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50화 (50/145)

# 50

도끼를 확보한 일행과 초소를 비워둘 수 없는 군인들이 다시 7초소로 나왔다.

아까의 그 이상한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 주위는 조용했다.

조금 전 이진성 일행을 공격했던 좀비들이 나왔던 아파트 단지의 몇몇 집에서 베란다가 열리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안전해졌음을 확인하고는 이내 다시 들어갔다.

일단 습격은 끝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지금 나현주의 이모 집으로 가기는 곤란했다.

그녀의 온몸은 피와 살로 뒤덮여 보기에 너무 끔찍했다.

나현주의 이모 집까지 병장과 상병이 동행하며 내부통과를 도와주기로 했기에 통과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부를 통과하면서도 너무 눈에 띄는 모습을 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가족들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만약에 있다면 나현주의 모습에 기절 안 하면 다행인 모습이었다.

이진성과 김현희, 그리고 관장도 나현주 보다는 덜했지만 씻는 편이 나아 보였다.

나현주가 병장과 상병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여기서 좀 기다려 줄래요? 저희는 씻고 옷 갈아입고 와야 할 것 같은데요. 이대로 가긴 좀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머리카락에…….”

병장이 가리키는 곳을 손으로 쓸자 눈알 하나가 손에 걸렸다.

“어머. 얘는 왜 여기 있니?”

딴에는 자기를 무서워하는 병사들에게 여성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귀엽게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이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여자가 사람의 안구들 들고 마치 귀여운 것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그들은 더 겁에 질렸다.

“어… 어서 다녀… 오세요. 꼼짝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나현주는 갑자기 차려자세로 말하는 군인들을 보며 왜 그러나 싶었다.

나현주가 군인들에게 한 발 다가가지 군인들은 일제히 뒤로 두 발 물러났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끌고 가려고 김현희와 이진성이 막 나현주의 양팔을 잡는 순간이었다.

안쪽으로부터 여러 대의 차량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10차선 도로를 따라 순식간에 다가온 차량에 일행은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마주해야 했다.

소위 하나와 부사관 넷, 그리고 병사 스물.

소대도 아니고 분대도 아닌 이상한 편제의 병력이었다.

“충성.”

“그래. 수고 많았다. 다 처리했다고?”

누가 무전을 넣었는지 서로를 둘러보는데 그들 중에는 무전을 넣은 사람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병사들을 잠시 보던 소위의 눈에 그들 뒤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좀비인지 인간인지 모를 피를 뒤집어쓴 네 명이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멀쩡한 사람 둘도 멀뚱멀뚱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소위가 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 저 사람들 뭐야?”

“아. 이분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저희 도와주신 분들입니다.”

“저분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총 내리셔도 됩니다.”

병사들이 손을 저으며 급하게 그들의 앞을 막고 하는 말에 천천히 총을 내리는 소위가 설명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7 초소병 하나가 앞으로 나와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좀비들이 오늘은 이상하게 행동했다는 내용까지 다 보고하자 소위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투로 병사를 꾸짖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너희가 멍청하게 대응해 놓고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8초소하고 6초소에서 놈들 다수가 저 아파트단지 안으로 도망쳤다고 보고해왔다. 우리는 놈들을 소탕하러 가니까 근무 정확하게 서도록 한다. 알겠나? 그리고 거기 민간인 여러분.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여기서 거주하시려면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만.”

일행은 심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식량이나 보석 등을 달라는 말이었다.

“아뇨. 저희는 저희 이모 집에 가는 길이에요. 저희 부모님이 이모 집으로 가신 것 같아서요.”

“이모님 댁이 어딥니까?

“저쪽 우남 퍼스트빌이라고…….”

소위가 옆에 있는 중사에게 물었다.

“우남 퍼스트빌이 어딥니까?”

“동쪽 지구 북쪽에 있습니다. 경부선 옆입니다.”

“거긴…….”

중사와 뭔가를 속닥거리던 소위가 나현주를 돌아봤다.

“거기라면 어쩌면 이미 안 좋은 일을 당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그쪽에 갔을 때 살아계신 분들보다 그렇지 못한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살아계신 분들도 있긴 했단 거죠? 그럼 가 봐야겠어요.”

“그렇긴 한데, 저희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여러분들끼리 가실 수 없습니다.”

“여기 이분들이 저희 안내해 주시기로 했어요.”

두 병사를 쓱 쳐다본 소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차량으로 향했다.

초소병 여섯과 일행을 안내할 병장과 상병에게 탄창 스무 개를 주고는 사거리를 건너 직진한 그들은 몇백 미터쯤 앞에서 하차하고 왼쪽의 아파트단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의 그 날카로운 좀비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했다.

“왠지 불길한데요.”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저들한테 생기는 것. 어서 돌아가서 씻기나 합시다.”

이진성의 걱정에 무심하게 대답한 관장이 승합차를 세워 놓은 9초소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를 따라 일행이 걷기를 잠시, 이진성이 모두를 세웠다.

“아. 놈들 또 옵니다. 전방에서 50 이상이네요. 거리는 70 정도. 아파트 단지 안에서 모여들고 있어요. 그리고 저 사거리 건너편에서도 오는데 거긴 거리가 멀어서 숫자는 모르겠지만 많아요. 저기 초소에 있는 인원들이 감당 못 해요.”

“어. 안 되는데. 쟤네 중 몇은 살아야 안내를 해 줄 건데.”

“관장님하고 현희 누님이 이쪽 맡아 주실래요? 저하고 현주 씨가 저쪽 맡을게요. 동건이는 택진 아저씨랑 초소병들하고 같이 있고.”

초소의 인원들은 돌아가던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멈추더니 둘만 그 자리에 남고 나머지는 다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8초와 6초소 쪽에서 터져 나오는 총성과 함께 무전기가 울렸다.

“8초소. 북쪽 200m 지점 좀비들 도로로 진입. 공원으로 진행 중.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공원 내부 지원 필요합니다.”

“6초소. 남쪽 200m 지점에서 7초소 방향으로 도로 따라 전진 시작합니다. 셀 수 없습니다.”

무전을 듣고 사거리 가운데로 뛰어나간 여덟이 좌우를 확인했다.

남쪽에서 도로를 건너는 놈들과 북쪽에서 이쪽으로 내려오는 놈들이 끝도 없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위 일행이 들어간 아파트단지 내에서도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면 오른쪽 아파트에서도 불과 120m 정도 되는 곳에서 놈들이 뛰어나오고 있었다.

“씨발. 좆됐다. 크레모아 준비해.”

그동안 아끼고 아꼈던 크레모아를 써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크레모아는 사거리 북쪽과 남쪽 약 70m 지점에 하나씩 서쪽을 보고 설치되어 있었다.

아파트에서 나오는 놈들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놈들이 가까이 오면 하나를 써야 할 판이었다.

“하나 가지고는 티도 안 나겠는데요?”

“어쩌겠냐. 하는 데까지 해 봐야지. 그렇다고 남쪽 거를 가져올 수도 없잖아.”

병사들이 그렇게 북쪽에서 오는 놈들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진성 일행이 도착했다.

그들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놈들과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놈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쪽에만 200이 넘겠는데요. 저쪽은 얼마나 될지 걱정이네요.”

“관장님하고 언니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진성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저쪽은 아파트에서 나오는 놈들만 일단 상대하면 되겠어요. 멀리 있는 놈들은 길 건너가기만 하는 게, 아무래도 우리 후위를 치려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이진성의 말을 들은 사투리 상병이 어떻게 아는지 다시 한번 물으려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다가오는 좀비들을 바라보던 이진성과 나현주가 그들에게 달려나가려는 것이었다.

그걸 본 병장이 앞을 막아섰다.

“잠깐만요. 크레모아 있어요. 그거 쓰고 나가세요. 그리고 남쪽 애들은 또 무슨 말인데요?”

“그게 놈들이 저쪽으로 우회하고 있어요.”

이진성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곳은 CCV 극장 앞의 아파트 신축 공사장이었다.

공사장의 팬스는 이미 다 철거하고 난 뻥 뚫린 공터이다.

안에는 겨우 기초만 다졌는지 건물 골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너하고 너. 당장 저쪽 크레모아 빼 와서 저쪽으로 설치해.”

병사 둘이 사거리 남쪽에 설치된 크레모아를 옮기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은 북쪽에서 오는 놈들에게 사격을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는 장동건에게 사투리 상병이 탄창 열 개를 가져왔다.

“선배님만 믿겠심니더.”

* * *

놈들이 약 50m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병장 하나가 크레모아 격발 스위치를 눌렀다.

콰앙~

귀가 먹먹할 정도의 큰 소리와 함께 먼지 폭풍이 일더니 놈들의 중간이 뚝 끊어졌다.

어림잡아 100 가까이가 폭발에 휩쓸려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 같았다.

그런데도 폭발에 영향받지 않은 앞과 뒤의 놈들은 여전히 많았다.

앞에서 달려오는 50 정도를 향해 나현주와 이진성이 놈들을 향해 달려나가며 외쳤다.

“후미 놈들 부탁해요.”

각도를 벌리며 뛰어나가는 이진성과 나현주는 막 사거리에 진입하는 놈들과 격돌할 수 있었다.

새로 얻은 무기인 도끼를 풍차 돌리듯 돌리면서 달려가던 이진성에게 다가온 제일 앞의 놈이 몸을 던졌다.

이진성은 몸을 살짝 비키면서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았다.

그리고 도끼는 놈을 정수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갈라버렸다.

척추 뒤로는 그대로 붙은 채 책을 펼치듯 양쪽으로 벌어진 놈이 쏟아내는 장기를 밟으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바로 뒤 두 놈의 목을 한 번에 쳐 내고 옆으로 몸을 빼며 도끼 머리로 한 놈의 갈비뼈를 으스러트렸다.

“와우. 손맛 끝내준다.”

나현주는 달리며 거의 3m 높이로 점프해서 미사일 같은 이단옆차기로 선두에 달려오는 놈의 모가지를 끊어냈다.

그리고 바로 이어 공중에서 3단 후려치기로 바로 뒤 세 놈의 대가리와 몸통을 터트렸다.

이진성이 외곽에서 놈들을 잡는 반면, 나현주는 일격과 함께 놈들의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놈들을 동시에 팔다리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반경 1m 안으로 들어오는 놈들은 여지없이 몸의 어딘가는 터져 나가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놈들도 주춤주춤하면서 덤빌 수밖에 없었다.

다리를 노리고 몸을 던지는 놈의 대가리를 돌려차면서 회전력을 살려 팔꿈치로 옆에서 이빨을 들이미는 놈의 턱을 터트렸다.

몸을 날려 껴안아 오는 놈의 대가리를 감아 돌려 꺾으면서 몸을 띄워 후려치기로 주위 놈들의 대가리들을 터트렸다.

약 10분이 지나면서 나현주 주위로는 원형으로 좀비들의 부서진 파편들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 뒤에서 쉽게 덤비지 못하고 움찔거리기 좀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진성은 1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놈들을 발 빠르게 피해내면서 일격참을 계속 외치고 있었다.

놈들을 피해내는 발걸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정교해졌다.

더 적은 움직임으로 놈들을 피해냈고 도끼는 점점 더 다양한 방향으로 궤적을 그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빠지고 나아가고 옆으로 피하기를 계속하며 어느덧 스물 정도의 놈들을 잡았을 때 뒤에서 다시 한번 크레모어의 폭음이 들려왔다.

남쪽에서 우회하던 놈들이 도로로 진입한 것이었다.

이제 양쪽으로 포위된 상황이다.

장동건은 크레모아가 터지기 전까지 북쪽에서 내려오던 놈들을 착실히 줄여나갔다.

다른 병사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들이 서너 발에 하나를 죽이는 동안 혼자서 그들보다 서너 배 빠른 속도로 총을 쏘면서 백발백중의 명중률을 보였다.

병사들 모두가 죽이는 수보다 혼자 잡은 수가 훨씬 많았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놈들이 50 이하가 남았을 때, 남쪽의 크레모아가 터졌고 장동건은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북쪽은 부탁할게요.”

그리고 돌아본 남동쪽의 공사장 앞에는 수많은 육편이 널려 있었다.

그런데도 그 뒤로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는 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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