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어서 오세요. 다들 어려운 결정 하셨네요”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일행은 팀을 나누기 위해 그들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열한 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곱 명은 격투 쪽으로 진화한 사람들이었다. 태권도, 합기도부터 택견까지 무술의 종류는 다양했다.
전날 대련했던 박두식이라는 아저씨의 능력치가 가장 좋았고, 나머지는 비슷하게 관장과 나현주가 한번 진화했을 때 보다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나머지 넷 중 셋은 파워쪽 능력자로 김현희가 처음 몸살 했을 때 딱 그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체육관에서 바로 합류를 결정했던 이지은과 씨름했었다는 남자, 피트니스 트레이너였다는 남자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장동건과 같은 계열의 홍수진이라는 40대 여자였다. 다른 점이라면 무기가 총이 아니고 활이었다.
30대까지 양궁선수였다는 그녀는 자신의 활을 가지고 나왔다.
장동건이 자신과 같은 계열의 그녀에게 다가가 활을 구경하며 물었다.
“이 난리 통에 활을 챙겨서 피난 오신 거예요?”
“제 인생 같은 거라서요. 버리고 올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화살 떨어지면 그 다름에는요?”
“수거해서 고쳐가면서 써야죠. 다 떨어지질 때까지 제가 살아 있다면 그때 빠지도록 할게요”
“몇 발이나 가지고 계세요? 지금 가지고 나오신 게 다예요?”
“50발 있어요. 지금은 30발만 가지고 나왔어요. 얼마나 필요할지 몰라서”
“만들기는 어려워요?”
“글쎄요. 다른 소재로 만든다면 모르겠는데 이것처럼 만들기는 힘들겠죠?”
이야기를 듣던 관장이 다가와 화살을 하나 받아 보면서 물었다.
“대나무 같은 걸로 만들면 안 됩니까?”
“그럼 화살마다 편차가 커져서 명중률이 떨어져요. 적당한 나무를 구하기도 어렵고요. 아니면 물푸레나무 같은 걸 깎아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여기선 힘들 거고요”
얘기를 들은 관장은 배웅나와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이택진을 불렀다. 김현희와 얘기 중이던 이택진은 관장에게로 다가와 얘기를 듣고는 화살을 받아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지 내에 공작실이 있어요. 거기에 목공 선반도 있으니까 나무 깎는 건 될 텐데 물푸레나무는 구하기 힘들 겁니다. 다른 나무라도 상관없다면 목재는 많아요. 화살 정도는 평생 쓸 정도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화살촉과 깃은 어떻소?”
“촉은 탄피를 씌워서 두드리면 될 것 같은데요? 끝에만 뾰족하면 되는 거잖아요? 깃은 얇은 철판을 대면 어떨까요?”
관장과 이택진의 시선이 여자에게 몰리자 여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택진에게 말했다.
“일단은 쏴 봐야 알겠지만 될 것 같아요. 길이는 그 화살과 같게 해 주세요. 탄피를 입히려면 굵기는 비슷하게 안 되겠죠? 그래도 가능한 한 비슷하게 부탁드릴게요”
“에구. 일거리 생겼네요. 허허. 오늘 저녁때까지 시제품 만들어 보겠습니다. 나중에 오셔서 한번 테스트해 보세요”
대략의 소개와 파악이 끝나고 인원은 두 팀에 각각 배분되었다. 1팀에는 네 명의 격투가와 씨름선수 출신 한 명이 합류했고 나머지 여섯 명은 2팀으로 향했다.
두 팀은 각자 준비된 험비와 전술 장갑차에 탑승했다. 혹시나 주민을 구조하면 태우고 올 빈 장갑차 두 대씩이 팀별로 따라붙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인식 씨도 같이 가는 거야?”
“그럼요. 제가 아니면 누가 따라가요?”
“대성 씨는?”
“대성이는 저쪽 2팀 험비 운전하죠”
1팀의 험비에는 동탄에서부터 친하게 지낸 김인식 병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일행이 탑승하자 제일 친하게 지낸 장동건에게 얼른 알은 채를 했다. 운전과 통신 담당으로 이 대위가 배정해 준 것이었다.
“인식 씨도 제대하지 그래? 지금도 말하는 거는 거의 민간인이나 마찬가진데. 크크크”
“선배님도 참. 제대 하나 안 하나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요? 숙소만 바뀌는 건데요 뭐. 그냥 병사숙소에서 아는 녀석들이랑 지내렵니다”
“제대하고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건 어때?”
“에? 그래도 되나요?”
“안될 건 뭐야? 방도 남는데”
“그럼 대성이도?”
“좋지”
장동건과 김인식의 잡담을 들으며 이진성의 1팀은 신대리라는 곳으로 향했다. 동시에 2팀은 그 옆의 본정리라는 곳으로 향했고 공중에서는 박 준위가 조정하는 헬기가 두 팀의 주위를 돌며 보이는 것을 무전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신대리 동남쪽 도로로 좀비 진행 발견. 20여 마리. 저놈들은 우리가 맡겠다>
일행이 신대리에 진입해서 막 차량에서 내리려는 그때 무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저 멀리서 호버링 하는 헬기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와. 멋지네. 저렇게 공중에서 잡아주면 우리는 할 일도 없겠다.”
“그러게요. 형님. 우리도 슬슬 움직이죠”
기관총 사격을 잠시 구경하던 일행이 마을로 진입해서 몇 채의 집을 확인하고 락카로 빈집임을 표시하던 그때였다.
장동건이 차고 있던 헤드셋에서 박 준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헤드셋은 육탄전을 하지 않을 장동건만이 차고 있었다.
<주택가로 들어간 10여 마리 놓쳤다. 놈들은 흩어졌다. 1팀에서 처리 바란다>
“형님. 좀 놓쳤다는데요?”
“왜?”
“흩어져서 집으로 숨었나 봐요. 헬기에서 사방으로 숨는 것들은 대응하기 힘든가 보네”
“그냐? 아쉽네. 좀 편하게 하나 싶었더니. 사람들 다 불러야겠다”
이진성과 장동건은 주위 집과 건물들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
나현주와 김현희 그리고 새로 합류한 다섯은 두 사람의 고함에 하던 수색을 멈추고 둘에게 달려가야 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헬기에서 다 못 잡은 놈들이 주택가로 숨어 들었다나 봐요. 그러니까 조심해서 움직이도록 해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다 같이 움직이면서 놈들 잡으면 어떨까 해서요. 이분들 연습도 좀 하시고”
“그게 좋겠네요. 언니. 방패는 이분 쓰시게 하지?”
“그럴까?”
김현희는 자신의 방패를 씨름했다는 남자에게 건네주며 기본적인 때리기와 방패날치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 물러섰다. 그리고 이진성이 앞으로 나섰다.
“좀비들의 위치는 제가 알려 드릴 겁니다. 일단은 여러분들이 좀비들 잡는 연습을 했으면 해요. 저희는 뒤에서 보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달려들 거고요. 여기 동건이가 엄호사격도 해 줄 겁니다. 그러니까 안심하시고 놈들을 잡아 보세요”
그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냥 총으로 잡으면 안 될까요? 꼭 때려잡아야 할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그렇긴 한데요. 그동안 경험해 보니까 이런 곳에서 총은 웬만큼 잘 쏘지 않으면 효용이 떨어지더라고요. 몇 놈 잡다 보면 어느새 놈들이 바로 가까이 와 있을 겁니다. 그러면 결국 몸싸움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몸으로 싸워서 여러분들 능력을 키웠으면 하는 게 저희 생각입니다”
진화는 했지만, 좀비와 싸워본 적이 없는 다섯이었다. 다들 무술을 했다고 하지만 정해진 대련과 시합 밖에 해 보지 않은 그들은 좀비와 직접 싸운다는 생각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에 이진성은 자신의 처음이 생각났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나아질 부분이기에 달리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진성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다섯이 걸었다. 김현희, 나현주, 장동건은 제일 뒤에서 그들을 엄호하며 따라갔다.
동네에서 온갖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나긴 했지만 가까이 온 놈들의 냄새는 충분히 맡을 수 있는 정도였다. 기습에 당할 위험은 없었다.
십여 채의 집들을 확인하고 빈집 표시를 했을 때였다. 이진성의 코에 놈들의 냄새가 들어왔다.
“저 앞에 노란 대문 집에 세 마리 있네요. 셋 다 빨간눈 입니다.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방패로 막으면서 들어가서 잡아 보세요”
“어떻게 아세요? 그런걸?”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일단 놈들부터 처리하죠”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다섯은 집으로 조심해서 접근했다. 그 뒤를 이진성과 나머지가 따랐다. 집의 대문은 열려 있었고 안으로 보이는 놈들은 없었다.
“저쪽 방 안에 있습니다. 문 열면 튀어나올 겁니다. 그럼 방패로 치고 시작하세요”
말을 한 이진성은 다섯을 방문 앞에 세워 놓고 문을 열어 버렸다.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빨간눈 세 놈이 차례로 달려 나왔다. 나오면서 이진성을 잡으려는 놈을 피해 뒤로 몸을 빼면서 다섯 명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다섯은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좀비를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놈들의 새빨간 눈이 그렇게 섬뜩하게 보일 수 없었다. 손톱과 이빨을 자신들에게 박으려고 달려드는 놈들의 모습에 온몸이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
씨름 남자는 바로 코앞까지 놈의 이빨이 다가오기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놈의 빨간 눈과 이빨만이 눈에 보였다.
완전히 넋이 나가 욕조차도 나오지 않는 그의 목에 막 놈의 주둥이가 박히려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눈에는 자신에게 달려들던 놈이 저만치 날아가 벽을 처박는 것이 보였다. 놀라서 돌아본 옆에는 후덕하게 생긴 김현희라는 아줌마가 주먹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총각. 그러다 물리면 저놈들 처럼 되는 거야. 정신 차려”
그리고 씨름 남자가 들고 있던 방패를 빼앗아 들고는 자신이 날려 버린 놈에게 서슴없이 걸어갔다. 그 뒤에 보이는 것은 아줌마의 방패에 다져지는 놈의 모습이었다.
나머지 두 놈은 네 사람의 협공으로 잡혀 있었지만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았다. 넷의 공격이 합이 맞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긴장한 탓에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해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렸다.
타격이 너무 약하거나, 급소가 아닌 부위를 때렸다. 놈들에게 물리는 것이 두려워 머리 쪽 공격은 하지도 못했다. 넷이 둘을 공격했기에 그나마 잡고 있을 수 있었지 1:1의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이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넷을 보고 있던 이진성의 코에 다른 놈들 다섯의 냄새가 들어왔다. 시큼한 놈 셋과 달큰시큼한 놈 둘이었다.
“현주씨. 다섯 놈이 더 와요. 빨 셋, 검빨 둘. 저 두 놈 처리해 줘요”
말을 들은 나현주는 바로 몸을 날려 네 명이 싸우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넷은 자신들이 공격하는 곳으로 파고드는 나현주의 모습에 깜짝 놀라 다급하게 뻗었던 주먹과 다리를 회수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순식간에 대가리가 터져나가는 한 놈과 상체와 하체가 발길질 한 번에 끊어져 버리는 나머지 한 놈의 모습이었다.
“헉! 블러디 위치”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면서 졸지에 제대한 남자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사람들도 이미 소문으로 들은 내용이 생각나며 일제히 뒤로 두어 발을 물러났다.
그 모습에 짜증이 돋은 나현주가 나직하게 뇌까렸다.
“그 별명 다시 말하지 말아요. 그리고 지금 다섯 마리 더 옵니다. 그중에 검붉은 눈 두 놈은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빨간눈 셋 처리하세요”
“넵” “넵” “넵” “넵”
아직 군복 벗은 지 몇 시간 안된 넷은 바로 차려자세로 대답했고 민간인인 씨름 남자도 몸에 힘이 팍 들어갔다. 그 상태로 집 밖으로 달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진성과 장동건이 한마디씩 했다.
“그래도 토하고 그러진 않네요. 형님”
“저들도 진화하면서 감정이 무뎌진 거겠지. 우리가 그런 거처럼”
다섯을 따라 나간 넷의 눈에는 골목 저 앞에서 달려오는 다섯의 좀비가 보였다. 앞에는 빨간눈 셋, 그리고 5m쯤 뒤로 검붉은눈 둘이 따라오고 있었다.
“동건아. 뒤에 두 놈”
“네”
장동건이 총을 듦과 동시에 뒤에 오던 두 놈의 머리는 터져나갔다. 그 모습과 갑자기 터져 나온 총성에 깜짝 놀란 다섯은 이어지는 이진성의 고함에 앞으로 달려나가야 했다.
“저 셋 못 잡으면 다음부터는 한사람이 한 마리씩 상대하게 하겠습니다”
씨름 남자는 방패를 휘둘러 제일 앞의 놈을 벽에 박아 버렸고, 넷의 주먹과 발이 나머지 둘의 몸에 꽂히면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5분이 지나지 않아 다섯은 피를 뒤집어쓰고 눈 앞에 펼쳐진 세 좀비의 고깃덩이 앞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