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80화 (80/145)

# 80

병사와 주민들의 진화 여부는 다음날 확인하기로 하고 회의를 끝낸 사람들은 각자의 집과 사무실로 흩어져 갔다.

알렉스 일행은 정찰 일정에도 없던 정찰을 나간다며 부랴부랴 나섰고 캘리와 ITL 박사들은 각자 자신들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달리 할 일도 없는 이진성 일행은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유독 표정이 좋은 장동건이었다. 이진성이 그런 장동건을 끌고 다른 일행과 거리를 벌리고 남들 듣지 못하게 속삭였다.

“야. 뭐 좋은 일 있냐? 좋은 거 있으면 나누자. 혼자 챙기면 죽는다 ”

장동건도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관장님 병원에 계시잖아요. 오늘 저랑 혜진이랑 집에 단 둘이잖아요. 흐흐흐”

“야. 너 무슨 짓 하려고? 설마 너?”

“아이 씨. 이 아저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무슨 짓은 무슨 짓? 그냥 분위기 잡고 저녁 해 먹이려는 거지”

“진짜지?”

“와. 형님. 나 그렇게 보고 있던 거쇼? 섭섭하게 왜 이래? 걱정하지 마쇼. 뭐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뭔가가 일어나면 좋은 거지만”

“퍽이나. 아직 혜진이가 쌀쌀맞기만 하드만”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좀 점수 좀 따려는 거지”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이진성은 장동건과 키득거리며 쑥덕쑥덕했고, 세 여자는 혀를 끌끌 차며 둘을 바라보았다.

“저것들 또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나 보다”

“그러게. 아까 회의 할 때는 좀 멋져 보이더니 또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네”

“전 왜 이렇게 몸에 소름이 돋죠? 아 씨.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려나?

“감기라도 드는 거니?”

팔을 쓸며 몸을 부르르 떠는 장혜진과 그녀를 보며 의아해하는 나현주와 김현희는 바보같이 헤헤거리고 있는 남자 둘을 놔두고 걸음을 재촉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생선을 굽고 뭔가를 끓이고 볶는 장동건과 그런 그를 보며 이상해하는 장혜진의 귀에 문의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띠리릭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으로는 관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어? 관장님 벌써 퇴원하시는 거예요?”

장동건은 묘한 표정으로 관장을 맞았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관장의 모습에 안도하면서 동시에 오붓한 저녁과 그다음의 뭔가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얼굴에 떠올랐다.

“그렇게 됐소. 걱정해 줘서 고맙소. 그런데 얼굴이 왜 그렇소?”

“아… 아니에요. 어서 오세요.”

뒤돌아 주방으로 가는 장동건의 발걸음은 급격히 무거워졌다.

결국 저녁 식사는 이진성, 나현주와 김현희까지 와서 여섯 명이 같이 하게 되었다. 관장으로부터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억이 또렷하니 이진성과 같은 폭주는 아니었다. 마치 싸우다 겪은 진화 같았다.

바로 얼마 전에 폭주를 겪은 이진성이 가장 관심 있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렇게 되신 거예요? 그럼 관장님 또 한 단계 나가신 건가요?”

“그건 아닌 거 같소. 기의 크기는 거의 변화가 없소. 달라진 게 있다면 검을 잡았을 때 뭔가를 잡았다는 느낌이 더 이상 들지 않소. 그냥 내 팔을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한쪽에서 장혜진에게 생선을 발라주던 장동건이 고개를 돌렸다.

“음……. 무협지의 신검합일 뭐 그런 건가?”

“그게 뭔지 나도 모르니까 뭐라고 하긴 그렇소. 그건 그렇고, 날 구해준 게 미군들이라고요?”

“네. 아직 못 만나셨죠? 팀 나눠서 인근 수색하기로 했어요. 관장님은 그 사람들하고 한 팀이에요. 영어는 걱정 마세요. 거기 한국인도 한 명 있어요.”

“나 영어 잘하오.”

자신 있게 말하고 밥을 먹는 관장을 보고 눈만 끔벅끔벅하던 장동건이 이진성에게 넌지시 물었다.

“관장님 건물주라고 했죠?”

“응”

“검도 도장도 하고 오토바이 가게도 하고?”

“응”

“영어도 잘하고?”

“그건 나도 첨 들어. 근데 왠지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아. 뭔가 도사 분위기 막 팍팍 풍기잖아”

“이름은 여자 이름이고?”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아니. 뭐든 허점을 찾으려고…….”

큼큼~~

관장의 헛기침에 둘은 입을 닫았다.

* * *

아침부터 이진성과 관장은 이 대위와 함께 병사들을 만나러 나섰다. 근무서고 있는 병사들을 한번 쭉 훑고 난 뒤, 병사숙소에서 쉬고 있는 나머지를 만날 계획이었다. 그다음은 오후에 체육관에서 민간인 전체를 만날 예정이었다.

이진성과 관장에 대해서는 동탄에서 온 병사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싸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몇명 안되지만 이미 소문은 충분히 나 있었다.

관장은 무협지를 찢고 나온 무서운 검객이었지만, 이진성은 아쉽게도 피의 마녀의 애인 아저씨일 뿐이었다.

“야. 오늘 그 사람들 왜 온다는 거야?”

“몰라. 그냥 왔다 갈 거라던데?”

“설마 우리 근무 점검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민간인 아저씨들이 뭐 때문에?”

“그러니까. 근데 딱히 올 일이 없잖아”

“못 들으셨습니까? 우리 중에서 진화자? 능력자? 뭐 하여간 그거 찾는다는데요?”

“우리 중에 그런 애들이 있어?”

“저도 모르죠”

경계 포스트 여기저기서 같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진성 일행을 맞은 대부분의 포스트는 수고하라는 격려만 하고 돌아가는 그들을 멀뚱멀뚱 봐야 했다.

이진성 일행이 열두 번째로 들린 포스트였다. 그곳에는 다섯 명의 병사가 있었다.

“드디어 한 명 있네요. 냄새가 좋아요”

“기의 크기도 좋소. 이 대위와 비슷하오. 격투 계열이오”

“그럼 관장님 한번 했을 때 보다 작다는 거네요?”

“나는 남들보다 원래 발달되어 있던 경우고”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자기 자랑을 하며 병사에게 다가가는 관장을 이진성은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관장은 거두절미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몸살을 하고 몸의 변화를 겪었지요?”

“네? 몸살이요?”

“그렇소. 유성우 이후에 몸이 변하지 않았소?”

“무슨 말씀이신지?”

주저주저하는 병사에게 이 대위와 이진성이 나섰다.

“걱정 말고 솔직하게 묻는 말에 대답하게”

“저기… 무슨 말이냐 하면요. 그게…….”

이진성이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몸의 증상과 몸살에 관해 설명하고 그런 일을 겪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병사는 이 대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 용인 쉘터로 가는 겁니까? 능력자들은 다 거기로 가던 거 압니다”

“에? 아니에요. 거긴 안 가요. 걱정 마세요. 이 대위님. 어제 미리 설명 안 하셨어요?”

“아. 그게 미리 말하면 병사들 사이에 동요가 일까 봐…….”

“미리 아나 오늘 아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어차피 다 알게 될 건데”

“그게… 그러네요”

이진성이 다시 병사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이제 원하시면 제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랑 같이 좀비 토벌에 나갈 거예요. 어쩌면 여기 있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에요. 놈들은 아저씨를 물어서 좀비로 만들려고 덤빌 거고요”

병사는 겁먹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이미 몸이 변했잖아요. 앞으로 아저씨 하기에 따라 거기서 더 진화할 수도 있어요. 저만해도 동탄에서 보다 훨씬 강해졌어요. 여기 관장님도 마찬가지고요. 여러분이 블러디 위치라고 부르는 제 마누라도… 아니 그건 됐고. 하여간 더 강해질 수 있어요. 이제 변한 세상에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라는 거죠”

이진성의 말을 들은 병사는 이 대위에게 물었다.

“제가 계속 이렇게 살기 원하면 그래도 되는 겁니까? 제대가 선택입니까?”

“선택은 선택이네. 사실 이미 군대의 의미도 없는 현 상황에서 제대라는 것도 웃기긴 하지. 하여간 자네가 계속 군인의 신분으로 있고 싶으면 그래도 되긴 하네”

“좀 생각을 해도 되겠습니까”

“알겠네. 단 내일 오전까지 결정하게. 우리도 더 기다릴 수는 없네. 할 일이 많아”

“그러겠습니다”

병사를 뒤로하고 나온 셋은 생각지 못한 반응에 약간은 당황했다.

이 대위의 예상은 제대하는 병사와 그렇지 못한 병사들 간의 부러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꺼릴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진성과 관장도 병사들이 좀비들과 싸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좀비들과 싸우다 보니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나 보오”

“그런가 봐요. 사실 여기 있으면 안전한데 굳이 나가 싸울 이유가 없는데, 저 자신도 어느새 나가 싸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네요”

“어쩝니까? 다른 진화자들도 다 안에 남기를 바라면?”

“뭐 어쩔 수 없죠.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대신 누군지 알았으니 그 사람들 중심으로 내부 수비 계획 짜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겠네요… 쩝”

이진성과 관장은 그 병사를 시작으로 총 여섯 명의 진화자 병사를 찾았다.

그중에 제대하고 이진성 일행과 함께 움직이기로 바로 결정한 둘을 제외한 넷은 시간을 원했다.

그런 분위기는 민간인들도 같았다.

강당에 모인 사람 중에서 달큰한 냄새가 나는 사람은 일곱이 나왔다. 20대가 셋, 30대 둘. 40대 하나. 50대 하나였다.

그중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본인 의사 보다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중에는 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일단은 가족의 설득이 먼저였다.

바로 결정한 사람은 오히려 20대의 아가씨 한 명과 50대 아저씨였다.

아가씨는 가족 없이 혼자, 아저씨는 20대의 아들 한 명과 같이 와 있었다. 둘은 나머지 가족을 모두 좀비에게 잃었고 그 모습을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전 죽어도 상관없어요. 여기서 그냥저냥 목숨이나 부지하고 있느니 나가서 한 놈이라도 더 잡겠어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놈도 이제 성인이고 동의했습니다. 제 엄마의 복수를 해 달라고 하네요. 자기도 능력만 되면 참여하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합니다”

여자는 유도를 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 번의 진화 후 힘이 비약적으로 세졌다고 하는 것이 김현희와 비슷한 부류였다. 2팀의 방어를 담당하게 하면 될 것 같았다.

“혹시 방패 같은 거 써 본 적 있어요?”

“없어요”

“음… 그럼 당분간 현희 누나한테 좀 배우는 게 좋겠네요. 이 대위님. 혹시 방패로 쓸만한 거 있을까요?”

“미군 전술 방패가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여기 그런 것도 있으려나?”

아저씨는 특전사 출신으로 제대 후 건강을 위해 특공무술을 쭉 해오고 있었고, 진화 후 무술이 한층 깊어졌다고 했다.

“혹시 지금 가볍게 대련 가능하세요?”

“여기서요?”

이진성은 체육관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련을 요청했다. 아저씨의 실력을 확인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또 다른 노림수가 있었다.

관장에게 들은 아저씨의 기의 크기는 다른 사람들을 월등히 압도했다. 거의 이진성이 세 번째 진화하기 전, 관장과 나현 주가 두 번째 진화하기 직전의 기의 크기에 필적한다고 했다.

대련은 박진감이 넘치게 진행될 것이 분명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마음은 고양되거나 더 무서워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어느 쪽이든 결정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진화자 병사들도 불렀다.

“전 이 도끼로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저한테 상처를 입히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도끼를 쓰겠다는 거라고 믿겠습니다”

말과 함께 자세를 취하는 아저씨에게 이진성은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둘의 대련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이진성은 아저씨가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상대하는데 자신의 60% 정도의 파워와 스피드를 사용해야 했다.

아저씨는 겨우겨우 막아 내면서 순간순간 공격도 찔러 넣었다. 물론 눈앞의 이진성이라고 한 사람이 일부러 공격기회를 준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많은 사람은 순간순간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감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감탄의 탄성을 지었다. 약 5분의 대련이 끝나고 몸이 달아 오른 것은 대련한 아저씨뿐만이 아니었다. 대련을 지켜본 다른 진화자들의 몸도 함께 달아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정오.

기지의 정문에는 결심을 굳힌 민간인 다섯과 진화자 병사 여섯 모두가 나와서 이진성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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