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안돼~”
나현주는 가슴이 철렁했다.
놈이 자신들을 한번 둘러 보는 듯하더니 몸을 던진 방향이 하필 이진성이었다.
이진성은 그런 놈에게 도끼를 마주 찍어 가고 있는데 혼자서 달려들 상대가 아니었다.
모든 힘을 다리에 부어 넣고 놈을 향해 도약했다.
공중에 뜬 그녀의 눈에 번개처럼 날아가는 이진성의 도끼가 분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이진성에게 손톱을 찍어 넣으려는 듯 손가락을 벌리고 팔을 뒤로 뺀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날아가는 도끼의 파공성이 엄청났다.
손톱을 찍어오던 놈도 그 도끼를 맞으면 안 된다고 느꼈는지 상체를 꺾으며 공격하려던 손으로 도끼면을 쳐가는 것이 보였다.
이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공중에 뜬 나현주에게는 하나하나 슬로비디오로 보였다.
그리고 나현주의 주먹이 놈의 등에 닿을 때, 놈은 손으로 도끼를 막 쳐내고 있었다.
땡~
퍼엉~
도끼를 때리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놈의 등에서 거대한 북을 치는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진성을 공격하기 위해 공중에 뜬 상태에서 등을 맞은 놈은 앞으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그리고 10여 미터 앞 아스팔트에 한 번 튕기고 다시 몇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급하게 이진성을 일으킨 나현주가 다시 놈을 봤을 때, 놈은 이미 일어나 목을 꺾으면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로 죽는 줄 알았어요.”
“저도 아저씨 죽는 줄 알았어요.”
“조금 전 놈을 때릴 때, 놈이 방어할 때와는 다른 타격감이었어요. 놈이 방어할 때는 돌덩이를 내려치는 느낌이었는데, 조금 전에는 고무 덩이 같았어요. 어쩌면 의식적으로 방어 부위만 순간적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놈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공격이라면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말이군요.”
“최대한의 스피드로 몰아쳐야…….”
마치 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놈은 선 자리에서 총알처럼 쏘아오기 시작했다.
놈의 스피드는 조금 전 나현주가 마지막 두 놈을 잡을 때의 스피드에 거의 필적하고 있었다.
“흩어져.”
넷이 거리를 벌리기 위해 사방으로 움직였지만, 김현희의 스피드는 그다지 빠르지 못했다.
김현희는 자신 쪽으로 방향을 트는 놈을 보고 방패 날을 놈에게 휘둘렀다.
거의 김현희의 5m 앞에서 몸을 띄운 놈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방패 날을 다리를 접으면서 피했다.
그리고 그대로 날아가 무릎으로 김현희의 가슴을 찍어버렸다.
아악~
뒤로 열 몇 걸음을 밀려간 김현희가 고개를 들어 왔을 봤다.
거의 두어 걸음 앞으로 다가온 놈이 보였다.
그 뒤를 세 명이 쫓아오는 것도 보였다.
찔러오는 놈의 손톱을 향해 방패를 세우고 두 다리에 모든 힘을 넣어 버텼다.
콰아앙~
놈이 어느새 주먹을 쥐었는지 방패에서는 폭탄 터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방패의 팔걸이 바로 바깥쪽이 움푹 우그러들면서 오른팔이 부러지는 느낌과 함께 김현희는 뒤로 날아가야 했다.
“언니~”
관장과 이진성이 놈의 양쪽으로 검과 도끼를 휘둘렀다.
나현주가 놈의 등을 향에 몸을 날렸다.
공중에 뜬 그녀는 놈이 이진성의 도끼를 향해 손들 들어 올리고 관장의 검 쪽으로 발을 드는 것을 봤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면서 등이 아닌 어깨로 타격지점을 바꿨다.
관장도 놈이 검을 차려는 것을 보면서 팔이 터지려는 통증을 참으며 옆구리로 가던 검을 급격히 위로 쳐올렸다.
놈은 이진성의 도끼는 쳐낼 수 있었다.
놈의 손에 맞은 도끼면에서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듯이 깡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순식간에 타격지점을 바꾼 나현주의 발과 관장의 검은 피하거나 막지 못하고 타격을 허용해야 했다.
퍽 소리와 함께 놈의 양어깨에 내려꽂힌 나현주의 양 무릎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분명히 매우 탄력적인 살을 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안의 뼈가 부러지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았다.
놈의 발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꺽어올린 검이 겨우 따라오는 발을 앞지르며 놈의 겨드랑이에 닿자 관장은 그대로 검을 쓸어냈다.
검이 닿는 순간 놈의 겨드랑이가 단단해져 오는 느낌을 받았지만 동시에 살을 베는 느낌도 분명하게 전해져 왔다.
놈은 왼쪽 겨드랑이를 베이고 양쪽 쇄골이 부러졌다.
도끼가 놈의 손에 맞고 팔이 벌어지면서 허점이 드러난 이진성을 공격하려던 놈은 포기하고 몸을 굴려야 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두 사람의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놈을 나현주와 관장은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나현주는 일어나는 놈의 다리를 걷어차서 중심을 흐트러트렸다.
동시에 관장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의 등에 검을 쏟아 넣었다.
보이지도 않을 스피드의 검격은 놈의 등에 작은 검상들을 만들어 냈다.
크아아아~
놈이 소리 지르며 두 팔을 크게 떨쳐냈지만 두 사람의 스피드 놈에게 뒤지지 않았다.
몇 번의 공격과 방어를 통해 놈의 스피드에 익숙해진 두 사람은 스피드 만큼은 거의 대등하게 놈을 따라잡았다.
두 사람의 집요한 공격을 놈도 막거나 피해내지 못하는 횟수가 늘었다.
자잘한 상처가 쌓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진성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끼를 휘둘러 놈의 신경을 분산시켜 두 사람에게 공격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사람 셋과 좀비 하나에게는 상처가 점점 늘어갔다.
가장 상처가 많은 사람은 나현주였다.
놈과 직접 손발을 섞다 보니 온몸에 갈라지고 터진 상처였다.
아까 뒤집어쓴 좀비들의 피에 자신의 피를 더했고, 거기에 놈의 피까지 더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직 뼈를 다치지는 않았지만, 타격을 줄 때마다 손목과 발목이 시큰한 느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진성과 관장은 나현주 보다는 덜하긴 했지만 역시 여기저기 살이 뜯겨나가는 상처를 입고 있었다.
특히 이진성은 옆구리 살이 한 줌 뜯겨나가 적지 않은 피를 흘리면서 싸워야 했다.
“야 이 씨발년아. 그만 좀 뒤지란 말이야.”
어느새 일격참이란 구호도 잊고 욕을 하면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이진성이었다.
한순간 이진성은 놈이 나현주의 킥을 피하면서 관장의 검에 옆구리를 베이는 것을 봤다.
놈의 정면에서 어깨를 향해 도끼를 찍었다.
도끼날이 거의 놈의 어깨에 닿으려는데 갑자기 놈이 푹 꺼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왼쪽 허벅지가 불로 지지는 듯하더니 다리 옆으로 빠져나가는 놈이 보였다.
허벅지에는 놈의 손톱으로 갈라진 네 개의 깊은 고랑이 파여있었다.
으아악~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다시 달려드는 놈을 피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팔로만 도끼를 휘둘러 막아야 했다.
놈은 나현주와 관장의 공격을 허용하면서 이진성만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마침내 두 사람의 공격에 놈의 갈비 두 개가 부러지고 옆구리에 깊은 자상이 났다.
동시에 이진성은 놈의 발을 가슴에 맞고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날아가 떨어져 꿈틀거리는 이진성을 본 나현주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찌리리 하면서 정신이 확 들었다.
분노했지만 흥분하지는 않았다.
놈을 반드시 죽이고 만다는 각오를 더 하며 관장의 반대편에서 놈에게 미친 듯 공격을 퍼부었다.
관장의 검도 아까보다 더욱 정교해 지면서 놈은 순간 움직임이 어지러워지는 듯했다.
나현주에게 기회가 보였다. 540도 후려차기를 날렸다.
거기에는 아까 싸우면서 깨달은 모든 것이 들어가 있었다.
한순간에 놈의 옆구리, 갈비, 목에서 북 치는 소리가 났다.
놈은 영악하게도 나현주에게 맞은 충격을 이용해서 관장에게 날아들었다.
막 놈의 허벅지를 베면서 검을 뽑아내던 관장은 당황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놈이 쏘아오는 것이었다.
급하게 몸을 빼면서 놈의 목에 검을 날렸다.
하지만 놈이 더 빨랐다.
놈의 주먹이 가슴에 꽂혔고 갈비가 부러지는 느낌과 함께 뒤로 날아가야 했다.
땅에 떨어진 후 급하게 일어났지만 부러진 갈비가 찔러오는 고통에 검을 쓸 수가 없었다.
날아간 관장에게 따라붙는 놈에게 나현주도 따라붙었다.
앞에는 주둥이를 벌리고 손톱을 세우고 관장을 찍어가는 놈의 등이 있었다.
여기서 잘못하면 다친 셋은 확실하게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점프했다.
그녀의 눈에 관장이 겨우겨우 검을 세워 놈을 찔러가는 것이 보였다.
놈도 많은 상처를 입으면서 움직이는 속도가 전 같지 않았다.
관장의 검을 쳐내면서 방향을 트는 놈의 몸이 주춤한다고 느껴졌다.
그 순간 나현주의 킥은 놈의 목에 꽂혀 들어갔다.
퍽 소리와 함께 옆으로 날아간 놈이 가로수에 처박히면서 가로수 밑동이 터져나갔다.
이번 타격은 컸는지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현주는 최대의 스피드로 달려가 놈의 턱을 차올렸다.
놈의 대가리는 맥없이 뒤로 꺾였고 거기에 나현주의 연타가 날아가 꽂혔다.
몰아치는 발과 주먹을 전부 맞는 놈의 방어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 나현주에게 느껴졌다.
쇠를 내려치는 듯한 느낌이 돌을 내려치는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몇 분을 더 몰아치자 그 느낌은 고무 덩이를 내려치는 그것으로 변했다.
놈의 움직임도 이제는 의미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공격은 느렸고, 방어한다고 들어 올리는 팔은 별 힘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놈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나현주의 발로 전해왔다.
부러졌던 빗장뼈를 조각을 냈다.
왼쪽 팔을 어깨에서 탈골 시켜 버렸다.
갈비뼈 세 대를 더 부러뜨렸다.
오른쪽 무릎을 반대 방향을 꺾어 버리고 오른 팔뼈는 다섯 조각 냈다.
공격을 멈춘 나현주가 잠시 물러나 앞을 봤다.
놈은 오른 다리가 무릎에서부터 앞으로 꺾어져 일어서지 못하고 왼발로 버둥거렸다.
왼쪽 팔을 어깨 밑으로 축 늘어졌고, 오른쪽 팔에서 뼈가 튀어나와 팔로 땅을 짚지도 못했다.
갈비뼈가 부러져 멋졌던 근육질의 상체는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입으로 피를 흘리며 나현주를 노려보는 검은 눈의 놈이 그르렁거리며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버둥댔지만, 제자리에서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런 놈을 한참 들여다보던 나현주가 놈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야 이 씨발년아. 저기 저 사람들이 저대로 죽으면 내가 니년을 산채로 갈아 마실 거야.”
말과 함께 골반을 박살 내고 남은 하나의 다리마저 못 쓰게 만든 나현주는 제일 먼저 이진성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내상으로 피를 토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김현희는 부러진 팔 말고는 다른 피해는 없었고 관장도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당장 혼자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다.
나현주는 이진성의 도끼를 들고 다시 놈에게 다가갔다.
“운 좋은 줄 알아 씨발년아. 그냥 곱게 죽여 줄 테니까.”
나현주는 놈의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도끼로 자근자근 찍어 나갔다.
이미 힘이 다 빠진 놈의 살은 찍는 대로 갈라졌고 뼈는 바스러졌다.
일부러 힘 조절을 해서 끊어내지는 않고 팔다리, 골반까지 고깃덩어리로 만든 나현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만하면 곱게 죽는 거다. 그치?”
말과 함께 가슴을 도끼로 내리쳐 심장을 터트리고 목을 잘라냈다.
그리고 놈의 시체를 바로 보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 왔다.
이진성이 겨우겨우 걸어와서 조용히 도끼를 받아들고서는 나현주를 감싸 안았다.
“됐어요. 이제 끝났어요. 진정해요. 다 끝났어요.”
나현주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에 이진성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이 더는 사람 같지 않았다.
이진성은 그런 나현주의 등을 토닥거렸다.
“봤냐? 마녀가 마녀를 곤죽 냈어.”
“으아. 꿈에 나올까 봐 무섭습니다.”
“역시 사람 아니었어. 잠깐이라도 사람인 줄 알았잖아.”
“피의 마녀가 검은 마녀를 이긴 거야. 와. 존나 멋져.”
숨어서 지켜보던 7초소병들이 밖으로 나왔다.
사방에 널려있는 시체와 그 위에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마녀와 그녀를 안고 있는 도끼 아저씨의 모습은 두려우면서 동시에 멋졌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장동건은 이진성과 나현주에게 달렸다.
이택진은 엉엉 울면서 김현희에게 달렸다.
그날 이후 동탄에서는 피의 마녀 이야기가 살에 살을 붙여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