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58화 (58/145)

# 58

신녀

5월의 첫날. 아침부터 동탄 전역에서 주민들과 군인들이 차량에 오르고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평택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언니. 잘 지내요. 나중에 기회 되면 찾아갈게.”

“에구 이년아. 뭐하러 와. 부모님 찾으면 거기서 잘 살아. 그리고 진상이 하고도 잘… 알지?”

“언니는 또 진상이라네. 뭐 하여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거고 언니나 아저씨랑 잘 지내.”

“누님. 그리울 거예요. 벌써 눈물이 나려고 해요.”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는 장동건의 등짝을 한 대 쳐준 김현희는 관장에게 인사하고 이진성을 끌고 구석으로 갔다.

“현주한테 잘해야 하는 거 알지? 애먼 짓 하다가 얻어터지지 말고. 비에 젖은 낙엽처럼 그저 현주한테 딱 붙어있어. 그럼 좋은 일 생길 거야. 흐흐흐.”

“뭔 소리래요. 그래도 제가 남잔데 뭔가 바뀐 거 같은데?”

“너 현주한테 이겨?”

“아니죠.”

금방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진성을 뒤로하고 김현희는 이택진을 끌고 차에 올랐다.

김인식 병장과 박대성 상병도 일행에게 한 명 한 명 인사하고 김현희와 같은 차를 탔다.

출발하는 차를 바라보다 자신들의 승합차로 몸을 돌리는 일행에게 이 대위가 다가왔다.

“이건 소개서입니다. 가서 김진석 소장을 찾아 전해주면 됩니다. 제가 말은 해 놨으니까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김진석 소장이요? 꼭 그 사람을 찾아가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그분이 그곳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쉘터로 가시면 초병들을 만나실 겁니다. 그때 이 소개서를 전해 주세요.”

소개서를 전해주고 미소 짓고 돌아서는 이 대위를 보는 관장은 그 미소에서 느껴지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가야 할 길, 이내 생각에서 지워버렸다.

“소개서에는 별 내용 안 적혔네요. 그냥 자기가 우리를 보증한다는 내용? 그게 다예요.”

이진성이 봉투를 열어 소개서를 확인하고 나서 모두는 차에 올랐다.

쉘터까지는 운전병 한 명이 운전해 주기로 했다. 일행을 내려주고 그 승합차로 다시 돌아와 평택행에 합류할 사람이었다.

“저희 때문에 쓸데없이 수고만 하시겠어요.”

“아닙니다. 겨우 4km 정도 거리입니다.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뭐 영광까지. 하여간 고마워요.”

자신만 보면 군기가 바짝 드는 군인들을 보며 나현주는 피식하고는 말을 그쳤다.

동쪽 방어선이었던 동탄 순환로를 벗어나자 인가는 확 줄어들었다.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적한 길 오른쪽으로는 골프코스가 있는 산자락이 보였고 조금 더 가니 저수지도 하나 나왔다.

날씨도 좋아 일행은 마치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저기 저수지에서 좀 놀다 갈까요? 운전병 아저씨 시간 있어요?”

“시간 여유 많습니다. 사람들 다 빠지고 방어선 철수까지는 아직 몇 시간 더 걸립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저수지를 빙 둘러 드문드문 몇 채의 집이 있었지만 이미 전부 빈 집으로 보였다.

저수지 입구에 차를 세우고 전부 내렸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상쾌했다. 물도 맑아 보였다.

가까이에서 나는 좀비 냄새는 없었다.

“형님. 우리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가요. 이런 데서 먹는 라면이 또 맛이… 흐흐흐.”

“그럴까나?”

차에서 버너와 생수, 라면을 꺼내온 장동건이 크지도 않은 냄비에 겨우겨우 다섯 개를 끓여냈다.

둘러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뽀글이같은 라면을 먹으며 이진성은 장동건과 농담을 하며 키득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불어오던 바람이 남동풍으로 바뀐 후 이진성은 라면 먹던 손을 내렸다.

바람을 타고 시큼한 냄새가 코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진성이 저수지 대각선 건너편을 보며 말했다.

“저쪽으로 400m 정도? 저 숲 안쪽인 거 같은데요. 한 50마리 있네요. 저쪽에 모여서 움직이지도 않아요.”

이진성의 말을 들으며 그쪽을 바라보면 운전병이 혼잣말을 뱉었다.

“거기는 보육원 하나밖에 없는데.”

그 말을 들은 나현주가 물었다.

“보육원이 있어요? 거기 아직 사람들이 있어요?”

“네. 어른은 없이 아이들만 열두 명 정도 있습니다. 저희가 1주일에 한 번씩 부식을 주러 갔었거든요. 저도 몇 번 갔고요.”

“아니 왜 거기에 둬요? 방어선 안쪽으로 들이지 않고?”

말을 한 그녀는 대답을 듣지 않고도 생각나는 게 있었다.

“설마, 고아 애들한테서 받을 게 없어서 그런 거예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저희가 건의는 했지만, 간부들이 묵살해서요. 사실 부식도 저희 병들이 모은 것을 가져다 준거라서 넉넉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이제 저기 아이들은 앞으로 식량도 못 받고 굶어야겠네요?”

“그게… 그렇습니다.”

나름 보육원 봉사도 많이 다녔던 나현주는 마음이 짠했다.

그렇다고 책임지지 못할 아이들을 나서서 아이들을 구해줄 수는 없었다. 나현주는 보육원 쪽을 안 좋은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진성이 운전병에게 물었다.

“혹시 아이들 구하면 평택에 데려가는 건 가능해요?”

“그거야 가능할 겁니다. 이 대위는 대령과는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이동 중에 아이들 그 정도 끼워 넣으면 알 수도 없고요.”

“현주 씨. 우리 저 아이들 구해줘요. 어른들이면 그냥 가겠는데 아이들이라서 그냥 가기 마음이 좀 그러네.”

“그래요. 형님. 아무래도 애들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편하지 않네요.”

관장도 좀비로 변해서 자신이 직접 보내준 딸이 생각났는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보였다.

“아저씨는 여기 차 안에 있어요. 총도 없잖아요. 동건아. 너도 쓸데없이 총 쓰지 마라. 소리 듣고 더 몰려올라.”

“그래요. 난 보고만 있을게요. 어차피 50 정도면 형님 혼자서도 쓱싹 아닌가? 크크크.”

“헐. 나 혼자서는 무리지. 아 현주 씨도 옷 버리지 말고 그냥 있어요. 관장님이랑 저랑 할게요.”

“오! 기사도? 멋져. 형님 점수 좀 따겠어요. 흐흐흐.”

이제 50마리 정도는 긴장도 않는 일행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저수지를 끼고 대각선 방향으로 달렸다.

보육원은 숲속으로 길을 따라 150m 정도를 들어가야 나왔다. 너무 외져서 찾아오는 사람은 있었을까 싶은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는 지금 사람 대신 사람이었던 것들이 보육원을 빙 둘러 있었다.

일행은 그런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놈들을 관찰했다.

“저것들 좀 이상하지 않아요? 공격도 하지 않고 일정 거리 밖에서 그냥 서성거리고만 있네? 안에서 분명히 사람 냄새나는데?”

놈들은 보육원에서 10m 떨어진 지점에서 더 접근은 않고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일부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놈들도 보였다.

그런 놈들을 보던 관장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상하기는 하오. 그리고 저 보육원 안에서 이상한 기가 강하게 나오고 있소.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처음 느끼는 기오. 뭐랄까 불쾌한 기운인데 위험하지는 않은 그런건데…….”

말을 들은 일행은 관장의 그런 자신 없는 태도에 놀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기라는 것이 지금 보이는 좀비들의 행동에 영향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일단 가 봐요. 안에 애들이 있는 건 확실하니까.”

관장과 이진성이 좀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앞으로 달렸다. 장동건과 나현주는 걸어서 뒤따르며 혹시나 있을 위험에 대비했다.

놈들은 두 사람이 다가설 때 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놈의 목이 떨어지면서 놈들이 뒤돌아 두 사람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관장의 검술은 동탄 이전보다 빠르고 간결했다. 그 검에 당한 놈들의 상처는 크지 않으면서 치명적이었다.

원래 그다지 옷을 더럽히지도 않았지만, 요즘에는 보통의 빨간 눈과 검붉은 눈을 상대로는 거의 피를 묻히지 않았다.

목을 베는 것도 피가 뿜는 방향까지 고려하는 것 같았다.

이진성도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움직임을 보여줬다. 전보다 짧고 무거운 도끼지만 훨씬 강력했고 몸의 움직임도 몰라보게 민첩해 졌다.

한 번씩 보여주던 나현주의 발차기도 이제는 꽤 자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괴력도 처음 만났을 때의 나현주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다.

힘과 스피드에 정교함까지 더해지면서 이제는 정말 혼자서도 보통의 좀비 50 정도는 무리 없이 해결할 수 있어 보였다.

“오. 형님이 펄펄 나네요. 누나가 보고 있어서 그런가?”

“또 쓸데없는 소리. 잘 보고 있어. 위험하면 바로 지원하고.”

“형님 걱정하시는 거? 에구 부러워라. 크크크.”

“너 그러다 맞는다.”

한 10분이나 됐을까 싶은데 놈들은 모두 정리됐다. 관장은 옷에 피 좀 묻은 정도고 이진성도 처음처럼 피를 뒤집어쓴 정도는 아니었다. 옷만 갈아입고 얼굴과 손만 조금 닦으면 될 정도였다.

두 사람에게 다가간 나현주는 곁눈질로 이진성이 상처 없음을 확인하고는 보육원으로 들어가려고 발을 옮겼다.

“잠시 기다려 보시오. 아무래도 저 기가 수상하오. 내가 앞장서겠소.”

긴장을 풀지 않은 관장이 검을 앞세우고 선두에 섰다.

관장의 말을 들은 셋은 좀비를 처리할 때도 하지 않은 긴장을 하며 서서히 보육원 현관문으로 향했다.

삐이익~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잠금장치 자체가 없는 문이었다.

현관 안으로는 커다란 신발장과 그 안으로 좌우로 나뉘는 복도가 보였다.

밖에서 봤듯이 크지 않은 보육원이었다.

사람의 냄새는 오른쪽 복도 끝에서 나고 있었고 관장이 느끼는 기도 그쪽에서 퍼져 나왔다.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어간 일행의 앞에 식당이라는 표찰이 붙은 미닫이문이 나왔다. 역시나 그 문에도 도어핸들 같은 것은 없었다.

“여기는 문 잠근다는 개념이 없네.”

장동건이 거총을 하고 관장도 자세를 잡았다. 나현주가 앞으로 나서며 문을 살짝 밀었다.

끼이~

문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아이들 몇 명의 뒷모습이 보였다.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뛰어든 나현주는 들어가자마자 멈춰 섰다.

안에는 가운데 서서 눈을 감고 있는 고등학생 정도의 여자아이 하나와 그 둘레를 감싸고 떨고 있는 어린아이 들 뿐이었다.

“안전한 거 같아요. 총 내려.”

나현주가 한 발 들어서자 아이들이 주춤거리며 가운데 아이에게 더 달라붙었다.

“괜찮아. 언니 무서운 사람 아니야. 여기 아저씨들도 무서운 사람 아니야. 걱정하지 마.”

천천히 팔을 들면서 제자리에 서서 나직하게 말하는 나현주를 보고 아이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는지 긴장이 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가운데 서 있는 한 아이만은 사람들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지 그대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리고 관장은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 아이에게서 이상한 기파가 퍼져 나오고 있소.”

관장은 그 서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일행은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아이를 보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주위의 어린아이들도 말없이 일행을 보고만 있을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저기, 얘. 들리니?”

나현주가 말을 걸었지만, 그 아이는 미동도 안 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어쩌나 싶어 서로의 얼굴만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풀썩 주저앉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헉 허억

숨을 몰아쉬다 가슴에 통증이 오는지 가슴을 부여잡으며 몸을 꺾고 부르를 떨기를 약 1분.

아이는 점점 편해지는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흡이 완전히 편안해진 아이가 눈을 뜨고 서서히 일행을 둘러봤다.

그때까지 일행은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지켜 보고만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그 상황이 처음이 아닌지 놀라지도 않고 그저 큰 아이의 주위에서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일행을 한참 보던 아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 입에서 아주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내용은 너무도 뜬금없었다.

“이제 왔어? 오래 기다렸잖아.”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되는 일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둘러봐야만 했다.

아이는 그 말만 하고 결국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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