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51화 (51/145)

# 51

장동건에게 남은 탄창은 두 개와 지금 총에 있는 것뿐이었다.

보이는 놈들을 잡기보다는 놈들의 수를 확인하고 쏴도 될 여유는 있어 보였다.

놈들을 세면서 꼬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꼬리가 끊겼을 때 보이는 수는 대략 70 정도. 그동안 선두는 약 100m 지점까지 다가왔다.

놈들은 길게 늘어져 마치 긴 삼각형 대형을 만든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면 탄이 모자랐다. 시간을 벌고 병사들의 탄을 받아야 했다.

북쪽에서 오던 놈들처럼 총소리가 나면 이리저리 피하기를 바라며 선두 놈들의 미간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선두 일곱의 대가리가 거의 동시에 터져나갔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놈들은 좌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예스!”

가로수와 아파트 조경수가 시야를 가리는 좌측 인도로 들어간 놈들도 있었다.

거기로 간 놈들은 어디로 갔는지 금방 보이지 않았다.

우측 인도의 가로수는 좌측보다 작았다. 인도 위에는 시야를 가리는 것들도 별로 없었다.

다행히 놈들도 10차선 도로를 건너는 놈들보다 가까운 우측으로 가는 것들이 많았다.

뒤를 돌아봤다.

이진성은 정신없이 도끼를 휘두르고 있고 나현주는 다섯 놈과 대치 중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열두 마리가 남아 있었다.

‘저 정도면 형님 혼자 처리하겠다.’

“누…….”

막 나현주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입을 여는데 관장과 함께 달려오는 김현희의 소리가 들려왔다.

“동건아~ 우리 왔어~”

김현희와 관장이 사거리에서 이쪽으로 막 방향을 꺾고 있었다.

“와. 딱 맞게 왔네. 그쪽 인도 좀 커버해 줘요.”

두 사람이 오른쪽 인도를 막으러 가는 것을 본 장동건은 마음 놓고 왼쪽 인도로 달려들었다.

* * *

나현주가 대치 중인 다섯 놈을 박살 냈을 때, 이진성 앞에는 셋이 남았다.

놈들은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셋 정도는 이제 무리 없겠지.’

그대로 이진성이 처리하리라 믿고 나현주는 군인들이 사격하던 쪽으로 몸을 날렸다.

정면으로 달려오는 놈에게 점프했다.

놈의 대가리를 무릎으로 찍어 안면을 함몰시켰다.

바로 뒤에 오는 놈의 턱을 공중에 뜬 상태로 차올렸다.

놈은 턱이 터지면서 뒤로 자빠졌고 그 뒤 약 3m 정도에 또 한 놈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빠지는 놈의 가슴을 딛고 다시 점프했다.

뒤에 달려오는 놈의 어깨를 밟고 대가리에 사커킥을 날리고 다시 옆의 놈에게 몸을 날렸다.

그런 식으로 놈들을 하나 잡고 점프하고 또 하나 잡고 점프하면서 공중에서만 일곱을 잡고 착지했다.

그리고 그녀는 건물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다섯을 향해 몸을 쏘았다.

사격하던 군인들은 서서히 총을 내렸다.

7 초소병 여섯은 아까 나현주가 그들을 구해줄 때 정신이 없어 그녀의 활약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병장과 상병은 어젯밤부터 봐 오던 나현주지만 지금은 또 달라 보였다.

한번 점프에 4~5m를 왔다 갔다 하고 높이 뛰면 3m 정도를 뛰어 놈들을 넘어 다녔다.

뭔가가 번쩍하면 놈들의 몸이 터져 나갔다. 그때야 어디를 공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와. 씨. 볼 때마다 믿기지 않는단 말이야.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어젯밤보다 더하잖아.”

“김 병장님. 어제부터 같이 있었지 말입니다? 계속 저런 거 보고 계셨지 말입니다?”

“야. 야. 이병. 언제까지 말 그렇게 할래? 이제 편하게 해 편하게. 저 누님 어제 식당에서 싸우는 거 보고 사람 아닌 줄 알았잖냐. 근데 지금 보니까 또 달라. 거의 격투의 신이 인간 세상에 현신한 거야. 씨발.”

“너무 무섭지 말입니다. 근처도 못 가겠습니다.”

“김 병장님. 구경 그만하고 얼렁 지원해야 되겠니더.”

사투리 상병의 말에 군인들은 내렸던 총을 다시 올렸다.

* * *

장동건 쪽에서 나는 총소리는 거의 뜸해졌다. 숨은 놈들을 찾고 있는지 몇 분에 한 번씩 날 정도였다.

길 건너 김현희와 관장도 몇 놈만을 남긴 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이진성도 사거리에 남은 놈들을 마저 끝내고 나현주 쪽으로 몸을 옮기려는 참이었다.

그때 나현주는 마지막 남은 다섯과 마주하고 있었다.

나현주를 둘러싸고 있는 놈들은 전부 검붉은 눈이었다.

관장과 같이 기를 감지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특별히 강한 상대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눈앞의 다섯 중 둘은 나머지 셋과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하, 제발 안산의 그 덩치 놈보다는 약해라.”

한 단계를 더 거치면서 이제는 혼자서 안산의 덩치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둘이라면 어떨지 자신이 없었다.

한가지 안심이 되는 것은 앞의 놈들이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진성을 슬쩍 돌아봤다. 그는 자기 앞에 있던 셋을 끝내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진성을 기다릴까 생각하는데 놈들도 그걸 봤는지 더 강한 둘을 남기고 나머지 셋이 그쪽으로 달려나갔다.

이제 더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나현주는 자기 앞의 둘 중 가까운 놈을 향해 발을 날렸다.

그렇게 최소 한번은 진화한 놈들과의 2:1 싸움을 시작했다.

놈들의 움직임은 역시 달랐다.

나현주가 두 번째 진화하기 전의 최상의 움직임에 거의 근접하는 스피드와 동작을 보여줬다.

그런 두 놈의 협공을 막고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잡혀 뜯겨 나가기도 했고, 손톱에 살이 긁혀나가기도 했다.

그동안 체득하고 깨달은 투로를 따라 최대한의 스피드와 파워로 공격해 나갔다.

그러나 이미 많은 놈을 상대하고 기운이 빠진 나현주에게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점점 더 힘이 들었다.

놈들의 뻗어오는 손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피해냈다.

놈들의 급소에 킥과 펀치를 날리고는 있지만, 놈들도 타격을 흘리면서 좀처럼 상처를 입지 않고 있었다.

몸에 점점 작은 상처가 쌓여 갔다.

그리고 어느새 상처를 입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현주를 보고 있던 군인들은 그녀가 밀리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놈들에게 당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보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마음속으로 응원할 뿐이었다.

총으로 잡으려 해도 몇 발 남지 않은 총알로 잡을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저렇게 셋이서 엉켜 싸우는데 자기들의 사격 실력으로 잘못하면 나현주를 맞추기 십상이었다.

백발백중 선배님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 볼 텐데 그 선배도 저쪽에서 아직 안 오고 있었다.

저쪽의 도끼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달려든 세 놈과 붙어 아직 끝을 못 내고 있었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그들이 보고 있기를 어느 정도 지났을 때였다.

거의 당할 것 같던 누님의 움직임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치고 빠지는 것이 조금씩 빨라지는 듯하더니 급기야 흐릿한 잔상이 남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놈들에게 맞지 않고 놈들의 주위를 돌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스피드로 날아가는 펀치와 킥에서는 마치 섬광이 터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현주는 점점 소리가 작아지고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는 듯하던 한순간, 갑자기 등골이 찌르르했다.

동시에 눈앞이 맑아지며 놈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조금씩 느려지는 것으로 보였다.

손과 발을 움직일 때 느껴지는 파워의 흐름이 마치 보는 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때릴 때는 이렇게 하면 더 강하구나. 이렇게 찰 때는 여기서 스피드를 올려야 하는구나. 관장님이 사시미칼을 상대할 때 빠졌던 게 바로 이런 상태였구나.’

무아지경 속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관조하며 새롭게 깨닫는 것들을 바로바로 동작으로 시험해봤다.

효과는 좋았다.

나현주의 공격을 흘리며 충격을 최소화하던 놈들이 점점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더니 급기야 한 놈의 팔이 터져나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이후 두 놈의 온몸의 뼈는 남김없이 터져 나가야 했다.

결국 담배 한 대 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두 놈은 완전히 부서져서 사방에 뿌려져 있었다.

둘을 끝내고 자신의 두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서 있는 나현주에게 이진성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다친 데는?

“아, 괜찮아요. 멀쩡해요. 이깟 상처 자고 나면 없어지잖아요.”

피를 뚝뚝 흘리며 미소짓는 나현주의 모습이 유달리 안쓰럽게 느껴지는 이진성이었다.

* * *

몰려왔던 좀비 모두를 정리하고 다시 사거리 가운데 모인 일행과 군인들의 시야에 다른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이진성에게도 근방의 좀비 냄새는 맡아지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던 소위 일행의 총소리는 이미 멎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쪽에서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지금은 모두 경련하고 있거나 이미 빨간눈이 되어 어디론가 갔을 것이다.

숨을 돌리고 멍한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군인들이 들어간 아파트 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여자였고 나체에 맨발이었다.

그녀는 일행을 향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어왔다.

어느 정도 잘 보일 거리까지 온 여자의 온몸 근육은 보디빌더처럼 벌크업 되어 있었다.

몸은 마치 펄을 바른 것처럼 뭔가가 반짝였다.

그리고 온몸에 나현주 처럼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이진성은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분명히 여자는 엄청난 살육을 하고 오는 듯했는데 좀비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데요. 사람이면 저렇게 벗고 다니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고 좀비 냄새도 안 나요. 동건아 총알 있냐?”

“아뇨.”

“하나두?”

“하나두.”

일행은 긴장한 상태로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자세를 취했다.

군인들은 미친 여자 같은 나체의 여자를 보며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하고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여자가 약 30m 정도 앞에 서더니 서서히 일행을 서서히 둘러봤다.

“씨발. 눈동자가 없어. 아니 눈알 전부가 새까매.”

김 병장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는 놈의 눈을 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놈의 입에서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들려오던 바로 기분 나쁜 그 소리였다.

이진성은 큰일이 났음을 직감했다.

“동건아 사람들 데리고 도망가. 전속력으로 도망가.”

놈에게 달려가는 것은 이진성이 가장 빨랐다. 그 뒤를 나현주와 관장, 김현희가 따랐다.

가장 먼저 놈에게 도착한 이진성이 놈의 목을 노리고 휘두른 도끼를 놈은 절묘한 움직임으로 피했다.

그리고 그 도끼는 놈의 팔을 때렸다.

도끼가 놈의 팔에 닿기 전까지 이진성은 놈의 팔을 잘라내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때앵~

퍽 소리와 함께 잘려나갔어야 할 팔은 멀쩡히 붙어있었다.

도끼는 마치 쇠를 때린 것처럼 반탄력에 튀어나왔다.

튀어나오는 도끼의 힘에 몸을 실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난 이진성이 바로 옆을 지나는 세 사람에게 소리쳤다.

“몸이 쇳덩이 같아요.”

관장의 검이 놈의 왼 옆구리로 향했다.

김현희의 방패가 위에서 놈의 대가리를 쳐갔다.

나현주는 놈의 오른쪽 목을 노리고 킥을 꽂아 넣었다.

놈은 날아오는 방패를 한 손으로 쳐내면서 관장의 검과 나현주의 발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다.

큰 움직임은 아니었다. 딱 닿지 않을 거리만큼만 피해냈다.

그리고선 가만 서서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고 놀라고 있는 세 사람을 노려보는 듯했다.

뒤로 빠졌던 이진성이 관장의 방향으로 다시 달려갔다.

관장은 놈의 뒤로 위치를 바꿨다.

결국 놈의 전후좌우를 모두 둘러쌀 때까지 놈은 기다리더니 모두가 위치를 잡자마자 무서운 스피드로 김현희의 방패로 달려들었다.

김현희는 방패를 거대한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에 뒤로 한 발 밀려야 했다.

방패를 버티는 팔은 순간 얼얼해지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김현희가 밀리는 것을 본 이진성이 도끼로 머리를 찍어갔다.

동시에 나현주가 옆구리에 발을 꽂아 넣었지만, 놈은 양손으로 도끼와 발을 쳐 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심장을 찔러오는 검은 빠르게 상체를 틀어 겨드랑이로 흘려버렸다.

네 사람은 다시 뒤로 서너 발씩 물러나서 놈을 노려봐야 했다.

놈은 이진성부터 김현희 나현주를 천천히 둘러보더니 끼아아악 괴성과 함께 순식간에 이진성 쪽으로 몸을 던졌다.

이진성은 날아오는 듯한 놈을 보며 이제 진짜로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달려오는 놈에게 도끼를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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