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49화 (49/145)

# 49

앞에서 달려가는 나현주를 뒤따르던 관장의 눈에 뭔가가 건물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왼쪽 건물 입구 조심하시오.”

나현주는 뒤에서 외치는 관장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뺐다.

빼면서 왼쪽을 돌아보는데 뭔가가 훅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현주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허공을 날았다.

가까스로 공격하는 놈의 손을 피한 나현주의 앞에는 피에 절은 찢어진 태권도 도복을 입은 좀비가 있었다.

근육은 탄탄했고 키는 거의 2m 정도 되어 보였다.

“그놈 한 단계 거친 놈이오.”

놈에게서 기를 느낀 관장이 나현주에게 소리쳐 알렸다. 놈의 기로 봤을 때 한 번 진화한 후 변이한 놈이었다.

하지만 옆의 군인들 때문에 기나 진화라는 말은 하지 않고 돌려 말했다.

나현주와 김현희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오른쪽 건물의 벽을 박차고 날아오른 나현주의 공중후려치기를 놈은 놀라운 스피드로 피해냈다.

그리고 단순히 피하기만 한 게 아니라 착지하는 나현주의 등을 향해 손톱을 찔러 넣기까지 했다.

붕~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된 나현주는 착지와 동시에 돌려차기를 날렸다.

놈은 순식간에 몸을 빼며 그 발을 피해냈다.

“와! 이놈 한 단계 맞아요? 두 단계 아니에요?”

“한 단계로 느껴지오. 아마 스피드에 특화된 놈인가 보오.”

“하긴 세 번을 해도 남들 한 번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도 우리한테 있으니까.”

말과 함께 관장이 놈의 왼쪽으로 들어가고 나현주는 오른쪽으로 달렸다.

김현희가 정면에서 방패를 크게 휘둘러 놈의 시선을 빼앗았다.

놈은 빠른 뒷걸음으로 방패를 피하며 양쪽을 견제했다.

뒷걸음질 치는 놈에게 따라붙으며 계속 날린 김현희 덕에 관장과 나현주에게 찬스가 왔다.

놈이 날아오는 방패 날을 가까스로 몸을 돌려 피하자마자 갑자기 방패 면이 각도를 꺾으며 날아왔다.

그걸 상체를 숙여 피하는 순간 관장의 검이 배를 찔러왔다.

동시에 나현주의 540도 뒤후려치기도 놈의 뒤통수에 꽂혔다.

놈은 피하지 못하고 대가리가 터져 나가는 동시에 배가 갈라지며 내장을 쏟아내야 했다.

놈은 앞으로 엎어졌고 대가리가 터지면서 쏟아지는 파편은 뒤따르던 사람들에게 날아갔다.

김현희가 방패로 일부 막았지만, 가려지지 않는 위치에 있던 군인들은 그걸 그대로 뒤집어써야 했다.

으아악~

“조용히 하고 따라와요.”

김현희의 소리에 입을 닫은 세 병사는 총을 쓸 일조차 없었다.

앞에서 두어 걸음에 하나씩 좀비들을 잡아나가는 세 사람을 구경하며 따르는 게 전부였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세 사람의 무력은 엄청났다.

좀비들은 건물 입구나 건물 코너에서 튀어나왔다.

어떤 것들은 2층에서 점프해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위에서 뛰어내리는 놈을 방패를 든 아줌마가 한번 후려갈기자 놈은 공중에서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날아가 떨어진 놈의 상체의 뼈는 으스러져 형체도 알 수 없었다.

검을 든 아저씨에게 걸린 놈들은 순식간에 목이 떨어지거나 허리가 잘려나갔다.

맨몸의 누님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맨손으로 놈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세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공격하는 놈들을 차분히 처리해 나갔다.

그리고 세 병사는 눈만 껌벅이며 걸음을 옮겼다.

몇십 미터 지나지 않아 저 앞에서 좀비들에게 총을 쏴대는 다른 세 명의 병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사방을 포위당해 효과적인 사격은 못 하고 총알만 낭비하고 있었다.

“사격 지원해 주세요.”

무서운 누님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뒤를 바로 이어 아저씨와 아줌마가 따라 달렸다.

이내 좀비들의 뒤를 친 세 사람은 펄펄 날아다니며 놈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세 병사는 몇 발 남지 않은 총알을 쐈지만 실제로 총으로 잡은 놈들은 거의 없었다.

누님의 파괴력은 몸에 폭탄을 달고 놈들을 치는 것 같았다.

주먹이 꽂힌 갈비뼈는 부스러졌고, 발에 차인 대가리는 어김없이 터져 나갔다.

팔과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온몸이 무기인 살인 병기였다.

한때 박수치며 열광했던 특공무술 교관들의 대련은 애들 장난 같았다.

아저씨의 검은 간결하면서도 빠르고 강력했다.

크지 않은 움직임으로 빠르게 놈들의 몸을 숭덩숭덩 잘라내는데 마치 쉐프가 음식 재료를 다듬는 것 같이 빠르고 정확했다.

방패 아줌마의 힘은 덩치가 작은 여자 좀비들은 몇 미터씩 날아가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셋이 열 마리 정도의 좀비를 순식간에 해치웠을 때였다.

캬아아악~ 크어어엉~

멀지 않은 곳에서 날카로운 좀비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소리를 들은 남은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어? 저놈들이 도망치기도 하네. 우리가 총 쏠 때는 아무리 죽여도 달려들더니.”

“우리도 싸우던 놈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오.”

“뭐지? 쟤들이 저런 애들이 아닌데?”

군인들도 일행들도 처음 겪는 일에 잠시 당황했지만 살아남은 셋을 살펴야 했다.

셋은 얼이 빠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들을 다급히 둘러 봤지만, 다행히 물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야. 정신 차려. 지원은 다 어디 갔어? 왜 너희만 있는 거야?”

“그게… 지원 온 20명도 이미 다 어디론가 흩어졌어요. 저것들이 치고 빠지고 하는데, 골목을 따라 쫓아 가다 보니 어느새 다들 흩어져서 여기는 우리 셋만 남고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마치 우리를 일부러 흩어 놓는 것 같이…….”

“뭔 소리야. 저것들이 무슨 시가전 습득한 것들도 아니고 뭘 일부러 흩어 놔? 여태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

“그렇긴 한데…….”

“저기. 저들의 행동이 오늘 이상하다는 말이오? 싸우다 도망치는 것도 그렇고 그전과 다른 행동을 보인단 말이오?”

“네. 여태까지는 그냥 때로 몰려왔었는데, 오늘은 마치 분대별로 나눠서 공격하듯, 사방에서 몰아치기도 하고, 치고 빠지기도 하고, 마치 저희를 유인하는 듯한… 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인사도 못 드렸네요.”

“혹시 말이오. 아까 그 찢어지는 듯한 좀비 소리. 전에도 들어본 거였소? 그 소리 나면서 전부 도망가던데?”

“그게… 오늘 몇 번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너 들었냐?”

“저도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근데 오늘 이전에는 들은 적 없는 것 확실합니다.”

* * *

도로에서 좀비들을 잡고 있던 장동건은 자신의 총알 60발을 다 썼다.

정확하게 60마리를 잡고 빈총을 들고 남은 놈들을 걱정하는 그의 귀에 이상한 짐승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몇 마리 남지 않은 좀비들이 건물들 사이로 뛰어들면서 도로상에 보이는 놈들은 더 없었다.

“뭐지? 저 안쪽에 뭐가 있나?”

오른쪽의 상가건물들 사이와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직도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형님 가시죠. 우리는 소방서로 가 보죠.”

“선배님. 이 탄창 쓰세요. 저희 한 발도 안 썼습니다.”

존경의 눈빛을 담아 탄창을 건네는 병장에게서 탄창을 받아 갈아꼈다.

다시 총을 앞세운 장동건과 이진성이 앞장서고 그 뒤를 이택진과 두 병사가 따랐다.

소방서는 8초소가 있던 사거리에서 바로 한 블록 안쪽에 있다고 병장이 말했다.

거리는 약 300m. 왕복 10차선은 되어 보이는 넓은 도로였다.

차도에 보이는 좀비는 없었다.

그들은 차도의 한가운데로 달려나갔다.

약 100m 정도 달리고 좌측의 아파트단지로 들어가는 교차로가 약 50m 정도 남았을 때였다.

“빌어먹을. 좌측 아파트 단지 안에서 23마리 달려 나온다. 저것들하고 우리하고 저 교차로에서 만날 것 같은데 멈춰서 기다릴까?”

“스물셋이면 그냥 가요. 빠르게 잡으면서 돌파해요.”

“그래. 그게 좋겠다.”

일행은 좌측 아파트를 주시하며 오른쪽 차선으로 붙으며 달려나갔다.

교차로에 거의 다가가자 아파트단지에서 소리치며 달려 나오는 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타탕 타탕탕~

장동건은 달리면서 마치 3점사를 쏘듯 한걸음에 세 발씩 끊어서 놈들을 쐈다.

그렇게 네 걸음에 열둘을 잡았을 때 갑자기 총이 철컥 소리를 냈다.

“어라? 탄 걸렸어요. 그냥 뛰어요.”

“아 썅. 왜 하필 지금.”

놈들은 점점 다가왔다.

각도가 거의 직각이 될 때쯤에는 놈들의 선두가 뻗은 손이 한 3~4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장동건이 갑자기 튀어 나갔다. 안산에서 중앙역으로 뛸 때 같았다.

그 뒤를 이진성이 이택진의 손을 잡아끌면서 뛰었다.

병장과 상병이 가까스로 놈들의 손을 피하고 앞으로 나가아갔다.

놈들도 방향을 바꿔 일행을 따라 달리는데 선두와의 거리 차이는 채 10m도 나지 않았다.

장동건은 혼자 쭉쭉 거리를 벌리며 뻗어 나갔다.

나머지 일행이 소방서까지 반 정도 남았을 때 장동건은 이미 소방서로 들어가 버렸다.

“야 이 빌어먹을 놈아. 너 혼자 살겠다고…….”

기가 찬 이진성이 소리를 지르지만 뛰느라 숨만 막혔다.

그렇게 꼬리를 달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 소방서를 약 10m 앞에 뒀을 때였다.

소방서에서 장동건이 새빨간 소방도끼 두 자루를 들고 달려 나왔다.

“여기~”

장동건이 건네는 도끼 하나를 잡은 이진성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점프하며 공중에서 몸을 돌렸다.

바로 뒤 몇 미터 앞에 달려오는 좀비가 있었다.

뒤로 날아가며 휘두른 도끼에 힘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바로 뒤에 달려오는 놈도 달리던 속도가 있어 도끼를 피하지 못했다.

놈의 목은 운이 나쁘게도 도끼의 궤적에 들어와 허무하게 잘려 버렸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한 바퀴 구른 이진성이 일어나며 도끼를 움켜쥐고 앞으로 몸을 쏘았다.

“다 죽었어. 씨발.”

도끼의 길이는 채 1m가 안 됐다.

가슴 조금 밑에 오던 청룡언월도보다 길이가 짧아 더 근접전을 해야 했다.

하지만 무게가 더 나가 파괴력은 훨씬 좋았다.

자루 끝에는 고무 그립까지 있어 훨씬 안정적으로 휘두를 수 있었다.

도끼를 들고 좀비들의 안으로 들어간 이진성은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놈들은 순식간에 머리가 박살 나거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갔다.

그런 이진성을 피해 나머지 사람들에게 덤비는 몇 놈은 장동건이 도끼로, 두 병사가 빈 총으로 어찌어찌 막아 내고 있었다.

“형님. 빨리요.”

숨넘어가는 장동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이진성은 자신 앞의 놈들을 순식간에 끝내고 나머지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와. 이거 죽이는데? 찍는 맛이 있어. 현희 누나가 방패로 부숴 버릴 때 이런 맛인가 봐.”

“형님. 섭섭합니다.”

“응? 뭐가?”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다고요? 미친놈처럼 뛰어서 겨우 도끼 찾아 나왔는데?”

“응? 들었어?”

삐진 장동건을 이진성이 주절주절하며 달래고 있는데, 길 건너 저 안쪽에서 날카로운 맹수의 포효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응? 또 들리네?”

뭔지 모를 소리가 난 뒤 이진성은 주변에 흩어져 있던 좀비들이 한쪽으로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소리가 들려온 쪽이었다.

“어?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 * *

좀비들이 물러나자 관장과 나현주, 김현희는 소방서로 향했다.

더 이곳에서 시간을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 그들을 여섯의 병사들이 따랐다.

들로서는 탄알도 없는 지금 저 세 사람과 함께 하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소방서에 도착하자 안에서 이진성과 나머지가 달려 나왔다.

“어머. 먼저 도착해 있었네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쪽은 다 정리했어요?”

“아뇨. 중간에 놈들이 다 도망쳐 버렸어요.”

“혹시 그쪽에서도 날카로운 짐승 소리 같은 좀비 소리 나고서 놈들이 도망쳤어요?”

“네. 여기도 그랬어요?”

“여긴 놈들은 그 전에 죽었고요. 이 주위 놈들이 그 소리 나고 저쪽으로 가던데…….”

이진성은 서북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쪽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나쁜 기운이 흘러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끼이이이~ 캬아아~

아까의 그 날카로운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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