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61화 (61/145)

# 61

상봉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 일행의 귀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방에 올라오시는 다섯 분. 그 자리에 멈춰 주십시요. 무기는 바닥에 내려놔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에 따라 일행은 멈춰서서 도끼와 총, 그리고 관장의 검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렸다.

곧 길의 위쪽에서 차량의 엔진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금세 SUV 한대가 코너를 돌아 나왔다.

SUV는 일행의 20m 정도 앞에 섰고 두 명의 병사가 경계하며 내리는 것이 보였다.

“숲속에도 있소. 좌측에 다섯, 우측에 다섯.”

관장의 조용한 목소리를 듣고 좌우를 둘러 봤지만 일행의 눈에 보이는 군인은 없었다.

“동탄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김진석 소장님께 오신 분들 맞습니까?”

“그렇소만.”

“소개서 보여주시겠습니까?”

앞으로 나온 한 병사에게 이진성이 품에서 소개서를 꺼내주자 병사는 내용을 확인하고 일행을 다시 쳐다봤다.

“소개서에는 4명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아 그게요, 제 여자친구예요. 이재규 대위한테는 말 안 했는데 제가 동탄에 있을 때 사귄 여자친구예요. 그래서 거기 이름이 없어요.”

보육원에서 출발 하기 전, 일행은 장혜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일단 소개서에 이름이 없었고 안에 들어간다 해도 일행과 큰 연관이 없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장동건의 여자친구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장동건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나현주도 적극 지지했다.

물론 장혜진은 싫다고 펄쩍펄쩍 뛰었지만 달리 더 나은 아이디어가 일행의 머리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보고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병사는 안으로 장혜진에 관한 내용과 함께 무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아무말이 없는 것이 별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저를 따라 오십시요. 10분만 걸어가시면 됩니다.”

SUV는 혼자서 올라가고 남은 병사 하나가 길을 안내하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저기요. 여기는 무기 휴대해도 상관없나 보죠?”

이진성의 물음에 병사는 씩 웃었다.

“원래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무기 휴대하게 두겠습니까? 하지만 김 소장님이 무기 상관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안 그랬으면 아까 그 차량에 실어 보냈다가 나중에 신원확인하고 한참 후에 돌려 드렸을 겁니다.”

“그 소개서가 나름 쓸모가 있긴 한가 봐요. 형님. 크크크.”

“그렇긴 한데 난 왜 특별대우를 받는 게 더 찜찜하냐?”

“에이. 뭘 신경 써요. 그만큼 우리가 대우받을 만한 사람이니까 그런 거겠지.”

“그런가? 평생 어디서 대우받아 본 적이 없어서 영 적응이 안 되네. 크크크.”

쉘터의 입구를 본 일행은 예상과 다른 모습에 놀랐다.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이거나 최첨단의 두꺼운 철문이거나 그런 것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입구를 차단하는 것은 단순한 공사장의 철제 펜스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펜스를 통과하자 나온 것은 초병들의 숙소로 쓰이는 듯한 컨테이너 세 개와 산속으로 깊숙하게 뚫린 터널이었다.

터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궁금한 내용을 이진성과 장동건이 나서 병사에게 물었다.

“여기 입구가 왜 이렇게 허술해요?”

“저도 왜인지는 모릅니다. 듣기로는 여기가 원래 소행성 충돌에 대비해 만들어져서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소행성 충돌 후에는 여기로 올 사람도 없다는 예상이었다는 거죠. 그리고 진짜 문은 저 안쪽에 있습니다.”

“그럼 여기 펜스는 왜 있어요?”

“여기 공사할 때 가림막으로 해 놓은 겁니다. 지금은 저것만 막아 놓으면 좀비들도 못 들어오니까 그냥 쓰고 있습니다.”

“그럼 경비병들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들어올 때 보니까 얼핏 봐도 스물은 넘던데?”

“저희는 여기에서만 생활해서 그렇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에? 왜요?”

“그게… 저희는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어라? 안에 일반인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건 안에서 들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병사가 대답해 주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것에 대한 설명은 곧잘 해 줬지만, 꽤 많은 질문에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그런 병사와의 대화가 사그라질 때쯤, 눈앞에 터널을 완전히 막고 있는 콘크리트 벽이 나왔다.

일행이 벽에서 문이 어딨나 찾고 있는데 일행을 안내한 병사가 터널 벽 한쪽에 비치된 수화기를 들더니 뭐라 뭐라 말을 했다.

그르르르릉

“와 우. 저 벽 자체가 문이네.”

놀란 장동건의 말처럼 너비 20m, 높이 10m는 되는 제법 큰 터널을 막고 있던 콘크리트 벽의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좌우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 몇 명 지나다닐 간단한 문 만들어 놓으면 좋았을걸, 매번 저걸 여닫는 거야? 참 나. 어떻게 높은 자리 양반들은 뭘해도 그렇게 비효울이냐.”

병사가 피식 웃으며 자기가 들은 것을 말해줬다.

“소행성 때는 몇 년 동안 이 문이 열릴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따로 문은 안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안에서는 다른 사람이 안내할 겁니다.”

말을 마친 병사는 다시 돌아 나갔다. 그리고 3m쯤 열리고 멈춘 문 안쪽에서 한 여자가 나와 일행을 맞았다. 여자는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김진석 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미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한 여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일행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은 천장을 덮는 거대한 LED 조명과 공원같이 조성된 중앙의 광장, 그리고 그 주위를 빙 두르고 있는 거주공간 같은 시설들이었다.

저 멀리 한쪽으로는 선반 같은 곳에 풀 같은 것이 쌓여 있는 것도 보였고 그 옆으로는 가축들을 기르고 있는 것도 보였다.

“와. 엄청나게 해 놨네. 쉘터라고 해서 대충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더니 이건 뭐야? 호텔이야? 리조트야?”

“이런 게 전국에 몇십 개가 있다고요? 헐. 이거 다 세금으로 만든 거잖아요?”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고 입고 있는 옷은 다 깨끗했다.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한쪽의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과연 세상이 끝장난 것이 맞나 싶었다.

“하 씨발…….”

* * *

“어서 오세요. 많이 기다렸습니다. 어제 오시는 줄 알았는데 안 오셔서 걱정 많이 했습니다.”

김진석 소장이라는 사람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별 두 개짜리 장군이라는 것에서 연상되던 거만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미소 띤 얼굴은 오히려 호감형이었다.

“저희가 오는 길에…….”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 대위가 보고하더군요. 이 군 전술정보통신망 덕분에 아직은 어느 정도 정보가 오가고 있습니다. 뭐 이것도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지만요. 허허허.”

책상 위의 휴대폰처럼 생긴 것을 톡톡 치며 말하는 소장에게 나현주가 혹시 김현희와 통화가 가능할까 싶어 물었다.

“이미 평택에 도착했나요? 제가 통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혹시 가능할까요?”

“평택에는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리는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미군기지로 들어가서 기지 내 정찰을 하고 있다는 게 오늘 아침까지의 소식이었습니다. 그 김현희 씨라는 분의 소식이 궁금한 거죠? 안 그래도 통화할 수 있게 되면 연락 달라고 해 놨습니다. 허허허.”

사람 좋게 허허거리는 김 소장을 보는 이진성과 관장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잘 해주지? 우리한테 뭘 얻어 내려고 이러나?’

기본적으로 사람을 그다지 믿지 않는 두 사람에게는 이유 없이 처음 보는 일행에게 편의를 봐주는 장군의 속내가 궁금했다. 그리고 김현희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일행에게 꽤나 관심이 있음이 분명했다.

일단은 두고 보기로 한 이진성이 입을 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랑 여기 이 아가씨는 부모님을 찾아왔습니다만.”

“알고 있지요. 알다 마다요. 부모님을 찾는 데는 제가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일단 좀 쉬시면서 여기 시설이나 둘러 보고 계시면 제가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말이 뭔가 이상했다. 찾아본다가 아니고 협조하겠다와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였다. 이상함을 느낀 이진성이 다시 물었다.

“저, 사람 찾는 게 어려운가요? 말씀이 어째 명단만 확인한다거나 또는 저희가 직접 얼굴을 보고 찾는다거나 할 수 없는 것 같이 들리는데요?”

소장은 물어보는 이진성을 보더니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 대위한테 자세한 말씀을 못 들으셨나 보군요. 허 참. 전부 말씀을 드렸어야지. 그 사람하고는…….”

무슨 말인지 서로를 쳐다보는 일행에게 소장이 말을 꺼냈다.

“제가 듣기로 부모님들이 동탄에서 이곳으로 일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소장의 말로는 이곳에서 인력을 관리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문성이라는 국회의원이 인력을 관리하고 사람들은 일정 대가를 지급하고 그들을 쓰고 있다고 했다.

김 소장 자신은 동탄에서 오는 사람들을 받아서 박문성에게 넘기기만 할 뿐 명단도 없고 그 사람들의 현재 상황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잠깐만요. 듣기로는 동탄의 대령은 소장님과 거래했다고 하던데요?”

“저는 거래의 창구일 뿐입니다. 허 대령에게 탄환을 보내야 했으니까요.”

“젊은 여자들은요? 그들도 그 박문성이라는 사람이 관리하는 건가요?”

“음. 그런 낯부끄러운 얘기도 들으셨나요? 그건 원하는 사람들이 취합해서… 아! 그런 자세한 내용은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일단 오늘은 쉬고 계시면 제가 박문성 그놈에게 부모님이 여기 계신 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부모님 성함이?”

말을 돌리는 소장에게 더 캐묻기도 뭐해서 일단은 부모님 신상정보를 알려주고 방을 나왔다. 밖에는 일행을 안내해왔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부터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두 한 유닛에서 지내시겠습니까? 별도 유닛으로 드릴까요?”

“유닛이라는 게 뭔가요?”

“아.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빈 곳 중에 방 네 개짜리 유닛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방 두 개 또는 세 개까지 유닛으로 원하시는 만큼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행은 잠시 상의한 후 나현주가 나서 대답했다.

“일단은 한곳에서 머물고 싶어요. 혹시 나중에 분리해서 그 유닛이라는 걸 더 받을 수도 있나요?”

“가능할 겁니다. 앞으로 하시기에 따라서 몇 개라도 가지실 수 있습니다.”

“하기 따라서요? 무슨 말씀이세요?”

“아, 별 뜻 아닙니다. 잘 지내시면 더 기회를 얻으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배시시 웃는 여자는 앞장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을 깊이 생각 안 한 일행은 그녀를 따라 방 네 개짜리 유닛으로 들어갔다.

“와. TV에서 본 고급호텔 스위트룸이 이런 걸까?”

방마다 안을 들여다본 장동건의 말대로 내부는 모던하고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거실에는 커다란 소파와 리클라이너까지 보였다. 크지는 않지만 한쪽에 있는 주방에는 식기와 작은 오븐, 전자레인지, 이런저런 주방용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화장실은 방마다 딸려있었고 실내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쉬고 계세요. 여러분들 입으실 옷을 가져오겠습니다.”

여자가 나가자 일행은 모여앉았다.

“너무 잘해 주는 것 같지 않아요?”

“글쎄?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딱히 나쁜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잖아?”

“그런 것 같소. 아까 장군이나 방금전 그 여자나 특별히 나쁜 기운은 아니었소. 일단은 두고 봅시다. 뭔가 대가를 바란다면 조만간에 요구하겠지요.”

“그래요. 딱히 당장 걱정할 건 없어 보여요. 방이나 정하죠? 두 사람은 한방 써야겠는데, 아저씨 나랑 같은 방? 호호호.”

나현주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이진성이 당황하고 장동건이 킬킬거리는데 조용히 있던 장혜진이 한마디 했다.

“제가 꿈에서 봤다는 핏속에 서 있는 관운장, 아까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다시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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