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66화 (66/145)

# 66

장동건의 말을 들은 박 의원이라는 놈은 얼굴만 실룩실룩 할 뿐 직접적인 반응은 없었다.

뒤를 따르던 남자들도 한 명을 빼고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눈치였다. 앞으로 나선 한 명도 한 번의 위협 후에 실실 웃고 있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의원을 위해 나섰다기보다는 그냥 시비가 걸고 싶었던 것 같았다.

“왜? 내 말이 틀려? 썅.”

다시 한번 입을 열며 일어나는 장동건을 나현주가 잡아 앉히고 장동건과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나현주가 일어서는 것을 본 이진성도 따라 일어서서 앞으로 나섰고 관장은 자리에 앉은 채 살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일행의 이런 반응에 의원의 뒤에 있던 남자들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고 분위기는 금세 살벌해 졌다.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자 도만수가 결국 일어나 사람들 가운데로 나갔다.

“왜들 이러시나? 진정들 하시고 가서 술들 드시게. 취해서 하는 실수가지고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마시게. 그리고 박 의원도 일 키우지 말고 사람들 물리시게.”

도만수가 직접 일어나 사람들 사이에 서자 저쪽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는지 박 의원의 얼굴만 바라보며 말을 기다렸다.

“회장님 얼굴 보고 오늘은 물러가겠습니다만, 저 친구한테 앞으로 조심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지금은 법의 보호 같은 거 없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다고 분명히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회장님도 앞으로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뻔히 듣고 있는 장동건에게 전해달라면서 사실상 모두에게 경고한 박 의원이었다. 그리고는 일행을 한번 노려본 후 같이 온 사람들을 이끌고 다시 술집을 나가 버렸다.

그들이 다 나가고서야 다시 자리에 앉은 일행은 장동건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너 왜 그랬어? 너답지 않게?”

“아씨 저 새끼가 누나한테 막 반말하고 그러잖아요.”

장동건의 말투는 아까보다 멀쩡했다. 일부러 취한 척했던 것이다.

“하이고. 니가 언제부터 내 생각 그렇게 했다고? 너 때문에 쓸데없이 싸움만 날 뻔했잖아?”

“에이.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인데 무슨.”

“야. 앞으로 여기서 지낼 거면 쓸데없이 척지고 그럼 피곤하잖아.”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조심할게요. 됐죠?”

“동건아. 니가 여기 사람들 안된 마음에 그런 거 같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다들 적응해서 상황에 맞게 살아갈 수 밖에.”

“아. 형님. 나도 아는데, 그런데 저런 마스크는 너무… 뭐라고 해야 하나? 노예 족쇄 채워 놓은 것도 아니고 진짜…….”

“이런 세상에서 가지지 못한 자의 인권이 존중되기를 기대하기 힘들지 않소? 마음 써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저도 알아요. 관장님. 술김에 조금 격해졌었나 봐요.”

사람들의 다독임 속에 몇 잔의 술을 더 마신 장동건은 기분이 좀 풀렸는지 슬슬 농담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시도했다. 그런 장동건에게 장단을 맞춰주며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리자 도만수도 안심이 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행에게 다짐했다.

“난 이만 가 보겠네. 혹시라도 저들하고 다시 만나도 싸우거나 하지는 마시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달아 놓고 더 시켜 먹고 편히 있다 가시게나.”

“가시려고요?”

“이 나이에 이만하면 오래 있었지. 힘들어서 더 못 있어. 천천히 먹고 가시게.”

그러고 휘적휘적 걸어 나가는 도만수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여태 조용히 있던 장혜진이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의원이라는 사람 말이에요. 느낌이 많이 불길해요. 조만간 무슨 일을 낼 거 같아요.”

장동건이 다시 발끈해서 물었다.

“우리한테 해코지 한다고?”

“아니, 우리한테가 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큰일을 낼 거라는 예감이에요. 많은 사람이 피를 볼 거 같아요.”

“뭔가 정확하게 계시 받은 것 없고? 아. 빨리 우리 보살님이 마음대로 접신하는 능력을 가져야 할텐데.”

“뭐예요? 지금 나 의심하는 거예요? 그럼 오빠는 신경 끄던가.”

* * *

박 의원의 개인 유닛 거실에는 장의원과 아까의 네 남자가 모여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 술병이 여럿 어지럽게 널려 있었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는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박 의원이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거사를 서두릅시다. 이 꼴 저 꼴 보기도 싫은데, 별 거지 같은 것들이 이제는 기어오르기까지 하네. 나 참.”

얼굴흉터가 별로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서두른다면 언제쯤?”

“1주일 내로 준비가 되겠소?”

“우리는 준비가 항상 되어 있습니다만, 장 지사 쪽은 1주일 안에 해결이 되겠습니까?”

“생각이 바뀌었소. 이번에 장 지사도 같이 처리해 버립시다. 굳이 살려둘 필요가 없을 것 같소. 장 지사 밑의 능력자 중에 몇 명이라도 포섭하면 되지 않겠소?”

“포섭이라… 그 사람들이 장 지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쪽으로 올 사람들도 아닌데…….”

“안될 것 같으면 아예 시도도 마시오. 말만 새나가지. 혹시 그들 중 다섯 정도만이라도 밖으로 나가면 나머지는 처리할 수 있겠소?”

“그러면 아까 그놈들하고 같이 처리할 수 있겠죠. 그놈들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충분합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박 의원과 일당은 모의를 계속해 나갔다. 군인들의 손발을 묶을 방법, 자신들 외의 능력자들을 처리할 방법, 소장과 지사를 처리했을 때 내세울 명분 등을 다시 정리하면서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꿔 나갔다.

“그런데 명분을 이걸로 하면 나중에 말 안 나오겠습니까? 지하 2층 감옥에 있던 좀비들이 탈출해서 1층으로 나왔다. 이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다수 나왔다?”

“별걱정을 다 하세요. 어차피 우리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나면 명분은 그냥 말장난일 뿐입니다. 설사 개가 싼 똥을 치우다가 희생자들이 나왔다고 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결과만 좋으면 이유와 과정은 다 필요 없어지는 겁니다.”

평생을 남의 등을 치고 권력으로 무마해온 박 의원다운 발상이었다. 그 부분은 어차피 박 의원이 알아서 할 일이기에 얼굴흉터는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다음 사항을 확인했다.

“도 회장은 처리 안 합니까?”

“도 회장은 바깥에 숨겨놓은 재산이 계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죽여버리면 그것들이 다 날아가는 거야. 절대로 죽여서는 안 돼요. 우리가 여기서 나가는 날이 오면 그때 어떻게든 그 재산을 손에 넣고 처리해야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운 그들은 최종적으로 D-day를 열흘 후로 잡았고 그들의 살생부에는 총 열세 명의 요인과 이진성 일행 그리고 장 지사의 능력자 열 명이 기록되었다.

* * *

일이 없어 빈둥거리며 자극적인 거리를 찾는 대부분 VIP에게는 지루하기만 한 열흘이 어떤 이들에게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박 의원은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하나하나 점검하며 사전작업을 해나갔고, 박 의원 쪽 능력자 스물다섯도 계획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남들 모르게 사전 연습도 하면서 D-day를 기다려 왔다.

그 열흘 동안 이진성 일행은 김 소장과 계약 했으며 나현주와 관장은 한 번씩의 경기도 치렀다. 두 사람의 상대는 박 의원 쪽 레벨 2 능력자들이었다. 실제로 붙어본 그들의 실력은 두 번의 진화자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두 사람은 가까스로 이긴 것으로 연기했었다.

필요 없이 능력을 다 보일 필요도 없고, 비슷한 실력으로 보여야 베팅 금액이 늘어난다는 도만수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자신들은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해 실력을 숨긴 것이었지만, 덕분에 박 의원 쪽은 관장과 나현주의 실력을 실제보다 아주 낮게 측정하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얻기도 했다.

“컨트롤 룸의 확보는 박 의원을 따라 너희 둘이 들어가서 해. 박 의원이 바람 잡아줄 거니까 무리는 없을 거야. 뭘 해야 하는지 알지? 절대로 외부 병력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게이트를 잠가 놓을 것. 지하감옥문을 열 것. 그리고 1층 모든 유닛의 문을 열 것. 도면 잘 챙기고. 이미 외웠어도 도면 챙겨가.”

“네. 형님.”

“감옥이 열리면 지하의 좀비들을 위로 유인하는 것은 세분이서 맡아 주시고, 여러분 일곱 분은…….”

얼굴흉터는 사람들과 사전에 정해진 역할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컨트롤 룸의 확보였다. 그 일은 박 의원이 직접 나서고 자신과 가장 친한 둘을 딸려 보내기로 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장 지사의 능력자 다섯과 자신 쪽 일곱이 동탄 정찰을 이유로 나가는 것이었다.

저쪽의 레벨 1 다섯과 이쪽의 레벨 2 한 명, 레벨 1 여섯이 같이 나가 적당한 기회에 저쪽 사람들을 전부 처리하는 것이다.

그럼 내부에는 박 의원 쪽에 자신을 포함한 레벨 2 능력자가 둘, 1레벨이 열여섯이고 나머지는 장 지사 쪽 2레벨 하나와 1레벨 네 명, 그리고 이진성 일행과 도만수의 경호원 하나였다. 도만수의 경호원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기에 열 명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자 그럼 모두 위치로 가시고 사람들이 외부로 나간 후 컨트롤룸을 확보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흩어집시다.”

* * *

“오늘 경기 자신 있어요? 형님?”

“야. 야. 껌이야. 그냥 가서 가볍게 처리하고 오면 되는거야. 저쪽 레벨 2라도 나 보다 좀 센 정도라며? 그런데 레벨 1이야 뭐, 도끼도 없이 갈까 생각 중이야.”

“에이. 그건 자만 같은데?”

“아저씨. 오늘 상대가 창이 무기랬어요. 아저씨 실력으로 창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건 무리예요. 헛소리 말고 도끼 들고 가요.”

“아 네. 명심합죠. 누구 분부신데요. 반드시 들고 가겠습니다.”

“이 아저씨가 정말?”

“클클클. 다 늙어서 청춘이구먼. 하는 짓은 꼭 20대야. 우리 동건이는 혜진이랑 좀 진도가 나갔나?”

“아. 할아버지. 너무 철벽이라서 말이죠. 뭐 선물할 거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좋은 거 없으세요?”

“있지. 많지. 근데 비싸. 클클클.”

어느덧 일행과 많이 친해진 도만수는 오늘 있을 이진성의 경기를 격려한다며 오전에 와서는 주저앉아 장동건과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때가 되면 여느 때와 같이 이진성과 나현주는 지하 2층으로 가서 부모님들과 점심을 할 예정이었고, 나머지는 특별한 일이 없이 저마다의 시간을 죽여야 했다.

“아 맞다. 할아버지, 그 얘기 들으셨어요? 오늘 동탄으로 능력자 열 몇명 정찰 나간다던데?”

“들었지. 갑자기 뜬금없이 정찰은 뭐 하러 하는지 몰라. 무슨 꿍꿍인지… .”

“심심한데 나도 가면 좋을텐데. 간만에 총도 좀 쏘고.”

나현주와 식탁에서 뭔가를 얘기하던 이진성이 장동건의 말을 듣고 거실로 나왔다.

“아서라. 뭐하러 고생을. 전에 그 눈까만년 같은 게 또 나오면 어쩌려고?”

“그년도 총 맞으면 죽겠죠. 그때야 총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랬지…….”

“응? 처음에 방어력 죽였잖아. 막 쇳덩이 같았잖아. 총알에 죽을까?”

“안 죽을까요?”

“그 눈까만년이라는게 그렇게 강했나?”

“어휴 말도 마세요. 우리 다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장동건이 그날 일에 대해 도만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에는 점점 살이 붙어 나중에는 눈까만 좀비가 입에서 불을 뿜고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도만수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없었던 장혜진도 얘기에 빠져서 진짜냐는 둥, 구라라는 둥 하면서 듣고 있었고 그럴수록 장동건은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저 시키는 판타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그러게요.”

장동건의 모습을 보면서 이진성과 나현주가 기가 막혀 하는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경보 사이렌과 함께 방송이 흘러나왔다.

<모든 인원은 각자의 유닛으로 긴급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지하 감옥의 좀비들이 탈출해서 1층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현재…>

일행은 황당했다. 지하 감옥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듣는데 거기에 좀비들이 왜 감금되어 있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탈출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도만수가 뭔가를 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직하게 말을 뱉었다.

“이놈들이 기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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