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46화 (46/145)

# 46

“여덟이잖아요. 충분히 다 잡습니다. 신경 쓰지 마요. 형님.”

“저기 저 친구들이 너 같이 할 수 있을까?”

“에이, 몇십 미터 안에 엄폐물도 없이 훤히 보이는 것들을 설마 못 잡을까요. 그리고 지원도 올 수 있구요.”

“그런가? 그럼 끝날 때 까지 맘 편히 기다릴까?”

사람들은 저마다 편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리고 이진성은 냄새로 느껴지는 움직임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계하기를 잠깐, 좀비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동쪽 아파트에서 오던 놈들은 총소리가 나자 산개하며 총알을 피해 흩어졌지만, 착실히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반면에 서쪽에서 오던 놈들은 주유소 뒤편에 모여서 대부분이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에 남쪽에서 올라간 놈들도 반 정도만 앞으로 나가고 반은 골목을 통해 주유소 뒤로 이동했다.

마치 보이는 곳에서 탄약을 소비시키고 나중에 덤비려는 것 같았다.

“동건아. 쟤네 탄약 얼마나 남은 거 같아?”

“얼마나 가져 왔는지 모르지만 150발 가져 왔다고 가정하면 반쯤 남았으려나? 근데 생각보다 엄청 못 쏘는데요. 예광탄 막 날아가는 거 보니까 헛방도 엄청난가 봐요.”

“그런가 봐. 좀비가 아직 60마리 정도 남았어. 그리고 지금 일부가 주유소 뒤로 돌아서 북쪽으로 가고 있어.”

“사방에서 둘러싸는 건가?”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총성이 줄기 시작했다.

“벌써 다 쏜 놈도 있나 보네. 좀비는 얼마나 남았어요?”

“아직 35. 근데 들큰시큼한 놈들이 21이야.”

“헐. 빨간눈은 총알받이네.”

총소리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는 아직도 스물일곱이 느껴졌다.

군인들의 패배가 눈에 보였다.

“저 친구들 살기는 힘들겠어.”

“저기 끝내고 이쪽으로 오진 말아야 할 텐데요.”

그때 북쪽의 놈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유소 뒤쪽의 놈들도 남쪽으로 빠르게 내려오더니 일행이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정비소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런. 놈들에게 당했네요. 저놈들 우리까지 한 번에 잡을 작정인가 봐요. 여기 둘러쌌어요.”

“군인들도 이쪽으로 밀려오고 있소. 둘은 기가 불안정해지는 게 경련 중인 거 같소.”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장동건이 외쳤다.

“네 명이 둘을 끌고 와요. 사격은 둘만 하는데 거의 맞는 게 없어. 저 병신들 저걸 못 맞추냐. 와. 진짜 여기 포위됐네.”

말과 함께 장동건이 바로 아래에서 길을 막고 있는 놈들에게 사격을 시작했다.

군인들이 오는 길을 뚫어줘서 그들이 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 주려는 의도였다.

정비소 밑에서 군인들을 기다리던 놈들은 갑자기 날아오는 장동건의 총탄에 순식간에 십여 마리가 죽었다.

놈들이 죽는 동안 몸을 날린 운 좋은 놈들은 건물 사이로 들어가 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주유소에서 정비소까지 오는 길은 뻥 뚫렸다.

좀비들에게 밀려 겨우겨우 정비소 앞까지 온 군인들은 갑자기 위에서 터져 나오는 총성을 듣고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대가리가 터지는 좀비들과 몸을 골목 안으로 던져 도망치는 놈들이 보였다.

정비소 건물의 2층에서 불을 뿜는 총도 하나 있었다.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들은 정비소 안으로 들어왔다.

좀비들은 장동건의 사각을 통해 하나둘씩 정비소로 들어왔다.

그렇게 들어온 17마리의 좀비들이 군인들을 구석으로 몰았지만, 군인들에게는 이미 총알이 없었다.

“에구. 내려가야 될 거 같아요. 검붉은눈 열다섯이에요. 빨간눈 둘이고요. 후딱 처리하고 가죠. 택진 아저씨는 동건이랑 여기 계세요.”

일어서는 이진성을 따라 관장과 나현주 김현희도 같이 일어나 계단으로 향했다.

긴장감이라는 하나도 없이 1층으로 내려가는 그들을 이택진은 여전히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덤비지 않는 좀비들과 대치하고 있던 군인들은 갑자기 2층에서 발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무의식적으로 빈 총을 돌린 그들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분명히 민간인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내려오는 아저씨와 아줌마는 이상한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검을 든 아저씨와 맨몸의 아가씨도 보였다.

분명히 2층에서 사격이 있었기에 군인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저씨, 아줌마가 내려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숨어요. 여기 위험해요. 다시 올라가요.”

소리치는 그들을 한번 돌아본 일행은 계단에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인들은 5분이 약간 안 되는 시간 동안 사람의 몸놀림이 아닌 두 사람과 한 명의 엄청난 파워의 아줌마, 그리고 이상한 무기를 휘두르며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한 남자가 피를 뒤집어쓰며 좀비들의 몸을 분해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

“김 병장님. 저 사람들 사람 맞지예?”

“무기 들고 싸우는 거 보면 사람 맞는 거 같은데…….”

“혹시 또 다른 괴물 아임까?”

“씨발 몰라. 살았나 했더니… 씨발.”

좀비들을 다 처리한 네 사람이 군인들을 향해 다가왔다.

군인 넷은 경련하는 둘을 끌고 더 물러날 곳도 없는 벽에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오지마. 씨발. 오면 죽인다. 진짜로 죽일 거야.”

철컥 소리만 나는 빈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병장과 잔뜩 긴장한 셋을 보며 네 사람은 기가 막혔다.

“저기요. 진정해요. 우리 위험한 사람 아니에요.”

이진성이 손을 들고 천천히 한발 다가가자 병장은 기겁하며 난리를 폈다.

난감한 이진성이 청룡언월도를 내려놓기 위해 천천히 팔을 내렸다.

놈은 그걸 보고 더 지랄하더니 앞으로 달려 나와 대검도 없이 총검술 동작으로 이진성을 찔러왔다.

“이런 미친 새끼가?”

차마 죽일 수는 없어 청룡언월도로 찔러오는 총을 내리쳐 막아냈다.

그러기를 몇 번, 짜증이 올라오는 이진성의 귀에 지금까지와 다른 쇳소리가 들렸다.

쩡~

그리고는 저만치 날아가는 중식도의 날 한쪽이 보였다.

이진성은 날아가는 파편을 보는 순간 꼭지가 돌아버렸다.

놈에게 뛰어들며 마치 이전의 나현주가 하듯 킥과 펀치를 동시에 꽂아 넣기 시작했다.

놈은 몰아치는 이진성의 주먹과 발을 막지도 못하고 전부 맞더니 쭉 뻗어 버렸다.

“아 씨. 이거 어쩌냐.”

남은 셋은 정신이 없었다.

남자는 자기네 병장을 패 죽여(?) 버리고 파이프에 달린 칼을 부여잡고 쭈그려 앉아 구시렁대고 있었다.

좀비보다 더 이상한 그에게 잔뜩 쫄은 세 사람은 그 남자가 갑자기 자신들을 돌아보자 그대로 무릎 꿇고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헐, 이봐요. 안 죽인다고요. 내가 왜 죽어요?”

“저기… 죽인 거 아임까?”

상병 계급장이 뻗어 있는 병장을 가리키며 죽은 거 아니냐 물었다.

순간 이진성도 죽은 거 아닌가 걱정이 돼서 놈에게 달려가 숨을 확인했다.

다행히 놈은 숨을 쉬고 있었다.

“안 죽었어요. 안심해요.”

뒤에서 이진성과 군인들의 헛짓거리를 보고 있던 나현주가 한숨을 푹 내쉬고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걸 본 세 사람은 이진성이 다가오는 것보다 더 기겁했다.

“으악. 귀신이다.”

그들에게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여자가 피를 뚝뚝 흘리면서 다가오는 모습이 앞의 남자보다 훨씬 무서웠다.

“나?”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황당한 듯 묻는 나현주에게 놈들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현주는 순간 놈들을 패 죽일까 고민해야 했다.

결국 김현희가 앞으로 나섰다.

놈들에게는 방패로 좀비들을 펑펑 날려버리고 베어버리던 아줌마도 만만치 않았지만 다른 셋보다는 훨씬 사람같이 보였다.

“총각들. 거기 뻗어있는 두 사람 말이야. 얼마 안 있으면 좀비로 일어날 텐데, 지금 보내 주는 게 어때?”

그제야 자신들이 잡고 있는 경련하는 두 병사를 본 셋은 서로 얼굴을 돌아봤다.

“좀비로 일어난다니요?”

멀뚱멀뚱 바라보는 그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지난 한 달 동안 방어선 내부에만 있던 그들 역시 이택진과 같았다.

그들은 스스로 변하는 좀비만 보고 처리해 왔던 것이다.

김현희는 간단하게 설명했고 그 설명을 들은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래의 소란이 끝나자 2층에서 내려온 장동건과 이택진까지 모인 일행은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그냥 두고 가죠?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죠.”

“그렇긴 한데, 저들한테 내부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안으로 들어가기 좀 더 쉬워질 거 같은데. 어때요 아저씨?”

“저는 현주 씨 의견에 동감.”

결국 놈들을 설득하기로 한 여섯이 놈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그동안 기절에서 깨어난 병장까지 포함한 넷은 처음 보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고 결국 둘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동안 네 사람이 내리는 빗물에 몸을 조금이라도 씻어 보려고 밖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그걸 본 네 군인은 저들이 분명히 정상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경련하던 두 놈이 서서히 경련을 멈추기 시작했다.

“야. 김 상병. 이 일병. 정신 좀 들어?”

두 병사를 부여잡고 흔들어 대는 네 사람을 보며 장동건은 총구를 서서히 들었다.

넷은 깨어나는 둘을 보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잠시 후 한 놈이 새빨간 눈을 뜨면서 눈앞에 있는 놈의 목에 이빨을 박으려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앞에 있는 놈은 소리를 지르며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탕~

총알은 한 병사의 코앞을 스치듯 날아가 놈의 미간에 박혀 들어갔다.

“으악.”

넷은 나머지 하나도 빨간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다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제 믿겠어요?”

놀라서 정신이 없는 그들에게 장동건이 물었지만, 그들은 한참 만에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 몇 마디 물어보는데 또다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북동쪽이네요. 오늘만 벌써 두 번째네. 아저씨들. 보통 이렇게 습격이 많아요?”

“네 보통 하루에 서너 번 정도요. 없는 날도 있긴 해요.”

“한 번에 몇 마리씩 몰려와요?”

“저희는 직접 보지는 못해서… 듣기로는 한 번에 적으면 5~60. 많으면 100 이상?”

“와. 도대체 이 작은 도시에 얼마나 많은 거야?”

이택진이 거기에 대답했다.

“여기 주민 반만 변했어도 10만은 넘지 않을까요? 내가 알기로 동탄 인구가 20만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설마 반까지? 택진 아저씨는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아요?”

“여기 도시가스 설비공사 때문에 얼마 전에 왔었거든.”

“적어도 5만 이상은 있다고 봐야겠네요. 근데 이것들은 어떻게 밖으로 다 나왔지? 대부분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제가 알기로…….”

그들의 마지막 말에 상병 하나가 뭔가 말을 하려는데, 이진성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또 몰려와요. 여기 이 사람들한테 꿀 발라 놨나? 남쪽에서 70 정도. 저 길 건너 아파트에서 40 정도. 동건아 총알 얼마 있어?”

“얼마 없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산에서 다 가져올걸. 30발 탄창 두 개밖에 없어요.”

“피하는 게 좋겠어요. 거기 군인 아저씨들. 돌아가기 전에 우리 얘기 좀 했으면 하는데, 일단 우리랑 좀 같이 가 줘야겠어요.”

넷은 저항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여섯과 함께 길을 나섰다.

승합차까지는 약 300m, 놈들은 아직 약 70m 밖. 어쩌면 오른쪽에서 오는 놈들과 만나기 전에 승합차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 불안한 네 군인을 빼고 나머지 여섯은 편안한 마음으로 달렸다.

승합차까지 약 100m 정도 남겨 뒀을 때였다.

뒤의 놈들은 아직 거리가 유지되고 있었고, 오른쪽 놈들은 이미 도로로 나와 약 30m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선두의 이진성이 왼쪽의 건물들 사이로 뛰어들며 외쳤다.

“제기랄, 전방 60m에 50.”

이진성의 앞에 3층짜리 건물이 하나 보였다.

1층은 주차장이고 계단으로 2층으로 들어가는 식당 건물이었다.

계단으로 뛰어올라 보니 출입문은 통유리로 된 자동문이었다.

놈들의 선두는 이미 20m 정도까지 접근해서 다시 내려가기도 곤란했다.

쩡쩡~

날이 부러진 청룡언월도는 유리를 깨지 못했다.

다시 한번 내리치려는데 뒤에서 총성이 나면서 유리가 우수수 무너져 내렸고, 그들 열 명은 가까스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막아!”

4인용 식탁 하나를 들고 문 앞으로 다시 달려가는 이진성의 눈에 놈들의 선두가 계단을 오르는 것이 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