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이재규에 대한 불만을 한참 털어놓는 대령과 허 소령은 결국 이 대위를 제거하는 것으로 결정 봤다.
구체적인 방법은 허 소령이 짜서 보고할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부하들한테 신망이 좋아. 그 녀석 중대원들은 다 좋아하잖나? 지금 같은 세상에 따르는 부하들이 많다는 건 우리한테 위험해. 그러니까 놈을 제거했을 때 부하들의 반발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해. 명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허 소령은 거기에 대해서 바로 한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그 녀석 중대를 외곽경비로 돌리겠습니다. 교대 인원도 없습니다. 인원은 야금야금 소모될 겁니다. 놈은 기반을 잃는 거죠.”
“이 사람 이거. 벌써 생각하고 있었구먼?”
“저야 장군님의 심기를 살피는 것이 일 아닙니까? 항상 장군님 편하게 해 드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 이 사람. 내가 이러니 자네를 안 좋아 할 수가 없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둘은 몇 가지 현안에 대해 더 논의를 해나갔다.
대부분 내용은 부대원과 주민의 생활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자신들의 향락과 치부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좋은 게 들어왔다지?”
“네. 저쪽 상업지역에서 마리화나하고 엑스터시를 좀 찾았습니다. 그래서 여자들도 새로…….”
“허허허… 이 사람. 역시 알아서 잘해. 애들이 이제 질릴 참이었어. 그것들은 용인으로 팔아 버려. 이번에는 식량하고 탄약도 좀 넉넉히 받고 말이야.”
“용인에서 저희가 탄약이 얼마 없다는 걸 알고 자꾸 가격을 올려서 큰일입니다.”
용인 얘기에 얼굴을 구긴 대령은 시계를 보고는 소파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허 소령. 아니 허 대령. 가자고. 새로 온 애들이 어떤지 한번 가 보자고. 허허허”
* * *
“그래서, 놈의 패악이 도를 넘었으니 우리가 처리해 달라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정의를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의라고 했소?”
관장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대위는 정의감이 투철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대위님.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희는 정의의 사도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살려고 싸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리고 정의를 세우고 싶으시면 대위님이 직접 하시면 되잖아요? 대위님도 이미 진화하신 분이면서.”
이진성의 말에 대위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도 궁금했는데 그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리고 여러분들도 그런 분들이신 건가요?”
“우리도 그런 사람들인 것은 맞소. 아는 방법은 내가 그런 능력을 얻었소. 그냥 보면 알아보는 거요”
관장은 구체적인 이야기는 피했다. 그리고 이재규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진화와 능력의 획득 자체가 비정상인데, 그런 능력이 생겼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왜 직접 안 하는지 말씀 안 하셨습니다만?”
채근하는 이진성을 보고 대위는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이 정의감에 들뜬 분들이 아니시라면 말하기가 더 쉽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 보며 뜸을 들인 대위가 말을 이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누가 하든 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 지도자가 이왕이면 개차반보다는 사람다운 놈인 것이 좋고요.”
“그래서 이 대위님이 그 지도자라는 걸 하겠다?”
“왜요? 안될 거 있습니까?”
안될 거는 없었다. 누가 하든 일행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대령이라는 놈이 들은 대로 개차반이면 이 대위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 왜 직접 하지 않는지 대답을 안 하셨네요?”
나현주의 물음에 이 대위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저들은 저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하면 사상자가 너무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한다 해도 남은 사람들이 또 권력다툼을 할 수 있고요. 파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면요?”
“그러면 견제할 대상이 애초에 생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개차반 폭군을 제거해준 고마운 사람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떠날 분들 아닙니까?”
“그래도 알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소?”
“대령을 처리하면서 장교 모두와 그쪽 부사관을 같이 제거할 겁니다. 남은 부사관들은 저한테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사병의 대부분은 저를 좋아합니다. 저를 좋아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김현희가 끼어들었다.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얘기네요? 그렇게 한 뒤 우리 뒤통수를 안 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뒤통수를 치면 제 손해입니다. 모르시겠지만, 여러분은 이곳 병사들 사이의 스타입니다. 제가 그랬다가는 대부분 병사가 제 명령을 안 들을 겁니다. 그럼 거사를 할 이유가 없죠.”
말을 하며 이 대위는 김인식과 박대성을 바라보았다.
김인식과 박대성은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소. 토사구팽은 안 한다고 칩시다. 우리한테는 뭐가 좋은 거요?”
“일단 그 안에 저분 가족들이 계시면 구출하실 수 있어 좋습니다. 만약 안 계시더라도 대령의 장부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 장부에서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장부요? 무슨 장부요?”
“대령은 사람들을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사람을 팔고 음식과 무기를 받고 있죠. 이모님 아파트 지역에 처음 갔을 때 거의 버스 한 대 인원을 용인에 팔았습니다. 제가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그 버스가 안산의 어떤 교회 버스라고 들었습니다”
“용인은 또 뭔가요?”
이진성은 갑자기 튀어나온 용인이라는 지명과 인신매매 사실에 짜증이 확 나서 물었다.
그로부터 이 대위는 좀비 사태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권력층의 대피쉘터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요소요소에는 소행성에 대비해 구축한 권력층의 쉘터가 있고 그중 하나가 용인의 무봉산 지하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곳에는 경인 지역의 국회의원들과 몇몇 군 장성들, 지자체장들, 중견 기업의 오너들, 돈 좀 있다는 지역 유지들 그리고 경비병력과 함께 그들이 3년 이상 먹을 식량과 수많은 탄약과 무기가 저장되어 있다고 했다.
사태발발 이전부터 유전자 검사를 쭉 받아온 사람 중에 마지막까지 안전이 확인된 사람들 수백 명이 전국의 쉘터로 흩어져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끼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일할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반항하지 못할 장년부터 노년까지의 사람들은 허드렛일꾼으로 쓰고 젊은 여자들은 성욕의 해결 용도로 사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 씨발. 힘 좀 쓴다는 것들이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 해도 너무하네. 그것들이 사람들을 여기서 사 간다고요? 젊은 여자들은 그 짓 하려고 사가고? 와 씨. 정말 해도 너무하는 거 아냐? 세상 무너졌다고 법이고 뭐고 다… 와…….”
장동건의 탄식과 함께 모두는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안산에서 온 교회 버스라고 했나요? 혹시 그 버스가 어느 교회 버스인지 장부에서 확인 가능할까요?”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령이 그런 건 꼼꼼하거든요.”
“현주 씨. 만약에 우리 엄마가 안산스타디움에서 타고 온 버스라면, 어쩌면 현주 씨 부모님과 이모님도 거기 같이 가셨을지도 몰라요. 여기서 서로 만났을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혹시라도 그렇다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 때문이라도 이 대위님의 요청을 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네요?”
한참의 상의 끝에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의 총이었다.
“안에 있는 부사관들은 대령의 심복들이니까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대령이 자주 파티를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마약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파티하는 때를 노리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언제요?”
“모르긴 합니다만 1주일에 한두 번은 합니다. 오늘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안돼요. 우리가 회복하고 난 후에 하는 거로 해야 해요”
“네. 저도 오늘 당장은 힘듭니다. 저희 쪽도 준비해야 할 것이 있고…….”
말을 마친 이 대위는 장동건을 돌아봤다.
“그 쪽분은 권총도 잘 쏘시나요?”
“권총은 안 써 봤는데요? 그래도 있으면 쓰겠죠?”
“알겠습니다. 권총과 소음기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권총 소음기를 왜 일반 보병부대에서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준다면 받아서 쓰면 그만이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연락은 여기 두 병사를 통해 드리겠고 물건도 이들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이 대위는 돌아가고 며칠에 걸쳐 탄약과 권총. 클럽하우스 내부 약도 등을 보내왔다. 관장이 요청한 대검도 왔다.
그동안 이진성의 내상과 나현주의 외상은 흔적 없이 다 나았고 김현희와 관장의 뼈도 거의 붙었다.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으세요?”
“괜찮소. 약간의 통증은 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오”
“나도 그래. 부러진 뼈는 붙으면 더 단단해진다며? 그리고 내가 총 든 놈들하고는 별로 할 것도 없잖아?”
“택진 아저씨는 일이 벌어지면 그 전원주택에 가 계세요. 그편이 안전하겠어요. 그리고 김 병장이랑 박 상병도 거기 같이 가 있고.”
김인식과 박대성은 그동안 사람들과 아주 편해졌다. 이들은 이제 거의 한 일행처럼 굴고 있었다.
1주일 내로 D-day를 잡을 줄 알았던 이 대위의 거사 일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동안 일행은 몇 번의 좀비 습격에 나가 군인들을 도와 좀비들을 소탕하며 점점 더 군인들에게 유명한 인물이 되어갔다.
특히 나현주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10여 일이 지난 4월 25일. 이 대위가 직접 사람들에게 왔다.
“오늘 밤 11시에 클럽하우스로 오십시오. 외곽 경비 인원은 전부 저희 인원입니다. 그냥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놈들이 마약 파티를 하는 곳은 사우나로….”
설명을 마친 이 대위가 돌아가고 일행은 컨디션을 확인하면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10시 반쯤 숙소를 떠난 일행이 차량을 이용해 클럽하우스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11시에서 10분을 남겨 놓고 있었다.
외곽의 경비병력은 이 대위의 말대로 차량을 무사통과시켰고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사람들, 특히 나현주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11시가 되었다.
일행은 주차장에서 나와 장동건을 선두로 이 대위가 기다리고 있는 직원용 클럽하우스 후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대위가 무슨 짓을 했는지 후문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이걸 만들기 위해 그토록 시간이 걸렸는지 몰랐다.
문 안에서 기다리던 이 대위는 일행이 들어오자 바로 약도를 꺼냈다.
“여기에 당직서는 다섯 명입니다. 전원 무장이고요. 제가 아까 대마초 연기 빼라고 문을 조금 열어놓고 나왔습니다. 사우나에는 열일곱이 있습니다만 여기 다섯만 처리하면 거기는 문제없을 겁니다.”
정문 옆방을 약도에서 짚는 이 대위에게 나현주가 물었다.
“우리가 처리하는 동안 어디 계실 건가요?”
“저는 나현주씨 부모님하고 이모님 흔적을 찾아야죠. 이곳 대령 방에 있을 겁니다. 끝나시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 대위가 짚은 곳은 1층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그리고서 이 대위는 복도를 걸어갔다.
일행은 그 뒷모습을 한참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대위가 충분히 멀어지자 이진성이 말을 꺼냈다.
“현희 누나는 계획대로 이 대위 뒤를 밟아 줘요. 저놈이 대령 방에서 뭘 하는지 볼 수 있으면 좋지만 무리하다 들키지는 말고요.”
“걱정하지 마. 들켜도 총만 조심하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저놈이 총질한다면 딴 마음먹었다는 증거니까 제거하면 되고.”
“하여간 조심. 알았죠?”
이 대위가 복도 저쪽 코너를 돌자 김현희는 그가 지나갔던 복도를 달렸다.
나머지 일행은 이 대위가 말한 정문 옆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