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내실 다지기
수색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들은 씻고 휴식을 끝내고 회의실에 다시 모였다.
출동했던 1팀과 2팀의 인원 외에 이 대위와 캘리 소령, 박인화 소장이 참석했다.
집에서 혼자 할 일이 없는 장혜진도 참석해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별 할 일이 없는 장혜진은 노트북 컴퓨터로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구출되어 온 14명의 주민이 앉아 있었다.
열 명이 60대 이상의 노인이었고 나머지는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이었다. 울음을 터트렸던 아이는 만 두 살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따뜻한 차와 주전부리 거리를 주고 사람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좀비들의 습격도 습격이지만 군부대 안에 들어와 있는 것도 그들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이재규 대위는 병사를 시켜 아이들 장난감을 기지 내 쇼핑몰에서 가져오게 했다. 장난감을 받은 아이들은 곧 진정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노인들도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대위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젊은 분이 안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젊은이들은 다 죽었지요. 괴물로 변하기도 했고 다른 괴물들에게 잡혀먹히기도 또 도망 가기도 했고…”
말을 하는 노인은 마을의 최고령자였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뒤집히고 나서 한동안 마을은 조용했다고 했다. 전기가 끊겨 불편했지만, 위험은 없었다. 어딘가 갈 사람은 가고 나머지는 남았다.
그러던 중 4월이 되고 마을 이장을 포함한 40대 세 명이 자기 집 식구들을 잡아먹으면서 마을에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도망치는 식구 덕에 세 집의 문은 열렸고 놈들은 밖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이 도망쳤지만, 또 많은 사람은 마을에 남았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출입도 못 하고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
놈들은 마을을 떠나지도 않고 간혹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 잡아먹기도 했다.
농촌 마을에 젊은 사람은 원래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던 60대 밑의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놈들을 잡는다고 나갔다가 놈들에게 오히려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굶어 죽거나 물이 없어 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진의 통역으로 얘기를 듣던 알렉스가 관장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시체들이 그렇게 많았나 보군”
“쉿. 얘기나 더 들어”
그렇게 대치상황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며 시간만 흘러 5월이 되었다. 5월의 어느 날부터 군부대 쪽에서 총소리가 늘어나더니 갑자기 조용해지고 며칠 뒤,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가 나자 마을을 배회하던 좀비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가 버렸다.
“선정. 1호가 기지에서 도망쳤을 때의 이야기 같아”
“조용히 하라니까”
하루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용기를 낸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남은 사람은 서른도 안 됐다. 다시 도망갈 사람은 도망가고 남은 사람이 지금의 인원이었다. 사람들은 남은 식량을 가지고 노인의 집에 모여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서너 번의 좀비 습격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집은 뚫리지 않았고 오늘까지 살아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기지 근처의 마을 분들을 기지 내로 대피시켰는데 왜 그때 안 들어오셨습니까?”
“처음부터 일이 터졌으면 그랬겠지만, 별일도 없는데 집 버리고 갈 이유가 없었지요. 전기가 끊기고 나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 더 움직이지 못했고”
이재규가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답을 들었다. 그렇게 사정 청취를 끝내는데 이진성이 궁금한 것이 있었다.
“어르신. 혹시 마을에 놈들이 몰려 왔을 때 눈이 까만 좀비. 그러니까 괴물이 오지는 않았습니까?”
“눈이 까만? 그런 것 까진 우리가 모르지요. 무서워서 그놈들 쳐다보기나 했나? 그저 놈들이 몰려오면 쥐죽은 듯 집에 숨었지.”
“그럼 그때 몇 마리나 왔는지 혹시 아십니까?”
“글쎄요. 처음 왔을 때 50은 넘었고 나중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거 같더이다. 모르긴 해도 100은 훨씬 넘지 않았겠소?”
“혹시 그때도 처음에 마을 사람 괴물들이 없어질 때 들었던 그 소리 들으셨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노인은 사람들과 숙덕였다.
“그런 거 같소이다. 처음에 왔을 때는 모르겠는데 많이 왔을 때는 확실하게 들은 사람이 여기 있구먼”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오늘도 들으셨나요?”
“아니요, 오늘은 아무 소리도 안 났소”
이진성의 문답으로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최소한 1호가 오늘은 기지 근처에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 1호가 컨트롤 하지 않는 좀비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을 배정된 집으로 보내고 모여 앉은 사람들은 회의를 시작했다.
“저번에 봤듯이 1호는 이미 몇백의 집단을 거느리고 있었어요. 아마도 작은 집단을 만들어 다시 공격하지는 않으려나 봅니다. 대신 오늘 본 것 같은 작은 독립 집단의 공격은 산발적으로 있을 수 있겠어요”
이진성의 예측에 이 대위가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한 번에 많이 오는 게 더 편하겠는데 말이죠. 여기저기서 자주 오면 그게 더 짜증 나겠어요”
“아이구. 대위님이야 앉아서 명령만 하니까 뜨문뜨문 오면 편하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 번에 많이 오면 그게 더 힘들어”
김현희의 타박에 이 대위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게 아니고요. 한 번에 오면 병력을 투입해서 한 번에 많이 잡을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죠”
“어차피 병력은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한쪽에서만 공격하면 투입 가능하긴 하죠”
장동건이 한마디 던졌다.
“저번에 봤듯이 한쪽으로 공격 안 하잖아요”
이 대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네요. 병력이 더 있다면 좋겠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농경지 팬스공사를 빨리하면서 여러분들이 힘을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요”
듣고 있던 관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없는 인원 고민하면 뭐 하겠소. 그보다 박두식 씨 포함한 그 열한 명 말이오. 훈련 계획을 짜야 할 것 같소. 내 생각에 박두식 씨를 팀장으로 3팀을 만들면 어떨까 하오”
누군가를 칭찬하는 관장의 모습에 놀란 이진성이 물었다.
“박두식 씨가 오늘 잘했어요?”
“믿을 만 했소. 실력도 좋고 용기도 있고”
“팀을 짜면 인원은 어떻게 해요?”
“박두식 씨 포함 무술 하는 사람 다섯에 방패 둘, 그리고 사격 담당할 병사를 좀 붙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오. 아무래도 경험이 적으니 인원이라도 많아야 할 것 같소.”
장동건이 사격담당 병사에 대해 의견을 냈다.
“그냥 보통 병사로는 서너 명으로는 안될 거예요. 동탄에서도 봤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관장님 2팀에 사격 병 많이 필요하세요? 알렉스만 있으면 어때요? 씬디 상사랑 정진 하사 3팀으로 보내고?”
“그래도 별문제는 없기는 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홍수진 아줌마. 양궁 하는 아줌마가 2팀으로 가서 보조하고요”
“알렉스. 들었지? 어떻게 생각해?”
정진에게 그들의 대화를 이미 들은 알렉스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문제없어. 나도 한팀에 우리 셋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셋이 필요한 경우는 아마도 모든 팀이 뭉쳐야 할 정도의 상황일 거야”
“그럼 편성은 그렇게 하는 거로 하지”
향후 편제와 함께 그들의 훈련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일단은 1팀과 2팀에 붙어서 실전 훈련을 하고 영내 훈련은 각자 특기에 따라 나눠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특별히 씬디와 정진의 주장에 의해 세 명은 특수부대 훈련을 하기로 결정 봤다.
피트니스 강사 정신무는 그 훈련에 더불어 유도 이지은과 씨름 강만기와 함께 김현희에게 방패술 훈련도 받아야 했다.
나머지 인원의 격투 훈련은 나현주와 이진성이 맡았다.
다음 안건은 저번에 박인화 소장이 캘리에게 요청한 외국 상황 확인에 대한 답변이었다.
“답이 왔어요. 미국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현재 인간 변이체의 발생은 끝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 아직은 한 달 정도 더 지켜보고 결정을 하겠답니다. 이 내용은 다른 나라에 파견 나가 있는 대부분의 부대에서 동일하게 보고되었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지구 전체에서 유전자 변이체의 자연 발생은 끝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현주가 기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이제 다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잡아 온 돼지와 같이 변이체도 번식합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미국에서는 인간 변이체의 번식을 확인했습니다”
캘리의 말에 모두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때 박인화 소장이 나섰다.
“제가 오늘 미리 캘리와 얘기했었어요. 거기에 대해서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시오?”
“인간 변이체의 배란 주기가 정상 인간보다 길어진 것 같다고 합니다. 4월에 생리한 개체가 아직 다음 생리를 안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건 저희의 동물실험에서 비슷하게 확인했던 거에요”
생리에 관한 이야기라서 여자인 김현희가 남자들보다 더 궁금했는지 바로 질문했다.
“얼마나 늦어지는데요?”
“인간의 경우는 아직 모릅니다. 확인이 되지 않았어요. 동물의 경우 지난 배란 후 아직 다음 배란이 안 된 종도 있습니다. 확인된 종은 원래 주기가 짧은 동물들인데 평균적으로 5배 이상 늘어났어요. 평균치를 대입하면 인간의 경우 5개월 전후로 추정이 되겠죠. 단 말씀드린 대로 종마다 달라서 확인이 필요해요”
“그럼 인간 다섯 명 태어날 대 좀비 하나 태어난다고 봐도 되겠네요?”
“아뇨. 임신 기간도 늘어납니다. 거의 두 배로요. 그리고 개체 수의 차이도 있으니까 열심히 번식 활동을 한다면 멸종은 피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관찰하고 있는 인간 좀비가 있소?”
“아뇨. 1호가 탈출하면서 다 나갔어요. 그 후로 우리 연구원 한 명이 변해서 지금 저희가 확보하고 있는 건 남성 개체 하나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다음에 나가시면 여성 개체를 좀 생포해 주세요. 한 열 마리 정도만”
“생포요? 죽이는 거보다 더 어려운데?”
“마취총 드릴게요. 저희한테 세 자루 있어요. 마취 탄도 열 마리 잡는 데는 충분하게 있어요”
듣고 있던 장동건은 열심히 번식 활동을 하라는 말 이후에는 다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진성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번식 활동 할 수 있는데…….”
혼잣말로 작게 한다고 했지만,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일부는 안됐다는 눈으로, 일부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야.야. 지금 그런 말을 하기에는 분위기가 아니지 않냐?”
옆구리를 쿡 찌르는 이진성의 말에 그제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급하게 장혜진을 쳐다보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나도 하나의 남자로서…….”
말이 꼬여 어버버하고 있는 장동건을 보며 모두가 속으로 혀를 차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장혜진의 몸에 소름이 확 돋아올랐다.
장동건의 말 때문인가 하고 그를 잠시 째려보던 장혜진은 이내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전에 보육원에서 좀비들이 올 때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제가 기분이 이상해요. 뭔가 엄청 불길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동쪽에서 무서운 기운이 다가오는 그런 기분이에요. 이거 전에도 느낀 적 있어요. 보육원에서 어른들 없을 때 좀비들이 올 때 느낀 거랑 비슷한 기분이에요”
모두가 장혜진의 말을 듣고 말을 멈췄다. 저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었다. 서로 멀뚱멀뚱 얼굴을 쳐다보다 박인화 소장이 회의를 이어 가려고 말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애애애앵~~~~~~~~~~
기지 내 경보사이렌이 울렸다. 비상시에만 울리는 경보였다.
띠리리리~~~
회의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급하게 전화를 집어 들은 이 대위는 곧 얼굴이 굳으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습격이랍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랍니다. 기지 동쪽 A7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답니다. 100 개체 이상인것 같다고 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장혜진에게 다시 쏠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장혜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