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72화 (72/145)

# 72

“아저씨…….”

흐느끼며 나직하게 이진성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이진성은 발을 내리고 나현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틈을 타 재빨리 몸을 뺀 관장은 혹시나 이진성이 다시 공격하지 않을까, 날아간 반쪽 검을 찾으러 뛰어갔다.

이진성은 그런 관장을 무시하고 나현주 쪽만을 바라보았다.

“동건아. 나 좀 데려다줘.”

“누나. 위험해요. 지금 형님 제정신 아니잖아요.”

“나도 알아. 그러니까 그냥 암말 말고 데려다줘.”

살점이 떨어져 나간 옆구리를 손으로 막고 있었지만 피는 계속해서 나왔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기절할 듯한 통증에 온몸이 움츠러드는 나현주는 기어이 발을 옮겼다.

그런 그녀를 어쩌지 못한 장동건도 그녀를 부축한 채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진성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지만, 이진성은 미동도 없이 다가오는 두 사람을 보고만 있었다.

여전히 눈에 초점은 없었고 혈관이 터져 새빨간 안구도 여전했다.

나현주가 서서히 손을 뻗어 이진성의 뺨에 댔다. 이진성은 순간 움찔했지만 그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발 더 나간 나현주가 이진성을 살포시 안았다. 안아도 가만있는 이진성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 가만히 자신의 어깨로 끌었다.

“아저씨. 정신 차려요. 이러면 안 돼요.”

이진성의 귀에 다정하게 말을 하며 등을 토닥거리는 나현주는 이진성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진성에게 느껴지던 살이 따갑던 기운도 점차 옅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동건과 관장 그리고 창과 곡괭이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무기를 들고 있던 손들이 서서히 내려가려는 참이었다.

“아저씨!”

갑작스러운 나현주의 외침에 다시 무기를 올리고 자세를 잡았지만 이진성의 공격은 없었다. 다만 아까보다는 약하지만 다시 경련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금 경련하는 이진성의 모습에 그를 안고 있는 나현주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한번 폭주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폭주의 부작용인지 알 수 없어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줄 뿐이었다.

“동건아. 비켜. 그리고 꼼짝 말고 있다가 만약에 내가 잘못되면 그때… 알지?”

“아 씨. 누나. 어쩌려고 그래요. 그냥 나와요.”

“말들어. 어서 물러서.”

할 수 없이 물러서는 장동건은 총을 들어 이진성을 겨냥해야 했다. 모두의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흘렀다.

1초가 10초가 되고 30초가 되고 다시 1분이 되었다. 나현주의 몸으로 전해지는 이진성의 경련은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나현주를 안고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으으윽~

안 그래도 옆구리에서 오는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는 나현주는 이진성이 조르는 고통까지 더해져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팔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이진성의 귀에 자신의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그러기를 다시 몇 분, 지켜보던 장동건과 관장이 더는 안될 것 같아 둘을 떼어 내려고 앞으로 움직이는 찰나였다.

갑자기 이진성의 경련이 멈추면서 축 늘어지며 나현주와 함께 쓰러져 버렸다.

흐윽~

쓰러진 나현주가 뱉어내는 신음에 놀란 두 사람이 달려갔다. 관장과 장동건이 이진성을 나현주에게서 급하게 떼내고 확인했다.

이진성은 기절상태였고 나현주도 추가적인 부상은 없는 듯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기절하는 나현주를 봐야 했다.

“하 씨. 무슨 일이냐, 이게?”

기절한 두 사람을 내려보는 장동건에게 다급한 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방에서 나와서 이 모습을 모두 본 사람들 제압해야 할 것 같소. 이유가 어찌 됐든 저들이 본 모습은 진성 씨가 학살하는 모습이오. 일단은 제압해 놓고 뒷일을 생각합시다.”

주위를 둘러보는 장동건의 눈에 스물 몇 명의 사람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관장의 말이 맞았다. 저들이 다시 유닛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면 나중에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탕~

천장을 향해 쏜 공포 한발에 LED 조명 한 부분이 터지면서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리고 사람들은 총성에 고개를 들고 장동건을 주목했다.

“여러분. 안심하셔도 됩니다. 모든 상황이 끝났어요. 단, 지금부터 저희 통제를 따라 주셔야겠네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장동건이 총을 들고 위협하는 동안 관장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나와 있던 전부를 한 유닛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 * *

<소장님. 다 끝난 거 같아요. 이제 올라오셔도 될 거 같아요.>

“올라가도 된다고? 어떻게 됐는데?” 삐릭~

<박 의원도 장 지사도 죽고 그쪽 사람들도 다 죽은 거 같아요. 그런데 주민들도 많이 죽었어요>

“뭐? 그 새끼가 주민들까지 죽인 거야?” 삐릭~

<아. 그건… 그게… 주민들을 죽인 건 이진성 씨가…>

“뭐? 그놈이 주민들은 왜 죽여? 그놈도 박 의원 놈하고 한패야?” 삐릭~

<모르겠어요. 저도. 일단 올라오세요. 지금은 안전해요>

무전을 받은 김 소장은 김민지의 말이 잘 이해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안전하다는 말에 무기고를 나섰다. 그리고 1층으로 올라온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마치 피와 고기를 일부러 사방에 뿌려 놓은 듯한 참상이었다.

한쪽으로 장동건과 관장이 보였고 그 앞에 쓰러져 있는 나현주와 이진성이 있었다. 술집 입구에는 장 지사 쪽 사람으로 보이는 둘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것도 보였다.

다행히 그들도 정신이 없는지 김 소장을 못 본 것 같았다. 김소장은 일단은 눈에 띄지 않게 김민지의 유닛으로 향했다. 그녀의 설명을 듣는 것이 먼저였다.

처음 박 의원의 방송이 나왔을 때, 일이 터졌음을 직감한 김민지는 자신 유닛의 문을 즉시 수동으로 돌려 컨트롤룸에서 제어하지 못하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안에서 현관문의 모니터를 통해 제한된 시각의 외부 모습과 바깥의 소리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설명해봐.”

“그게…….”

안에서 모니터의 스피커로 들린 소리로는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박 의원이 다 죽이라고 소리친 것과 총성, 그리고 마지막에 폭주하는 이진성의 모습을 모니터로 본 것을 전달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고민하는 김 소장에게 김민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은 나가서 저 사람들한테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우리 공격하면?”

“장군님 총 있으시잖아요.”

“야. 이깟 권총 가지고 어쩌라고? 내가 마지막으로 총 쏴본 게 언젠 줄 알아? 나도 기억이 안 난다. 저 날고 기는 사람들한테 나 혼자서 어쩌라고?”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고 김민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나가시죠. 모니터로 봤을 때 이진성 씨가 쓰러지고 난 뒤로는 사람들한테 위해를 가하지 않았거든요.”

“아, 그 방법밖에 없냐?”

“여기 계속 있을 수도 없잖아요?”

“민지야. 니가 먼저 나가서 상황파악 좀 해 주라. 그리고 내가 나갈게.”

한참을 소장을 노려보던 김민지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문으로 향했다.

* * *

<나오세요. 장! 군! 님!>

무전기에서 나오는 앙칼진 김민지의 목소리를 듣고 김 소장은 조심스럽게 이진성 일행에게 향했다.

어느새 이진성과 나현주는 자신들의 유닛으로 옮겨져 있었고, 그곳에는 관장과 김민지 그리고 장 지사 쪽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동건은 저쪽의 한 유닛에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관장과 장 지사 쪽 두 사람에게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전해 들었다. 전후 사정의 파악이 끝나고 모든 일이 일단락되었다는 것에 안심했지만, 사후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골치가 아팠다.

폭주하는 이진성의 모습을 본 주민들을 분명히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쉘터에서 내보낼 수도, 강압적으로 입을 막을 수도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이진성 일행이 쉘터를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기절해 있는 이진성과 나현주를 한번 본 소장이 관장에게 물었다.

“저 두 사람은 이상은 없겠습니까?”

“모르겠소. 총상은 피가 멎은 것으로 봐서 치유단계로 들어간 것 같소. 우리 진화자, 이곳에서 능력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워낙 회복력이 좋아서 별문제는 없을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진성 씨요. 저런 모습을 처음 봐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소.”

“일단 두 사람 회복에만 신경 써 주십시오. 주민들 문제는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일어서서 나가는 소장에게서 짜증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체들을 다 어떻게 처리하냐? 죽여도 좀 곱게 죽이지 이게 다 뭐람?”

대놓고 뭐라고는 못하고 나가면서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며 불만을 드러내는 김 소장이었다.

* * *

이진성은 생각보다 빨리 깨어났다. 이틀이 지나 부스스 눈을 뜬 이진성의 눈은 일부 핏줄이 터진 것이 남아 있었지만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깨어난 이진성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나현주를 찾는 것이었다.

“현주씨 어딨어? 어떻게 됐어?”

“억. 형님 깼어요? 현주 누나? 저쪽 방에 있어요.”

“현주씨 어때? 괜찮아?”

“괜찮아요. 아직 움직이는 게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누워있을 뿐이지, 정상이에요. 옆구리에 흉터만 좀 크게 남은 정도예요.”

장동건의 말을 듣고 바로 일어나 방을 나서려는 이진성을 장동건이 잡았다.

“형님. 누나한테 가기 전에 관장님한테 사과부터 좀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엉? 왜? 무슨 사과?”

“에? 왜 이래요? 관장님한테 그렇게 해 놓고 이 태도는 뭐지?”

“내가 관장님한테 뭘 어쨌다고?”

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봤다.

“형님… 기억 안 나요?”

“무슨… 기억?”

장동건이 한참을 이진성의 눈을 들여다봤다.

“왜 이래? 무섭게. 말 좀 해봐. 내가 뭘 어쨌는데? 나 기억 안 나. 그리고 보니까 그때 현주씨 총상 입고 난 뒤로 하나도 기억 안 나. 그때부터 얼마나 지난 거야? 나 왜 이방에 있는 거야?”

“와. 연기야 뭐야? 이 정도면 아카데미 상도 받겠네. 형님 진짜로 기억 안 나요?”

“진짜라니까?”

장동건이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이진성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었다. 다른 것들은 둘째치고 자신이 관장을 거의 죽일 뻔했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됐다. 자신의 실력으로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이게 진짜루. 내가 기절 좀 했다고 구라도 쌩 양아치 같은 구라를 치네?”

“헐. 구라란다. 이제 발뺌까지 하려고 하네. 나 형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했수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정신 잃고 사람들을 막 죽였다는 건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관장님을 죽일 뻔해? 내가 관장님한테 죽을 뻔했으면 몰라도.”

“진짜라니까. 그때 형님 사람 아니었다니까. 막 몇십 미터씩 날아다니고 그랬다니까?”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장동건의 모습을 보며 이진성이 설마 싶었다.

“야. 진짜야? 장난 아니고?”

“진짜라니까. 진짜라고요!”

“너… 장난이면 가만 안 둬.”

“장난이면 내가 장동건 아니고 형님 아들 할게요.”

방을 나선 이진성이 관장을 찾았다. 관장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바닥에 앉아 명상 중이었다.

쭈뼛쭈뼛 다가간 이진성이 조용히 불렀다.

“저… 관장님?”

관장은 명상에서 깨어나지 않고 꼼짝도 안 했다. 그 모습에 이진성이 당황했다.

‘삐진 건가?’

잔뜩 쫄아서 다시 한번 불렀다.

“관장님. 저… 제가 진짜로 미쳤었어요?”

그때야 눈을 뜬 관장이 이진성을 돌아보고는 말없이 눈만 들여다봤다.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아 어찌할 줄 모르는 이진성이 몸을 배배 꼬다 다 용기를 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그게, 제가 기억이 하나도 안 나거든요? 제가 그랬다면 그때 미쳐서, 그러니까 제가 제가 아닌… 아니 그게 아니고…….”

갈수록 말이 꼬이고 점점 횡설수설하는 이진성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관장이 입을 열었다.

“나랑 대련합시다. 난 진검으로, 진성 씨는 도끼 들고.”

그리고 이제 두 자루 밖에 안 남은 검 중의 하나를 꺼내 드는 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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