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84화 (84/145)

# 84

경보가 울리기 약 10여 분 전. A7-2 포스트에는 두 병사가 마주 앉아 잡담 중이었다.

“아함~~. 이제 10시도 안 됐는데 졸리네요”

“야. 아무리 군대 개판 됐다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 니가 나한테 졸린다고 해도 되는 거냐?”

“참나. 병장님도. 이미 제대하셨어야 할 분 아닙니까? 적당히 하자고요. 적당히”

“하. 미치겠네. 어이. 김 상병님.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다”

이 병장과 김 상병에게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담장에서 70m쯤 떨어진 창고의 경비초소였다.

비록 주위로 깜깜한 넓은 공터지만,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무방한 그런 위치였다.

“저기 담장 위에 있는 애들은 잘하고 있겠죠?”

“걔들이야 너냐? 저기 서치라이트 잘 돌아가잖아”

“여긴 라이트 안 달아 주나? 너무 어둡잖아요”

“그러게”

“그나저나, 제대 안 시켜 준답니까?”

“야. 채울 인원이 있냐?”

“민간인으로 근무서면 되잖습니까?”

“그럼 똑같잖아! 뭐가 달라?”

“에이. 기분이 다르죠. 저쪽에 집도 얻어 가죠. 사복입죠. 많이 다르죠!”

현재 민간인들이 사는 전 미군 가족 아파트를 가리키는 박 상병의 손을 따라 쳐다보던 이 병장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안 그래도 제대신청 할까 고민 중이긴 하다. 근데 저기도 거의 찼다고 하던데…….”

“낮에 들었는데 2중대 김인식 병장이랑 박대성 상병은 제대신청 했다고 하던데요?”

“나도 들었지. 근데 걔들은 마녀 일행이랑 친하잖아. 그쪽 집으로 들어간다던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김 상병이 갑자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

“오줌이요”

“화장실 가라. 또 아무 데나 싸지 말고”

“아무도 안 보는데 뭐 어때요?”

“냄새나잖아!”

“어휴. 멀리 가서 쌀게요”

투덜대며 나가는 김 상병을 보며 제대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려하는 이 병장이었다. 그리고 2 분 정도나 됐을까.

이 병장은 김 상병의 비명을 들어야 했다.

“이거 뭐야? 으악~~~”

바로 초소에서 나갔지만 어두워서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야. 장난치면 죽는다”

대답이 없었다. 대신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르르륵~. 크악~.

‘좆됐다’

다시 초소에 들어가 문을 잠근 이 병장이 무전기를 듦과 동시에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박두식은 낮의 정찰이 끝나고 새로운 집을 배정받았다.

방 다섯 개짜리 그 집은 그 외에 홍수진, 이지은, 강만기, 정신무도 같이 지내기로 한 곳이다.

그리고 나머지 제대한 병사 여섯이 한 채를 받았다.

이 대위와 이 진성 일행은 그들이 같이 지내는 것이 팀웍 향상과 위기대응에 좋다고 생각해 권고했고 그들은 별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오늘 대단했죠? 그 사람들?”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낮의 일을 얘기하던 그들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이진성 일행의 활약으로 넘어갔다.

“엄청 났어요. 우리는 쩔쩔매던 걸 혼자 순식간에 처리하는데…….”

“동탄에서 저희 병사들 몇 명이 같이 싸웠잖아요. 그때 듣기로도…….”

순수한 감탄과 부러움에 젖어 한참을 떠들던 그들의 귀에 갑자기 사이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 뭐지?”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이번에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수화기는 바로 전화기 옆에 앉아 있던 이지은이 들었다.

“네. 네. 알겠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녀를 보는 모두에게 이지은이 지급받은 방패로 걸어가며 간략하게 말했다.

“좀비 습격이래요. 지금 장갑차 온다고 밑으로 내려오래요.”

활과 방패를 들고 밑으로 내려가기 무섭게 장갑차 한 대가 아파트 구역 게이트로 들어와 그들 앞에 섰다.

병사의 급한 재촉에 따라 탑승한 장갑차에는 다른 진화자가 하나도 없었다. 대신 병사가 상황을 브리핑했다.

“좀비들이 기지 내부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서 여러분 먼저 출동하시는 겁니다”

“에? 어떻게 기지 내부에?”

“모릅니다.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놈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셋으로 나눠 주세요. 가면서 내려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은요?”

“지금 사령부에 계십니다. 금방 올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싸워도 괜찮을까 걱정하며 일단은 되는대로 셋, 넷, 넷으로 인원을 나눴다.

기관총을 쏘며 전진하던 장갑차가 정차하고 박두식, 홍수진, 이지은이 내렸다.

장갑차는 다시 기관총을 쏘며 어디론지 달려갔고 그들의 몇십 미터 앞에는 창고와 초소 하나가 있었다.

그 초소 주위에는 몇 마리의 좀비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방금 장갑차의 기관총을 피해 도망쳤던 좀비들이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다섯 마리 밖에 안되는군요. 저랑 이지은 씨가 가겠습니다. 홍수진 씨는 엄호해 주세요”

달려가는 박두식과 이지은의 머릿속에는 낮에 봤던 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들은 좀비들을 잡느라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얼핏 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경이적이었다.

듣기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다고 했다.

둘은 그들의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달렸다. 그리고 초소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달려오는 좀비의 모습이 보였다.

슛. 슛. 슛~

화살이었다.

귀 옆을 지난 화살 세 대가 달려오는 세 놈의 빨갛게 빛나는 눈에 박혀 들었다.

화살이 두개골을 뚫지는 못했지만, 눈을 뚫고 뇌를 파괴하기에는 충분했다.

박두식과 이지은은 하나씩만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점프한 박두식의 발이 달려오는 놈의 무릎에 꽂히며 빠각 소리와 함께 놈의 다리가 부러졌다.

다리가 거꾸로 꺾여버린 놈은 앞으로 자빠지며 팔을 뻗어 박두식을 잡으려 했지만, 헛손질일 뿐이었다.

놈의 옆으로 피한 그는 자빠지는 놈의 목과 어깨 등에 순식간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놈의 상체가 땅에 닿았을 때 놈의 목은 이미 대검에 반쯤 잘려져 있었다.

목에서 피를 뿜으며 다시 일어나려는 놈의 척추는 박두식의 무릎에 찍혀 부러졌고, 목뼈는 뒤로 꺾여 결국 대가리가 잘려나갔다.

이지은의 방패에 맞아 3m 정도를 날아간 놈이 바닥을 몇 바퀴 구르고 다시 일어설 참이었다.

그런 놈의 눈에 다시 이지은의 방패가 휘둘러 오는 것이 보였다.

일어나길 포기한 놈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방패는 대가리를 지나쳤다.

하지만 놈은 자빠진 채 일어날 수 없었다.

방패로 헛방을 친 이지은이 그대로 방패를 던지고 놈의 등을 밟았고, 두 팔을 뒤로 꺾어 탈골 시켰다.

연이어 놈을 번쩍 든 그녀는 거꾸로 메다꽂아 두개골을 깨서 저만치 던져 버렸다.

한 놈씩을 순식간에 처리한 둘이 다른 놈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초소의 문이 끼익 열렸다.

두 사람이 초소를 향해 달리고 홍수진이 활을 돌렸다.

“사람입니다. 공격하지 마세요”

초소에서 나온 것은 총을 든 병사였다. 그는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 더 이상의 좀비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셋에게 말했다.

“놈들이 흩어졌어요. 저를 따라 오세요”

무전기로 계속 교신 하며 달려가는 그를 따라 세 사람도 달려야 했다.

* * *

A7-2 포스트에 도착한 이진성 일행이 흩어져 있는 좀비의 시체를 확인했다.

소총에 맞은 놈, 기관총에 맞은 놈도 있었고 칼에 죽은 놈과 대가리가 깨져 죽은 놈도 있었다.

눈이 터진 채 다른 상처 없이 죽은 세 놈도 보였다.

장동건이 무전을 통해 이쪽에 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여기에 박두식 씨, 이지은 씨랑 홍수진 씨 왔었다네요”

“칼에 죽은 놈은 박두식 씨한테 죽었나 보오. 이건 대검에 찔린 자국이군요”

“이지은 씨와 홍수진 씨도 잘하고 있나 봐요. 여기 눈 터진 놈들은 화살에 죽었나 봐요.”

“아직 1호 소리 들은 사람 없데?”

이진성이 장동건에게 1호 소리를 들은 사람 있는지 다시 확인하게 시켰다.

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확인한 것이지만, 다시 확인해야 했다.

만약에 1호가 있다면 일행은 뭉쳐서 전부 1호를 잡으러 가야 하고, 아니라면 흩어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좋았다.

“아직은 없나 봐요. 사령부 통제실에서도 그런 보고는 없다네요”

“아저씨. 일단 흩어져요.”

“만약에 함정이면 골치 아픈데”

“100마리 남짓이라니까 1호는 아니라고 가정하자고요. 시간 없어요. 빨리”

나현주의 말이 맞았다. 아까의 회의에서도 1호는 작은 집단 공격은 더 안 할 것으로 추정했었다.

“저는 뛰어 움직일게요. 냄새 맡기는 그편이 더 좋아. 동건이는 나랑 같이 가자”

“그럴까요? 그럼 마취총 가져올게요”

일행은 나오면서 ITL에 들러 마취총을 받아왔다. 장동건이 한 자루, 운전 담당인 김인식과 박대성도 한 자루씩을 받았다.

이진성이 차에서 내려 나왔던 김인식과 박대성을 불렀다.

“두 사람은 위험하면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 알지?”

“그럼요. 앞으로 나서라고 해도 안 해요. 흐흐흐”

“그래. 잘 부탁해. 그럼 흩어져요”

* * *

냄새로 가장 가까운 곳은 1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아홉 마리가 모여 있었다.

“동건아. 빨리 가자. 놈들이 안 움직인다. 누가 공격받나 보다”

놈들이 있는 곳은 창고를 돌아 건물 두 개를 지나서 나온 공터였다.

그곳에는 씨름맨 강만기와 세 명의 제대 진화자가 놈들과 싸우고 있었다.

넷은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겨우 놈들의 공격을 막으며 버티는 수준이었다.

숨은 헐떡이고 있었고, 물리는 것만 면한 채 이미 손톱에 뜯겨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네 명은 놈들의 손과 입을 피하고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동건은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 탕 타타탕 타타탕~

갑자기 터진 총성과 함께 바로 자신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의 대가리가 터져 나갔다.

여덟의 대가리가 터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마치 여덟 명의 저격수가 한 마리씩 잡은 것 같았다.

놈의 피와 뇌수를 뒤집어쓰고 놀라서 돌아본 그들의 눈에는 소총을 내리고 이상한 총을 드는 장동건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옆에 왔는지 이미 그들의 앞에 서서 하나 남은 좀비를 도끼로 밀어내고 있는 이진성을 볼 수 있었다.

“왜?”

왜 안 죽이는지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장동건이 들고 있는 총에서 ‘푹’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고, 좀비의 몸에는 주사기 같은 것이 박혔다.

그리고 이진성이 놈의 공격을 막으며 밀쳐 내기를 약 3분이 지나자 놈은 급격히 느려지더니 푹 쓰러져 버렸다.

“왜 갑자기 생포하시는 건가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 강만기에게 이진성이 간략하게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요. 이제 우리 둘 따라 오세요. 그리고 젊은 여자 좀비는 생포할 겁니다. 여러분은 계속 나머지 놈들을 공격해 주세요.”

“지금처럼 총으로 잡아 주시면 안 됩니까?”

“어차피 실전 훈련 할거잖아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세요. 위험하면 동건이나 내가 잡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놈들에게서 살아나 밝게 펴졌던 넷의 얼굴은 다시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이진성이 넷과 얘기하는 동안 장동건은 통제실에 무전을 보냈다.

“한 놈 마취해 놨어요. 와서 챙기세요. 여기 위치가… 여기가 어디냐?”

<위치는 여기서 잡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헤드셋만 켜져 있으면 됩니다>

“어. 그래요? 와! 엄청 좋은 장비네. 그럼 하나씩 잡을 때마다 알려 줄게요.”

<알겠습니다. 장갑차 하나 보내겠습니다>

이진성이 다음 놈들의 냄새를 맡았다.

그곳으로부터 약 70m 지점에서 열두 마리가 동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 갑시다. 놈들이 저 앞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열두 마리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달려나가는 이진성과 장동건을 따라 넷이 달리기 시작했다.

따끈따끈한 세 예비군은 달리면서 속닥였다.

“진짜 신기하지 않냐?”

“그러게. 초능력자 같아”

“전 저 장동건 선배님이 더 신기합니다. 동탄에서 7초소 애들한테 들었는데 총알만 있으면 혼자서 수백 마리도 잡는답니다”

그리고 네 명은 그날 밤 신기한 두 사람 때문에 몇 번을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땀은 물론이고 눈물 콧물을 흘렸고 나중에서 오줌까지 싸야 했다.

이진성은 안산으로 가면서 한 고생을 그들에게 시키며 즐기고 있었다.

‘그때 관장님하고 현주 씨가 날 보며 이런 기분이었나?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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