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1호와의 첫만남
06월로 달이 바뀐 첫날. 일행은 가족과 함께 쉘터 밖 헬기로 향했다. 김 소장의 헬기로 평택까지 갈 작정이었다.
“살다가 헬기를 다 타보네.”
“그러게요. 형님은 헬기 보는 것도 처음이죠? 면제니까? 크크크.”
“그런 넌?”
“난 있지롱. 우리 부대에 군단장님 오셨을 때 봤지롱.”
일행이 둘로부터 멀어지는 것도 모른 채, 낼모레 서른과 마흔의 두 사람은 애들도 안 할 말싸움을 계속했다.
“아이고, 내가 창피해서 사돈 볼 낯이 없네.”
“아닙니다. 유쾌하지 않습니까? 풀 죽어 있는 것 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래요. 권사님. 이 서방 덕에 웃네요. 호호호.”
김 소장이 아무리 좋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잘나신 분들과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평택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던 일행은 둘을 보면서 그나마 그 기분을 날릴 수 있었다.
거의 새거나 마찬가지인 수리온 헬기에 모두 탑승하고 김 소장과 김민지, 도만수의 환송을 받으며 이륙한 헬기는 10여 분 만에 평택에 도착했다. 직선거리로 30km밖에 안되는 곳이었다.
“뭐 뜨자마자 내리냐? 아쉽게.”
“그니깐요. 부산까지라도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네.”
마치 놀이공원 놀이기구를 처음 타본 아이들처럼 칭얼거리는 둘은 아쉬운 마음에 헬기 동체를 손으로 쓸고 있었다.
그 꼴을 본 헬기 조종사가 웃으려 다가왔다.
“하하. 너무 아쉬워 마세요. 또 탈 일이 있을 겁니다.”
“예? 왜요?”
“저도 여기 있을 거든요. 한 번씩 정찰비행도 해야 하고 전단도 뿌려야 하니까 그때 태워 드릴게요.”
“와! 진짜요?”
둘은 좋다고 키득거렸고, 일행은 다시한번 고개를 저으며 둘에게서 떨여져 갔다.
이 대위가 그들이 타고갈 장갑차와 함께 온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였다.
“어서 오세요. 제가 미리 나와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오래간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잘 지냈습니다. 현주씨. 진성 씨랑 좋은 소식 있다고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하하하.”
인사를 마친 이 대위는 조종사에게 다가갔다.
“박 준위님도 여기서 지내신다고요?”
“장군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다행입니다. 공중정찰하면 훨씬 쉽게 놈들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여기 널린 게 헬긴데 조종할 사람이 없어서 애태우고 있었습니다.”
“네. 그래서 여기 있다가 일 있으면 왔다 갔다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짠돌이 장군님이 웬일이래요? 나중에 뭘 얼마나 뜯어내려고? 준위님 숙소도 마련해 놨습니다. 가시죠.”
* * *
일행에게 배정된 부대 내 미군 가족 아파트는 한 채에 50평 전후의 꽤 큰 집이었다. 집을 둘러보던 일행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와. 가구에 가전제품까지 다 있어요. 형님. 이거 봐요. 냉장고도 큰 거야.”
“거기다 넣을 것도 없는데 크면 뭐하냐?”
“이 대위님. 여기 원래 이런 거예요?”
“기본 제공도 있고, 여기 살던 사람들이 본국으로 가면서 놓고 간 것들도 있죠.”
“전부 몇 세대예요? 동탄에서 온 사람들이 다 살 만큼 충분해요?”
“150세대 정도 됩니다. 동탄에서 민간인들이 500여 명 왔는데 거의 맞게 살고 있죠. 병사들은 사병 숙소에서 지내고요. 영외에도 빈집이 많은데 거긴 아무래도 아직은 위험하니까… 또 거기서 지내면 변이해도 관리도 안 되고요.”
“요즘도 변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점점 줄더니 마지막이 한 2주 정도 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직 없고요. 여기 ITL 박사님들도 이제 인간 변이는 끝난 거 같다고 하시더군요.”
ITL 얘기가 나오자 이진성이 이 대위를 조용히 불렀다.
“대위님. 그분들 좀 만났으면 하는데요. 물어볼게 있어요.”
“무슨 일로……?”
“혹시 얘기 들으셨나 모르겠는데, 제가 용인에서 정신을 잃은 적이 있어요.”
“그 얘기라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오신 거고요.”
“네… 그래서 혹시 그분들이 거기에 대해 뭔가 아시는 게 있나 싶어서요.”
잠시 생각하던 이 대위가 거실의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하고선 몇 마디 했다.
“내일 오전에 여러분께 상황설명 할 계획이었는데, 그 자리에 ITL 소장님도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때 뵙고 말씀 나누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긴 전화도 돼요?”
“영내 전화는 됩니다. 주요 전화번호는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쉬시고 내일 10시에 차량을 보내드릴 테니 그편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이 대위를 보내고 일행은 지낼 집을 골랐다. 전부 일곱 채가 배정되었는데 너무 많았다.
결국 이진성과 나현주가 한 채, 부모님들이 한 채, 그리고 관장과 장동건, 장혜진이 한 채를 쓰기로 했다.
가져온 짐도 없었기에 간단하게 정리를 한 후, 이진성 나현주의 집으로 일행이 모였다. 거기에는 아들과 함께 온 김현희와 이택진도 있었다.
“언니. 잘됐다. 얘가 아들? 고생했다. 얘.”
“기집애. 넌 이제 완전히 살림 차린 거라며?”
“호호호. 그게 그렇게 됐네.”
“너 이리 좀 와봐.”
“병원에서 ITL 박사님들이 환자도 본다니까, 엄니 아픈 데 있으면 병원 가셔.”
“언니랑 나랑 저쪽에 있다는 쇼핑몰 가 볼 건데 같이 갈 사람?”
“여기 너무 넓어서 걸어 다니기는 힘들 것 같소. 차량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일행은 약간은 들떠 있었다. 사태가 터지고 두 달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마음고생 몸고생한 것이 끝난 것 같았다. 이제 정착했다는 생각에 마음도 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소소한 일상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모두는 쉘터에 들어갔을 때 보다 훨씬 편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로 오래간만에 맛있는 음식도 했다. 약간의 술도 함께한 느긋하고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 그리고 편안한 밤을 보내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 * *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렇습니다. 기지 내부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좀비는 저희 병력으로 상황 발생 시 대비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기지 밖 농경지 방어 철책 공사에서 여러분이 경비를 지원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그 1호라는 좀비는 어떻게 해요?”
“말씀드렸듯이 기지 내에서는 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 목격이 1주 전이었는데 여러분께 농경지 경비를 요청한 것이 그놈 때문입니다. 놈이 나타날 때 군집으로 갑자기 나타나는데 아무래도 여러분들은 놈들을 탐지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 후 몇 가지 더 문답이 오가고 당분간 할 일의 배정과 필요한 물품의 요청 등이 끝난 후 ITL의 박인화 소장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인화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특이한 신체 능력을 가진 분들이 시라고요?”
“특이할 것까지는 아닙니다. 저기 계신 이 대위님도 저희 같은 사람 중 하나인데, 모르셨나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변이체, 아니 좀비라고 하는 게 편하시겠군요. 좀비를 감지하시고 신체능력도 훨씬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조금씩 다른 특성들이 있긴 합니다. 그보다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혹시 어디 조용한 곳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그 폭주상태 말씀이시죠? 저랑 같이 병원으로 가세요. 몇 가지 검사를 준비해 놨어요.”
새로운 연구과제를 발견한 소장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진성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이진성은 변이체와 1호에 대해, 소장은 이진성의 진화과정에 대해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확인하며 도착한 병원에는 많은 연구원이 입구까지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소장님. 저 겁나는데요. 막 해부하고 그런 거 아니죠?”
“호호호. 별말씀을요. 그냥 간단한 검사 몇 가지만 할 겁니다. 자, 어서 안으로.”
그렇게 시작된 간단한 검사 몇 가지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병원 검사 외에 ITL의 장비 중 쓸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유전자검사도 겨우겨우 해낸 그들은 처음 보는 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진성 씨. 아직 결과가 안 나온 것들도 있기는 한데, 지금까지 나온 것들로 봐서 특이점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것이야 이미 느끼고 계신 거니까 데이터 측면에서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고… 유전자 변형의 문제인데요. 변형 전의 유전자를 저희가 확보하지 못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유전자와 비교 유추했을 때 진성 씨의 유전자는 거의 90% 이상 변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중 상당수는 기존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던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더는 인간이 아니란 말씀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신인류라고 해도 될 그런 정도랄까요? 진성 씨 일행분들도 비교확인 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그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그 이후 소장은 여러 가지 설명을 했지만, 대부분은 알아듣기 힘든 내용이었다. 그런 소장의 말을 이진성이 끊었다.
“저. 제가 가장 궁금한 건 앞으로 또 미칠 것인지 아닌지 입니다.”
“음…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그 원인도 모릅니다.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단지 생체적인 신호들은 아주 안정적입니다. 따라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때도 나현주씨의 총상과 기절을 보고 그랬다면서요? 심리적인 충격이 트리거가 된 것 같은데, 그건 앞으로 또 그럴지 아닐지 모르겠어요.”
“하, 알겠습니다. 그럼 당장 알아낸 것은 제가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됐다는 것 하나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래도 앞으로 더 많은 실험이 계획되어 있으니까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또 알아야 할 게 있나요? 주의사항이라거나?”
“음… 이건 참고삼아 말씀 드리는 건데요. 1호가 검은 눈이 되고 나서 그의 흔적에서 추출한 세포로 확인한 결과, 1호의 유전자는 95% 변형된 상태였습니다. 어쩌면 진성 씨가 좀비가 된다면 1호와 같은 상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물리지 않아야겠군요. 알겠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다른 사항 나오면 알려 주세요.”
대화를 마치고 이진성이 환자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는데 병실의 전화가 울렸다. 이진성이 든 수화기에서는 이 대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호가 기지 외곽에 나타났습니다. 약 100마리 정도의 좀비와 함께 입니다. 다른 분들도 숙소에서 출발하셨습니다. 험비를 하나 보냈으니까 그거 타고 오시면 됩니다.”
“저 무기 없는데요?”
“병사 편에 보냈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병원 정문으로 달려나갔다. 그곳에는 기다리고 있는 험비에 탑승하자 뒷자리의 병사가 이진성의 도끼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어? 인식 씨? 와, 반갑네?”
“지도 있심더.”
“대성 씨도? 하하 오랜만이야. 여기는 어때?”
“좋심더. 동탄보다 훨씬 널널합니더.”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안 험비는 금방 기지를 벗어나 팬스공사가 한참인 농경지의 끝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이미 관장과 나현주 장동건 김현희가 나와 있었다.
“12시 방향으로 한 덩어리, 02시 방향으로 한 덩어리 있습니다.”
망원경을 건네주는 이 대위의 말대로 놈들은 두 군집으로 나뉘어 건물들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냄새로 보아 한쪽에 50~ 60마리. 거리는 아직 100m 정도였다.
“저기에 저렇게 서 있는 건가요?”
“저쪽 건물들 사이로 유인하려고 저러고 있는 겁니다. 저놈들이 이쪽으로 나오면 총 맞는걸 알고 있어요.”
“1호라는 놈은 어디에 있나요?”
“두 군집 가운데 보이는 하얀 5층 건물 옥상입니다.”
이진성은 망원경을 옮겼다. 과연 그곳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놈이 옥상의 난간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놈은 동탄의 그 여자 좀비와 마찬가지로 검은 눈에 은근한 광택이 도는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더 흉포한 인상이라는 것이었다.
“저놈은 그년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은데?”
“형님이 맡으세요. 그때보다 훨씬 세졌잖아요.”
“동건아. 그냥 니가 쏘고 끝내자.”
“안 해봤겠어요? 총이 들리는 순간 숨어 버려요. 벌써 탄창 하나 다 썼는데 못 맞췄어요. 피할 수 없는 곳으로 몰아 주세요. 그럼 잡을게요.”
“대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 가 보죠?”
도끼를 돌리며 앞으로 나가는 이진성을 따라 김현희까지 합류한 완전체가 놈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