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잘나신 놈들
이진성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나현주의 부모님과 이모도 격투기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나현주의 어머니는 딸을 잡고 울면서 매달렸다.
그런 부모님들을 이진성과 나현주는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오면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해야 했다.
“그러니까 걱정 마시라니까. 규칙도 안전을 보장한다잖아. 지들도 사람인데 설마 위험한 짓거리 하고 있겠어? 그냥 스포츠경기야 스포츠.”
“스포츠경기라도 니가 무슨 격투기를 한다고.? 몸이 부실해서 군대도 못 간 놈이?”
“그때랑 다르다니까 그러네. 내가 몸이 변했다니까?”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하고 지랄이고? 몸이 무슨 수로 변해?”
그때부터 이진성은 어른들에게 좀비의 변화와 그 과정에 발생하는 진화자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이미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은 다 식었지만, 누구도 식사할 정신은 없었다.
이진성의 설명과 어머니의 불신, 또 반복되는 설명에 이진성이 지쳐갈 쯤 김민지가 들어왔다.
“어머. 다들 식사 안 하셨어요? 어쩌죠? 이제 올라가셔야 하는데?”
“왜요? 좀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그게… 박 의원이 두시간 밖에 허가를 안 해 줘서요. 내일 또 오세요. 점심시간 두시간은 매일 보실 수 있게 합의 봤거든요.”
“두시간은 또 뭐래요? 그 박 의원이라는 놈. 좀 만날 수 없어요?”
“만나시게요? 주선은 해 볼게요. 그런데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네요.”
“하. 이 마당에 의원이라고 갑질인건가? 지랄을 한다 지랄을.”
“엄니. 내일 또 올게.”
“알았다. 고만 가라.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 하지도 말그라.”
이진성의 등짝을 내려치는 어머니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나현주의 가족을 뒤로하고 둘은 김민지의 뒤를 따라 1층으로 향했다.
“언니는 저랑 같이 소장님 사무실로 가세요. 평택의 김현희 씨가 통화 기다리고 계세요.”
“무사하데요?”
“전 모르겠어요. 근데 별일은 없는 거 같아요.”
“아저씨 같이 가요. 언니랑 통화해요.”
“그럴까요?”
김 소장은 어디론지 가고 없었다. 김민지가 책상 위의 단말기로 이 대위와 연결하고는 김현희를 바꿔 달라고 하고 스피커폰으로 바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여보세요? 현주니?”
“언니? 거기 어때? 별일 없지?”
“나는 별일 없다 얘. 근데 여기는 별일 좀 있는 거 같다. 호호호.”
“무슨 일?”
“여기 오니까 기지 안에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잖니? 처음에 정찰한다고 군인들 몇 명이 들어가서 다 연락 두절 된 거야. 그리고 다음에 들어간 몇 명도 그렇고. 이 대위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30명을 들여보냈네? 그러고 한참 총소리도 나고 하면서 몇 시간이 지났지?”
김현희의 설명으로는 평택기지 안의 좀비들을 처리하는데 거의 하루가 걸렸다는 것이다. 그 하루 동안 병력 손실이 서른이 넘었는데, 그 병사들은 전부 그것들의 식량이 된 것이 아니고 좀비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 동안 병력을 잃으며 결국은 그들을 다 죽이지도 못하고 어디론가 쫓아 보내기만 했다는 것이다.
“누님. 저예요.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예요?”
“진상이니? 잘 있었어? 현주랑은 진도 좀 나갔고? 호호호.”
“잘 있어요. 어떻게 하고 있냐니까는?”
“어 지금은 여기 군인가족아파트라는데 들어와서 집 배정받고 그러고 있어. 좀비들은 어디론가 다 도망갔다는데 여기 기지가 워낙 커서 추격은 안 하기로 했다나 봐. 분산해서 추격하다가 몇 명은 이미 당했다나?”
“그럼 거기는 안전하데요?”
“여긴 안전해 보이기는 해. 아파트 둘러싼 벽도 높고 두껍고. 경비 초소에 망루도 있고.”
“언니. 아들은?”
“아. 이제 찾아봐야지. 군인들이 수색 중이야. 아마도 이삼일이면 어느 정도 수색 끝날 거 같아. 어? 이 대위 들어오셨네. 나 그만 가볼게. 또 연락하자.”
“어. 언니. 몸조심하고.”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스피커에서 이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쉘터는 잘 도착하셨죠?”
“네. 뭐 덕분에요. 거기 상황이 안 좋은가요?”
“안 좋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지금 사령부 쪽으로 수색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에 생존자들이 있으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이곳 상황은 김 소장님께 알려 드릴 테니까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소장님께 물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그럼… 아! 그리고 한가지 여쭤볼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동탄에서 말입니다. 그날, 여러분 부상입고 하셨던 그 날 말입니다. 마지막에 잡으신 좀비가 특별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좀비들을 지휘하는 것 같다고… 맞습니까?”
이진성과 나현주는 갑자기 그 얘기는 왜 나오나 싶어 서로를 쳐다보고는 마지막까지 싸웠던 나현주가 대답했다.
“네. 이상하기는 했어요. 마치 그 비정상적으로 강한 좀비의 지휘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긴 했어요. 그건 왜요?”
“그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기서도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좀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해서요. 마치 늑대 소리 같기도 하고 고릴라 소리 같기도 하고, 혹시나 그런 존재가 여기도 있는 건 아닌가 해서… .”
몇 가지를 더 물어보는 이 대위와 통화가 끝나고 이진성과 나현주는 김현희가 걱정되었다.
“설마 거기도 그 미친년 같은 게 있을까요? 아오. 그년 생각만 하면…….”
“모르죠. 그런데 그런 게 많나? 막 동네마다 몇 마리씩 있고 그런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저, 무슨 말씀 들이세요? 특별한 좀비라뇨?”
김민지는 처음 듣는 내용인지 얼굴에 궁금함이 가득해서 물어왔다.
“아 그게, 좀 이상한 좀비가 동탄에 있었어요. 얘기하자면 길고요. 어쩌면 소장님이 아실지 모르겠네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묻는 말 중에 대답 안 해주는 게 많은 김민지에게 빈정이 약간 상해있던 이진성은 대충 얼버무리고 나현주를 이끌고 소장의 방을 나섰다. 나현주는 분명히 ‘비정상적으로 강한 좀비’라고 했다.
김민지는 나가는 그들을 보며 태블릿 PC를 꺼내 들고 보고사항을 정리했다. 거기에 특별한 좀비에 대해 들은 내용을 빠짐없이 기입하고 ‘중요도 1’이라는 메모를 더한 후 소장을 찾아 방을 나섰다.
* * *
호화스러운 가구가 놓인 작은 방에서 김 소장은 두 남자와 함께 가죽 소파에 깊숙이 앉아 크리스털 잔에 든 코냑을 마시고 있었다.
거의 120kg은 되어 보이는 50대 후반의 거구의 남자 하나와 운동으로 잘 관리된 몸매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50대 초반의 남자 하나였다.
거구의 남자는 무엇이 불만인지 찌푸린 얼굴로 소장에서 물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들어온 그 다섯을 전부 소장님이 독식하시겠다?”
“의원님. 말이 짧아지십니다. 허허허. 저도 이제 제 소속의 선수들을 가져야겠습니다. 두 분이 선수들을 독식하시니까 전 베팅 말고는 돈을 벌 방법이 없잖습니까?
50대 초반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누가 못 가지시게 했습니까? 나눠 가지자는 거죠. 이번에 들어온 사람들이 엄청나다면서요? 그걸 다섯이나 가지고 가신다는 건 욕심이 과하십니다.”
“허허. 도지사님. 다섯 중에 둘은 쓸모가 없잖습니까? 하나는 총잡이고 하나는 좀비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라는데, 우리한테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능력이잖아요.”
“그런데 그 남은 셋이 월등하다면서요?”
“겨우 셋입니다, 셋. 의원님은 스물다섯이나 가지고 계시고 지사님은 열이나 있으면서 겨우 셋 가진다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시면 섭섭합니다.”
“보세요. 소장님. 그 셋이 우리가 가진 열 명분은 한다면서요?”
“에이, 의원님. 열 명분을 하는지 한 명분을 하는지 어떻게 압니까?”
“이거 왜 이러세요? 우리라고 동탄에 소식통이 없었겠습니까? 들리는 말로는 넷이서 수백을 잡았다던데.”
“허허. 소문이란 거 다 과장되기 나름 아닙니까?”
셋은 이진성 일행의 생각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들의 스카웃 문제를 협의하고 있었다.
그동안 의원과 도지사가 들어오는 능력자들을 독식하다시피 해서 돈을 벌었다. 반면에 소장은 도박 베팅만 소소하게 할 뿐, 동탄과의 거래에서 커미션 장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탄이 박살 나고 더 커미션 장사는 불가능하게 되면서 소장도 직접 격투기 메니지에 뛰어들기로 했다.
이 대위가 최고의 상품이라고 보내준 이진성 일행을 독식하려는 소장과 그것을 견제하는 의원과 지사의 지루한 말싸움이 이어졌다.
“좋습니다. 의원님. 소장님. 그러면 그 사람들이 선택하도록 하죠. 단 기본조건은 배팅액의 20%로 고정하고 부대조건만 서로 알아서 하는 거로 하시죠? 어떻습니까?”
“아 참, 지사님도 그렇게까지 하셔야 겠습니까? 뭐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미팅은 언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경기를 한번 보고 난 후로 하죠. 자신들도 뭔가 생각을 할 테니까. 나흘 뒤에 경기가 있던가요?”
“뭐 어쩔 수 없네요. 그러죠.”
소장은 그들에게 지금까지 보여준 친절함과 숙소의 제공, 부모님의 만남 알선 등으로 점수를 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를 잡고 있는 박 의원은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것이 뻔하니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의원은 그들의 부모를 미끼로 꾀면 별다른 투자 없이도 그들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지사는 그들이 의원에게는 안가겠지만 소장보다는 자신이 가질 기회를 얻기 위해 어깃장을 놓고 있었다.
떡 줄 사람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 마시듯 코냑을 홀짝거리며 뭐가 좋은지 킬킬거리는 그들이 있는 방으로 김민지가 들어왔다.
“소장님. 세종시에서 급하게 찾고 있습니다.”
“어 그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씀들 나누세요.”
“가 보세요. 세종시는 맨날 뭘 그렇게 찾고 난리람.”
밖으로 나온 소장은 방에서 충분히 멀어지자 김민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세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세종시에서 찾는다고 소장을 불러내는 것은 1급 중요도의 보고사항이 있다는 신호였다.
소장의 물음에 김민지는 주위를 둘러보며 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좀 전에 들은 이상한 좀비에 대한 내용을 보고했다.
“그런 내용은 이 대위 보고서에 없었잖아? 이놈이 그렇게 중요한 걸 빼먹어? 만약에 그 좀비가 정말 특별한 존재라면 저들의 수익성이 얼마나 올라가는 거야? 알았어. 내 당장 이 대위랑 통화해 보지. 당분간 저 두 놈 귀에 안 들어가게 조심해.”
“저희가 모르는 걸 저들이 알 수가 있나요? 걱정 마세요.”
소장은 김민지의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대로 달려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이 대위와의 한참의 통화 끝에 브라보를 외치며 기뻐할 수 있었다.
“집은 이미 줬고, 또 뭘 준다고 하지? 꼬장꼬장해 보이는 검객에게 여자는 필요 없겠고…. 아씨, 커미션 비율을 자유롭게 하기로 했어야 했는데.”
한참을 서성이던 소장은 박 의원의 치졸함을 부각해 최소한 박 의원에게 가는 것만 막자고 다짐하며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 시간 박 의원은 장 지사에게 이진성 일행이 자신에게 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들에게서 발생하는 수익의 20%를 주겠다며 꼬시고 있었다.
* * *
숙소에서 느긋하게 늘어져 있던 이진성이 손가락을 귀를 파며 장동건을 불렀다.
“아 씨.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동건아. 너 내 욕했냐?”
“무슨 말이에요? 안 그래도 저도 그래서 형님한테 저 욕하는지 물어보려던 참인데?”
“어? 나도 그런데? 내 욕은 누가 하는 거야? 아저씨는 아닐 거고, 동건이도 아닌 거 같고…….”
나현주는 애꿎은 장혜진을 슬쩍 쳐다봤지만, 샤워를 끝내고 혼자서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어느 놈이 우리 욕을 단체로 하고 있는 거야? 빌어먹을.”
“그러게.”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