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85화 (85/145)

# 85

“으아. 살려 주세요. 헉헉”

“차라리 죽여 주세요. 학학”

강만기와 셋은 서른이 넘는 좀비를 잡으면서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했다.

죽을둥살둥 싸워 겨우 놈들을 다 잡고 나면 숨돌릴 틈도 없이 다른 놈들을 찾아 달려야 했다.

얄미운 이진성과 장동건은 좀비 생포 외에는 지켜보기만 했다.

그나마도 네 번째 군집과 싸울 때부터는 포획대상을 살리면서 싸우게 했다.

자기들은 지켜보다 마지막 남은 놈을 마취시키고 이동하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한 듯했다.

간혹 소리쳐 위험을 알려 준 적도 있긴 했다.

몇 번은 진짜 물릴 위기에서 도움을 받은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도움도 대부분 죽이기보다는 잠깐 시간을 벌어준 정도였다.

지금도 넷은 일곱의 좀비와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그들 넷이 잡은 다섯의 좀비가 널려 있었다.

“형님. 저 사람들 점점 잘하는데요?”

“그렇지?”

“한 놈 잡는 시간이 처음보다 꽤 줄었어요.”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점점 줄어”

“경험이 없어 그렇지 기본들이 있으니까 금방 느네요. 조금만 지나면 형님 세 번째 하기 전 정도는 하겠어요”

“응. 그러네”

둘이 여유 있게 보고 있는 곳에는 두 마리의 암컷 좀비가 있었다. 하나는 40대로 보이고 하나는 20대 정도였다.

그 20대는 비록 다 찢어졌지만, 상의는 입고 있었다. 하지만 하의가 없었다.

“쟤는 뭐하다 변했는데 상의만 입고 있냐?”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까 벌써 석 달 가까이 되네요. 옷이 없어진 놈들이 전보다 많아”

“그러네. 신경 안 써서 몰랐는데, 가만 보니까 옷이 걸레가 된 놈들도 많고 없는 놈들도 많고…….”

“쟤는 하의 실종녀라고 이름 붙이면 되겠다. 크크크”

“왼쪽 봐요!”

잡담 중에도 한 번씩 주의를 주는 이진성과 장동건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넷은 위태롭기는 했지만 빠른 속도로 가진 능력을 깨우쳐 갔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일곱도 마찬가지였다.

* * *

박두식 일행을 발견한 관장은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합류했다. 이미 낮에 같이 다녀본 셋은 기쁜 마음으로 관장을 맞이했지만 금방 후회해야 했다.

놈들의 위치를 알 방법이 전혀 없는 넷은 그저 소리에 의존해 달리고 또 달렸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달려가서도 놈들을 못 찾기 일쑤였다. 그리고 거기서 또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야 했다.

박두식만이 관장과 비슷하게 달렸고 나머지 둘은 죽을 맛이었다.

‘험비 하나는 따라오게 할 걸 그랬나? 무전할 사람 하나만 있어도 이러고 다니진 않았을 텐데’

달리면서 관장 자신도 후회했지만, 세 사람에게는 전혀 표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후회할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는 셋은 크게 오해했다.

‘아. 이렇게 해야 저렇게 되는구나’

저 앞에서 서성이는 일곱의 좀비를 본 박두식과 이지은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을 따라가던 홍수진은 그들에게서 30m 정도 거리에서 멈춰 활을 준비했다.

관장은 지금까지와 같이 함께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태 위험에 빠진 적도 없는 그들이기에 편한 마음으로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셋은 잘하고 있었다.

둘은 놈들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한 놈 한 놈 잡아나갔고, 홍수진도 놈들의 빨간 눈을 뚫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홍수진이 건물 하나의 벽에 붙어 활을 겨냥하고 앞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그녀가 막 건물의 코너를 지나쳤을 때 미처 발견 못한 좀비가 손을 뻗어 왔다.

놀란 그녀가 몸을 빼며 활을 돌렸다.

하지만 활은 놈의 손에 걸렸고 화살은 엄한 곳으로 날아갔다.

뒷걸음질 치며 활로 놈의 손을 쳐내는 홍수진을 본 관장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약 15m. 놈의 손이 활을 잡아채는 것이 보였다.

활을 놓친 홍수진이 가까스로 놈의 손을 피했다. 동시에 뒷걸음질 치던 발이 무엇인가에 걸렸다.

중심을 잃으며 뒤로 자빠지는 통에 다행히 놈의 또 다른 손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는 피할 수 없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그녀의 눈에 놈의 빨간 두 눈과 섬뜩한 이빨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눈이 감겨야 정상인데도 두 눈은 멀쩡히 떠져 그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놈의 두 손이 자신의 어깨를 잡는 것이 느껴지고 놈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화살이 아직 남았는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뭔가 번쩍하면서 다가오던 놈의 대가리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 놈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얼굴을 적시기 시작했다.

돌아본 옆에는 전방을 주시하는 관장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검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시오. 이동 중에는 항상 사각을 살피시오. 안 그러면 지금같이 되오”

‘멋있네. 이 사람’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며 저만치 떨어진 활을 향해가는 홍수진이었다.

* * *

상황은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해제되었다.

마지막 좀비를 잡은 것은 그보다 몇 시간 전이었다. 하지만 숨어 있는 놈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 확인을 할 가장 좋은 방법은 이진성의 코였다.

결국 이진성은 놈들이 처음 발견된 A-7 지점에서 마지막 발견된 곳까지의 영역 전체와 거기서 200m를 더 연장한 지역 내의 모든 건물까지 수색 해야 했다.

이제 건물 밖의 경우 150m 이상까지도 감지할 수 있지만, 건물 내부는 하나하나 들어가 확인해야 했다.

냄새는 없었지만 혹시나 해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에구. 이 짓 두 번 하기는 싫다. 얼마나 걸은 거야?”

“그러게요. 난 왜 따라나섰다가 개고생이래?”

“오늘은 쉬자”

“결단코 쉬어야죠. 좀비 쳐들어와도 쉴 거야. 형님 같은 능력 가진 사람 몇 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근데 난 워낙 독보적이라 기대하지 마라. 크크”

“뭐래?”

수색을 끝내고 보도블록에 앉아 다리를 두드리는 둘의 눈에 어느덧 밝아오는 하늘이 보였다.

피곤했지만 밝아오는 여명은 보기 좋았다. 상쾌하면서 뿌듯한 뭔가도 있었다.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선 이진성이 기지개를 한번 켜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집에 가서 자자!”

“그래요. 가요. 졸려 죽겠네”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뱉고는 숙소를 향해 돌아서는 그때 장동건의 헤드셋에서 이 대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회의실로 오세요. 정리 회의하겠습니다>

“씨풀”

“왜?”

“회의실로 오래요”

“씨풀”

얼굴이 구겨진 두 사람의 눈에 저 앞에서 달려오는 험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아니. 사람을 밤새 부려먹었으면 좀 쉬게 해야지 말이야.”

“그러게요. 지금 당장 회의가 급한 것도 없잖아요. 있다가 해도 되잖아”

“사람이 말이야. 좋게좋게 대해주니까 사람을 빙다리 핫바지로 아나.”

회의실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계속 툴툴거린 둘은 이재규 대위한테 한소리 하기로 작정했다.

씩씩거리며 계단을 올라 회의실에 도착한 둘은 얼굴에 잔뜩 힘을 주기 시작했다.

“표정 괜찮냐?”

“좋아요. 저는요?”

“너도”

그리고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온 둘은 멈칫해야 했다.

박인화 소장과 네 명의 외국인 연구원이 두 사람에게 달려와 악수를 하면서 뭐라고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빠르게 말하는 네 명에게서 알아들을 수 있는 건 ‘Thank you’ 외에 몇 마디 없었다.

둘러보니 자신의 일행들도 모두 와 있었고, 캘리 소령과 알렉스 일행도 보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뀐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며 나현주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무슨 일이래요?”

그 대답은 박인화 소장이 대신했다.

“수고하셨어요. 아까 포획한 좀비들 중에 임신한 개체가 하나 있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 아까 장동건이 ‘하의 실종녀’라고 이름 붙인 그 좀비가 임신한 개체였다.

연구원들은 기쁜 얼굴로 뭐라 뭐라 하는데 피곤한 두 사람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박수받을 일인가? 그냥 운이 좋아서 임신한 놈이 잡힌 거 아닌가?’

별일 아닌 거로 호들갑이라고 생각하는 이진성과 장동건에게 연구원들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 먼저 회의실을 나갔다.

그리고 둘은 이 대위에게 한소리 한다는 것도 잊고 앉아서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놈들이 들어온 위치는 저번에 폭파된 담장을 철조망으로 보수해 놓은 곳으로…….”

이재규 대위가 놈들이 들어온 곳에 관해 설명했다.

처음에 자신들이 좀비를 잡기 위해 토우미사일을 썼다가 담장을 날려 먹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철조망으로 보수해 놨는데 놈들이 그 철조망을 넘어 들어왔다는 말이었다.

그곳이 공교롭게 망루와 망루 사이에 있어 서치라이트도 닫지 않는 곳이었다.

“왜 거기에 조명 설치 안 하고요?”

“진동 센서가 있습니다. 그것만 믿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고장 났나 봅니다. 확인해 보니까 사흘 전에 작동확인 하고 안 했다는군요. 안일했죠”

“놈들이 철조망 펜스 정도는 쉽게 오르는 거 알고 있으면서 왜 그걸로 보수했소?”

“그때는 급하게 임시로 한다고 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 인재였다. 적은 인원으로 꾸려 오느라 사소한 것을 놓친 대가였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1호 무리가 아니었소. 만약에 1호 무리가 들어 왔다면 피해가 더 컸을 거요”

들어온 놈들이 전혀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1호의 지휘가 없는 놈들은 공격도 단순했다.

1호가 있고 없고가 너무 달랐다. 검은 눈의 위험성을 놈이 없음으로 인해 다시 한번 절감했다.

“동탄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까만 눈이 뭉치기 시작하면 답 없겠네”

“방정맞은 소리 하지 마. 말이 씨 된다.”

이진성의 혼잣말에 김현희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내용은 인원 부족과 대응으로 넘어갔다. 가능한 민간인들을 경계와 작업에 동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진성과 장동건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한 번씩 나현주가 깨웠지만 금방 다시 눈이 감겼다.

그렇게 자다 깨다 하는 이진성의 귀에 솔깃한 얘기가 들려왔다.

“해서 능력자를 확충할 생각입니다. 지금 인원으로 너무 부족하다는 판단입니다. 군인을 보충할 방법이 없으니 능력자라도 더 모아야겠습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관장이었다.

“가능하겠소?”

“용인 쉘터에서 전단으로 사람들을 모으지 않았습니까? 가능할 겁니다”

장동건도 끼어들었다.

“거기에 안 좋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인성검사 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죠”

“몇 명이나 모으려고 하우? 숙소도 거의 찼다면서?”

“다다익선입니다. 숙소는 외부 숙소를 사용해도 됩니다”

졸던 사람이 모두 깨어나 토론을 시작했다.

우려되는 점과 그들의 대우 등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그들의 안전과 그들로부터의 안전이었다.

사람이 많아지면 알력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알력은 내분이 된다. 그럼 모두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나름 능력을 갖추고 여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합당한 대우를 바랄지도 모른다.

단순히 주거와 음식 외의 어떤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왔을 때, 안녕히 가세요 하고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조직을 만들어야겠어요”

장혜진의 한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군대와 같이 능력자 조직을 만드는 거예요. 거기에 지휘계통을 만들고요. 상급자부터 하급자까지 편제하는 거죠. 위치는 능력대로 들어가게 하고요”

가능한 얘기였다.

“지휘관은 여기 계신 분 중에서 하시면 돼요. 어차피 더 뛰어난 사람이 올 것 같지도 않아요”

덧붙인 말에 나현주가 물었다.

“우리 중에? 누가?”

“관장님이 제일 연장자시고 실력도 좋으니까 관장님 어때요?”

“난 절대로 사양하오. 그런 짓은 체질에 안 맞아서”

“그럼… 유명한 언니가?”

“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펄쩍 뛰는 나현주를 뒤로하고 장혜진이 다시 사람들을 훑었다. 그리고 이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럼 아저씨가 하세요”

모두의 시선은 이진성에게 쏠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이 대단한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앞선 무력만 있다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기지 내에는 그것을 해줄 다양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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