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73화 (73/145)

# 73

졸지에 살인마

“관장님. 왜 그러세요. 대련이라뇨? 그것도 진검 대련이라뇨? 전 그때 제가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는데… 혹시 저한테 화나셔서 그런 거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런 게 아니오. 지금 진성 씨 기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커졌소. 거의 나나 현주씨 이상이오. 그런데 안정적이지 않아요. 이대로 둬도 될지 어떨지 몰라서 대련이라도 해서 기를 안정시켜 보려는 거요.”

“에? 그럼 저 또 한 단계 나간 건가요?”

“그걸 확인해 보자는 거요. 지금 상태가 안정적으로 갈지, 아니면…….”

“혹시 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시네요?”

관장은 대답 대신 이진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 제가 다시 미쳐버리기라도 하면… 방법은 있으세요?”

“없지는 않을 것 같소. 일단 밀폐된 공간에서 해야겠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아야겠지요.”

“그러다 전부 잘못되기라도 하면요?”

잠시의 정적 끝에 관장이 천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는 현주씨가 진정시킬 수 있었소. 또 그럴 수 있길 바랄 뿐이오.”

“꼭 확인해야 할까요?”

“그편이 좋지 않겠소? 그래야 대응책이라도 세울 수 있을 것 아니오? 앞으로 또 그렇게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된다면 어떨 때 그렇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진정시킬지 방법을 찾아 놓는 게 좋을 것 같소만.”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는 결정적이었다.

“만약에 제어가 안 돼서 스스로 현주씨를 상하게 한다면 어떨 거 같소?”

이진성은 그 말에 머릿속에 뭔가가 핑하는 것 같았다.

“할게요. 단 1:1은 안 할래요. 동건이가 대기하게 하죠. 만약의 경우 절 쏘게 하세요.”

“음… 그럴 일은 안 생기게 해야지요. 이렇게 합시다. 현주씨와 장 지사 쪽 남은 두 명이 내 백업을 하는 거로. 그래도 안 되면 동건 씨가 나서는 거로.”

“현주씨까지요? 그건 좀…….”

그때였다. 나현주가 이진성의 말을 끊으며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좀은 뭐가 좀이에요? 당연히 내가 가야지.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만약에 또 정신 놓기만 해봐. 아주 그냥 내 손에 죽는 거야. 알겠어요?”

“형님. 저도 총 딱 겨누고 있을 거니까 조심해요. 여차하면 쏴버릴 거예요. 흐흐흐.”

“와. 너무한다. 나 섭섭할라 그러네.”

* * *

대련은 나현주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후 시작하기로 했다.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일행에게는 몇 가지 얘깃거리가 생겼다.

하나는 이진성과 나현주의 가족이 1층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부모님들이 변이할 경우 두 사람이 책임진다는 조건으로, 두 가족이 함께 지낼 하나의 유닛이 별로도 배정되었다. 그리고 이진성과 나현주는 부모님들에게 정식으로 커플로 인사할 수 있었다.

“아이고. 세상이 이렇게 된 덕에 니가 장가를 다 가네. 그라고 집도 생기고. 혼자 살다 내 죽으면 우짜나 걱정했는데 이제야 내가 맘 편히 가겠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진성의 어머니였다. 반면에 나현주의 부모님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딸을 아까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또 다른 하나는 모두가 관장의 이름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대련의 보조를 위해 장 지사 측 창과 곡괭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꺼이 함께하기로 했다.

창은 무술인으로서의 호기심이었다. 자신의 실력에 나름 자신감을 가졌던 그는 자신을 훨씬 압도하는 관장과 나현주의 모습에 놀랐다. 그런 관장과 인간의 한계 이상을 보인 이진성의 대련을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이 위험을 무릅쓰게 했다.

곡괭이는 원래 일하는 인부로 들어왔다가 진화를 한 사람이었기에 무술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진성이 자신을 살려 줬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생명의 빚을 진 사람에게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용기를 내게 했다. 그리고 그 용기의 바탕에는 자신까지 나설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하루 날 잡아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서 통성명하는 자리였다.

“안녕하세요. 김진표라고 합니다. 이쪽은 정수찬이고요.”

창을 쓰는 김진표가 자신들을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개를 받았다. 역시나 관장은 자신을 그냥 관장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런 관장을 물끄러미 보던 김진표가 관장에게 물었다.

“저, 혹시 이 선정 사범님 아니세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란 관장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헉. 날 아시오?”

“아 맞으시구나. 이 선정 사범님. 한 15년쯤 전에 한번 뵌 적 있습니다.”

“어디서? 누구신지?”

“그때 전국 무도인 회의에서 저희 관장님하고 다투셔서…….”

말을 하는 김진표의 입을 틀어막은 관장이 그를 끌고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구석에 간 관장은 김진표에서 뭐라고 귓속말로 소곤거렸고 김진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건아. 들었냐? 우리 관장님 성! 함! 이 무려 이! 선! 정! 이시란다.”

“형님. 똑똑히 들었수다. 여태 이름 말 안 한 이유가 있었네. 이선정이래. 크크크. 곱기도 해라. 흐흐흐.”

“앞으로 꼭 이름으로 불러 드리자. 선정 관장님이라고.”

“나 이제부터 관장님한테 언니라고 할까 봐. 크큭.”

머리를 맞대고 키득거리는 셋을 관장은 구석에서 노려보고 섰다. 김진표는 뻘쭘하게 자리로 돌아와 딴청을 피우고 앉았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잠잠하던 장혜진의 나현주에 대한 도발이었다.

“거 봐요. 내가 말한 계시가 맞죠? 핏속의 관운장. 나 이런 사람이야. 언니는 내 신랑으로 점지된 아저씨를 채 간 거야. 나한테 미안해 해야 해요.”

그나마 나현주를 아줌마라고 안 하고 언니라고 불러줬고, 이진성이 자기 신랑이라고 더 우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꼬박꼬박 나현주에게 유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내가 포기해 줘서 시집간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잘 해야 해.”

“언니. 나 어깨 뭉쳤나 봐. 마사지 좀 해 봐요.”

“와. 내가 저 기집애 시집살이를 다 하네. 저걸 확 그냥.”

“누나. 참아요. 내가 잘 좀 달래 볼게.”

“너 빨리 쟤 잡아라. 안 그러면 저럴 때 마다 나랑 대련해야 할 거야.”

장혜진이 심술을 부릴 때마다 곤란해 죽는 장동건이었다.

* * *

며칠이 지나 드디어 대련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김 소장의 의견에 따라 지하 감옥으로 정했다.

안에는 죄수들의 식당으로 쓴다고 마련된 공간이 있는데 충분히 넓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에 이진성을 격리하기도 좋았다.

첫날에는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로 관장과 이진성의 대련을 지켜봐야 했다. 김진표와 정수찬은 시작 전부터 손에 땀을 쥐고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나현주도 시종일관 굳은 얼굴이었지만, 총을 들고 있던 장동건이 가장 무거운 마음으로 대련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 모두의 우려 덕분인지 다행히도 이진성의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관장의 공격은 날카로웠다. 그런 공격을 별 어려움 없이 막아내는 이진성의 모습에 서서히 공격의 강도를 높였지만, 이진성은 안정적으로 잘 대응해 냈다.

분명히 이진성은 폭주 전과 달랐다. 훨씬 빨랐고 부드러웠다. 도끼의 움직임은 어떤 때는 마치 관장의 검술 같았고, 또 어떤 때는 김현희의 방패 같았다.

동시에 펼쳐지는 팔꿈치 공격, 다리 공격은 가끔은 나현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30분 정도의 계속된 공격을 하던 관장이 뒤로 물러나며 숨을 몰아쉬었었다.

“헉헉. 왜 공격을 안 하오?”

“그게… 그러다 제가 또 헤까닥 할까 봐…….”

“허억 허헉. 그걸 알아보려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니오? 이제는… 헉헉. 진성 씨가 공격하시오.”

숨을 가다듬으며 수비 자세를 취한 관장이 이진성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 모습에 망설이던 이진성은 결국 기합을 넣으며 달려들었다.

“일격참~”

* * *

“헉헉헉. 동건아, 시간… 얼마나 됐냐?”

“한 시간 반 좀 안됐어요. 형님 엄청나게 변한 거 알아요? 관장님한테 전혀 안 밀리던데?”

“후아 후아. 관장님이… 봐 주신 거겠지.”

“헉헉. 아니요. 나도… 최선을 다 한 거요.”

바닥에 널브러진 관장과 이진성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관장은 놀라야 했다. 비록 폭주 당시와 비교하면 많이 모자랐지만, 지금의 이진성은 분명히 자신과 대등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폭주로 몇 단계의 발전이 있었던 것이었다.

몇 분 동안 숨을 안정시킨 관장이 앉은 채로 이진성에게 말했다.

“그동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왜 진성 씨가 진화자가 되었는지 의문이었는데, 아마도 진성 씨한테 특별한 재능이 숨어 있었나 보오. 아니면 특별한 유전자가 있었거나.”

“그 특별함이 뭔지는 알 방법이 없겠죠?”

“우리로서야 그렇겠지.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한계가 어딘지 알아보지 않겠소?”

좀처럼 보기 힘든 관장의 미소에 이진성은 그다지 좋지 못한 예감이 들었다.

“한계를 어떻게 알아본다는 말씀이신지?”

“내일부터는 나랑 진표 씨가 협공하도록 합시다. 그다음에 가능하다면 수찬 씨도 가세하고, 그다음에는 현주씨도 끼도록 하고.”

기가 막힌 이진성이 소리를 빽 질렀다.

“관장님. 저 죽이려고 그러시는 거죠?”

* * *

이진성이 지하에서 대련하고 있던 그 시간, 김 소장의 사무실에 김 소장과 김민지 외에 다섯의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다. 소위 방귀 좀 뀌고 살았다는 목이 뻣뻣하다 못해 부러질 것 같은 사람들의 대표였다.

테이블에 놓인 찻잔의 차는 다 식어 있었지만, 누구도 한 모금 마실 생각도 않고 냉랭한 분위기 속에 날 선 목소리만이 오갈 뿐이었다.

“이것 보세요. 김 소장. 저 사람들이랑 같이 못 산다니까요?”

“내 보내든, 지하로 내려보내든 결정을 보세요.”

“저런 살인마랑 어떻게 같이 지내란 거요?”

사건이 터진 날, 김 소장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장동건의 감시하에 있던 사람들을 인수해서 그들을 다독인 것이었다.

사건의 전후를 설명하고 모든 책임이 박 의원에게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진성에 대한 관심을 돌렸다.

사람들은 당시에는 공포에 절어있어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일단은 김 소장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고 거기에 김 소장도 식량과 유닛의 무상제공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정신이 든 그들은 그날의 공포를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들끼리 모여 결정을 본 것이 이진성 일행의 축출이었다.

김 소장 방으로 대표로 선출된 다섯이 온 것은 두시간 전이었다. 그때부터 내보내라와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얘기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때 잠깐 정신을 잃은 겁니다. 그 이후 문제없지 않습니까? 저들이 나가면 당장 여러분은 누가 보호합니까?”

“이거 보세요. 누가 누구를 보호해요? 당장 그 젊은 놈한테 죽은 사람이 몇 명인데?”

“앞으로 그럴 일 없다니까요.”

“그걸 누가 알아요? 보자 보자 하니까 당신 그놈들이랑 뭐 꾸미고 있는 거 아냐? 혹시 그날 그놈이 그런 것도 당신이 시킨 거 아니야?”

“허허허. 말이 심하십니다. 진정하세요. 제가 뭐 때문에 그러겠습니까?”

온갖 인신공격에도 허허거리며 유들유들 받아넘기던 김 소장도 마침내 세 시간이 넘어가면서 더는 참기 어려워졌다.

“여러분. 이제 그만 합시다. 제가 이제 이곳의 유일한 책임자로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당장은 저 사람들 못 내보냅니다. 그리고 지하로 가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뭐 어쩌고 어째요? 누구 마음대로 당신이 책임자야? 겨우 장군 계급가지고 감히 뭐라고? 우리가 우습게 보여?”

흥분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다섯을 앉은 자리에서 바라보던 김 소장이 피식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저 밖의 병력을 통솔할 수 있는 것도 저고, 저 능력자들의 창구가 되는 것도 접니다. 아닙니까? 정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저들한테 가서 나가라고 하세요. 그럼 오늘 면담은 그만하겠습니다.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갈 테니까 그 차들 마시고 천천히 가세요.”

김민지와 함께 사무실을 나선 김 소장은 그길로 지하로 향했다.

“민지야. 나 골치 아파 죽겠다. 어쩌면 좋겠냐?”

“제가 뭘 아나요? 장군님 알아서 하셔야죠.”

김민지의 냉랭한 목소리에 기가 죽은 김 소장이었다.

“아직 삐진 거야? 그만 화 풀어라. 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