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Bloody Witch 전설의 시작
한 지역에서 한순간에 거의 200을 처리해서 그랬는지, 다행히 돌아오는 길에는 습격이 없었다.
하지만 군인들이 가져온 차가 있는 주유소까지 다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었다.
이진성 일행과 군인들은 승합차에 끼어 조심스럽게 전원주택으로 돌아와야 했다.
집에 들어온 일행은 물이 나오는 주위 집들을 찾아 몇 명씩 나눠서 씻고 옷도 갈아 있었다.
군인들도 동탄으로 와서 처음으로 온수를 여유 있게 쓰며 샤워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동네도 있었네예. 여기는 소탕 안 나왔었나 봄니더.”
신기한 듯 동네와 집을 둘러보는 군인들까지 모두 모여 앉으니 거실이 북적북적했다.
“지금 방어선 내부에는 사람이 얼마나 있어요?”
“군인은 120 정도고요. 민간인이 5,000 정도 있습니다.”
“어라? 생각보다 군인이 적네.”
“그게, 그동안 죽어 나간 인원도 한 100 정도는 됩니다.”
“그 인원으로 방어선을 어떻게 지켜요? 아까 대충 보니까 최소한 150 이상은 있어야겠던데?”
“예비군 아저씨들도 동원합니다.”
“아. 그렇게 하는구나.”
장동건과 병장의 대화를 듣던 이진성이 끼어들었다.
“무기와 탄약은 충분해요? 그동안 꽤 소모했을 텐데?”
“그 내용은 저희도 정확한 건 모릅니다. 그건 간부들만 아는 거라서요. 소문에는 탄약 10만 발 조금 더 남았다는 거 같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동건아. 10만 발이면 얼마나 버틸 양이야?”
“쓰기 나름이죠. 그런데 여기 좀비가 얼마나 될지를 모르니까요. 두 발에 한 놈 죽인다고 해도 좀비가 5만 넘어가면 다 죽는다는 말이네요. 그런데 아까 이 아저씨들 쏘는 거 보니까 네발에 한 놈도 어렵겠던데요.”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군인들에게 물었다.
“맞다. 그만큼 쓰고도 아직 10만 발 남았으면 연대장 이하 부대 몇 개가 이리 왔나 봐요?”
“경기 남부 거점의 4개 부대가 모인 거로 압니다.”
말을 들은 이진성이 탄식했다.
“햐, 대단한 군대다 정말. 초기에 자기 지역에서 대응만 잘했으면 이 꼴은 안 났을 텐데.”
60만의 군인을 보유한 나라다.
그런 나라가 이렇게 무너진 것이 한심한 이진성이지만 눈앞의 사병들에게 화낼 일은 아니었다.
“비도 오고 그런데, 일단 자고 날 밝으면 소방서로 가죠. 낮에 가는 게 군인들도 덜 긴장할 것 같으니까.”
“그래. 에구 누나는 허리가 쑤신다.”
김현희는 아프지도 않은 애먼 허리를 두드리며 아무 방이나 찾아 들어갔다.
이택진이 곧 그녀를 따라 방에 들어가더니 맞는 소리와 함께 문밖으로 던져졌다.
“저 커플도 이상해.”
불침번을 설 장동건과 이진성을 놔두고 모두는 잘 곳을 찾아들었다.
해가 뜨고 느지막이 일어난 일행은 가지고 온 라면과 쌀, 전투식량 등으로 아점을 해결했다.
“거기 안에 식량 사정은 이거보다 좋아요?”
“좋을 리가 있겠슴더? 가져온 부식은 다 떨어졌고예, 민간에서 징발해서 먹는데 그것도 이제 없음더. 건물 신축하는 곳들에서 발전기라는 발전기는 죄다 끌이 모아 음식점 냉장고 겨우 돌리면서 식재료 보관하는데 그기도 거의 비었고예. 농사라도 지어야 할 판임더.”
나현주가 음식을 씹으며 혼잣말을 흘렸다.
“어느 놈은 좀비 잡아서 그거 먹고 살던데…….”
“에?”
군인 몇은 올라오는 구역질을 겨우 참아 넘겨야 했다.
안 그래도 무서운 나현주가 그런 말을 하니 혹시 어느 놈이 그녀 자신이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반가운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 군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간만의 포식인 식사를 마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자 어느덧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가 볼까요?”
이진성이 주위를 둘러보고 가까운 곳에는 놈들의 냄새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도 자신들의 무기들을 챙겨 일어났다.
총을 들고 일어서는 장동건을 보며 병장이 물어왔다.
“아저씨는 군에 계실 때 총 잘 쏘셨나 봐요?”
“아, 그게… 네. 하하하.”
쓸데없는 분란이 일까 일부러 탈영병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행은 자신들의 진화와 능력에 대해 군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아저씨는 어젯밤부터 좀비들 숫자와 방향을 딱딱 집던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어… 그건… “
어버버하고 있는 장동건을 대신해 나현주가 조용히 말했다.
“혼자만 알고 있어요. 원래 용한 박수무당이에요.”
“헐…….”
그들은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더 캐묻지도 않고 조용히 일행을 따라 차에 올랐다.
일행이 마을을 벗어나 막 차도로 접어들자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에구 또 시작이네요. 그런데 저쪽이면… 야 저쪽이면 7초소 쪽 아니야? 소방서가 그쪽이잖아.”
“맞는 거 같심더.”
군인들의 얘기를 듣던 장동건이 진성이게 귓속말로 알렸다.
“한시 방향 1km예요.”
“택진 아저씨. 어제 그 약도 가지고 오셨어요? 그럼 그거 이 친구들 좀 보여 주세요.”
“어 그래요.”
이택진이 주머니에서 약도를 꺼내 보여주고 7초소가 어딘지 물었다.
“여기쯤 돼요.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여기쯤 되나요? 그럼 어제 주유소로 가서 이렇게 가도 되고요. 아니면 저 사거리 지나서 아파트단지 지나서 이렇게 가도 돼요.”
정면의 사거리 지나 좌우의 아파트단지는 위험해 보였다.
안 그래도 주민들을 좀비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 소굴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주유소 쪽으로 해서 어제 정찰한 도로로 들어가면 그쪽 군인들을 만나게 된다.
동행하는 군인들이 일행에 관해 설명해 주기로 하고 차의 방향을 꺾었다.
7초소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으며 바짝 긴장하고 있던 9초소의 군인들은 전방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승합차를 발견했다.
사격준비를 하고 정지신호를 보내자 멈춰선 차의 문이 열리며 네 명의 병사가 내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여섯 명의 민간인이 따라 내리는 것도 보였다.
“김 병장님? 어제 기름 추진하러 가서 안 오시길래 잘못되신 줄 알았는데.”
“아! 이분들 덕택에 살았어. 밤에는 위험할 것 같아서 지금 오는 거야.”
“그분들… 안전한 사람들 맞습니까?”
“어. 안전해. 야 야 긴장 풀어. 내가 밤새 같이 있다 온 거야.”
“그래도 규정대로…….”
“야! 이 판국에 좀 대충하자.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나저나 7초소 저거 괜찮냐?”
“무전에 의하면 100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 안에서 지원 나오고 있습니다.”
총성이 들리는 쪽을 바라보던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쪽으로 가 볼 건데 여러분들은 여기 그냥 계시는 게 좋겠어요. 소방서는 저희가 가서 찾아볼게요.”
“아임더. 저쪽에 말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교? 지가 따라 가겠슴더.”
“저도 갈게요. 야. 탄창 열 개만 줘.”
“에? 열 개나 뭐하게요? 그럼 우린 어쩌라고요? 그리고 둘이서 무슨 열 개예요? 하나씩만 가져가요.”
“안돼. 여기 특등사수 선배님도 드려야 해. 그러지 말고 더 줘.”
초소 근무병들이 병장이 가리키는 장동건을 보고 그저 예비군 중 하나로 생각하고 미적거렸다.
“저분도 드린다고요? 에이, 안 되는데. 그럼 세 개만 가져가요. 어차피 놈들 다 잡을 것도 아니잖아요?”
“야. 이 선배님 총알만 있으면 저것들 다 잡을 수 있으셔. 내가 어제 봤어. 원샷 원킬.”
“에이, 또 허풍은. 안 돼요. 여기 세 개. 더는 진짜로 안 돼요.”
아쉬운 대로 세 개의 30발 탄창을 받은 병장이 한 개씩을 나누고 일행과 함께 7초소로 향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초소병들이 남은 두 명의 일병에게 물었다.
“야.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와. 그게요. 어젯밤에요. 우리 다 죽는 줄 알았는데…….”
두 명은 들려오는 총소리를 배경음 삼아 지난밤의 활극을 조미료 팍팍 쳐가며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일행은 거의 어벤져스 영화에 나올 히어로로 변해 있었다.
관장은 무협지에 나올만한 검객으로, 장동건은 백발백중의 명사수로, 김현희는 헐크의 힘을 가진 여전사로, 이진성은 창술과 격투의 달인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현주에게는 마녀의 칭호가 붙었다.
“와 씨. 졸라 이쁘던데 피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마녀라고? 씨발. 졸라 아깝다.”
그리고 그들은 한참이나 마녀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기가 7초입니다.”
병장이 가리키는 곳에는 있어야 할 군인은 없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좀비들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리고 총소리는 도로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2선으로 후퇴했나 본데요? 저 지역 뺏기면 안 되는데. 그럼 방어선이 복잡해지는데.”
이진성이 사람들을 돌아봤다.
“지금 군인들이 공격할 때 우리가 뒤를 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럽시다. 나랑 현주씨랑 현희씨가 나가겠소.”
“저도 파이프라도 휘둘면… 이제 격투도 좀 되고…….”
“아저씨. 그냥 가만있어요.”
쫙 째리는 나현주를 보고 입을 닫는 이진성과 그런 그들을 보고 숙덕거리는 병장과 상병이었다.
“역시 여기 대장은 저 누님인가 봐.”
“저기요. 두 분은 우리가 지킬 테니까 총알은 전부 절 주시는 게 좋겠는데요. 아니면 열 발씩이라도.”
장동건의 말에 둘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바로 탄창 하나를 건넸다.
“선배님이 쓰시는 게 훨씬 낫겠네요. 한 개는 저희가 쓰다가 필요하면 드릴게요.”
상황 정리가 끝났고 관장과 나현주, 김현희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장동건은 약 20m 뒤에서 나머지 인원과 함께 달리며 눈에 보이는 놈들부터 쏘기 시작했다.
낮의 장동건은 정말로 원샷 원킬이었다.
달려가면서도 정확하게 한발에 한 놈의 대가리를 터트리는 장동건을 두 병사는 입을 벌리고 쳐다보며 따라가야 했다.
비어있는 7초소 자리의 약 50m 앞에서 선두의 셋은 좀비들과 격돌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이미 흩어져 있어 한꺼번에 몰려오지 못했다.
한 번에 열 몇 마리씩 달려드는 놈들은 셋에게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장동건은 세 일행에게 달려드는 놈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주변 놈들만 처리했다.
놈들을 처리하면서 전진해 가는 그들에게 골목 안쪽에서 이쪽으로 사격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군인들도 모여 있지 않은지 보이는 것은 몇 명 안 됐다. 소리도 서너 곳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군인들이 보이는 골목에는 어김없이 좀비들 십 수 마리가 달려들었고 간혹 인간의 비명도 들려왔다.
“저러다 전부 각개격파 당하겠어요. 우선 여기 보이는 골목부터 처리해요. 동건아. 너는 여기서 보이는 놈들을 잡아줘. 나랑 언니랑 관장님은 골목으로 들어갈게.”
셋이 뛰어 들어가자 병장이 안쪽으로 소리쳤다.
“아군 셋 진입. 아군 셋 진입. 쏘지 마. 쏘지 마.”
골목 안에는 군인 셋이 골목으로 들어오는 좀비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미 약 20마리를 잡았는데도 아직 골목에는 열 마리가 넘게 남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남은 총알은 거의 없었다.
다시 후퇴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저쪽에서 아군이 들어간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민간인 같은데요? 검 들고 있는 아저씨, 방패 든 아줌마, 그리고 한 명은 맨몸인데요?”
“씨발. 미친 거 아니야? 안 그래도 죽을 판인데 저것들은 또 뭐야? 야 신경 쓰지 말고 쏴. 다 쏘고 전속력으로 뒤로 뛴다.”
선임의 말에 다시 남은 총알을 쏟아부으려 하는데 달려들던 좀비들이 뒤로 돌아 골목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세 명이 좀비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셋은 순식간에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좀비들의 목을 베어내고 몸통을 갈라냈으며 대가리를 때려서 터트려 버렸다.
“어어어. 뭐야? 사람이야? 어디 특수부대원이라도 온 거야?”
얼이 빠져 어느새 총구는 땅바닥으로 향해 있는 셋에게 다가온 사람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여자가 물었다.
“총알 있어요? 그럼 저희 따라 와요.”
그리고 다시 총소리가 들리는 저쪽 골목으로 달려가는 셋을 얼빠진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