 스며들었다.
주유소 정면으로는 한 블록 너머의 모닥불이 보였다.
“저기가 교전했던 지역 같은데요. 불피우고 있는 거 보니까 군인들끼리 교전은 아니었나 봐요.”
전방으로 좌측은 학교 같은 건물이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아파트단지였다.
아파트단지보다는 위험이 적은 학교 담장을 따라 일행은 소리 죽이고 전진했다.
모닥불을 약 50m 앞둔 지점에서 모닥불 불빛에 비친 도로 위가 보였다.
도로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최소 50 이상은 되어 보였다.
일곱 명의 군인들이 모닥불 주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였지만 멀어서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저씨. 안 들키고 도로를 넘어가는 건 힘들겠어요.”
“새끼들 자리 잘 잡았네.”
“형님. 여기는 일단 물러나요.”
다시 사거리로 나온 일행은 남쪽으로 길을 따라 움직였다.
내려가며 나오는 사거리마다 한 블록 너머에는 모닥불이 보였다.
군인들이 동탄중앙로라는 원형 도로를 방어선으로 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더 내려가 남쪽의 공터에 도착한 그들은 경부고속도로 너머까지도 약 200m 간격으로 모닥불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가 본 것만 10개 포스트에요. 한 곳에 일곱만 있어도 70명, 빙 둘러 있다면 적게 잡아도 경비병만 150명 이상이라고 봐야겠네요. 교대 인원이 없다고 해도 내부에 있을 인원까지 하면 아무리 적어도 200은 넘겠어요.”
“이쪽이 힘들 것 같으면 북쪽으로 반월 통해서 기흥에서 내려오는 길도 있어요. 그쪽이면 논밭 사이로 오는 거니까 어쩌면 더 쉬울지도 몰라요.”
더 나은 경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돌아오는 그들이 아까의 주유소를 약 40m 앞에 뒀을 때였다.
처음 봤던 포스트 쪽에서 차량이 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승용차 두 대가 주유소로 들어가 버렸다.
“어라? 저것들은 또 뭐야?
차에서는 군인 여덟 명이 내렸다.
여섯이 사주경계하고 둘은 주유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사무실의 불이 켜지는 것이 보였다.
“이동식 발전기를 켰구먼.”
이택진의 말에 이진성도 관장이 아파트공사장에서 켰던 발전기의 소리가 생각났다.
“뭐 하려고 저러는 걸까요?”
“기름 가지러 온 것 같소. 주유기 모터를 돌리려고 발전기를 켠 것 같은데.”
“불빛에 소리에… 위험할 것 같은데.”
잠시 후 사무실에서 나온 둘이 차에서 20ℓ 기름통들을 꺼내면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좆같아서 니미. 이 비 오는 밤에 왜 기름은 퍼 오라고 지랄이야 지랄이.”
“김 병장님. 참으십쇼. 까라면 까야지 우짜것슴까?”
“씨발, 지금 군대가 뭔 소용이야. 패잔병들 모여 있는 주제에.”
“뭐 그래도 우얌까? 여 아니면 어디 갈데도 엄꼬.”
“에이 씨발. 확 다 쏴 죽여 버릴라.”
“그런 말 마이소. 안 그래도 삐딱한 아들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서라 분위기 이상타 아임까?”
“너 그거…….”
갑자기 소리가 작아지면서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일행은 비를 맞으며 도로 구석에 납작 엎드려 녀석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기를 몇 분, 이진성의 코로 시큼한 냄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쪽에서 약 40, 길 건너 동쪽 아파트에서 약 30, 그리고 우리 지나온 남쪽에서도 그 정도 오고 있어요. 거리는 이제 50m 정도 구요. 어쩌죠? 차로 가려면 저 군인들 지나가야 하는데?”
“와. 한 번에 100마리요? 이 동네 형님네 안산보다 더하네. 근데 이것들이 마치 알고서 포위하는 것 같네.”
“그럴지도 몰라. 저것들 사냥을 어떻게 하는지 본능으로 알더라고.”
주위를 둘러보던 관장이 바로 옆의 2층짜리 자동차 정비소로 들어가며 말했다.
“일단 저기에 숨는 게 좋겠소. 2층에서 상대하면 올라오는 놈들만 상대하면 되니까.”
관장이 먼저 움직이고 일행이 관장의 뒤를 따르는데 이진성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좌, 우에서 오는 것들 방향이 주유소로 향하는데요. 우리는 뒤쪽 놈들만 피하면 될 것 같아요.”
다행히 정비소의 2층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간 일행이 창에 붙어 놈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길 건너 아파트의 앝은 담을 넘어 도로로 뛰어들며 주유소로 달리는 놈들이 보였다.
그리고 정비소 바로 밑에서 앞으로 달리는 놈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 지나가는 놈들이 혹시 올라올까 쳐다보고 있는데 놈들은 이진성 일행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만 달렸다.
그런 놈들의 제일 후미에는 검붉은눈 열두 마리가 천천히 걸어서 따르고 있었다.
“우리 있는 거 모르나? 이 정도 거리면 냄새 맡았을 텐데?”
마치 이진성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말하는 그 순간에 그들 중 몇이 2층을 힐긋 보며 걸어 나갔다.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무리 놈들이 검붉은눈이고 이쪽이 달큰한 사람이라도 이상했다.
“저것들 작정하고 저 군인들한테 가는데요? 우리는 신경도 안 써요. 도와주지 않아도 되려나?”
그리고 이진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