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얘. 정신이 좀 드니?”
아이는 10여 분이 지나자 정신이 드는지 몸을 일으켰다.
큰아이가 기절하자 마치 보호라고 하겠다는 듯, 그 아이를 몸으로 덮어 일행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던 어린아이들도 그때야 비켜섰다.
일행을 찬찬히 둘러보는 아이는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데요?”
또다시 밑도끝도 없이 알 수 없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무슨 말이니?”
“관우 같은 신장이 오기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는 없어요.”
“관우? 막 수염 여기까지 오고 적토마 타고 청룡언월도 휘두르는 삼국지의 그 관우?”
앞으로 나서는 장동건을 잠시 쳐다본 아이는 이내 무시하고 나현주를 곱지않은 눈으로 돌아봤다.
“다른 사람 더 없어요?”
“있기는 한데, 지금 옷에 막 피가 묻어있고 그래서 너 놀랄까 봐 밖에 나가 있어.”
“누나. 형님이 전에 그 중식도 가지고 청룡언월도라고 부르고 그랬잖아요. 형님 얘기 하는 거 같은데요?”
“아. 몰라. 가서 아저씨 좀 불러와 봐. 그리고 아저씨가 어딜 봐서 관우야?”
“하긴. 관우는 무슨. 형님이 관우면 관우가 저승에서 억울해서 통곡을 하겠네.”
잠시 후 대충 얼굴에 묻은 피를 닦은 이진성이 장동건과 함께 들어왔다.
아이는 쭈뼛거리고 서 있는 이진성을 한참 바라보던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점지받은 모습이랑은 아주 다르네요. 그래도 신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겠죠. 아, 신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운명을 주시나이까?”
천정을 올려다 보며 점점 모를 소리만 하는 아이였다. 결국 답답한 나현주가 나섰다.
“얘. 무슨 말인지 좀 알아듣게 말해봐.”
아이는 그런 나현주를 힐끗 보고 무시하고는 다시 이진성에게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아줌마는 가만있어요. 그리고 거기 아저씨는 이리 가까이 와 봐요.”
“아줌마? 너 지금 나보고 아줌마라고 했니?”
“아. 누나 참아봐요. 애가 아프잖아.”
“놔. 이거 안놔?”
아줌마 소리에 흥분한 나현주와 그녀를 붙잡는 장동건을 뒤로하고 이진성이 앞으로 나섰다.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가만히 이진성을 보던 아이가 한 말은 기어이 나현주를 뒤집어 놨다.
“나이가 생각보다 많은것 같네요. 외모도 많이 떨어지고요. 내 신랑으로 많이 부족한 듯 보이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신의 뜻이니까 받아 들일게요. 어쩌면 아직 알을 깨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뭐 신랑? 쟤 뭐래니? 쟤 미친 거지? 제정신 아닌 거지?”
“아 누나. 가만있어 보라니까. 나가요. 나가서 바람 좀 쐬요.”
끌고 나가려는 장동건을 마지못해 따라가려는 나현주의 귀에 여태 팔짱을 끼고 가만히 보고 있던 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두시오?”
아이와 일행의 시선이 관장에게 쏠렸다.
아이는 놀랍다는 듯 관장을 쳐다봤다.
“맞아요. 명두예요.”
“아까의 그 이상한 기파는 직접 한 거요? 아니면 몸주신이 하신 거요?”
“기파라뇨?”
“아까 서 있을때 몸에서 나오던 그 기운 말이오. 내 생각에는 그 기운때문에 밖의 좀비들이 안들어 왔던 것 같은데.”
“아. 그거요? 그건 누가 한 거라고 할 수 없네요. 몸주신께서 제 몸을 빌려 하신 거니까.”
알 수 없는 둘의 대화는 한참을 이어졌다. 나머지 셋은 멀뚱멀뚱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화가 끝난 듯 보이자 이진성이 관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명두가 뭔가요?”
“잠깐 나갑시다.”
대답 않고 몸을 돌려 나가는 관장을 셋은 따라 나갔다. 마당으로 나간 관장은 이진성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질문부터 했다.
“저 아이. 어떤 냄새가 나오?”
“아,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요. 저 아이도 달큰한 냄새던데요. 굉장히 깨끗한 달큰한 냄새요. 그런데 명두가 뭐예요?”
관장은 한참을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명두라는 것은 어린 여자아이의 혼령이 몸에 실린 무당이라는 것이다. 명두 또는 넓게 남자 혼령 여자 혼령 구분 않고 태주라고도 한다고 했다.
이들 귀신은 예지력이 있어 미래를 알려주는 존재이며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점괘를 알려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말이오. 지금은 아이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가 그냥 보통사람의 기요. 아까 느꼈던 그 이상한 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소. 그럼 몸주신이 아까 그걸 했다는 말인데…. 명두가 아까 그런 기파를 발산한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소. 전에는 기에 대해 무지해서 몰랐다 쳐도 명두가 퇴마를 한다거나 하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말씀하신 이상한 기파가 귀신이 퇴마 막 그런 거 한 거 같다는 말씀이세요?”
“그렇게 생각되오.”
“에이, 그럼 정말로 귀신 같은 게 있는 거예요? 진짜로?”
“나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지 않소?”
놀라서 묻는 장동건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관장 대화를 듣던 이진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혹시 말이에요. 무당이라는 존재들이 원래부터 달큰한 냄새를 가진 존재들 아닐까요? 그 귀신 능력이라는 게 원래는 뭔가 유전적으로 타고난 특이능력 그런거 아닐까요? 우리는 후천적으로 변했지만 무당은 선천적인 뭐 그런거?”
“그렇다면 지금도 기가 느껴져야 하지 않겠소?”
일행이 올 것을 기다렸다는 말이나 이진성의 존재를 보지 않고 한 사람을 더 찾던 것을 봐서는 예지력이 있다는 명두무당이 맞기는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달큰한 냄새가 난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금은 보통 사람의 기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기파를 쏠 수 있다.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존재에 대해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서 좀 더 물어보죠.”
나현주의 제안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일행이 다시 식당에 갔을 때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 아이만 식당에서 의장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궁금한 게 좀 있는데 대답해 줄래?”
미소를 머금고 물어보는 나현주를 아이는 냉정한 얼굴로 쳐다보고는 매정하게 대답했다.
“아줌마는 빠지라니까. 난 아줌마랑 말하기 싫어.”
“하, 저게 진짜. 아줌마 아니거든? 그리고 왜 나랑 말하기 싫은데? 너 나 알아? 내가 너한테 뭐 안 좋은 일이라도 했어?”
짜증내는 나현주를 잠시 노려보던 아이가 빽하고 소리 질렀다.
“저 아저씨는 내 신랑으로 점지된 사람이야. 나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시대로 해야 해. 안그래도 짜증나는데 아줌마랑 저 아저씨랑 이어져 있단 말이야. 짜증나게.”
“뭐? 무슨 헛소리야? 이게 진짜로 혼나 볼래?”
얼굴이 벌게져서 어찌할 줄 모르는 나현주와 그런 나현주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이진성, 그리고 그들을 보며 킬킬거리는 장동건을 뒤로하고 관장이 다시 나섰다.
“명두께서는 이름이 어찌 되오?”
“장 혜진이에요.”
“나이를 알려 주실 수 있겠소?”
“열아홉이요. 왜요?”
“혹시 최근에 몸살 같은 것을 알았소? 그전에 많이 피곤하다거나 육식이 당긴다거나 배변이 준다거나 그런 증상이 있다가 몸살을 앓고 나서 피로가 없어지고 그런 적 없소?”
“무병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했어요. 지난 3월에 한 열흘 알았어요. 피로를 많이 느낀 건 그 전 두어 달 동안 그랬고요. 육식이나 배변은… 말씀 들어 보니 그랬네요.”
“열흘이나 몸살을 했다고요? 하루나 이틀이 아니고? 혹시 신내림 굿도 했소?”
“아뇨. 따로 굿은 안 받았어요. 그냥 무병이 갑자기 낫고서 바로 신을 영접했어요.”
“그럼 그게 신이라는 것은 누가 알려 준 거요? 어미 무당도 없이?”
망설이던 장혜진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넷이요. 제가 원래 신기가 있었어요. 뭔가를 막 느끼고 그랬어요. 그러다 그런 일을 겪고 인터넷을 찾아 보니까 무병이랑 같았어요.”
말을 마친 관장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열흘의 몸살은 자기들과 달리 너무 길었다.
그런데 육식이 당기고 배변이 준 것은 또 진화의 증상이었다.
진화 같으면서도 아닌 것도 같았다.
그런데 내림굿을 한것도 아니란 것이다.
“혜진 보살님. 아까 기절하기 전에 했던 그것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소?”
장동건에게 끌려가 구석에서 보살은 무슨 보살이냐며 구시렁거리는 나현주를 한번 째려본 장혜진은 아까의 그 기파에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건 제가 신을 접하고 나서…….”
처음 그것을 한 것은 약 한 달 전 보육원 앞에 좀비들 여섯이 나타났을 때라고 했다.
좀비들이 나타나자 원장이 달려나갔고 장혜진과 아이들은 원장이 좀비들에게 산산이 찢겨나가는 것을 봐야 했다.
장혜진은 놀란 아이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몸주신에게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도중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깨어난 혜진은 모두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좀비들이 밖에서 서성이다가 그냥 물러갔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신께서 뭔가를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다시 보름쯤 전에 약 스무 마리의 좀비들이 몰려왔고 그때도 간절히 빌어 다시 한번 좀비들을 물리쳤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듣기로 한 30분가량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것과, 정신을 차리면 하루 정도 두통에 시달리며, 그 하루 동안은 다시 신내림이 안된다는 것도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 전보다 훨씬 많은 놈이 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일행이 눈앞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원하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오?”
“신께서 허락하실 때만 되는 거예요.”
자신이 무당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장혜진이었지만 아무래도 무당보다는 진화자에 가까웠다.
“흠. 정신 능력 쪽 진화자는 우리랑은 다른 건가?”
관장은 일단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행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아이가 하루 정도는 두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하루만 여기서 지내고 쉘터로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이진성과 나현주는 하루 늦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들과 함께 쉘터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받아 줄지 모르는 상황에 만약 안받아 준다면 곤란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오늘 운전병하고 같이 평택으로 보내죠? 저 아이는 내일 우리랑 같이 쉘터로 가고요. 하나 정도는 일행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장동건의 제안이 가장 좋은 방법 같았다.
운전병을 데리러 간 장동건이 돌아올 때까지 일행은 장혜진에게 평택으로 가는 동탄 주민들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그편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장혜진도 아이들을 살릴 방법이 그것밖에 없음을 알아들었다.
울며불며 안가겠다고 난리 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달래서 승합차에 모두 태워 보낸 그녀는 좀 쉬어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쩝. 하룻동안 뭐하죠? 슬슬 배도 고픈데 먹을 것도 마땅찮네.”
장동건과 이진성은 하릴없이 보육을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현주는 마당 한쪽에서 무술연습을, 관장은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명상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어둠이 깔릴 무렵, 보육원 뒤쪽 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 냄새는 아닌데 뭔가 시큼하면서도 노린내 같은 게 나요. 산짐승인가 본데요?”
이진성은 아까부터 묘한 냄새를 맡았지만 좀비 냄새가 아니라서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까이서 소리가 나자 그쪽을 쳐다봤다. 풀숲 속에서 한참을 버석거리던 놈이 모습을 드러낸 건 약 5분이 지나서였다.
놈은 멧돼지였다. 그것도 빨간 눈을 가진 좀비 멧돼지.
“좀비 쥐는 봤는데 좀비 멧돼지도 다 보게 되네.”
놈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뭔가를 찾는지 주둥이로 흙을 파기도 하고 그냥 어슬렁거리고 다닐 뿐이었다. 심지어 이진성 근처로 다가가서 냄새를 맡기도 했다.
“우리, 이놈 잡아먹을까요?”
갑자기 우툽에서 본 원시생활 생존법을 따라 해 보고 싶어진 이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