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알렉스 일행은 총성이 나는 곳으로 달렸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도 총성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흩어져 있는 놈들을 찾아다니나 본데요?”
“그런데 이동 속도가 너무 빠르른거 아냐?”
그들은 이진성이 냄새로 놈들의 위치를 안다는 것을 당연히 몰랐다. 자신들은 좀비를 찾아 조심스럽게 다니는데, 저들의 총성 위치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마냥 신기해 하며 총성을 따라 방향을 바꾸기를 몇번이었다. 그렇게 달리는 중에 위치가 바뀌며 그들을 인도하던 총성이 갑자기 멎었다.
방향을 못 잡아 머뭇거리는 그들의 귀에 다시 총성이 들린 것은 잠시 후였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와 달리 뭔가 다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이어 사람의 비명과 함께 터져 나오는 쇠를 두드리는 소리. 그들로서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쇳소리는 뭐지?”
어쨌거나 총성이 난 곳에서 이어져 나는 소리였기에 가던 곳으로 계속 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 사람은 또다시 눈을 의심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
도끼를 든 남자가 무자비하게 1호를 때리고 있었다. 아까 들었던 쇳소리는 맞는 1호의 몸에서 나고 있었다.
하지만 셋은 좀비의 몸에서 쇳소리가 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눈앞의 남자도 아까 봤던 검객처럼, 아니 그보다 더 현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도대체, 사람이야 뭐야?”
“아까 그 사람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저희도 진화 한 번씩 했지만, 저들은 뭔가 다른 존재들 같아요.”
처음 1호를 만나고 몇 번의 싸움 끝에 그들도 한 번씩의 진화를 겪었다. 그리고 그전보다 달라진 신체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이었다.
이번에 진화자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자신들은 진화 전에도 탁월한 육체 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이다. 자신들보다는 뒤처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두 사람은 자신들과 차원이 달랐다.
1호와 남자의 싸움은 너무 빨라서 자신들이 총으로 도와줄 수도 없었다. 그저 기회를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남자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러던 한순간이었다.
1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놈의 팔에서 피가 튀면서 순식간에 흉곽, 그리고 어깨에 부상을 입는 것 같았다.
총에도 쉽게 부상을 입지 않는 놈을 어떻게 부상을 입혔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남자의 몸이 번쩍하는 것 같더니 철판이 기관총에 맞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1호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셋은 조바심과 함께 속으로 응원했다. 그 기세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1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들이 보고 있는 앞 골목에서 좀비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좀비들은 남자의 뒤쪽으로 몰려들었고, 일부는 자신들에게 달려들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투투투투투투~
드르르르르~
타타탕 타타탕~
일단은 눈앞의 좀비들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 * *
이진성은 막 뒤로 몸을 빼려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소리로 봐서 한 자루의 총이 아니었고 지금까지 듣던 K2의 소리도 아니었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은 뒤쪽으로 오던 좀비들이 총성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원이 왔다고 생각하고 장동건을 구하기보다는 눈앞의 1호를 끝장내기로 마음먹었다.
“거기 쓰러진 사람 부탁해요.”
뒤는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만 질렀다. 그리고 1호에게 다시 공격해 들어갔다.
놈은 왼쪽 팔을 못 쓰고 갈비가 부러졌음에도 무섭게 공격해왔다.
동탄의 그 년도 협공에 먼저 상처를 입고도 이진성과 관장, 김현희에게 상처를 입혔었다. 그걸 생각한 이진성은 아직은 방심할 수 없었다.
놈을 잡으려면 오른팔도 못 쓰게 하거나, 다리 하나라도 못 쓰게 만들어야 했다.
놈의 피부의 타격지점은 여전히 은빛 광채가 흐르면서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 상처를 만들려면 아까 어깨를 찍을 때처럼 놈을 속여야 했다. 다시 한번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근육의 고통을 참으며 540도 회전을 하며 여덟 번의 도끼 공격과 네 번의 킥을 쏟아 넣었다. 목과 오른쪽 어깨, 그리고 오른 다리의 허벅지와 무릎에 연타를 때려 넣은 것이었다.
마지막 무릎을 찰 때 고무 덩이를 차는 듯한 느낌을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놈의 중심이 흐트러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착지하는 이진성도 자세가 좋지 못했다. 착지하는 발이 미끄러지면서 한쪽 팔로 땅을 짚어야 했고, 그 때문에 생긴 잠깐의 공백은 놈에게 기회를 주기에 충분했다.
파악~
놈의 발이 이진성의 배에 꽂혔다. 숨이 멎는 듯한 통증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세는 수세로 전환되었다.
놈의 오른손의 손톱은 다섯 개의 비수 같았다. 그 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찔러오면서 기회만 있으면 발을 날리고 이빨을 들이미는 놈이었다. 놈의 이빨은 마치 육식동물의 이빨과 같이 변해 있는 것이 이진성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왼팔이라도 못쓰게 안 만들었으면 내가 당했겠네…’
정신없이 피하면서 드는 생각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실제로 왼팔을 못 쓰는 놈은 그 덕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80% 정도의 공격력 밖에 못 내고 있었다.
이진성은 놈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뒤로 조금씩 물러나며 기회를 노렸다. 뒤의 총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있었고 아직 움직이는 좀비들의 냄새도 느껴졌다.
‘생각해라. 생각.’
더 이상 뒤로 가면 장동건과 가까워진다. 그 자리에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그런 이진성의 눈에 바로 옆 건물의 대형 유리문이 들어왔다.
뒤로 조금씩 피하던 발을 옆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도낏자루를 길게 잡고 다시 한번 팽이처럼 회전하면 놈을 쳐 나갔다.
길게 잡은 도끼의 원심력이 커지면서 마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 같았다. 터지려는 팔의 근육을 참아가며 조금씩 움직이던 이진성의 사정거리에 결국 유리문이 들어왔다.
도끼를 크게 휘두르면서 순식간에 회전시켰다. 날이 아닌 대가리로 때린 유리문은 마치 폭탄에 터진 듯 작게 조각나서 1호에게 쏘아져 갔다.
유리 파편이 놈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하지만, 한순간 눈이라도 가리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놈은 눈으로 날아오는 무수한 파편을 오른팔을 들어서 막을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은 이진성이 다시금 공격할 천금 같은 기회였다.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야.”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몸이 부숴 저라 공격을 퍼부었다. 도끼로 때리고 발로 차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놈을 두르려는지 이진성 자신은 알 수 없었다. 실제로는 채 1분이나 될까 하는 시간이었지만 이진성이 느끼기에는 몇 시간을 계속해서 놈을 때린 것 같았다.
퍼억~
결국 기다리던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팔도 다리도 아닌 놈의 배였다. 팔과 다리를 때리고 다시 방향을 꺾어 들어가는 도끼가 몸을 빼는 놈의 배를 약간 갈랐던 것이다. 그리고 놈은 배가 갈라지는 대신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한번 벌어진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놈이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 치면서 손에 닿는 물건들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결국 놈도 이진성이 했던 것과 똑같이 유리를 깨서 이진성에게 쏘아 보냈다.
쏟아져 오는 유리를 이진성은 팔로 막지 않고 도끼날로 막으면서 놈의 발을 지켜봤다. 자신이 그랬듯 놈도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놈의 공격에 대비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는 그의 눈에 뒤돌아 도망치는 1호의 발이 보였다.
“씨발놈아. 거기서!”
몸을 쏘아내는 놈을 따라 거의 동시에 달려나갔지만 달리는 스피드는 놈이 월등했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졌다.
결국 이진성은 저 앞에 가던 놈이 점프해서 2m가 넘는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것을 보고는 추격을 멈췄다.
“헉헉헉… 썅!”
한번 멈추고 나자 숨이 차오르고 온몸의 근육이 바늘로 쑤시는 것 고통이 몰려와서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도 못 하고 숨만 몰아쉬는 이진성이었다.
“형님. 놓쳤네요. 거의 잡았는데…”
뒤에서 장동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진성이 뒤돌아봤다.
그곳에는 장동건과 함께 미군복을 입은 백인 남자 한 명, 히스패닉계로 보이는 여자 한 명, 그리고 동양인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장진도 더 한국군으로 위장할 필요가 없었기에 미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
“여기 미군들이래요. 아까 좀비 잡아준 사람들.”
“아… Nice to meet you. Thanks for saving him.”
동양인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한국말로 하셔도 됩니다. 전 한국인입니다.”
“아 그러세요? 다행이네요. 저 친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결국 놓쳤네요. 아깝게요.”
“그러게요.”
이진성이 다시 놈이 도망간 방향을 쳐다보는데 한국인 미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저쪽에서 구한 검 쓰는 분도 엄청나시던데, 아저씨도 엄청나시네요.”
이진성과 장동건이 놀라서 장진을 돌아봤다.
“검 쓰는 사람을 구해요? 설마 긴 반백의 머리칼에 장검 쓰는 사람인가요?”
“네… 맞는데요?”
“구하다니요? 그분이 뭐가 잘못됐습니까?”
“아뇨. 잘못되신 건 아니고, 병원에서는 그냥 탈진에 의한 기절이라고…”
이진성과 장동건이 서로를 쳐다봤다. 관장이 겨우 일반 좀비 좀 잡다가 탈진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쪽에 뭔가 특수한 존재, 즉 1호 같은 존재가 있었어야 말이 됐다.
“혹시 여기에 1호 같은 놈이 또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저런 놈은 1호 하나밖에 없습니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둘이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던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현주씨랑 현희 누님!”
“누나들은?”
이진성이 달리기 시작했다. 따라가고 싶은 장동건은 아직도 쑤시는 옆구리 때문에 달릴 수가 없었다.
“형님. 차로 가요. 언제 뛰어가요?”
장동건의 말에 이진성은 방향을 바꿔 계속 뛰었다. 그 방향이 4번 게이트 쪽이었다. 타고 온 험비로 향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장진이 이유를 물었고 장동건이 나현주와 김현희에 관해 이야기했다.
“잠시 기다려 보세요.”
이야기를 들은 장진이 방탄모에 달린 헤드셋으로 어딘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끝낸 장진이 장동건에게 간략하게 말했다.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그 두 분은 이미 기지로 돌아와 계시다네요.”
이진성은 이미 골목을 돌아 나가 보이지도 않았다.
“에구. 형님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 찾으러 다니겠네.”
“이재규 대위와 얘기했으니까 그쪽에서 알려 줄겁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 *
일행이 병원으로 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병원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고 있는 관장이었다. 그 모습에 안심한 모두는 지나가는 흰 가운 입은 사람을 붙잡았다. 동남아 쪽 사람이었다.
“How long is he doing like that?”
“I’m not sure. Maybe half an hour?”
나현주의 질문에 그 사람은 바쁜 듯 한마디 대답과 함께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진성이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명상하시게 그냥 두는 게 좋겠어. 듣기로는 엄청난 무위를 보이고 기절했다고 하거든요. 아마도 저같이 폭주상태였거나. 아니면 거기 준하는 상태였던 거 같은데… 어쩌면 그때 기억을 더듬는 건지도 몰라요.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밖으로 나온 일행은 이재규 대위를 찾아 사령부로 향했다. 직접 겪어본 1호는 동탄의 그 여자 까만눈 보다 훨씬 위험했다. 더 강했고 더 똑똑했다.
지금 식으로 나타나면 대응해서는 겨우겨우 막는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