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동건아. 나랑 같이 저놈한테 가자. 관장님은 왼쪽, 현주씨랑 누님은 오른쪽 맡아줘요.”
“아저씨 혼자요? 안돼요.”
이진성 혼자라는 나현주의 말에 장동건이 퉁퉁거렸다.
“왜 형님 혼자야? 나도 있는데?”
“그래도! 동탄에서 그년도 넷이서 겨우겨우 해결했는데.”
“기회만 있으면 쏠 테니까 걱정 마셔.”
“그래도…”
일행은 순식간에 논을 건너 마을 입구에 도달했다. 오래된 농가와 새로 지은 건물들이 작은 텃밭을 사이에 우후죽순 섞여 있는 마을은 일단 시야가 너무 안 좋았다.
끼아우~
1호의 하울링에 반응하는 것인지, 좀비 무리는 둘에서 다시 넷으로 나뉘어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여기 것들은 동탄 것들보다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요?”
“지능이 있는가 착각할 정도요.”
“지능은 아니라고 연구소장님이 그랬어요. 단지 저 1호가 무리를 너무 잘 통솔하는…….”
“사자 사냥하는 것 보다 훨 낫네. 형님. 1호라는 놈 어디로 갔는지 알겠어요?”
“몰라. 그놈은 냄새가 안 나. 관장님. 혹시 저놈 기 같은 거 있었어요?”
“느끼지 못했소. 빨간눈부터 변했다고 했으니 아마 없을 것 같소.”
“난감하네. 일단 흩어지죠. 아까 말한 데로.”
좌우로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이진성은 장동건을 잡아끌었다.
“아까 그놈이 있던 옥상으로 가 보자. 위에서 보면 뭐가 보일지도 몰라.”
“제가 앞에 설게요. 혹시 계단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근데 저놈 총 맞고 죽겠지?”
“처음에 탈출할 때 몇 방 맞고 안죽기는 했다던데, 안 죽으면 형님이 나 살려 줘야지 뭐.”
조심스럽게 올라간 계단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놈은 없었다. 옥상에서 본 마을은 전형적인 농가 마을이었다.
오른쪽 저 멀리로는 숲과 아산호의 물이 보였고 왼쪽으로도 몇십 호의 집을 지나 다시 논밭이 보였다.
나현주와 김현희, 관장은 몇몇씩 덤벼드는 놈들을 이미 잡고 있었는데, 놈들은 한 번에 떼로 덤비지 않는 것이 마치 이쪽의 전력을 측정하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
다시 놈의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난 방향으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놈은 전방 약 300m의 창고 지붕 위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장동건은 놈을 발견하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하지만 장동건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놈이 창고 뒤로 뛰어내리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놈의 움직임은 단순히 뛰어내린다기 보다 몸을 아래로 쏘는 것 같았다.
“하 씨발. 졸라 빠르네.”
“저놈은 왔다 갔다 하면서 너도 보고 있었나 보다. 안 되겠다. 저리로 가자.”
건물에서 나와 아까의 그 창고까지 직선으로 뚫린 길은 없었다. 골목을 지나 집을 돌고 텃밭을 건너가야 했다. 그리고 골목을 꺾을 때마다, 집을 지날 때 마다 튀어나오는 놈들을 잡으면서 진행하느라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아 씨 또 있네. 저 담장 옆으로 둘, 저 집 지붕 반대편에 셋. 저 뒤로 다시 다섯. 뒤에 놈들은 저쪽에서 돌아온 놈들인가 보다.”
매번 이진성이 알려주는 데로 장동건이 빠르게 잡아갔지만 놈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러게요? 좌우로 갔던 놈들이 다 이리로 온 거예요?
“아 몰라. 여기저기 두엄 냄새에 농작물 썩는 냄새에 시체 썩는 냄새에 멀리 있는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
“탐지기 또 성능 하락이네, 씨불.”
둘은 골목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 하고 쏟아져 내리는 놈들을 잡아야 했다.
장동건의 원샷원킬도 소용이 없을 만큼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꾸불꾸불하고 다섯 갈래로 갈라진 골목의 한 가운데서 골목의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오는 놈들과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놈들을 잡는데 순식간에 50이 넘는 놈들의 시체가 주위에 쌓여갔다.
“총알 얼마나 남았냐?”
“100발 남짓?”
“총알 아껴. 이제 내가 할게.”
1호를 만났을 때 총알이 얼마나 필요할지 몰라 일단은 아끼라고 했고 장동건도 바로 알아들었다.
장동건은 혹시 1호가 나오지 않을까 경계하며 지붕에서 뛰어 내리는 놈들과 이진성의 등 쪽에서 오는 놈들만 잡았다.
나머지는 전부 이진성이 바쁘게 움직이며 차곡차곡 잡아 나갔다.
결국 둘이서 그때부터 100 정도의 놈들을 잡고 나서야 둘에게의 공격이 끊겼다.
“관장님하고 누나 쪽은 어떻게 됐는지 알겠어요?”
“모르겠어. 그쪽으로 이런저런 냄새가 막 섞여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관장님 쪽은 200m 이상 떨어졌고 현주씨 쪽은 300m 이상 떨어졌어.”
“이것들이 우리를 분산시키려고 했던 거 아닌가?”
“그럴지도… 동건아. 일단 1호는 안보이니까 니가 관장님 쪽으로 가봐. 내가 현주씨 쪽으로 가 볼게.”
“관장님 쪽 방향이 어떻게 되는데요?”
이진성이 왼쪽으로 좀비들의 냄새가 뭉쳐 있는 곳의 방향을 가리키고는 둘이 막 갈라지려는 참이었다.
타타타탕~
두두두두~
“어라? 저건 기지에서 나는 총성 같은데...”
“우리 여기 묶어 놓고 기지 공격하는 거야?”
“어쩌죠? 저기로 가야 하나?”
“가자. 관장님하고 현주씨랑 현희 누나는 걱정 안 해도 되잖아.”
* * *
관장은 이진성의 생각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관장이 간 방향으로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더군다나 골목이 좁기까지 했다.
놈들은 몇 마리씩 골목에서 달려들면서 관장의 동선을 길게 만들었다. 앞뒤와 지붕 위까지 신경 쓰면서 계속 골목을 쫓아 다니느라 시간은 시간대로, 힘은 힘대로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한군데 가만 서서 기다리면 몇 마리 덤비고는 거리를 두고 덤비지도 않았다.
“이것들이 들개떼도 아니고……. 헉헉…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네.”
그런 놈들을 쫓으며 수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었다. 골목과 골목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방향도 잊고 그저 놈들이 보이는 대로 쫓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놈들을 쫓던 관장이 골목 하나를 돌아 나서자 골목이 끝나고 널찍한 밭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50은 넘어 보이는 놈들 관장이 나오자마자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골목을 헤집고 다니면서 50이상을 베었는데도 또 그만큼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달려드는 놈들에게 바싹 신경 쓰느라 이미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놈들은 그런 관장을 순식간에 포위하면서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들었다. 자기들끼리 부딪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한꺼번에 달려드는 놈들을 최대의 스피드로 베어내야 했다.
검을 움직일 공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숨이 턱밑에까지 차올라 호흡이 불안정해지면서 검로도 점차로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겨우 100여 마리일 뿐인데…’
동탄의 대로같이 트인 장소였다면 이렇게 지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힘을 내 보지만 일격에 잘리던 놈들의 몸이 두 번에 겨우 잘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겨우겨우 물리는 것은 피하고 있었지만, 놈들에게 할퀸 상처는 점점 늘어나고 출혈의 양도 점점 많아졌다.
‘여기서 끝날 수도 있겠군.’
아쉬운 생각과 함께 이진성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서 싸워왔던 시간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갔다.
안산에서 사시미를 상대했던 일이 생각나고 동탄에서 검은눈과 싸웠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진성의 폭주와 지하대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등골을 관통하는 듯한 찌릿함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섞이는 듯하더니 몸이 관장의 의지를 벗어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자신의 몸을 느끼고 보고 있는데 자신의 의지와 다른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뭐지? 왜 이러지?’
거의 코앞으로 이빨이 보였다. 베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사선으로 갈라져 나가는 놈의 대가리가 보였다.
왼팔을 물려고 주둥이를 들이미는 놈이 느껴졌다. 몸을 돌리면서 놈의 목을 잘라내는 생각을 하자 놈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게 보였다.
‘환상인가?’
몇 번 더 환상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관장은 서서히 감각을 되찾았다. 환상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눈앞에 남은 놈들은 서른 정도. 이렇게만 계속할 수 있다면 모두 잡고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른쪽에 달려드는 셋을 느끼고 검과 몸을 날렸다. 셋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손톱에 뜯기는 것은 무시하고 놈들의 주둥이에서만 멀어졌다. 그리고 베어야 된다는 생각과 함께 세 놈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흩어졌다.
‘좋아. 이거야!’
아드레날린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극도의 쾌감과 함께 정신은 다시 맑아지고 온몸에 힘이 넘쳐 흘렀다.
세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빈 공간에 좀비들만 보일 뿐이었다.
몸이 갈라지고 내장을 쏟아 내고 대가리가 날아가는 좀비들이 보였다.
앞과 양옆 뿐만 아니라 뒤의 놈도 산산이 조각나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놈들의 수를 줄여나가고 결국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여덟이 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눈앞이 깜깜해지며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로는 천둥 같은 총소리가 들려왔다.
* * *
사령부의 알렉스 중위는 1호의 습격이라는 소식과 새로 들어온 한국인 진화자들이 그들을 상대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수차례 1호의 습격에서 부하들을 모두 잃고 씬디 상사와 정진 하사 둘 만남아 이를 갈고 있던 알렉스는 가만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기를 챙겨 나선 알렉스 일행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재규 대위는 이미 놈들을 쫓아 진화자들이 저 앞의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갔습니까?”
혹시라도 1호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물어본 말에 이 대위는 세 방향을 짚어 줬고, 그 중 왼쪽으로 알렉스 일행은 움직였다.
그들은 마을로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아 골목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볼 수 있었다. 검에 의해 깨끗하게 잘린 시체들이었다.
“진화자 중에 검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네. 있습니다. 장년의 남자라고 들었습니다.”
“후~. 잘린 단면을 봐. 뼈와 살이 이렇게 매끈하게 잘리다니 엄청난 실력자인가 보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모든 곳의 여기저기에 검에 잘린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발자국 추적해봐. 검술을 직접 보고 싶군.”
정진 하시가 관장의 발자국을 찾아 따라나섰다. 워낙에 피가 많아 군데군데 피 웅덩이에서 발자국을 놓쳤지만 그래도 용케 다음을 찾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셋은 관장이 지나갔던 골목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서 공터로 나오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거기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한순간에 전후좌우를 돌면서 사방에서 공격하는 좀비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검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좀비들과 그 가운데서 흐린 잔영을 남기고 움직이는 시뻘건 남자의 모습뿐이었다.
좀비들이 덤비지 않으면 남자가 몸을 날려 놈들을 학살했다.
너무도 빨라 좀비들이 가만있는데 남자가 지나가면 몸이 산산이 조각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골목에서 나오고 나서 단지 숨을 몇 번 쉬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남자는 약 스물의 좀비를 박살 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무엇에게 맞은 듯 사지를 쭉 펴더니 앞으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남은 좀비는 여덟. 셋은 사격을 해야 했다.
쓰러지는 남자를 피해 총알을 퍼부어 남자에게 달려드는 좀비 여덟의 대가리를 터트리고 셋은 남자에게 달려갔다.
남자는 좀비들의 피와 살덩이들 위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었지만 숨은 안정적이었다. 온몸의 상처를 확인했다. 다행히 전부 손톱자국이었을 뿐 이빨 자국은 없었다.
“진. 업어.”
정진 하사가 관장을 업고 기지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는데 갑자기 기지 쪽에서 총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1호 놈이 또 양동작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