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도만수의 반응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단순하게 좀비들의 습격 같은 게 아니라는 말투였다.
“어르신. 아는 게 있으시면 말씀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검을 들고 일어서는 관장의 말은 정중했지만, 분위기는 살벌했다. 그 모습을 본 도만수의 경호원이 도만수 옆으로 다가섰고, 이진성 일행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내 얘기함세. 이러지들 마시게.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말하겠네.”
감옥은 애초에 이곳이 설계될 때부터 준비된 것이라고 했다. 몇 년씩이나 이 안에서 버틸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동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안 나온다고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었기에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것이라는 것이다. 지하 2층의 또하나의 문이 감옥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그 감옥은 외부에서 들여온 사람들 또는 경비병력이 좀비로 변하는 것을 포획해서 넣는 곳으로 쓰이게 됐다. 사람들이 자는 곳은 두 평짜리 독실이고, 자기 전에 손발을 묶기 때문에 포획은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중에 한 번에 죽이자고 격리했었다. 그러다 점점 수가 늘어나자 박 의원이 다른 생각을 했는데, 더 자극적인 도박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좀비 대 능력자의 경기를 계획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건 해도 너무하잖아요? 사람들끼리 격투기 하는 거야 스포츠 경기라 치고.”
“그러게. 여기 사람들 진짜 해도 너무하네.”
“아닐세. 대부분 사람은 아직 모르네. 1층 사람 대부분은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하 2층 사람들은 포획된 좀비들을 안 보이는 장소에서 처리한다고만 알고 있네. 심지어 김 소장과 장 지사도 그렇게 알고 있네.”
“와! 박 의원인지 그 새끼 진짜 개새끼네!”
“사정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이놈들이 기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직 설명이 안 됩니다. 어르신.”
관장이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설명을 재촉했다.
“내가 자네들한테 김 소장을 추천하면서 박 의원이 뭔가를 꾸미는 거 같다고 하지 않았나? 난 지금 이 일이 박 의원이 하는 일 같네.”
“뭐 때문에 말입니까?”
“이곳의 모든 것을 독식하려는 것이겠지. 여기 사람들은 소비만 할 뿐이야. 그리고 그 돈은 전부 박 의원, 장 지사, 김 소장한테 들어가고. 그걸 혼자 다 먹으려는 거겠지!”
“허. 걸리기만 해봐, 아주. 대가리에 총알구멍을 내줄 거니까.”
그때 다시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좀비들이 1층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두 자신의 유닛에서 대기하시고 능력자분들은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오라는데요?”
장동건이 총을 들고 일어서는데 도만수가 말렸다.
“잠깐 기다리게. 만약에 박 의원이 다른 사람들을 제거하려 한다면 여러분도 제거 대상이네. 나가면 여러분부터 제거하려 들거야. 저 좀비들은 미끼로 풀어놓은 게 틀림없어. 저것들이 1층까지 올 수가 없거든. 분명히 박 위원이 풀어 놓은 거야.”
“저렇게 해 놓고 성공한다고 해도 나중에 어떻게 수습하려고?”
“자기한테 불만인 사람들을 이번에 다 죽여 버릴지도 모르지. 그 사람들의 유닛 문만 열어주면 좀비들이 들어가서 해결할 테니까.”
“에? 그럼 여기 문도 막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소파에 달려들어 문 쪽으로 끌려는 이진성을 보며 도만수가 말렸다.
“여기는 아닐 거야. 좀비들로 여러분을 어떻게 못 한다는 거 저놈들도 알거든. 밖에서 좀비들과 싸울 때 자기들이 직접 하겠지.”
“그렇다는 건 우리가 안 나가고 버텨도 저놈들이 마지막에는 여기로 들어올 거라는 말씀이네요?”
“그렇지. 그러고 보니 오히려 나가서 좀비들과 싸우면서 이쪽에서 역습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군.”
“그쪽이 좋을 것 같소. 밖으로 나가는 게 공간도 넓고 저놈들도 방심하고 있을 것 같소. 여기로 들어올 때는 좁은 곳에서 작정하고 들어오는 놈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편은 좋지 않소.”
“에이. 들어오는 놈들 다 쏴버리죠. 뭐.”
“몇 발이나 있소?”
“아. 그러고 보니 열네 발밖에 없네요. 이런.”
“만약에 저쪽에서 총이라도 들고 오면 불리해지오. 먼저 나갑시다.”
“제가 나가서 먼저 열네 놈을 잡고 시작할까요?”
“그러면 장 지사 쪽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박 의원 쪽에 붙어서 이쪽을 공격할 거야. 좋지 않아.”
“다 죽여 버리면…….”
“자네들이 이곳을 장악하고 지배할 거면 그래도 되겠지. 그게 아니면 결국 위험한 인물로 찍혀서 여기서 쫓겨날 거야. 그렇게 되면 김 소장도 잡고 있을 명분이 없어.”
“동건아. 일단은 좀비부터 잡고 저놈들이 덤빌 때 잡자. 좀비는 그냥 몇 놈만 잡아. 할아버지는 혜진이랑 여기 계세요. 경호원님하고 같이요.”
“아닐세. 저것들이 나는 어쩌지 않아. 나한테 빼먹을 게 많거든. 내 경호원도 같이 가는 거로 하게나. 자네들은 누가 박 의원 쪽이고 누가 장 지사 쪽인지 모르잖나?”
“그럼 방 안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계세요.”
그리고 밖으로 나선 다섯의 눈에는 벌써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좀비들과 그런 좀비들과 싸우고 있는 능력자들이 보였다. 그리고 몇몇 문이 열린 유닛에서는 터져 나오는 사람의 비명도 들려왔다.
“냄새로는 50이 넘는데요? 그동안 많이도 모아놨나 봐요.”
“저렇게 많이 모아놓을 필요가 있나?”
그때 아무 말 없던 경호원이 입을 열었다.
“능력자 하나와 열 마리 또는 그 이상씩 싸울 계획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정도라고 해 봐야 서너 번 싸우면 끝이겠네요.”
“우리는 흩어지지 말고 뭉쳐 다녀요. 일단 저기 제일 가까운 놈부터.”
나현주가 앞장서 천천히 걸어 나가고 나머지가 뒤를 따랐다. 장동건은 좀비보다는 습격하는 능력자가 없는지를 더 신경 쓰면 뒤를 따랐다.
* * *
컨트롤룸의 한쪽 구석에는 목이 꺾여 죽어있는 시체 네 구가 쌓여있고, 그 옆에서 박 의원과 두 명의 능력자가 모니터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거해야 할 열셋은 다 처리된 건가?”
“일단 좀비들은 다 들어갔는데 내부에는 카메라가 없어 결과는 알 수 없네요.”
“김 소장은 찾았나?”
“아직요. 1층에 없다면 지하 2층 탄약고에 있지 않을까 해서 그쪽으로 형님하고 셋이 내려갔잖습니까. 좀 기다려 보시라니까는.”
말투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놈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본 박 의원이 솟구쳐 오르는 화를 억지로 누르고 말을 이었다.
“운이 좋은 놈이야. 빨리 찾아야 하는데…….”
“형님이 지하의 경비병들도 처리해야 하니까 거기 있다면 겸사겸사 처리할 거요. 걱정 마시라니까.”
“자네, 말을 좀 공손하게 할 필요가 있어. 자네 형님만 믿고 너무 나대는 거 같네만.”
“아이고 죄송합니다. 네네. 조심하겠습니다.”
의자에 앉아 킥킥거리는 두 놈을 보는 박 의원의 눈은 점점 사나워졌다.
“1층에 레벨 2 두 명하고 나머지 10명이야. 부족하지는 않나? 김 소장 측이 레벨 2가 둘이나 있는데?”
“우리 레벨 2 둘하고 다섯 명이 김 소장 측 레벨 2를 맡을 겁니다. 나머지 다섯이 저기 도끼 들고 있는 놈하고 장 지사 쪽 놈들을 맡을 거고요. 장 지사쪽 레벨 2는 제일 나중에 장 지사랑 같이 처리할 거고요.”
“그러면 저기 총 든 놈은?”
“형님이 올라와서 처리하실겁니다요. 걱정 마십쇼.”
“실수 없어야 하네.”
“걱정 좀 하지 말라니까는 진짜…….”
짜증 내는 두 놈의 반응에 박 의원은 나중에 이 두 놈도 반드시 제거하기로 마음먹고는 입을 닫고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 * *
지하로 내려온 얼굴흉터는 같이 온 두 명의 레벨 1 능력자와 함께 경비병 숙소로 향했다. 두 명은 최근에 전단을 보고 합류한 인원으로 이전에 격투기 선수였다는 사람들이었다.
“저,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겁니다.”
“그게 아니고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이거 보세요. 지금 저 바깥에서는 수없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그냥 눈 한번 감으면 나중에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거예요. 한 1년이면 밖에 나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잘 좀 합시다.”
눈을 부라리는 얼굴흉터에게 기가 죽은 둘은 조용히 그를 따랐다.
그들이 도착한 경비병 숙소에는 깨어있는 네 명과 자는 네 명이 있었다. 자는 네 명은 역시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두 평짜리 격리된 쪽방에서 손발을 묶고 자고 있었다.
“수고가 많아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쩐일로?”
“아. 볼일이 있어 내려왔다가 고생하시는 여러분 생각이 나서 들러 봤어요. 여기 술한병 가져 왔으니까 나중에 근무시간 아닐 때 마시세요.”
얼굴 흉터가 내놓는 고급 위스키를 보며 경비병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뭐 이런걸.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이 정도 가지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내가 구할 수 있는 거면 가져다줄 테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지난 열흘간 몇 번 내려와 얼굴도 익혀서 그런지 병사들은 스스럼없이 원하는 물건을 말하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런 병사들의 얘기에 대꾸하며 분위기를 맞춰주던 얼굴 흉터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면서 병사들의 뒤로 다가갔다.
“3교대로 근무하면 피곤하죠? 여기 있을 때도 자는 사람들 감시해야 하고?”
“할 만합니다. 요즘은 거의 변하는 사람도 없고요. 마지막 변한 게 1주일 전쯤인가? 그렇습니다.”
“그러시구나.”
얼굴 흉터는 두 명의 병사 뒤에서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씩 웃었다.
“이제 내가 편히 쉬게 해 드릴게.”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되는 두 병사가 자리에 앉아 뒤에 있는 얼굴흉터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허리춤이 화끈했다. 어느새 손을 내린 얼굴흉터가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잡고 둘의 허리에 쑤셔 박은 것이다.
두 병사의 비명을 신호로 두 능력자가 긴장이 풀린 채 잡담하고 있던 나머지 두 병사에게 달려들어 목을 꺾어 버렸고, 그 사이에 얼굴흉터는 허리에 박혔던 단검을 뽑아 둘의 목을 그었다.
“간단하잖아요? 처음이 어렵지 다음 부터는 쉬운 법입니다.”
표정이 굳은 두 사람에게 얼굴흉터는 미소지으며 말하고는 병사들이 자는 곳으로 향했다. 손발이 묶여 자는 네 명의 병사의 목을 긋고 나오는 데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 이제 바깥의 넷을 처리하러 갈까요? 계획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두 사람을 이끌고 경비병 숙소를 나선 얼굴흉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가하게 거닐며 순찰을 도는 경비병들을 찾아 나섰다.
깨어있는 사람이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경비병들은 흩어져서 한 명씩 자신의 지역을 순찰하는 방식이었다. 할 말이 있다고 조용한 곳으로 불러내면 의심할 이유가 없는 그들은 순순히 따라왔고, 그런 그들은 모두 동료들의 뒤를 따라야 했다.
경비병을 처리한 세 명은 그들의 총기를 준비해온 포대기에 싸서 다시 경비병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숙소에 있는 총기까지 모두 싸 들고 나온 얼굴흉터는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김 소장은 찾았나?” 삐릭~
<형님. 거기는 다 끝나셨습니까? 김 소장 아직입니다. 일단 거기 탄약고 확인해 주십쇼. 지하 2층에 없으면 지하 1층도 한번 찾아봐 주십쇼>
“여기는 다 끝났다. 탄약고 문은 거기서 열 수 있지?” 삐릭~
<그럼요. 도착하면 말씀하십쇼. 열어 드리겠습니다>
탄약고는 지하 2층의 가장 구석에 있었다. 총알과 크레모아 수류탄 등이 보관된 그곳은 현재 김 소장의 지문만으로 열 수 있었다. 다만 김 소장 유고시를 대비해 컨트롤룸에서 박 의원 또는 장 지사의 지문과 특정 버튼으로 열 수도 있기는 했다.
“도착했다. 문 열어.” 삐릭~
<잠시만 기다리십쇼. 의원님 여기 지문>
무전기를 통해 박 의원에게 지문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는데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야. 뭐 하는 거야? 빨리 열어.” 삐릭~
<어. 그게, 열려야 하는데 안 열립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야 이 새끼야. 그게 무슨 말이야?” 삐릭~
<그게 저도 잘…>
그때 무전기에서 박 의원 목소리가 나왔다.
<쥐새끼 같은 놈이 거기 있는 게 확실합니다. 안에서 수동으로 바꾼 것 같아요. 이놈이 어떻게 알고… 아! 김민지. 그년 아직 처리 안된 건가? 이런 빌어먹을. 쥐새끼는 하필 자리를 비우고 비서 년은 아직도 살아있고, 왜 이렇게 시작부터 꼬이는 거야?>
무전기에서는 뭔가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박 의원이 지랄을 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