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47화 (47/145)

# 47

“엎드려.”

뒤에서 김현희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이진성은 가져온 테이블을 횡으로 문틀에 걸치고 그 뒤로 쪼그려 앉았다.

그 위로 김현희의 방패가 세워지더니 장동건의 총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뒤로 빠져.”

겨우 자동문 하나 넓이의 공간을 막는 것은 김현희와 장동건으로 충분했다.

방패로 놈들을 밀어내고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 오려는 것들은 장동건이 하나하나 잡아 나갔다.

“탄창 갈아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잠깐의 화력 공백을 김현희에게 알려주며 탄창을 간 장동건이 다시 놈들에게 총을 겨누는 순간이었다.

오른쪽의 대형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 나가며 놈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3층으로 가세요.”

이택진을 떠밀며 이진성과 나현주, 관장이 들어오는 좀비들에게 달려갔다.

이택진과 네 명의 군인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봐야 했다.

이진성은 반 조금 넘게 칼날이 남은 청룡언월도로 놈들을 찍어갔다.

약 30cm가 20cm 정도로 줄어든 것뿐이지만 타격의 감부터가 달라졌다.

더 정확하게 거리 조절을 해야 했고, 타격 순간에 더 큰 에너지를 폭발시켜야 했다.

그 감각을 제대로 찾지 못해 처음 놈은 세 번의 타격에서야 겨우 목을 잘라낼 수 있었다.

관장은 시종일관 무표정했지만, 좀비들이 또 하나의 창을 깨고 쏟아져 들어오자 조금은 마음이 급해졌다.

넓지 않은 공간에 좌식 테이블이 깔려 있어 발을 움직이기 불편했다.

이번에 깨달은 최소한의 움직임의 검술을 펼쳐 보지만 밀려 들어오는 놈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마치 막혔던 파이프가 터지며 쏟아지는 물 같았다.

더군다나 옆에 있는 이진성은 아직 부러진 날에 익숙해지지 않아 가끔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관장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했다.

나현주는 이진성과 관장을 피해 들어오는 놈들을 막아야 했다.

아직은 많지 않았지만 움직여야 할 범위가 넓었다.

워낙 탄력 좋은 몸이라 테이블 위로 뛰어다니며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좌우로 몇 미터씩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놈들의 뼈를 박살 내야 했다.

밀려오는 놈들은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40여 마리의 대가리를 터트린 장동건의 총이 급기야 철컥 소리를 냈다.

“누님. 빠져요. 총알 없어요.”

뒤에서 장동건이 물러나는 것을 느낀 김현희가 방패를 크게 휘둘러 놈들을 쳐낸 후 재빠르게 뒤로 빠졌다.

두어 걸음 물러서서 깨진 출입문 틈으로 들어오는 놈들에게 방패날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니들은 다 죽었어.”

김현희도 약간은 긴장했는지 조용히 싸우던 평소와 달리 안 하던 말을 하며 놈들의 목을 끊고 갈비뼈를 부숴댔다.

그런 김현희가 걱정되는지 계단 입구에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택진을 잡아끌고 장동건이 계단을 오르며 소리쳤다.

“계단까지 물러서세요. 지금 간격이 너무 넓어요.”

세 곳으로 들어오는 놈들이 사람들 틈으로 빠져나오면서 나현주가 한 번에 서너 놈씩 상대해야 했다.

일격에 하나를 잡지 못하면 뒤의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펀치 하나, 킥 하나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그런 나현주는 또 온몸이 피로 젖어 갔다.

안산에서 두 번째 진화를 거친 후, 동작의 비효율을 많이 걷어 냈었다.

그렇지만 한 번에 서넛씩 덤비는 놈들을 매번 한 번의 타격으로 죽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시에 주먹과 발을 써야 했고 그럴 때면 파괴력이 분산돼서 치명상을 못 입힐 때도 많았다.

이진성은 몇 번의 위기를 가까스로 비켜났다.

몸에는 놈들의 손톱에 뜯기는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물리지는 않고 피해냈다.

그렇게 겨우겨우 열 두세 마리 정도를 잡으면서 타격 감각도 찾기 시작했다.

일격참의 실패확률은 급속하게 떨어져 이제 다시 마음먹고 날리면 거의 정확하게 놈들의 대가리를 쪼갤 수 있었다.

전보다 집중한 결과인지 나아가고 빠지는 거리조절이 날이 깨지기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속으로 기뻐하는데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뒤를 보자 나현주에게 몸을 던지는 한 놈의 등이 보였다.

그녀는 다리를 잡으려는 놈에게서 발을 빼며 놈의 대가리를 부수고 오른쪽 팔꿈치를 옆의 놈에게 꽂아 넣고 있었다.

이진성은 돌아가던 고개에 이어 몸을 돌리며 나현주에게 몸을 던지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씨발놈아. 거기 있어.”

앞에 있는 테이블로 올라가 점프하며 내려찍는 청룡언월도의 사정거리에 가까스로 놈의 등이 들어왔다.

퍽 소리와 함께 놈의 등뼈를 박살 낸 청룡언월도는 남은 도신이 깨지면서 결국 파이프만 남아 버렸다.

그 꼴을 보고 당황하는 이진성에게 나현주가 외쳤다.

“엎드려요.”

나현주는 이진성에게 맞고 떨어진 놈의 대가리를 박살 내고 곧바로 이진성의 등 뒤로 달려드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앞으로 엎어지는 이진성의 어깨를 짚으며 공중에서 후려차기로 가까스로 놈의 상체를 터트려 버렸다.

나현주가 착지하는 순간 달려온 김현희가 방패를 날려 다가오는 놈들을 밀어냈다.

그 틈에 일어난 둘은 김현희와 함께 계단으로 후퇴했다.

관장의 모습도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몇 개의 테이블을 발로 차버려 공간을 만들고 싸우고 있지만, 다리와 팔에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남은 놈들은 이제 여덟 마리. 잠시 숨을 고른 세 명이 다시 달려나갔다.

* * *

“헉헉헉. 썅. 이거 두 번은 못 하겠네.”

“학학. 에구 나도 힘들어 죽겠어. 내가 진성 총각 살렸어. 헥헥.”

“하악 하악. 이번엔… 위험했어요. 몸살 안 했으면… 하악 하악… 우리가 당했을지도…….”

“헉헉 헉. 그랬을 것 같소. 그래도 안산의 그 칼잡이보다는…….”

숨을 몰아쉬는 그들의 주위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뼈와 살이 발 디딜 틈 없이 쌓여있었다.

거의 육십여 마리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넘치고 있었다.

그 계단에는 장동건에 의해 대가리를 잃은 시체들이 사십 넘게 자빠져 자기들의 피를 더하고 있었다.

3층에서 고개를 빼고 그 모습을 보던 네 군인은 모두 구석에서 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택진은 올라오는 욕지기를 겨우 참으며 김현희에게 다가가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런 그를 힐끗 본 김현희는 그를 밀어내려다 그 기운도 없는지 웬일로 그냥 조용히 버티고 서있을 뿐이었다.

* * *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그들이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서 쓸개즙까지 다 토하고 허연 얼굴을 하고 있던 네 명은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아까 정비소에서 열일곱을 잡는 건 장난이었다.

그들에게 이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한 번에 두어 놈의 몸통을 터트려 버리는 이쁘장하게 생긴 저 여자는 절대로 사람일 수 없었다.

히끅~

딸꾹질을 하는 놈은 양반이었다.

“마녀. 마녀다.”

나현주를 가리키며 마녀라고 소리치는 놈도 있었다.

“아. 피곤한데 신경 쓰게 하지 마라. 조용히 좀 있어라.”

나현주의 짜증 섞인 한마디에 넷은 입을 다물고 한구석으로 조용히 물러났다.

그런 그들에게서는 지린내가 풍겨왔다.

“몇 시나 됐어요?”

이진성의 물음에 구석에서 대답이 터져 나왔다.

“23시 17분입니다.”

돌아보니 병장이 시계를 보고 있었다.

피식 웃은 이진성이 다가가자 놈들은 벽에 더 몸을 밀착시켰다.

“아. 긴장 풀어요. 우리가 어떻게 안 한다니까 왜 그래요?”

평생을 살면서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겁을 줘 본 적이 없는 이진성으로는 이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씁쓸했다.

그리고 잠깐동안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안 지 며칠 되지도 않지만, 사선을 몇 번이나 같이 넘은 눈앞의 사람들이 새삼 고마웠다.

그 고마운 사람들은 지금 눈앞에서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몸에 붙은 좀비들의 뼈와 살을 털어내고 있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했다.

저 군인들이 저렇게 무서워할 만한 모습이었다.

“여기서 좀 쉬어요.”

바닥에 주저앉아 자루만 남은 청룡언월도를 쓸쓸한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자, 군인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저쪽에 소방서 하나 있심더. 그기 소방도끼 있는거 봤는데예, 그기라도 우찌…….”

사투리가 심한 상병이었다.

그를 돌아보자 후다닥 뒤로 물러나는 모습에 이진성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 괜찮다니까 그래요. 소방서가 어디에 있어요?”

“그기 저 짝…….”

그가 말한 소방서는 방어선 안쪽으로 북쪽이었다.

“거기 가려면 군인들 거쳐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라지예. 무슨 문제라도 있심까?”

“그건 아니고, 혹시 군인들이 검문하고 격리하고 그러지 않나 해서.”

“그기라믄 요즘은 안함니더.”

자기들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병력 부족으로 방어선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고 했다.

아까의 그 원형도로 안쪽으로 두 블록 안쪽 동심원을 그리는 도로까지를 확보하고 내부의 좀비들과 새로 발생하는 좀비들을 소탕하면서 겨우 안전지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그 지역 밖의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도록 많이 몰려들자, 처음에는 일부 주민을 사살해서 더는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말하며 여섯의 눈치를 봤지만 여섯이 그다지 개의치 않자 말을 이어갔다.

그 이후 공용주파수로 계속 날리는 무전을 들은 수원, 오산, 안산, 용인 등의 탈영병 또는 패잔병들이 모여들었다.

이미 변할 놈들은 다 변하고 남은 놈들이 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변하는 놈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큰 피해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병력이 어느 정도 모이고 안정되자 방어선을 경부고속도로 너머까지 넓혔다.

그리고 방어선 내의 좀비들을 정리한 후에는 외곽 주민들에게 음식이나 귀금속 등을 받고 안으로 넣어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물품을 받는 건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 절대로 자기들이 챙기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강조하는 넷이었다.

“그럼. 그런 물품이 없는 사람들은요?”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나현주가 묻자 바로 다시 긴장하고 대답했다.

“그게… 돌려보냈습니다. 일부 항의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사살…….”

그러고 고개를 떨궜다.

사정은 대충 알 수 있었다.

외곽 주민들을 안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이미 많은 시일이 지났다.

주민들에게 이미 음식은 바닥났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음식을 주고 방어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또한 얼마나 많은 귀금속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한 귀금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결국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는 말이다.

“방어만 했다면 좀비들이 이렇게 큰 군집을 이루지는 않았을 텐데, 한 달 동안 무슨 일을 한 거죠?”

이진성의 말에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멀뚱멀뚱하는 넷이었다.

“그게, 이놈들은 기본적으로 큰 집단을 만들지 않아요. 자꾸 공격받으면 더 큰 집단을 만드는 속성이 있어요.”

이진성의 설명을 다 들은 그들은 그때야 깨달은 게 있는지, 서로 숙덕거리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내부 안전을 확보하고 외부의 위험을 미리 제거한다고 섬멸 작전을 시작한 게 2주 약간 안 됩니다. 인근 동네부터 시작해서 좀비들을 잡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저희 인원도 많이 죽었지만, 놈들도 많이 잡기는 했어요. 많은 놈이 집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군인들은 집안 수색을 하려 했지만, 이미 군인들이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을 본 주민들은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문을 잠그고 안 열어 주는 집은 총으로 문을 부숴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동탄3동과 병점동의 모든 집을 수색하면서 잡은 좀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애먼 주민들 집만 부숴 놓았다는 것이다.

이미 바깥을 돌아다니는 좀비들에게 그런 무방비 주민들은 너무나 쉬운 먹잇감이었다.

“하. 군대가 주민 전부를 좀비로 만든 거네. 알겠어요. 왜 이 꼴이 됐는지. 그럼 그 소방서, 지금 갈까요?”

“그런데 그 모습을 하고 지금 가시기에는…….”

이택진과 장동건은 문제없었지만 넷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무리 군인들과 같이 간다고 하지만 잘못하면 총 맞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썅. 일단 아까 그 집으로 돌아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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