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마을 대부분은 빈집이었지만, 시체가 썩어가는 집도 드문드문 있었다.
사람 사체들은 대부분 좀비에게 뜯겨 먹혀 살이 거의 없는 뼈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썩을 것은 있었고 파리와 벌레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가축의 사체는 상태가 더 심각했다. 농가 곳곳에 있는 작은 축사에는 굶어 죽은 소와 돼지, 닭이 넘쳐났다. 그 근처는 파리가 구름처럼 날아다녔다.
“인식 씨한테 기름 가지고 이쪽으로 오라고 해.”
위생문제로 시체가 있는 집은 태워 버리기로 하고 출발했었다. 그리고 썩는 냄새를 빨리 없애는 것이 이진성에게도 좋았다.
걸어서 이동 중에 태울 집이나 축사가 발견되면 대기하던 김인식을 장동건이 무전으로 불렀다.
그렇게 한집 두집 빈집을 표시하고 태울 집을 태우며 전진하던 1팀은 숨어있던 나머지 좀비 다섯을 더 잡고 마을 하나의 수색을 마쳤다.
획득한 것은 약간의 감자, 고구마, 당근, 마늘 같은 것들과 쌀 몇십 킬로 정도였다.
집에 있는 대부분 식량은 이미 썩었거나 쥐가 다 파먹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다음은 저쪽 신대2리 쪽입니다.”
1팀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밭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진성 일행은 별로 한 것도 없었지만 새로 합류한 다섯은 휴식이 절실했다.
장갑차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손을 씻고 얼굴을 닦았다. 뒤집어쓴 피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몸 여기저기 붙은 좀비 살점은 떼내고 싶어 했다.
진저리를 치며 손끝으로 하나씩 잡아떼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쳐내기도 하는 그들을 보며 나현주가 이진성에게 속삭였다.
“강하게 굴려야겠어요.”
“누구? 저 사람들?”
“응. 저 사람들. 난 처음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마도 저 사람들은 그동안 군대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심리적으로 강해질 기회가 없었나 봐요. 군인들도 동탄에 있던 친구들은 비교적 안전한 환경이었고.”
“그렇다고 해도 아까 처음에는 우리 없었으면 다 물렸을 거예요.”
“절박함이 없었겠죠. 뒤에 우리가 있으니까. 우리는 잘못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싸워 온 거고.”
아산호에서 불어오는 짠 내 섞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느 정도 기운을 찾은 다섯을 보고 일행은 다시 움직였다.
신내2리는 방금 지나온 새터라는 마을보다는 집이 많았다. 하지만 역시 빈집과 시체가 있는 집들밖에 없었다. 역시나 가축은 죽어있고 부식거리는 썩어있었다.
“형님! 형님! 이리 와 봐요!”
장동건이 들어간 축사에서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우르르 달려간 일행에게 돼지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장동건의 등이 보였다.
“왜? 무슨 일이야?”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도 육식해요?”
“몰라. 사료 먹겠지? 근데 돼지 자체가 잡식동물이잖아. 왜 갑자기?”
“이거 좀 봐봐요.”
축사 안에는 빨간 눈의 돼지 두 마리와 젖을 빨고 있는 역시 빨간 눈의 새끼 돼지 여섯 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돼지 뼈로 보이는 뼈들이 널려 있었다.
ITL에서 변이체의 번식을 확인한 것은 이미 인터넷이 끊긴 이후였다. 그래서 이진성 일행은 좀비의 번식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와. 좀비도 번식하는구나!”
“형님. 이것들 기지로 가져가요. 가서 키워요. 멧돼지보다 맛도 좋을 거 아냐?”
“키워 먹자고?”
“응”
“먹이는? 돼지를 먹여야 하는데?”
“어? 그러네? 안 되는 건가? 그럼 일단 이것들만이라도 잡아먹든가.”
좀비 돼지는 순했다. 몰아서 장갑차에 태우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저번에 멧돼지 좀비도 엄청 순하더니 이것들도 그러네. 사람 좀비도 좀 순했으면 좋겠구먼.”
“그러게.”
돼지를 챙겨놓고 나머지 집들을 더 수색하며 태울 것을 태우기를 한 시간쯤, 동쪽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소리를 들은 나현주가 그쪽을 바라보며 장동건을 불렀다.
“2팀인가 본데, 저쪽에 많나? 동건아. 헬기에 좀 물어봐.”
“예스 맴!”
“박 준위님. 들리세요? 2팀 쪽에 총성 나던데 무슨 일이에요?”
<마을 외곽에 놈들이 몰려 있어요. 아까는 발견 못 한 건데 한 바퀴 돌고 오니까 있네요. 중계해 줄 테니까 직접 물어보세요.>
그리고 잠시 후 장동건의 헤드셋으로 정진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 저 장동건이인데요. 거기 어때요? 총소리 나던데?”
<좀 전에 발견해서 싸우고 있어요.>
“많아요?”
<40 정도 같아요.>
옆에서 귀를 대고 듣던 이진성이 헤드셋을 벗겨 들고 말했다.
“거기 새로 온 사람들이 잡도록 해 주세요. 그 사람들 훈련 필요할 거예요.”
<그러고 있어요. 우리는 일부만 잡을 거고요. 좀비들 너머에 생존자가 있어서 구조하느라 사격 시작한 겁니다.>
“생존자요? 몇 명이나?”
<아직 모르겠어요. 알렉스랑 관장님이 갔어요.>
* * *
2팀이 생존자를 발견한 것은 약 10분 전이었다. 장단이라는 마을을 수색하고 본정마을의 수색을 반 정도 한 시점이었다.
두 마을은 1팀이 수색한 마을과 마찬가지 상태였다. 다른 점은 시체가 그쪽보다 많아 불태운 집이 서너 집에 하나 정도는 됐다는 것이다.
챙길 것은 챙겨가며 마을을 뒤지고 있는데 50여 미터 앞의 3층집에 좀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놈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집을 빙빙 돌면서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관장이 알렉스를 불렀다.
“알렉스. 저기 봐.”
“어디? 오마이갓. 좀비잖아. 몇 마리야? 많아 보이는데?”
“지금 보이는 것만 20 정도. 집 주위를 돌고 있으니까 그 두 배는 있다고 생각해.”
“저기 뭐가 있는데 저러지?”
“가 보면 알겠지!”
“선정. 저번과 같은 모습 또 볼 수 있는 거지?”
“아니. 지금은 그때처럼 못해. 그때는 거의 정신을 잃고 과부하 상태였어. 그리고 오늘은 저 사람들이 앞에 설 거야.”
알렉스와 영어로 대화를 마친 관장은 새로 합류한 여섯 명에게 말했다.
“박두식 선생님이 사람들을 이끌고 저들을 잡아 주시오. 우리가 뒤에서 백업해 드리겠소.”
“너무 많지 않습니까?”
“다 잡을 필요 없소. 하는 데까지만 해 주시면 되오. 여러분 여섯이면 스물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스물이요? 너무 말씀을 쉽게 하시는 거 아닌가요?”
피트니스 트레이너였다는 남자가 발끈하면서 나섰다. 그를 잠시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 관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가능하오. 우리 일행은 여기까지 오면서 다섯이서 한 번에 수백을 잡기도 했소. 믿고 해 보시오. 그쪽과 이지은 씨는 방패로 수비를 맡고 나머지 분들이 공격을 맡아 주시오.”
그는 수백을 잡았다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물론 그도 동탄에서 소문은 들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은 총을 가진 미군들을 믿고 사람들과 앞으로 나섰다.
놈들에게 20m 정도로 다가갔을 때였다. 집 안쪽만을 보고 으르렁거리던 놈들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열몇 마리가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박두식과 이지은이 선두로 달려나가고 그 뒤를 세 명이 마지못해 따라 달렸다. 홍수진은 제일 뒤에서 활에 화살을 제기 시작했다.
“선정. 저들로 괜찮다고 생각해?”
“너희들이 엄호만 잘하면 충분해!”
“저들은 훈련받은 사람들이 아니야. 같이 싸워 본 적도 없고.”
“실전이 최고의 훈련이야. 그리고 안심해. 저놈들은 우리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어. 우리를 물어서 동료로 만들려고 할 거니까.”
그때 선두는 좀비의 선두와 격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잘못되면?”
“자기 운명이지. 그보다 집 안에서 사람이 느껴져.”
“사람? 생존자?”
“응. 보통 사람이야. 우리 같은 사람은 없어. 열 명이 조금 넘는 것 같아. 저놈들의 식량이 될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이쪽보다 저쪽에 더 신경을 쓰는 거군!”
관장과 알렉스는 여유 있게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박두식은 역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지 조금만 싸워 본다면 혼자서 수십 마리를 잡기에 충분한 실력이었다.
이지은은 유도 경험을 살려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좀비를 잡아 메다꽂았다. 그 와중에 목이 부러져 즉사하는 놈도 한둘 나오기도 했다.
나머지는 관장의 눈에는 차지 않는 전투력이었다.
그렇게 잠시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는데 좀비가 내지르는 소리를 뚫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로 이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스. 들었어? 서두르자.”
“아기 소리? 들었어. 가자고. 씬디! 진! 저 사람들 엄호해.”
둘을 남겨두고 관장과 달려나가는 알렉스는 현관문에 붙어있는 놈들부터 쏘기 시작했다.
투투투 투투투
UMP45에서 뿜어져 나가는 탄들은 금방 문 앞의 다섯을 박살 냈다.
그리고 집 울타리 안으로 둘이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놈들이 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선정. 나머지는 맡길게. 하하하”
알렉스는 스물 정도의 좀비들에 둘러싸여서도 태평이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이 장년의 한국 무사를 확실히 믿고 있었다. 그저 그의 사각에서 덤비는 놈들만 처리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관장이 싸우는 데 방해되지 않게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관장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놈들은 알렉스보다 관장이 더 위협적이라고 느꼈는지 일곱밖에 없는 검붉은 눈 전부가 관장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정육점의 고기처럼 팔다리 몸 대가리가 해체되기까지는 고작 십여 번의 호흡이면 충분했다.
관장은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 최대한 그때와 가깝게 검을 날리려고 노력했다. 비록 그날의 속도와 정밀함에는 한참을 못 미침에 아쉬워하며 눈앞의 놈들을 배어나겠지만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한 발 떨어져 간간이 달려드는 빨간눈들을 가볍게 쏴 죽이고 있는 알렉스의 눈에는 그날의 관장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역시 엄청나. 괴물이야. 선정. 조금만 천천히 잡아줘. 너무 빠르면 볼 게 없잖아”
‘저놈은 놀러 나왔나?’
알렉스의 외침을 들은 관장은 속으로 타박을 하면서도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그 대신 더 정밀한 검격을 시도하며 좀비 한 마리당 수십번의 베기와 찌르기를 꽂아 넣었다.
‘이런 건가? 이랬던 거 같은데? 아닌가?’
그렇게 좀비들을 데리고 검술을 확인하는 모습은 알렉스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박두식과 이지은, 홍수진을 제외한 셋은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피트니스 강사는 방패를 들고 달려드는 놈들을 쳐내기만 할 뿐이었다. 군 출신 둘도 겨우겨우 다가오는 놈들을 막고만 있었다.
홍수진이 활로 다섯을 잡고 박두식과 이지은이 셋을 잡는 동안 나머지 셋은 겨우 하나를 잡고 이미 뒤로 물러나 나머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갑자기 들리는 총성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펼쳐지는 관장의 믿기지 않는 살육을 볼 수 있었다.
“씨발. 소문이 진짜였잖아?”
그들이 보기에 관장이 열몇 마리의 좀비를 해체하는데 걸린 시간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분명히 검을 들고 싸우는데 검은 단 한순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관장의 주위로 피가 튀고 팔다리가 날아갈 뿐이었다.
관장에게 다가간 놈이나 관장에게서 도망치는 놈이나 전부 똑같은 결과로 사방에 흩어져야 했다.
“이 병장님. 진짜였어요. 무협지에서 나온 검객이라는 말.”
“그러게. 근데 야. 나 이제 병장 아니다.”
세 명이 그렇게 관장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는 동안, 나머지 셋은 남은 놈들을 모두 처리하고 시체들에서 화살을 뽑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남아있던 씬디와 장진이 분명히 보고 있었다.
“저 셋은 정신교육이 좀 필요하겠어.”
“우리가 좀 데리고 있어야겠어요.”
그날 이후, 셋은 매일같이 8시간씩 미군 특수부대의 훈련과정을 이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