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86화 (86/145)

# 86

“왜들 그렇게 봐요? 장난치지 마요.”

이진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소름이 돋고 등골이 서늘했다.

가만있으면 덤탱이를 쓸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 혜진이가 한 말 가지고 뭘 그렇게 생각해요? 말이 돼요? 제가 뭘 한다는 게?”

손사래를 치는 이진성에게 미소 띤 김현희가 다가와 어깨를 살며시 내려눌렀다.

“진상아. 이럴 때 감투 한번 써 보는 거야. 너 평생에 이런 기회 있을 거 같아?”

“이거 왜 이래요? 나 학교 다닐 때 반장도 하고 그랬어요”

“언제?”

“그게… 초등학교 때”

피식하고 돌아가는 김현희에 이어 나현주도 거들고 나섰다.

“아저씨. 뭐 걱정되는 거 있어요? 해도 문제 될 거 없는데?”

“왜 문제가 안 돼요? 내가 무슨 리더가 된다고? 날 아는 사람들이 왜 이래요?”

“리더 안 하면 되잖아요?”

“하라며?”

“리더 말고 대표하면 되지?”

이진성은 무슨 소린가 싶었다.

“뭐가 다른데?”

“리더는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고 대표는 그냥 앞에 나서는 사람이지?”

잠깐 생각하던 이진성이 얼굴을 구겼다.

“그러니까… 바지사장 하라고요?”

“바지사장은 아니죠. 아저씨 지금은 관장님도 이기잖아요. 사람들 어려울 때 나가서 싸우기도 해야죠. 흐흐흐”

“뭐야? 그러니까 어려울 때 몸빵만 하라는 거?”

“에이. 형님.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지. 몸빵이 아니고 해결사지. 멋지게 얍!”

“야. 너까지 왜 이래?”

누가 뭘 하든 아무 관심이 없는 관장은 그저 입 다물고 있었다. 자기한테 뭔가 직책을 주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관장은 침묵했고 나현주는 적극적으로 이진성에게 분위기를 몰아갔다.

귀찮은 책임을 지기는 딱 질색이었다.

알렉스 일행은 자신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기에 그저 가만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누가 대장의 자리에 앉아도 별달라질 것 없다는 생각에 아무나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나중에 나보다 더 잘난 사람 합류하면 어쩌려구?”

“그럼 그때 바꾸면 그만이지 뭘 어렵게 생각해?”

김현희의 말에 더는 변명거리도 없어진 이진성이었다.

“그리고 당장 뭐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이 모인 다음에 구성할 거니까 일단은 임시예요. 임시”

어떻게든 자신은 빠지려는 나현주는 임시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저기… 다른 분들은 의견 없으세요? 이 대위님이나 박 소장님이나 캘리 소령님이나?”

“저는 군인들만 책임 지면 되는데 무슨 의견이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책상물림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네요”

“It’s not my business”

“아 씨. 미치겠네”

구석에 앉아 투덜거리는 이진성에게 이 대위가 웃으며 다시 발언을 시작했다.

“그럼 저희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이 진성 대!장!님!은 조직 계획 짜주시면 저희 병력과 연계 계획 짜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크크”

“아 진짜 왜 그래요? 이 대위님까지?”

“왜요? 절차 없이 추대 돼서 그래요? 임명식이라도 해 드려요? 흐흐흐”

“아니 그게 아니고…….”

입을 여는 이진성을 무시한 이 대위는 발언을 이어갔다.

“전단은 공중살포하겠습니다. 내용은 여러분이 작성해서 주세요. 그리고…….”

듣고 있던 박인화 소장이 손을 들었다.

평소에 자신과 관여된 것 외에는 발언하지 않던 소장이 손을 들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것과 함께 식량 문제도 같이 얘기하면 어떨까요? 현재 기지 내 식량으로 가을까지 버티기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요. 더군다나 사람이 더 오면 더 어려워집니다. 저번에 이진성 씨가 사냥으로 충당한다고 했지만 좀 더 안정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끙~~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장동건이 입을 열었다.

“어업으로는 안되나요?”

“힘들죠. 된다 해도 생선만 먹고 살기는 그렇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이어서 이런저런 의견이 나왔지만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이 10분쯤 지났을 때 이 대위가 입을 열었다.

“식량이 있는 곳이 가까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공짜는 아닐 겁니다”

말을 들은 이진성이 바로 질문했다.

“예? 어디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은 또 무슨 말씀이세요?”

“용인 쉘터요”

아~~~

김현희를 뺀 이진성 일행은 모두 무슨 소린지 바로 알아들었다.

용인 쉘터에는 충분한 식량이 있다.

게다가 자신들이 오기 직전에 사람 수를 확 줄여 놨으니 더 여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채소 재배와 양계, 축산도 하고 있었다.

비록 충분한 양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도움이 될 양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현주가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침투할 경로가 없나요? 침투만 하면 털어 올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정문 게이트를 통과할 방법이 없습니다”

“김 소장을 협박할 거리 같은 것도 없으세요?”

“그런 거 있으면 동탄에서 써먹었겠죠”

점점 더 과격해지는 나현주를 걱정하던 이진성이 다시 물었다.

“김 소장님이 역시 공짜로는 안 주겠죠?”

“분명히 어떤 조건을 걸 겁니다”

“그렇겠죠? 그리고 지속적 공급을 위해서는 거래를 하는 편이 좋기는 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결국 거래를 요청해 보기로 했다.

이 대위는 자신이 거래하면 아무래도 좋은 조건은 아닐 거라고 고사했다.

그의 생각에는 확실한 공포감을 주고 온 이진성 일행이 거래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논의 끝에 임시 대표인 이진성과 그나마 사회생활 경험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관장이 담당자로 낙점되었다.

관장도 식량 확보에 대한 것까지 거부하기는 힘들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진성과 관장은 회의로부터 1주일이 지난 후 용인 쉘터로 향했다.

인근 마을의 수색과 주민 소개를 마무리 지어야 했고, 신입들의 훈련 계획도 구체적으로 짜야 했다.

수색 중에 몇 번의 수십 마리 군집 처리를 하며 ‘대장’으로서의 신위를 강제로 보이기도 했다.

그 화풀이를 격투 훈련 중에 하다가 예비군 신입 두 명의 팔을 부러트리기도 했다.

조직 계획을 짠다고 밤마다 고민하다가 결국은 무협지에서 본 조직을 구성하고 나현주한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 바쁜 1주일을 보내고 마치 휴가 가는 기분으로 용인에 도착한 이진성이었다.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어요? 거긴 어떻습니까”

헬기에서 내린 두 사람을 김 소장과 김민지가 맞았다.

역시나 영업용 미소를 띠고 반갑게 인사하는 김 소장이었다.

둘은 그런 김 소장과 김민지와 간단히 인사하고 쉘터 안으로 향했다.

가면서 본 쉘터 입구의 병사가 전보다 상당수 줄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병사들이 줄었네요?”

“아. 이 대위가 인간 변이가 끝났다고 알려 줬어요. 그래서 내부에서 생활하게 했습니다. 외부 근무자만 교대로 나오고 있어요”

“그럼 요즘은 지하 사람들도 잘 때 묶는 건 안 하나요?”

“그건 아직은 합니다. 한 달 정도는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요?”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근황을 얘기하며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아직 남아있는 군데군데의 핏자국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 완전히 안 지워 졌네요?”

“네. 잘 안 지워지네요. 호호호”

“응? 왜 웃어요?”

“일부러 안 지우고 있어요. 그게 사람들 통제하기 더 쉽거든요. 은근한 압력이죠. 호호”

“민지씨 아이디어?”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하여간 여우야. 이런 사람 하나 우리 쪽에 있으면 기획시키고 좋을 텐데’

김민지를 탐내며 소장의 사무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곳에서 기다리는 도만수를 볼 수 있었다.

“어서 오시게. 반갑네”

“어르신. 잘 계셨어요?”

“나야 뭐 죽을 날 기다리고 사는 늙은인데 잘 지내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별말씀을 다 하세요”

“그래, 어쩐 일로 오셨나?”

오는 이유를 미리 밝히지는 않았다.

김 소장이 미리 계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밀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과를 하며 약간의 잡담 끝에 두 사람이 온 이유를 밝혔다.

“소장님. 쌀 좀 빌려주세요”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쌀을 요구하자 소장은 당황했다. 더군다나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빌려… 달라니요?”

평택에서는 구매가 아닌 빌리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구매한다면 소장에게 대가로 줄 만한 게 현재 평택에 없었다.

만약 소장이 인력지원을 조건으로 거래를 한다면 그것도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빌리는 것이었다.

가을에 추수해서 그때 갚을 생각이지만, 혹시라도 못 갚게 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깔려있었다.

“말 그대로 빌려 달라고요”

“얼마나요? 그리고 빌린다는 건 갚는다는 얘긴데 언제 어떻게?”

그리고 셋은 지루한 협상에 들어갔다.

관장은 의외로 협상을 잘 이끌어 나갔다.

엄밀하게 말하면 협상보다는 엄포에 가깝긴 했지만 하여간 소장에 밀리지 않았다.

덕분에 이진성은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담보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소리를 잔뜩 깔고 관장이 되물었다.

“담보라고 하셨소?”

“그게… 뭐라도 있어야…….”

“꼭 필요하시오? 우리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요?”

마치 조폭이 거래랍시고 협박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세시간 가까이 밀고 당기던 셋은 겨우겨우 합의를 보았다.

쌀 5t과 닭 30마리, 돼지 다섯 마리를 빌리고 가을에 쌀 6t을 갚는 조건이었다.

협상 내내 쌀에 집착하는 소장이 이진성은 의아했다.

우려했던 인력 지원 요청은 하지도 않았다.

갚을 쌀의 양을 처음에 8t을 부른 걸 깎고 깎은 것이다.

“끝나서 하는 말인데 왜 그렇게 쌀에 집착하세요? 먹을 사람도 없는데?”

“말씀드리면 뭘 주실 겁니까?”

“에? 관두세요. 몰라도 돼요”

“허허. 농담입니다. 끝났으니까 말씀드리죠. 사실은 세종에서…….”

소장의 설명으로는 세종시에서 내년에 경기 남부 장악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용인쉘터를 기점으로 서쪽과 북쪽을 김 소장이 지휘한다는 계획이었다.

병력 지원은 계획이 되어 있지만, 군량은 미정이라는 것이다.

소장은 자신의 쌀을 일부 제공하고 반대급부를 받을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뭘 받으시려고요?”

“상황 봐서요. 진급이 될 수도 있고 일정 지역의 자치권을 요구할 수도 있고요.”

“와. 소장님 꿈이 크시네요. 하하”

“크긴요. 별 달고 그 정도 꿈은 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흐흐. 나중에 저희 잘 봐주세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릴 일입니다.”

이진성은 소장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에 전보다 사근사근 대했다.

소장 역시 이진성 일행은 절대로 끈을 놓쳐서 안 되는 인물이기에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그렇게 양쪽은 서로 불만 없는 거래를 마치고 일어섰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두 사람을 도만수가 따라나서며 불렀다.

“지금 갈 건가?”

“네. 저쪽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요. 흐흐”

“나도 같이 가세”

“평택에요? 왜요?”

“내가 요즘 몸이 좀 많이 아파. 거기 병원에 박사님들 많다며? 검사 좀 받아 보고 싶어서”

그렇게 따라나선 도만수는 평택에 도착한 후 바로 병원으로 가지 않았다.

“내 자네들한테 할 말이 있네. 어디 조용한 곳 있나?”

“조용한 곳이라면?”

“군인들 안 듣는 곳.”

이진성과 관장은 도만수를 데라고 이진성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커피를 내준 이진성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내가 쌀이 많이 있는 곳을 알고 있네”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정부 양곡 창고라고 아나?”

도만수는 평택 시내의 농협 창고가 정부 양곡 창고 중 하나이며 그곳에 수십 톤의 쌀이 있다고 했다.

그 창고가 있는 부지도 자신의 땅이라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왜 이렇게 비밀스럽게 말하세요?”

“김 소장이 알게 되면 무리해서 그걸 확보하러 갈 걸세. 그런데 평택 시내야. 지금 김 소장이 가진 병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네”

“그럼 저희는 가능하고요?”

“모르지. 하지만 김 소장 보다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네만”

듣고 있던 관장이 끼어들었다.

“이런 정보를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알기로 어르신께서도 공짜로 뭘 주시는 분은 아니신데.”

“물론 대가를 받아야지. 자네들이 경기도를 차지하게. 그리고 그곳의 토지운영권을 날 주게”

이진성이 놀라 물었다

“예? 경기도를 차지하라니요?”

그리고 도만수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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