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62화 (62/145)

# 62

“전에도 똑같은 계시가 몇 번씩 보인 적이 있소?”

“없는 거 같아요.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계시라고는 여러분들이 온다는 것과 관운장이 신랑이라는 것 말고는 다 꿈에서 본 듯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라서…….”

“몸주신에게 물어볼 수도 없소?”

“그게… 아직 어떻게 접신하는지 저도 익숙하지 않아서 맘대로 안 되는 거 같아요.”

일행을 헷갈리게만 하는 장혜진이었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찜찜한 내용이다.

단순히 앞으로 큰 싸움이 있을 계시라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좀비들과 싸움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장소가 이 쉘터 내부라면 그것은 상당히 곤란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일행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들떴던 기분은 이미 가라앉았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저마다의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잠시, 고맙게도 아까의 그 들어와 어색함을 날렸다. 그녀는 일행의 옷을 한아름 가지고 돌아왔다.

“전부 같은 디자인이네요?”

장동건이 받아서 꺼내 본 옷은 하얀색의 바지와 긴 팔 티셔츠로 된 트레이닝복이었다. 새 옷인 듯 전부 비닐백에 개별포장된 것으로 1인당 다섯 세트와 역시 하얀색의 스니커즈 두 켤레씩을 나눠준 여자가 그때야 정식으로 인사했다.

“김 민지라고 합니다. 당분간은 제가 여러분의 적응을 도와 드릴 거예요. 요구사항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시면 되고요, 저를 호출하시려면 저 전화기로 1001을 누르시면 됩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를 가리키며 말한 김민지는 긴급호출 번호, 고장수리 번호 등 몇 가지 생활에 필요한 번호를 알려주고 세탁물 처리법, 쓰레기 분리수거 처리법 등을 일일이 설명했다. 별것 아닌 것들을 한참이나 걸려 설명하던 김민지가 갑자기 생각난 듯 시계를 보더니 김 소장이 일행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고는 문으로 향했다.

김민지는 일행을 지하로 안내했다. 계단 입구에는 문이 있었고 문 옆의 패드에 번호와 지문까지 인식하고 나서야 열리는 문을 통과한 일행은 꽤 깊이 내려가야 했다. 다시 나가는 문 앞에 도달하기까지 아마도 15m에서 20m는 내려간 것 같았다.

“지하로 몇 층이나 있길래 이렇게 깊이 내려와요?”

장동건의 물음에 다시 번호를 누르고 지문을 대던 김민지가 역시 미소를 지으며 돌아봤다.

“한층 내려온 거랍니다. 층간 두께가 5m고요. 여기의 층고가 15m로 알고 있어요. 위층이 붕괴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층간 두께를 두껍게 설계했다고 해요.”

“아, 그렇구나.”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보고 이진성이 물었다.

“전부 몇 층인가요?”

“이 아래로 한층 더 있습니다. 거기에는 기계실과 각종 작업장이 있어요. 일하시는 분들은 전부 그곳에서 숙식하고 계시고요.”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김민지를 따라 들어간 일행은 다시 한번 탄성을 내질러야 했다.

그곳은 1층과는 또 달랐다. 1층의 한쪽 구석에서 얼핏 봤던 풀이 올려져 있던 선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유리로 된 벽 안쪽에는 선반마다 각종 채소들이 수경재배로 자라고 있었는데 그 양이 엄청났다. 또 한쪽 유리방 안에는 닭과 돼지우리가 작지 않은 규모로 있었다.

“축사가 있는데 냄새가 하나도 안나네요?”

“분뇨와 오수가 24시간 씻겨나가는 구조입니다. 씻겨나간 오수는 아래층에서 처리돼서 정수까지 완료되고요. 축산 분뇨와 사람들 분뇨는 화학 처리해서 비료 성분만을 추출해서 식물재배에 쓰고요.”

“헐. 여기 뭐야? 막 만화 속의 유토피아 같아.”

모두는 장동건의 감탄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상업생산이라면 비용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하고 있었다.

“에너지는 어떻게 충당하나요?”

“200명 기준 4년 치 기름이 비축되어 있어요. 이곳 인원이 모두 다 해봐야 200이 안되니까 충분하다고 봐요.”

“충분하다뇨? 그 이후에는요?”

“그건 소장님께서 설명 해 주실 겁니다. 자 이리로.”

일행은 과일나무로 보이는 나무들을 지나 작은 연못 옆에 있는 유리로 된 집으로 안내되었다.

연못에는 잉어와 금붕어까지 살고 있었고, 유리집 내부는 큰 다이닝테이블 세 개와 한쪽으로 유리벽으로 구분된 안이 훤히 보이는 주방이 있었다.

“보통 호화로운 게 아니네요. 여기는 아무나 못 올 것 같은데요?”

“그러게. 아까 여기 내려올 때 저 여자 지문까지 인식시켰잖아. 특정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나 봐.”

나현주와 장동건이 속닥거리며 안내된 테이블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한쪽 문이 열리면서 김 소장이 들어왔다.

“하하하. 시장들 하시죠? 오늘은 제가 환영의 의미로 특별식을 쏘겠습니다. 마음껏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소장이 자리에 앉고 김민지가 그 옆으로 앉았다. 그리고 쉐프복장을 한 사람들이 들어와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숙소는 어떻게 마음에 드십니까?”

“네. 숙소는 좋습니다. 그보다 우리 가족들은 좀 알아보셨습니까?”

“물론 입니다. 이진성씨 어머님과 나현주씨 부모님, 이모님 모두 여기 계신 것은 확인했습니다. 이진성씨 어머님은 세탁실에서 근무하시고, 나현주씨 어머님과 이모님은 클리닝을 담당하시고 계시더군요. 아버님은 급식실에서 근무하시고요.”

이진성과 나현주는 혹시나 잘 못 되었거나, 이곳에 있어도 곤란한 상황에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바로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저희랑 같이 지내도 되는 거죠?”

“만나시는 건 박 의원 놈이 못하게는 안 할 겁니다. 단, 같이 지내시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요?”

“첫째, 그분들은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은 분들입니다.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지하 2층에서만 숙식할 수 있습니다. 언제 변할지 모르거니와 아직도 간혹 변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김 소장이 말을 하는 도중에 주방에서 벨 소리가 울리고 김민지가 준비된 음식을 카트에 얹어와서 테이블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 쉐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일을 하지만 저 유리벽으로 분리되어 있는 거죠. 저 밖의 채소와 축사를 관리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심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나요?”

“저도 안타깝지만, 그분들이 확실히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기 전까지는 지금의 체제가 가장 서로에게 안전한 방법입니다.”

“서로에게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상류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노예 같아 보이는데요?”

“아닙니다. 노예라니요. 제가 알기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박 의원 놈이 약간 좀스러운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국회의원까지 했던 인간이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기야 하겠습니까?”

나현주의 노기어린 음성에 김 소장은 손을 저으며 변명했다.

듣고 있던 관장이 이곳의 권력 관계에 대한 힌트라도 얻을까 소장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박 의원이라는 사람한테 놈 놈 하시는 거 보니,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은가 봅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국회의원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까? 하하하. 그런 것도 있고, 또 박 의원이 인력가지고 너무 돈을 밝혀서…….”

“돈이요?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요? 이 마당에?”

“그게 저희 군 조직이 비록 와해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없어진 건 아닙니다. 사태가 터지고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나가고 있잖습니까? 그동안…….”

김 소장의 설명에 의하면 전국의 주요 쉘터를 거점으로 그 주변을 정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동탄의 경우는 썩어빠진 하 대령 때문에 실패하고 이 대위도 도시를 버리면서 용인쉘터는 실패했지만, 세종시를 거점으로 하는 쉘터의 경우는 이미 세종시를 거의 확보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방의 아주 작은 도시 몇 곳도 확보 중이라는 말과 함께 해가 가기 전에 전국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소도시를 확보할 전망이라는 것이었다.

돈은 그 이후에 쓰일 것으로 현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보석과 귀금속, 그리고 부동산문서를 지칭한다고 했다.

“쓰일지도 모를 귀금속 따위랑 땅문서를 챙기고 있단 말인가요? 노인네들 노동력을 팔아가면서?”

“그게… 그렇습니다. 어차피 아시게 되겠지만 이 안에서 모든 것의 대가가 그런 것들로 지불됩니다. 사실상 이 안의 화폐인 셈이지요.”

“에? 공짜가 아니란 말씀이세요?”

“음… 공짜는 없다고 보셔야죠.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누군가는 권력을 쥐고 물자를 통제하게 되더군요.”

“소장님은 군사력을 가지고 계시지 않소이까? 그걸 보고 있으셨소?”

“어이구 큰일 날 말씀하십니다. 군은 절대로 민간인들에게 관여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런 비상상황에서는…….”

“이 안에서 만약에 군사력으로 통제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분란만 생길 겁니다. 게다가 병력도 없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안전이 확인된 군인이라고는 저랑 몇 명 밖에 없습니다.”

듣고 있던 이진성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럼 박 의원은 인력을 팔고, 다른 사람들은 뭘 사고팔죠?”

“크게 인력은 박 의원이, 그리고 농작물과 축산물은 경기도지사였던 장 지사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숙소와 같은 시설은 제가…….”

일행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미 그렇게 시스템이 짜였다는데 어쩔 수도 없었다. 여기서 생활하려면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면 지금 이 식사도, 아까 그 숙소도 지불해야 한단 거네요?”

“하하하. 나현주씨가 이해가 빠르시네요. 이 식사는 제가 지불하는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리고 숙소는 이곳에서 지내는 모든 분이 일정 비용을 지불하기는 하는데 여러분은 당장 가진 게 없으시니까 벌어서 지불 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씩 웃으며 일행을 돌아보는 소장의 얼굴을 보며 이진성과 관장은 드디어 진짜 얘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벌어서 지불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시오?”

“음… 여기서 돈을 벌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지하 2층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 입니다. 그런데 이건 1층에서 지낼 돈을 벌 수 없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같은 능력자들은 두 번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바로 능력자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는 거죠.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장의 얘기에 의하면 1층 사람들이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만들어낸 도박용 경기가 능력자 격투기 대회라는 것이다.

권력이면 권력, 돈이면 돈 부럽지 않게 가졌던 사람들이다. 사태가 터지자마자 군대의 보호 하에 바로 들어온 그들은 바깥 세상의 심각함은 전혀 몰랐다.

미리 준비된 그들은 부족하지 않게 챙겨 왔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이 안에서 여흥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색을 밝히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만든게 도박이고 능력자 격투 대회였다.

“그러니까 우리더러 그곳에서 경기를 뛰고 돈을 벌어라 이 말씀이시오? 혹시 이 전단이 바로 그 경기를 위한 것이오?”

관장은 주머니에서 장혜진에게서 받은 전단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전단을 본 소장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하하. 이걸 어떻게 벌써 보셨군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모집한 능력자들이 20여 분 계십니다. 그리고 저희 내부에서 나온 능력자가 조금 있고요. 그분들이 지금 매주 경기를 하고 계시죠.”

소장은 그때부터 장황하게 능력자 격투기경기라는 것을 설명했다. 절대 목숨을 빼앗으면 안되는 것이고 능력자들은 아무리 심한 부상이라고 해도 1주일이면 나으니까 위험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행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장혜진이 그 전단을 챙겨 놓은 이유가 그 종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불길하고 또 자신들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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