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4번 게이트 앞에는 겨우 열두 명의 병력이 길 건너 50m 정도 떨어진 상업지역에서 들락날락하는 좀비들에게 사격하고 있었다.
급하게 그곳으로 온 이 대위는 1호가 거기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들었다. 하지만 이 대위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병력을 상업지역으로 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여유 병력이 없었다.
겨우 100명 남짓의 병력으로 지키기에는 기지가 너무 컸다. 작은 소도시 하나 정도 크기의 기지는 게이트와 경계 포스트에 인원을 배분하기에도 벅찼다.
전에도 몇 번 한쪽에 나타난 1호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에서 공격하는 좀비들에게 게이트 하나가 뚫릴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이렇게 놈들이 건물 사이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면 대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저쪽 빨리 정리하고 이쪽으로 와 줬으면 좋겠는데.”
이진성 일행이 들어간 농가 쪽을 바라보며 이 대위는 답답한 마음을 누를 뿐이었다. 김인식 병장과 박대성 상병을 놔두고 왔으니, 그들이 온다면 차량으로 올 수 있었다.
어쩌다 한두 마리씩 잡으면서 총알만 소모하고 있기를 몇 분, 드디어 기다리던 험비가 오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험비로 달려간 이 대위는 차에서 이진성과 장동건만 내리는 것을 보고는 겁이 덜컥 났다.
“다른 분들은 왜? 혹시 잘못되시기라도?”
“아니요. 흩어져서 싸워서 모르긴 하지만 그깟 놈들한테 당할 사람들은 아니에요. 총소리가 들려서 나왔더니 김 병장이 이쪽에 1호가 나타났다고 해서 저희만 먼저 왔어요.”
장동건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쉰 이 대위에게 이진성이 물었다.
“1호는 어디 있습니까?”
“저 상업지구 안쪽에서 목격됐다고 합니다. 그쪽에 수량 불명의 좀비들도 있고요. 저희는 저 안으로 들어갈 인원이 없어 이러고 있습니다. 몇 마리인지 감지가 되나요?”
“흩어져서 서른 남짓이네요.”
“1호는 어디에?”
“1호는 감지가 되지 않습니다.”
말과 함께 이진성과 장동건은 건물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 대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없다는 말이야? 아니면 감지를 못한다는 말이야?”
* * *
관장을 병원으로 데려간 알렉스 일행은 단순 기절 상태라는 말을 듣고서 4번 게이트로 향했다.
“싸우다 기절 하는 건 너무 위험한데 어떻게 여태 살았지?”
“그러게요. 우리가 거기 없었으면 그냥 물리는 거잖아요.”
알렉스와 정진은 관장이 이해가 안 갔다. 괴물 같은 움직임도 그렇지만, 싸우다 갑자기 기절하는 것이 과거에도 있었다면 벌써 죽었어야 했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운전하며 듣던 씬디가 끼어들었다.
“어쩌면 오늘 처음 아니었을까요?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면 살아있는 게 말이 되잖아요.”
“그러면 말이 되긴 하는데, 그럼 왜 오늘은 무슨 일로?”
“그건… 깨어나면 알겠죠?”
“하나 마나 한 말이군.”
이런저런 추측을 하던 그들은 금방 4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곳의 한국군은 이미 사격을 중지하고 그저 앞의 상업 단지 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상업지구에서는 가끔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이재규 대위에게 다가가 알렉스가 물었다.
“안으로 병력이 들어갔습니까?”
“아. 오셨군요. 아닙니다. 이번에 온 능력자 두 명이 들어갔습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도끼 쓰는 사람하고 총 쓰는 사람이요.”
“단둘이요?”
“그 둘이면 충분할 겁니다. 1호만 아니라면요.”
“저희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겠습니까?”
“듣기로 지금 들어가 있는 두 능력자가 이번에 온 사람 중에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면서요. 저희가 도움이 될 겁니다.”
“뭐 꼭 그렇지는 않지만, 도움이 되기는 하겠죠.”
“그리고 1호는 꼭 저희 손으로 끝을 보고 싶습니다.”
동료를 모두 잃으며 맺힌 것이 많은 세 사람이었다. 이번에야말로 1호를 잡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세 사람은 총성이 들리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진성이 장동건과 함께 흩어져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열셋을 잡고서 잠시 멈췄다.
“동건아. 놈들이 저 50m 앞 건물 주위로 모인다.”
이진성이 가리키는 곳은 단층의 널찍한 식당이었다. 간판에는 한우갈비라고 적혀있었다.
그 뒤로는 4, 5층 정도의 사무실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쪽으로 놈들이 도망간다면 잡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특히 냄새도 안 나는 1호가 숨는다면 찾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한 번에 공격할 건가 보죠?”
“그런가 본데… 1호 놈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네.”
“일단 가 보죠. 같이 있으면 한 번에 끝내고 없으면 철수하죠 뭐.”
둘이 갈빗집으로 달려가는 동안 주위의 놈들은 모두 그 갈빗집의 뒤로 모여들었다. 도로를 따라가서 갈빗집을 끼고돌면 바로 놈들이 보일 것 같았다.
“저 뒤에 공터라도 있나 본데… 동건아 시야에 들어오면 바로 다 쏴버리는 거 알지?”
“당연하죠. 맡겨만 놓으세요.”
몇 초 만에 갈빗집에 도달한 두 사람이 놈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건물을 끼고 돌았다. 그곳은 갈빗집의 주차장이었고 놈들은 이진성과 장동건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동시에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두 사람을 향해서가 아니라 5층 건물들 쪽이었다.
“저것들이…”
타타타타타타타~
장동건의 연발 같은 단발이 터졌다. 순식간에 여덟의 대가리가 터지면서 엎어졌지만,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이미 들어가 버렸다.
“도망갈 거면 왜 모여 있던 거야?”
장동건이 놈들을 쫓아 건물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동건아. 기다려. 너무 쫓아가지 마. 느낌이 안 좋아.”
“저기 입구까지만요. 몇 마리만 더 잡고 가요.”
앞으로 나가는 장동건의 눈에 건물들 사이의 골목 안쪽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고 도망가는 좀비도 몇 마리 보였다.
타 타 탕
보이는 몇 놈을 잡으며 조금을 더 달리자 어느새 건물과 건물 사이로 진입하고 있었다. 폭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타 타 타 탕~
다시 네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더 보이는 놈들이 없어 달리기를 멈추고 뒤에 있을 이진성을 돌아봤다. 놈들의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물어볼 참이었다.
그런데 눈이 커지면서 손가락을 드는 이진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이진성의 모습이 보였다.
“동건아. 위!”
반사적으로 총구를 위로 올리는 장동건의 시야를 뭔가 시커먼 것이 가렸다. 건물에서 아래로 몸을 쏘는 1호였다.
장동건에게는 몸을 뺄만한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그대로 뒤로 옆으로 자빠지면서 몸을 틀어 떨어지는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총구가 채 놈에게 향하기도 전부터 쏜 것이지만 다행히 마지막 한 발이 놈의 팔에 맞았다. 분명히 놈의 팔에서 피가 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피의 양은 보통 사람이나 좀비가 총에 맞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적었다.
놈은 총을 맞는 것과 동시에 몸을 틀면서 장동건의 총을 잡아채서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장동건을 찍으려 했던 놈의 무릎은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쓰러진 그의 왼쪽 옆구리를 찍고 말았다.
장동건은 옆구리에서 오는 통증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살았다. 그런데 그 이후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절망적이었다.
바로 앞에서 보는 놈의 새카만 눈은 멀리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섬뜩함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놈의 손이 들리고 뾰족한 손톱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씨발. 좆됐다.’
손톱이 자신의 눈으로 내려오는 것이 슬로비디오로 보였다. 손톱을 보느라 옆구리의 고통은 잊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결국 눈을 감았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장동건이었다.
그런데 귀로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는 놈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도끼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는 이진성의 등과 그 너머 뒷걸음질 치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죽어. 이 새끼야.”
가까스로 놈의 손톱을 쳐낸 이진성은 뒤로 몸을 빼는 놈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손톱을 칠 때 나는 쇳소리로 이놈도 동탄의 그 년과 같이 방어력이 엄청 나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지속적인 데미지를 줘서 방어력을 떨어트리거나, 미처 놈이 인지하지 못하는 부위를 공격해야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스피드로 몰아치는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서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아직은 놈이 반격의 기회를 못 잡고 물러서면서 수비 일색이었다.
폭 3m 정도, 길이 30m 정도의 골목 한가운데서 둘이 붙고 있었다. 좌우로는 막힌 곳이기에 정면만 잘 막으면 되는 곳이다.
다른 좀비들은 주위 건물 사이에 흩어져서 뒤로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퇴로를 차단하려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눈앞의 1호를 잡아야 할 상황이었다.
‘혹시 여기서 다시 한번 미쳐버리면 놈을 잡을 수 있을까?’
‘아니다.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겨도 그다음이 문제다. 잡생각 말자. 여기서 잘못하면 둘 다 죽는다.’
‘대련하던 대로만 하자. 그래도 안 된다면… 동건이라도 살아야 할 텐데.’
마음속으로 나현주와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미리 한 이진성은 용인에서의 대련을 떠올리며 그대로 놈을 공격해 들어갔다.
이진성의 도끼는 팽이처럼 돌아가며 놈에게 사방팔방으로 날아들었다.
놈은 일부는 막고 일부는 그냥 몸으로 맞아버렸다. 물론 몸으로 맞을 때는 자유로운 두 손으로 이진성에게 공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진성도 놈의 공격이 들어오면 때로는 도끼로, 때로는 팔다리로 막아 내면서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도끼로 방어할 때는 놈에게 킥을 날렸고, 팔다리로 막을 때는 도끼 또는 킥을 빠짐없이 날려줬다.
‘이렇게 했던가?’
몸을 팽이처럼 돌리면서 도끼와 팔꿈치 무릎의 연환공격을 시도했다. 공중 720도 회전을 하며 도끼와 두 발의 킥을 쏟아 넣기도 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 졌을 때는 거의 동시에 팔방으로 도끼를 찍어 넣기도 했다.
이진성 자신은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지만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뒤에서 보는 장동건의 눈에는 이진성의 움직임이 용인에서의 대련보다 더 현란하면서도 파괴적이었다.
카가가가가캉~
마치 기계로 쇠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던 한순간 놈이 괴성을 지르며 뒤로 급격히 물러났고 이진성은 놓치지 않고 놈을 몰아쳤다. 이진성이 총에 맞은 놈의 팔을 집중공격하면서 드디어 놈의 팔에서 피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금만 더!’
이진성은 더욱 속도를 냈다. 어느 정도 속도의 공격에서 놈의 방어력이 충분히 작용하지 못하는지 파악했다. 그 속도의 공격을 유지하려면 온몸의 근육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우위를 잡은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빠각~
놈의 왼쪽 갈비 몇대가 부러지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총에 맞은 왼팔의 움직임은 현저하게 느려져 있었다. 놈의 왼쪽을 좀 더 집중공격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끼에 힘들 더 넣었다. 엄청난 스피드로 목을 찍어가던 도끼를 중간에 팔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무시하고 경로를 꺾었다. 그렇게 꺾은 도끼가 다행히 놈의 어깨를 찍으면서 지금까지 살을 때릴 때와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파악~
쇳소리가 아니었다. 분명히 고기를 치는 소리였다. 비록 큰 상처를 주진 못했지만, 놈은 왼팔을 쓰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자신감이 붙은 이진성이 조금 더 밀어붙이려고 놈에게 접근하는데 놈이 한쪽 팔로 방어하며 물러나면서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질렀다.
크어어엉~
뒤쪽으로 몰려 있던 놈들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놈을 몰아붙이면 어쩌면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 장동건은 100% 놈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진성은 결정해야 했다.
계속 놈을 밀어붙일 것인지, 장동건을 구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