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에? 형님! 그놈 좀비라고요. 그거 먹고 잘못되면 어쩔려구요?”
“잘못될 게 뭐 있어?”
“좀비라도 되면 어떻게 해요?”
“동건아. 사람이 소고기 먹고 소 돼냐? 돼지고기 먹고 돼지 돼냐? 닭고기 먹고…….”
장동건은 이진성의 말같잖은 궤변을 잘랐다.
“아.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먹으려면 혼자 먹어요. 난 몰라.”
“안산에 그 미친놈도 좀비 먹고살았다잖아. 걱정을 마셔.”
그러고 도끼를 들고 일어서는 이진성을 일행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놈은 이진성이 도끼를 들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사람에게 관심은 없었지만 살기를 느꼈는지 놈도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형님. 멧돼지도 맹수에 가까워요. 더군다나 변이한 놈인데 조심해야 할텐데요.”
“나도 알아. 나도 동물의 왕국 봤어.”
“헐, 동물의 왕국은 또 왜 나온데?”
이진성과 놈의 살기 넘치는 싸움은 10여 분을 끌었다. 놈은 자신에게 덤비는 인간을 응징하려는 듯, 도망도 안 가고 이진성에게 덤벼들었다. 이진성은 만만하게 봤던 멧돼지의 빠른 움직임에 제대로 된 타격도 못 하고 몇 번은 받힐 뻔한 걸 가까스로 피하기도 했다.
“학학학. 아 씨. 사람 좀비 잡는 거보다 백만 배는 힘드네. 뭐 이렇게 빨라?”
결국 놈의 정수리를 도끼로 깬 이진성이 도낏자루에 기대서서 숨을 골랐다.
이미 관심을 끊고 서로의 할 일을 하던 사람들이 그제야 다시 이진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님. 잡기는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해체할 줄 알아요?”
“해체는 무슨? 통돼지 바비큐 해야지. 내가 그거 얼마나 먹어보고 싶었는데. 크크크.”
이진성이 숲으로 들어가고 나무 찍는 소리가 들리더니 굵직한 나무를 베어와 마당 한가운데에 세우기 시작했다.
거치대로 쓸 Y 자 나무 둘을 흙에 박아 넣고, 배를 갈라 피와 내장을 빼낸 돼지를 주둥이에서 항문까지 꿰어서 거치대에 겨우겨우 올리더니 장작을 모으러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저거 저렇게 해도 되는 건가?”
서로를 바라보는 셋은 이제는 먹어도 되는가보다는 음식이 될 수 있을지가 궁금해 졌다.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장작을 한 아름 지고 온 이진성이 이번에는 짐에서 파이어스틱을 찾아 꺼내 들고는 한쪽 구석으로 갔다.
거기서 쪼그려 앉아 잔가지에 불을 붙인다고 용을 쓰고기 시작했다.
“아니. 가스버너 있잖아요. 그걸로 붙이면 간단한데 왜?”
“가스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연습해야 할 거 아냐?”
“쉘터 갈 거잖아요. 거기서 그걸로 불 피울 일 있을 거 같아요?
보다 못한 나현주가 빽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파이어 스틱을 놓고서 버너로 불을 붙이며 구시렁댔다.
“이 씨. 밀림의 법칙 보면서 꼭 해보고 싶었는데.”
* * *
이진성은 장작불로 털을 그슬리고는 불 조절을 해가며 돼지를 돌려가며 구웠다. 그는 곧 땀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고 그모습을 지루하게 보던 일행은 다시 관심을 끊었다.
얼마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면서 풍겨오는 냄새는 제법 그럴듯했다. 재료가 뭔지 모른다면 맛있게 먹을만한 냄새였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이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씨. 이거 죽인다. 여태 먹은 어떤 돼지보다 맛있네. 진짜 맛있어요. 안 먹으면 후회한다니까?”
“예 예. 형님 많이 드세요.”
“아저씨 실컷 드세요.”
“난 별로 식욕이 없어서 당기지 않소.”
이진성은 어느새 부엌에서 찾아온 식칼로 살점을 도려내 먹고 있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그런 이진성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세 사람의 옆으로 어느새 장혜진이 나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저도 좀 주세요.”
“에? 보살님. 저거 좀비 돼진데? 좀비라 그럼 모르나? 아까 밖에 왔던 그 괴물들. 그거랑 같은 존재라니까?”
“나도 좀비 알아요. 신경 끄세요.”
장동건의 말을 무시하고 이진성에게 다가가며 하는 말은 사람들을 기절시키기에 충분했다.
“부창부수. 서방님이 먹는 건데 나도 먹어야죠.”
“헐. 19살짜리가 부창부수는 뭐고 서방님은 또 뭐야? 깃들었다는 귀신이 조선 시대 귀신인가?”
그러고는 이진성 옆에 앉아 자기도 고기를 달라고 하고 이진성은 또 눈치 없이 고기를 잘라주며 맛있냐고 묻기까지 했다.
“저 아저씨가 정말? 아우. 내가 저걸 팰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저씨를 팰 수도 없고.”
벌떡 일어선 나현주가 둘에게 다가가자 장동건이 놀라서 달려가 나현주를 잡았다.
“누나. 그냥 애가 하는 말인데 뭘 신경 써요. 릴렉스.”
“19살이 애니? 애야? 놔 이거. 내가 뭐 어떻게 한대? 나도 같이 먹을 거야.”
“에?”
이진성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앉은 두 여자는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며 이진성이 잘라주는 고기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어? 진짜로 맛있네! 이거? 어이. 보살 아가씨. 소금 있으면 좀 갖다 줘.”
“부엌에 가면 있어요. 아줌마가 직접 갖다 먹어요.”
둘 사이에서 분위기가 묘해지자 이진성이 소금을 가져오겠다고 일어서려 했다.
“앉아요.”
“앉아요.”
둘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에 다시 엉거주춤 앉는 이진성을 보고 혀를 끌끌 찬 장동건이 불붙은 장작을 하나 뽑아 들고 부엌으로 가 소금을 찾아왔다. 소금을 건네준 장동건은 냄새에 이끌려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나현주에게 물었다.
“누나. 진짜로 맛있어요? 아니면 그냥 그러는 거예요?”
“진짜로 맛있어. 제대로 요리하면 훨씬 맛있을 텐데 지금도 진짜 맛있어.”
“그럼 나도 조금만 먹어 볼까?”
한입 먹어본 장동건은 바로 장혜진 옆에 앉아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기 시작하더니 갈비뼈 몇 개를 뜯고는 관장을 불렀다.
“관장님. 이거 드셔 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음, 그럼 그것도 수련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먹어 볼까요? 내가 먹고 싶어서 먹으려는 게 아니오. 정신수련의 일환으로…….”
“알았으니까 어서 오세요.”
다섯이 둘러앉아 멧돼지 한 마리를 다 먹어 치우는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끄억~
“앞으로 종종 잡아먹어요. 와. 진짜 맛있네. 사냥해서 먹고 살면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배를 두드리며 트림을 하는 장동건의 말에 누구도 토달지 않고 내심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먹은 뼈를 치우고 장작불 앞에 둘러앉은 일행은 오랜만에 느끼는 포만감을 만끽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보살 아가씨 머리 안 아파? 하루는 아프다면서?”
“오늘은 누가 와서 그런지 빨리 낫네요. 견딜 만 해요.”
물론 나현주의 장혜진의 신경전은 계속 이어졌지만 세 사람은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보살님은 나이보다 어려 보여…요. 난 아까 열일곱 정돈 줄 알았네?”
“제가 좀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저쪽에 누구보다는 한참 어리고 싱싱하죠.”
“야. 너 왜 말을 슬쩍 높여? 처음엔 편하게 하더니?”
“19살이라잖아요.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너 28이잖아. 뭐가 몇 살 차이도 안나?”
“아, 이 누님이 오늘 왜 이러실까? 릴랙스. 릴랙스.”
장동건은 자꾸만 장혜진에서 자꾸 말을 시키며 관심을 보였다.
이진성은 장혜진이 묻는 말에 넙죽넙죽 대답만 잘하고 있었다.
나현주는 그런 둘이 다 꼴보기 싫었다. 그렇다고 속 좁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도 없었다. 붙어 앉아서 하는 양을 끝까지 지켜봐야 했다.
말은 장동건이 가장 많았다.
장혜진 옆에 붙어 앉아 일행의 이야기를 주절 저절 떠들었다.
자신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났으면 어떤 일을 겪고 여기까지 왔는지 말하면서 은근히 자기 자랑도 잊지 않았다.
동시에 이것저것 캐물었지만 장혜진은 거의 대답하지 않고 장동건을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저기요. 아저씨. 나한테 관심 있어요?”
“에? 어… 그게 그런 건 아니고… 왜요?”
“원래 무당은 아무나 하고 맺어지는거 아니에요. 점지된 임자 있으니까 관심 꺼요.”
점지된 임지라는 말에 결국 나현주는 폭발했다.
“하, 나 진짜. 더는 못 참겠네. 임자는 무슨 임자? 아저씨 뭐라고 말 좀 해요. 가만있으니까 제가 더 그러잖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라고… “
“저렇게 신랑이니 임자나 그러고 있는데 왜 가만있어요? 따끔하게 못 하게 해야지?”
“아니, 꼭 못하게 할 이유도 없고…….”
기가 막혔다. 동탄에서 뭔가 교감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이유가 없어? 그럼 난 뭔데?”
“네? 우리가 딱히 뭐라고 하기에는…….”
눈물이 핑 도는 나현주였다.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관심도 안 줄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한 달 가까이 지내며 알게 모르게 자기 짝으로 생각했었다.
“좋아요. 그럼 딱히 뭐라고 하게 만들면 되는 거죠?”
나현주는 이진성의 고개를 잡아 돌렸다. 그리고 깊은 키스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형님. 아무래도 크게 실수 한 거 같은데요. 어서 가서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큰일 날 거 같은데…….”
“동건 씨 말이 맞소. 지금 바로 안 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오. 얼른 일어나시오.”
좀처럼 남의 일에 상관 안 하는 관장마저도 이진성을 질책했다. 이진성도 자신이 뭘 잘 못 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후다닥 일어나서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세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둘은 답답함에서 쉬는 한숨을, 장혜진은 앞으로 쉽지 않을 것 같음에 쉬는 한숨을.
“치. 그깟 키스가지고 촌스럽게. 유부남이라도 뺏으면 임자지 뭐.”
“어? 아침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같은데, 혜진 씨.”
보육원 안에서는 이진성이 잘못했다고 비는 소리와 나현주가 장혜진하고는 쉘터로 못 간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지금 혼자 놔두고 갈 수는 없지 않냐는 이진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알게 뭐냐는 나현주의 고함도 들려왔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듣던 장혜진이 관장에게 물었다.
“그 쉘터라는 곳 아시는 데로 자세히 말씀 좀 해 주세요.”
“우리도 잘 모르오. 권력자들이 대피해 있다는 것과 그 안에 진성 씨와 현주 씨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 그 외엔 모르오.”
잠시 생각하던 장혜진은 자기 방으로 가서 종이 하나를 들고나와서 관장에게 보여줬다.
받은 종이를 유심히 보는 관장의 모습에 뭔지 궁금한 장동건도 다가왔다.
“능력자 모집? 능력에 따른 우대? 안전한 숙소와 충분한 식량 제공? 이거 뭐야? 무슨 옛날 술집 아가씨 모집 전단도 아니고?”
“이거 어디서 났소?”
“보름쯤 전에 헬리콥터가 지나가면서 하늘에서 떨어졌어요. 그 종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불길하고 또 여러분들하고 관련이 있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지고 있는 거에요.”
“불길한 느낌이라는 게 어떤거요? 몸주신이 알려준 거요?”
“그건 아니고 그냥 제 느낌이 그래요. 어차피 제 느낌이 신께서 전해주는 계시 아닐까요?”
장혜진과 전단을 쳐다보던 관장이 물었다.
“좀 더 구체적인 계시나 느낌은 없었소?”
“음, 글쎄요. 특별히 구체적인 것은 없었어요. 다만 이건 그냥 꿈에서 봤던 것 같지만…….”
말을 삼키고 주저하는 장혜진을 장동건이 재촉했다.
“꿈에서 뭐요?”
“그게 말이죠. 핏속에 서 있는 관운장을 봤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인지는 모르겠어요.”
그것만은 별 도움이 안 됐다. 일행은 지금까지 엄청난 피를 뚫고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장혜진이 본 것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그저 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불길한 느낌이라니, 쉘터에서 조심하기는 해야 할 것 같소.”
“그거야 뭐…….”
보육원 건물 안에서 들려오는 나현주의 고함은 어느덧 그쳤지만 둘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가끔 어머 어머 소리가 들기도 하고 왜 이래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애써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끈 관장과 장동건은 쉘터가 있다는 방향의 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장혜진만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 보육원 건물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